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출구조사에서 점쳤던 과반수 득표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2위 후보를 거의 2배차로 따돌리는 압도적 승리이다. 이 같은 압승을 바탕으로 그는 새 정권의 튼튼한 기반을 다졌다. 그러나 그는 이미 특검 피의자이다. 당분간 당내 수습을 위해서라도 필사적으로 달려들 각종 야당의 공세에 출발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런 시련 따위는 앞으로 기다리는 위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갖은 도덕성 논란에도 끄떡없는 지지율을 과시하며 압승을 거둘 수 있었던 바로 그 요인이 몇 년 이내에 바로 이명박 당선자에게 그대로 부메랑으로 돌아와 자신을 철저히 무너뜨리는 철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찌 그럴까. 하나하나 차근차근 따져보자.
'경제' 화두가 만든 이명박 대통령
이번 대선은 모두가 동의하다시피 '경제'가 화두였다. 이명박 당선자가 제 아무리 심각한 비리와 도덕성 논란에 휩싸이더라도 '경제만은 살리겠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모든 것을 방어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이명박 개인의 성공 신화와 서울시장 재직 시절의 강한 추진력이 '무언가 해줄 것이다'란 강한 기대를 일으킨 탓이기도 하지만 가장 근저에는 고매한 가치를 따지기에는 너무 힘겨운 서민들의 경제적 고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물러서 상황을 바라보면 여기에 역설이 존재한다. 우리나라 경제는 수치상으로 나쁘지 않았다. 일부 보수언론에서는 이른바 민주ㆍ개혁 세력이 집권하기 시작한 1997년 이전의 평균 8%의 경제 성장률에 비해 현재 잠재 성장률이 4%대로 반토막 났다며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의 근거로 내세운다. 하지만 여기서 이들이 무시하고 있는 것은 외환 위기를 맞은 1997년 이전과 이후의 우리나라 경제 구조와 대외 경제 여건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복잡한 분석을 차치하고서라도 우리나라가 이미 고속 성장 단계를 넘어서 안정 성장 단계로 진입했다는 것이 경제학계의 중론이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 등 주요선진국의 선례를 살펴보더라도 우리나라의 현재와 비교할 수 있는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초반에서 후반으로 진전되는 1980년대 초반 또는 후반 기간의 성장률을 보면 작게는 2%에서 커야 4%수준이니 우리나라의 현재 성장률은 성장 단계를 고려할 때 그 중 가장 높은 수준인 것이다.
문제는 서민 경제
그럼 국가 경제가 나쁘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 성장 단계상 괜찮은 성장을 했다면 왜 '경제'가 대선의 핵으로 등장했을까. 정작 문제는 말하자면 이른바 '서민 경제'가 문제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국가수준에서 경제가 원만히 발전을 해도 그 혜택이 서민 개개인에게 이르지 못한 것이다.
국가 경제가 성장을 할 때 개개인의 국민은 고용을 통한 수입을 통해서든지, 사업을 해서 돈을 벌어서든지, 공공복지 정책을 통한 사회보장을 통해서든지 그 혜택을 내려 받게 된다. 먼저 고용 부분을 보면 '고용 없는 성장'이란 단어가 말해주 듯 성장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거기다가 전체 임금노동자에서 비정규직 비중이 절반을 넘고, 그 임금도 정규직의 절반 수준이다. 청년 실업률은 8%에 이르고, '사오정', '오륙도'가 말해주듯 중장년층도 고용 불안에 떨고 있다. 이렇게 임금에 따른 수입이 적으니 전체 취업자의 30% 수준에 이르는 자영업자들이 잘 풀릴 리 없다.
노무현 정부가 말끝마다 복지, 복지 했지만 이러한 경제 구조와 노동 시장의 변화 등으로 인해 급증하는양극화 현상에 어떠한 실질적 영향을 미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여전히 사회지출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절반인 꼴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식이 있는 집에서는 살인적인 사교육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해서 가계를 압박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07년 현재 가구당 월평균 사교육비 지출은 50만 2300원으로 지난 5년간 35%가 증가했다. 웬만한 중산층 가정이면 월평균 사교육비가 100만 원대를 훌쩍 넘긴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노무현과 똑같은 이명박
사정이 이런데도 노무현 정부는 체감 경제와 관계없이 성장률만 들먹이며 "우린 잘 했다 잘 했다" 하니 민주ㆍ개혁 세력이라는 집권 세력 전체에 대한 사무친 염증이 '이들이 망친 경제 내가 살리겠다'고 나선 성공신화 이명박 후보에 대한, 각종 도덕성 논란에도 끄떡없는 철갑지지가 형성된 배경이었던 것이다.
그럼 이명박 당선자는 서민 경제를 살릴 수 있을 것인가. 여기서의 심각한 역설은 이명박 당선자의 경제에 대한 인식과 공약을 보면 국가 수준의 경제 성장률에만 집착하고 정작 이 혜택이 서민에게 이르는 그 서민 경제에는 대책이 없는, 바로 그 지점에서 노무현 정부와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이미 선거운동 이전부터 몇 번을 강조했듯이 경제 성장률만 끌어올리면 그 혜택은 자연히 서민들에게 돌아간다는 이른바 '낙수효과'를 주장해왔다. 이는 박정희 시절의 개발독재에서 절대빈곤을 탈출해 본 경험과 겹치면서 별다른 의문을 받고 있진 않다.
하지만 실제로는 낮은 임금이나마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황에 비정규직이 문제도 되지 않았던 그 시절과 비정규직이 절반을 넘고 고용 불안에서 아무도 자유롭지 않은 지금과는 조건 자체가 다르다. 게다가 박정희 정권은 국가 중심의 개발주의(developmentalism) 전략을 따른 반면 이명박 당선자는 그 정반대인 국가 축소와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전략이 경제 수치는 살릴지 몰라도 고용 시장에 악영향을 주고 불평등 심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은 이미 국제적으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입증된 사실이다.
그럼 그의 '747' 공약처럼 7%의 고속 성장이라도 가능한 것인가. 이미 우리나라가 안정 성장 단계에 들어섰다는 얘기는 앞서 했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이제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이 가능할 때는 지났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한국은행 등 주요 경제기관은 물론 여러 경제 연구 기관도 인플레이션 등 부작용 없이 최대 성장할 수 있는 한계치를 말하는 잠재성장률은 보통 4%, 최대한 잡아봐야 5%를 넘지 않는다.
고용 상황 개선 대책도 없어
이명박 후보는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 어쩌고 했지만 이런 것은 잠재 성장률 계산에 이미 들어가 있는 요소이다. 특이할 만한 것 하나는 한반도 대운하지만 지금이 1930년대 대공황 시절도 아니고 이런 대규모 토목공사로 잠재 성장률 2~3%를 끌어올린다는 것을 솔직히 어떤 경제 전문가가 진지하게 믿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이는 전국적 수준의 지역 개발 공약으로 득표 전략에 불과했지, 정말 이게 7% 성장률 특효약이라고 얼마나 믿고 주장 했던 것일까.
7% 성장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300만 일자리 등등 부수적 경제 공약은 다 성립이 안 되지만 7% 성장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현재 고용 없는 성장 구조 하에서 어떻게 그것이 일자리로 연결되고 그것도 제대로 된 정규직 일자리나 차별 없는 비정규직 일자리가 될지에 대한 대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즉 장밋빛 헛공약이란 소리다.
이명박 대통령을 맞아 부동산 시장이 활황을 맞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지만 이는 오히려 내 집을 갖지 못한 가구가 전체 가구의 절반에 이른다는 점 등을 볼 때 상대적 박탈감과 계층 간 갈등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기 쉽다. 이는 이미 지난번 부동산 폭등 때 전에 없이 험악했었던 민심이 잘 말해주고 있다.
또 특히 보육 부분에서 5세까지 영유아에게 보육시설을 지원하고, 의료비를 지원하는 등 조금 획기적인 공약을 내걸긴 했지만 감세를 안 한 현 정부에서도 못한 복지정책을 각종 세금 인하 공약으로 가득한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시행을 하더라도 매우 제한적 수준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뢰밭 세계 경제를 민영화로 대응?
물론 이 때문에 단기적 부양책의 유혹에 빠지기도 쉽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세계 경제가 상당 기간의 호황기를 마감하고 각종 지뢰밭으로 변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이다. 현재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신용 위기(Credit crunch)도 그렇고, 장기화되고 있는 달러화 약세도 그렇고, 곡물 가격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도 문제다.
또 며칠 전 합의된 발리 로드맵을 보면, 우리나라가 탄소배출량 의무 감축 대상 국가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에 대한 준비는커녕 인식도 없다는 측면에서 감축량 합의가 이루어질 2년 후 대형 폭탄이 올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등을 민영화 한다니 시장 실패나 위기 상황 때 국가가 개입할 능력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소리다. 현 정부에서 이어 받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유럽 FTA 등 적극적 개방화 정책도 세계 경제 위기를 아무런 방어막 없이 그대로 받아 안게 되는 악재로 되돌아올 가능성도 크다.
더군다나 이명박의 교육 정책은 가뜩이나 심각한 사교육비 증가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자립형사립고를 100개 더 만드는 등 그나마 명목상으로 유지되던 평준화 정책을 무너뜨리겠다는데 그것은 곧 더욱 극심한 학생 간 경쟁을 낳고 극심해진 경쟁이 더 극심한 사교육을 낳는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교육 정책에 있어 명백한 착각은 우리나라 교육 문제가 교육의 질이나 경쟁력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OECD가 주최하는 세계 학력 평가 프로그램인 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에서 우리나라는 언제나 최상위급을 차지한다. 의무교육 참여율, 대학 진학률 등 교육 정책에 대한 일반적인 지표상으로도 역시 우리나라는 세계최고 랭킹을 자랑한다. '높은 교육 수준이 한국의 놀라운 경제 성장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 나라밖에서의 일반적인 진단이다.
사교육비 증가시켜 가계 압박 악화될 것
문제는 교육의 질이 아니라 교육이 사회적으로 갖는 기능이다. 경쟁력과 상관없이 과도하게 교육 제도에 집중된 극심한 경쟁이 사교육 급증으로 나타나니 부모들이 그 돈들을 대느라 죽어나는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영어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며 공교육 내 원어민 교사 등을 확보한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영어가 정말 필요해서 그 많은 돈을 쓴다기보다 영어가 경쟁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교육에서 영어 교육이 늘어난다 해도 사람들은 그만큼 더 많은 학생이 잘하게 되는 만큼 자기 자식은 더 잘하게 만들기 위해서 더 사교육을 줄이기는커녕 더욱 늘릴 가능성이 크다.
즉,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이명박 당선자는 결국 노무현 정부의 착각과 실책을 반복할 것이다. 결국 서민 경제를 개선시키기는커녕 급격하게 악화시키기는 결과를 빚게 된다는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그동안 갖은 도덕성 문제에도 '경제를 살릴 것이다'란 그 하나의 기대로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당선되었다. 그만큼 이명박 대통령 집권 중반기를 넘기는 2~3년 후 쯤에 나오는 결과가 더욱 악화된 서민경제라면 그 정치적 기반은 급격히 무너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노무현 대통령이 깨끗하고 참신한 이미지로 당선이 되었으나 서민경제에 실패하여 가랑비에 옷 젖듯이 느리지만 강하게 반대 정서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경제 그 단어 하나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가 무너지는 순간 그대로 바닥까지 바로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한 가운데 안 그래도 도덕성 문제가 따라다니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측근이 꼭 아니더라도 가뜩이나 부패나 비리에 둔감한 한나라당 인사들이 10년 만에 정권을 탈환한 흥분 속에 대형 사고를 칠 가능성도 다분하다.
경제로 당선된 대통령, 경제 무너지면 끝
그럼 그 다음 상황은 무엇일까. 역시 변수는 상대 정치 세력이다. 현재까지 소위 민주ㆍ개혁세력이라는 전 범여권집단은 개인적으로 싹수가 전혀 보이지 않지만 광범위하게 진보 진영 전체로 본다면 심기일전해 정말 서민 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대안을 들고 의제를 선도할 능력을 갖춘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붕괴 시점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처럼 'BBK 의혹' 같은 이슈에 매몰되는 등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도 도덕적 명분을 내세워 네거티브 캠페인에만 그친다면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민심은 다른 별다른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극우적 민족주의 등 더욱 악화된 형태로 표출될 가능성도 크다.
특히 보수언론이야 이명박 정부를 적극적으로 방어하겠지만 일방적 변호로만으로 한계에 봉착할 경우 그 책임을 인접국이자 고속 경제 성장을 지속하는 중국으로 떠넘기는 논리를 설파하면서 중국을 겨냥한 극우적 민족주의 캠페인을 전략적으로 벌일 수도 있는 것이다. 급증하는 외국인 거주자와 노동자도 극우 민족주의를 가능케 하는 사회적 배경을 제공 할 수도 있다.
마지막 전망은 사회 전체가 재앙으로 치닫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이러한 진단이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개탄하는 사람들에게 정작 어떠한 움직임에 주목하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단초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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