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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태도 바꾸는 예능의 힘?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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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태도 바꾸는 예능의 힘? "글쎄…"

[프레시안 books] 하지현의 <예능력>

1.
TV 비평이 업인 사람, 그것도 다분히 예능 장르에 특화된 비평가로서, TV 예능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후해지는 건 퍽이나 반가운 일이다. 최근 발간된 <예능력>(하지현 지음, 민음사 펴냄)을 접했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 또한 이와 다르지 않았다. 신경정신과 교수의 눈으로 살펴 본 예능의 효용에 대한 서적이라니, TV 프로그램들 중에서도 가장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장르로 여겨지기 십상인 예능에 대한 세간의 고정관념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현 교수는 서문을 통해 예능의 신경정신학적 효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동안 내가 예능을 통해 지친 마음을 치유 받았고, 나를 지켜내는 마음의 힘을 키웠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능력을 배웠고, 놀 땐 놀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신과 의사라는 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볼수록 예능이란 허투루 볼 것이 아니었다. 이 힘든 세상을 잘 버텨 나갈 수 있는 힘을 주고, 최적의 삶의 태도를 실시간으로 알려 준다. (…) 예능에도 힘이 있고, 우리는 예능을 통해 마음의 힘을 얻을 수 있다." (6~7쪽)

▲ <예능력>(하지현 지음, 민음사 펴냄). ⓒ민음사
하지현 교수는 독자들에게 마음을 다스리고 삶의 활력을 충전하는 비결을 예능 프로그램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능인들이 약점이나 콤플렉스를 자신의 개성으로 드러내 이를 캐릭터로 만들고, 먼저 주도적으로 이야기하고 당당하게 노출함으로써 오히려 장점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처럼 우리도 "콤플렉스를 개방해서 전면 배치"해 "마음의 에너지 소모량"을 줄여야 한다거나(36~37쪽),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리액션을 예로 들어 "리액션은 소통과 관계의 기본이다. 유도를 배울 때 낙법부터 배우듯이, 소통에서 제일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여 줬던 엄마의 행동 같은 리액션이다. 관계는 여기서 시작된다"(91쪽)는 식이다.

예능과 정신의학을 접목시켜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에 대한 논거를 펼치는 <예능력>의 이런 접근방식은 분명 신선하게 다가온다. 예능이라는 모두가 공감하기 쉬운 소재로 정신의학적 지식을 더 쉽게 전달하는 동시에,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예능이란 장르에 대한 예찬의 기능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2.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시도에도 불구하고 <예능력>은 선뜻 추천하기 쉽지 않은 책이다. 첫째로 내가 보기에는 이 책의 중심 소재인 예능에 대한 저자의 이해가, 예능을 소재로 논거를 펼치기엔 그리 정확하지 않은 것 같다. 적어도 책에 서술된 몇가지 것들을 근거로 놓고 보면 그렇다.

가령 하지현 교수는 캐릭터의 중요성에 대해 설파하며 MBC <무한도전>의 유재석을 예로 들었다.

"'메뚜기' 외에는 꽤 오랫동안 마땅한 캐릭터가 없어서 'MC 유' 또는 '유 반장' 역할만 했다. 최근에야 '사람은 참 좋은데 놀 때 재미없는 형' 또는 '유능하지만 잔소리가 심한 유 부장'이라는 캐릭터를 잡아서 재미도 주고, 더 친근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은 단점도 있고, 때로는 성질을 부리기도 하고, 콤플렉스도 있는 사람이 더 인간적이고 생생한 캐릭터로 보이는 법이다."(47~48쪽)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유재석이 <무한도전> 내에서 수행해야 했던 다른 역할이 있는 것 같다. 콩트 코미디 시절부터 축적해 KBS <슈퍼 TV 일요일은 즐거워> 'MC 대격돌' 시절에 완전히 확립한 '깐족대는 얌체' 캐릭터, <무한도전> '거꾸로 말해요 아하' 시절 쌓아둔 '삼바춤 매니아', '에로비디오 애호가' 등의 캐릭터처럼 변용할 수 있는 캐릭터를 제법 보유하고 있던 유재석이 왜 'MC 유'나 '유 반장'의 역할만 반복해서 맡게 됐을까. 아마도 약속된 대본보다 주어진 상황에 즉석으로 맞춰 가고, 애드리브로 맥락을 이어가는 <무한도전>의 장르적 특성 상, 누군가 한 명은 쇼의 중심을 잡기 위해서라도 균형자적 존재로 남아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을 거다. <무한도전>을 좀 더 주의 깊게 보았다면 그 역할을 전담한 '플레잉 코치' 유재석의 존재를 알 수 있지 않았을까.

오디션 프로그램 승리를 담보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허각과 백청강의 예를 들며 "감동을 줄 수 있는 능력"(179쪽), "나만의 스토리텔링"(181쪽)을 드는 대목도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최근 한국 오디션 프로그램의 갑작스런 퇴조가 그 '감동'과 '스토리텔링'에 대한 집착에서 왔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러한 하지현 교수의 지적은 다소 의아하다. '감동적인 스토리텔링'에 집중하느라 무대 자체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실패한 MBC <위대한 탄생>은 결국 폐지가 결정되지 않았나. 오디션 프로그램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된 것은 감동 스토리의 요소를 대폭 줄이고 참가자들의 성장과정에 집중한 SBS <일요일이 좋다> 'KPOP STAR'였다.

그밖에도 책 곳곳에서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대목이 눈에 띈다. 비록 그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건강한 정신 상태를 유지해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는 마음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예능을 주 소재로 삼아 글을 전개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보다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3.
그래도 이런 문제는 TV 비평이 하지현 교수의 전문 분야가 아니다 보니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능력>을 누군가에게 추천하기 찜찜하게 만드는 두 번째 요인은 이 책이 지속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불합리한 일상의 스트레스를, 예능 프로그램 속 예능인들의 처세를 본받아 '참고 견디라'고 설파하는 게 아닐까라는 의혹이 짙어진다.

'니주'와 '오도시' 이야기(74~82쪽), 1인자와 2인자 이야기(65~69쪽) 등 하지현 교수는 '니주(예능에서 주인공을 보조해 배경을 깔아주는 사람을 이르는 은어)'나 '2인자'들에게 "화려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그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존재는 없다. 모두가 자기가 맡은 역할이 있고 맡은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랬을 때 모두가 빛난다"(78쪽)고 반복적으로 말한다. 그런데 '오도시(니주의 도움을 받아 웃음을 터뜨리는 주인공을 이르는 은어)'나 '1인자'에게 건네는 충고는 찾아볼 수 없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리하게 위를 올려다보지 말고 지금 자리에 충실하라'는 충고는 존재하는데,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아래에 있는 사람들도 살피고 자신의 리더십은 어떤지 돌아보라'는 충고는 없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때로 그들에게 왜 나오느냐는 야유를 보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병풍은 필요하다. 프로그램 내에서 이들의 쓰임새가 어찌 될지, 가능성이 언제 폭발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색깔을 통해 균형을 이룬다는 면에서 그들도 중요하다."(70쪽)

라며 예능 프로그램 속 '병풍' 출연자들의 존재 의의를 옹호하면서 조직 안에서 주어진 포지션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더니, 그걸 근거로 삼아

"가고 싶지 않은 중요한 회식 자리가 그렇다. 바쁘다고 안 갈 수가 없다. 빠짐없이 가서 모두를 소환한 그분이 자리를 뜰 때까지 자리를 지켜야만 한다. 그 자리에 멀뚱 앉아 있는 나의 모습은 버라이어티쇼의 병풍이 따로 없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런 걸 왜 하나 싶어 짜증이 날 때도 많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것도 사회생활의 일부가 아닌가. 개인적으로 의미 없는 일일 수 있지만, 조직의 이벤트에서 나도 역시 자리를 채워 내 역할을 했고 오늘의 일을 한 것"(71쪽)

이라는 논지를 펼치는 대목은 대표적인 예다. 나로서는 위계질서로 지탱되는 불합리한 회식 관행에 허비하는 무의미한 시간을 '조직의 이벤트에서 자리를 채워 내 역할을 한' 것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권유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다.

물론 이 책은 하루하루를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마음의 피로가 두껍게 쌓인 사람들을 주 독자로 상정하고 있고, 현실을 바꾸는 사회과학적 기획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바꾸는 정신의학적 기획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하지현 교수의 조언이 상대적인 약자들에게 건네는 조언에 집중된 것이나, 주어진 상황을 잘 견뎌내는 방법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예능력>이 들려주는 바람직한 삶의 태도는 루쉰의 <아Q정전> 속 '정신승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냉혹한 현실을 견디고 '삶을 놀이로 만드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면서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대목을 보자.

"지독한 경쟁 속에서 단 한 번의 실패는 완전한 아웃을 의미한다. 게임처럼 다시 시작하는 것을 바랄 수 없다. 아무리 잘해도 딱 한 번 실패하는 경우 봐주는 것 없이 바로 퇴출이고, 내가 지키던 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대체된다. 그리고 함께하던 동료들은 금세 나를 잊어버린다. 모두들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버겁기 때문이다."

하지현 교수는 이렇게 현실의 잔혹함에 대해 설명하고,

"그런데도 세상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실패의 원인은 내가 나를 단련시키고 계발시키지 않아서라고 말한다. 불안을 조장하면서, 자기계발서에서 무능하고 게으른 나를 발견하게 한다." (이상 110쪽)

라며 시스템의 냉정함을 개인의 무능으로 치환하는 프로파간다도 비판했다. 그런데 그가 제시한 해법은 자신이 비판한 그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느낌이다.

"어렵고 지겨운 일도 게임으로 변환하면 훨씬 즐겁게 할 수 있다. 바라보는 시점의 차이, 프레임의 변환만으로 같은 일이 다른 의미로 전환된다. (…) '즐기며 하자'라는 게임 정신으로 극복해 보자." (112쪽)

이게 위에서 저자가 비판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실패의 원인은 내가' 만든 거라고 '자기계발서'의 윽박지름이나 '자기계발서'의 주장과 어떻게 다른지, 책을 조금 더 읽어보자.

"현실의 과제를 게임의 관점에서 잘해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먼저 실현 가능한 나만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다. (…) 우리의 삶도 그렇게 디자인해 보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목표 단위를 나누고, 레벨을 나누어 성취 욕구를 자극할 수 있도록 현실 과제를 재구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영어 공부를 결심했다면, 무작정 영어 회화 학원을 가는 것보다 토익이나 텝스 같은 시험을 목표로 삼기를 권한다. 영어 회화 학원을 다녀 영어가 유창해지는 것은 목표 자체가 명확지 않은 데다, 언제까지 해야 할지 기한도 불분명하고, 목표 달성 정도를 확인하기도 어렵다. 그에 비해 토익 시험은 보다 구체적인 목표를 정할 수 있고, 시험도 정기적으로 있으며, 무엇보다 점수화할 수 있어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기에 좋다." (113쪽)


현실의 과제를 게임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 과제를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나누어 재구성할 여유나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너무 큰 목표에 짓눌려 스스로를 괴롭히는 사람들에게는 하지현 교수의 조언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일상 자체에 허덕이는 이들에게는 허무한 말로 들릴 수도 있다.

"우리 삶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회에서 겪는 실패와 좌절에 익숙하지 않을수록 우리가 받는 상처는 급소를 깊이 찔린 것처럼 아픔이 크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Continue? Yes or No?"에서 부담 없이 Yes 버튼을 눌렀던 마음으로 바꿔 먹어야 한다. 나락에 빠진 인생의 실패를 서서히 낙관적 희망과 열정의 '즐거운 실패'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실패하고도 비관의 늪에 빠지지 않고, 다시 다음 도전을 준비할 수 있다." (115~116쪽)

마음을 바꿔 먹고 나락에 빠진 실패를 즐거운 실패로 받아들이라니, 앞에서 "단 한 번의 실패는 완전한 아웃을 의미한다. 게임처럼 다시 시작하는 것을 바랄 수 없다. 아무리 잘해도 딱 한 번 실패하는 경우 봐주는 것 없이 바로 퇴출"이라고 현실을 말한 사람이 건네기에는 너무 안이한 해결책 아닌가.

4.
<예능력>엔 분명 나름의 미덕이 있다. 하지현 교수는 자신의 정신의학적 전문 지식을 다양한 실험 사례와 함께 소개해 독자의 이해를 돕고, 대부분의 한국인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을 예능에 빗대어 이야기를 전개하며 <예능력>을 페이지가 쉽게 넘어가는 대중 서적으로 완성했다. 책의 모든 내용이 챕터 3에서 지적한 '정신승리'의 태도를 권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챕터 1에서 소개한 콤플렉스에 대처하는 자세나 리액션의 중요함 같은 부분은 새겨 읽어볼 만하다.

하지만 TV 비평을 업으로 삼은 사람의 눈으로 보았을 때, <예능력>은 아쉬운 책이다. 예능 프로그램들이 적재적소에 정확히 인용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그 인용은 많은 부분 "예능인들이 그런 것처럼, 당신들도 현실의 고난이나 부조리를 긍정적인 자세로 받아들이라"는 주장에 뒷받침되는 느낌이다. 개인적 애정과 직업적 열정을 쏟고 있는 분야에 대한 정보가,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의 근거로 기능하는 걸 보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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