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29일부터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공간의 발견, 행복의 시네마테크'라는 모토 하에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박찬욱, 류승완, 김지운, 배창호, 이명세, 홍상수 등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들에서부터 권해효, 하정우, 안성기 같은 배우들까지, 이들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을 자처하고 나선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영화의 역사가 저장되고 축적되는 시네마테크라는 공간의 중요성에 비해, 불안정한 위치가 계속되는 가운데 여전히 존폐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 위협이 최근 들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은 영화비평웹진 '네오이마주'와 함께 영화평론가로도 활동하는 서울아트시네마의 김성욱 프로그래머를 만나 이번 친구들영화제와 시네마테크의 현재에 대해 긴 대화를 나눴다. 여기 그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
- 작년 1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모토가 '시네마테크 영년'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 소회가 어떤가?
당시 그 모토를 내놓은 것은 2008년엔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첫 삽을 뜰 수 있겠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새로운 포메이션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으니까. 정권이 바뀐 뒤 영화정책도 상당한 변화를 겪으면서 결국 작년 2008년 하반기에 시네마테크 전용관 사업은 현상적으로 백지화가 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 말 그대로 '영년'이 돼버렸다. 새롭게 '정립'하자던 게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시네마테크의 재정적인 재정적 문제는 물론 프로그램 편성에 있어서도 어려움이 크다. 다만 2008년부터 새로이 시네마테크 컬렉션을 시작해 시네바캉스 때 세르지오 레오네 영화를 선보일 수 있었다. 이 사업은 2009년에도 이어진다. 이번엔 헐리우드 고전 컬렉션을 하게 된다. 이것이 가장 큰 변화겠다.
| ▲ 김성욱 프로그래머 ⓒ프레시안무비 |
- 친구들 영화제가 처음 전용관 건립을 외치며 시작됐던 만큼, 전용관이 백지화된 상태에서 올해 전용관 건립 얘기가 다시 전면으로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올해 모토는 '공간의 발견, 행복의 시네마테크'이다. 다른 전술을 써야겠다고 판단한 것인가.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지 않은가. 2002년부터 10년 안에 해결하자는 게 목표였는데 지금으로선 영 불투명해보인다. 그렇다면 결국 현재의 한정된 공간 안에서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반어법적 수사인 셈인데, 이 상황에서도 행복하게 살자는 게 그 모토의 의미다. 물론 궁극적인 목표는 전용관 설립이지만.
- 전면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어쨌든 지금의 공간을 지키면서 가겠다는 의미에서 공간을 긍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실과 이상이 공존하는 모토라 여겨지는데.
현실과 이상을 연결한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나로서는 '긍정'이란 말에 지금까지 이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돼 왔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보자는 의도도 담고 있다. 영화정책과 관련해서도 나의 가장 큰 불만은 언제나 그것이 왜 이런 식으로 흘러오고 만들어져왔는지 따져보지 않고, 모든 걸 지금 시점에서 무조건 새로 재편성해 나가려는 분위기다. 작년 영진위의 전용관 정책도 과거를 재검토하지 않은 채 미래의 어떤 부분들을 끄집어 와서 이게 더 낫지 않냐며 대안 아닌 대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게 훨씬 위험하고 더 큰 문제라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보면 중소기업들이 뭘 만들어놓고 나면 뜬금없이 대기업이 들어와서 현상을 재편해버리는 식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문화와 예술의 영역에서도 존재한다는 건 대단히 위험하다.
'행복한 시네마테크'란 게 뜬금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현실이 있기 때문에 결국 공간을 재긍정하자는 것이다. 결국 영화에 있어서 행복을 추구하자는 얘기다. '행복 추구권'이라는 건 미국에서의 경우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는 권리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무로 주어져 있다. 그렇다면 시네마테크와 영화와 관련해서도 충분히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의무가 있는 게 아닌가.
- 낙원상가 재개발 문제와도 관련이 있는가. 2009년에 한다고 발표가 났다가 흐지부지된 듯한데.
아직 구체적이진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얼마 전 용산 철거문제도 있었지만, 재개발이라는 게 어느 순간 갑자기 진행되는 면이 있지 않나. 예상치 않은 순간에 그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 ▲ 2009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
다른 예술영화전용관이 되는 것 자체는 긍정적으로 보지만, 개인적으로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 씨네코드 선재가 된 게 하필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백지화되던 바로 그 시기와 겹치기도 했고.
기억이란 건 공간과 연관되는 법이다. 장소가 변하면서 이전의 기억이 전소돼 버리는 건 그리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장소가 사라지게 되면 기억도 유령처럼 떠돌게 된다. 2002년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발언한 것도 시네마테크가 영화를 둘러싼 기억의 거처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있던 장소도 없어지거나 다른 식으로 변경되는 환경 하에서는 영화를 둘러싼 기억 자체가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최근에는 시네마테크를 둘러싼 기억도 흔적도 없이 쉽게 사라져버릴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든다. 서울 시내 곳곳이 그렇지 않나. 시청광장도 재건축을 하며 논란이 되기도 했고.
더 나아가 기억이 형상하고 있는 이야기와 역사란 것 자체가 너무 쉽게 부정되는 듯 보인다. 영화가 사회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처럼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도 자유롭지 못하다. 시네마테크의 문제는 곧 현실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기억이나 역사의 가치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기억, 역사, 스토리란 것은 결국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것이다. 여기에 위기가 온다는 건 결국 아이덴티티에 위기가 온다는 것이다. 공간 역시 정체성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 이번 친구들영화제나 시네바캉스에서 카탈로그 발간하려는 것도 기록과 역사 축적을 위한 몸부림인 셈인가.
내부적으로도 기록을 남겨놓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더 적극적으로는, 그 기억을 소유한 사람들의 기억이 어떻게든 물질화될 수 있도록 노력이 필요하다. 영화란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과 주제를 눈에 보이는 것으로 물질화한 결과다. 그래서 오히려 올해가 더 영년의 느낌이 강하다. 결국은 기억과 역사를 둘러싼 싸움이 될 것이다. 어떤 기억을 끄집어내어 앞으로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중요하다. 1, 2년 사이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날 조짐이 보인다.
- 서울아트시네마는 영진위의 지원에 많이 기대고 있는 것으로 안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변할 거라 전망하고 있나?
퍼센테이지만 따지면 영진위의 지원은 전체 예산 중 30%로 정도로 그리 높지 않다. 문제는 이것이 필수적인 공간 임대료 등에 해당되기 때문에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은 정상적인 생각들이 별로 유지되진 못하는 사회고, 자명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금방 쉽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시네마테크도 그리 자명한 곳은 아닌 듯하다. 눈에 드러나진 않지만 위기적 국면이란 생각은 많이 한다.
- 친구들영화제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프로그래밍은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는가?
친구들영화제는 바자회나 후원미술전처럼 일단 후원행사이기 때문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후원의 의미로 참여를 한다. 이 분들이 최소 3편 정도를 추천해 주면 그 중 한 편을 결정하게 된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작품이 주로 정해지게 되니 최선의 선택이 아닐 수 있다. 아쉽기는 하지만 결핍을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실질적으로 필름이 오가고 한정된 시간 안에 필름이 상영될 수 있나 하는 물리적인 조건을 비롯해 많은 요건을 충족시켜야 하니까.
정가형제의 경우도 4, 5편을 추천했고 여기엔 안토니오니 감독의 영화도 있었는데, 좋은 상태의 프린트를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히려 가장 어려울 거라 생각했던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거울>이 확정됐다. 변영주 감독의 경우도 여러 편의 역사극을 추천했으나 최종적으로 <란>으로 결정됐다. 류승완 감독의 경우 당연히 목록이 더 많았는데, 그중 몇 편은 이미 오승욱 감독의 선택작과 겹치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추천의뢰 받은 것 중 프린트 수급이 쉽지 않았던 게 많았다.
- 현실적인 선택이란 결국은 거의 프린트 수급의 문제인 셈인가?
그렇다. 또 작년 수급하던 시기가 환율이 엄청 올랐던 시기라, 제한적 상황이 많이 발생했다. 홍상수 감독의 경우 매년 한 편만 추천했었고 언제나 쉽게 성사되곤 했는데, 올해의 <탐욕>은 좀 어려웠다. 원래 헐리우드 고전 컬렉션에 포함해 사려고 했던 영화여서 프린트를 추적해보니 현재 남아있는 가장 긴 버전은 TCM에서 상영한 버전인데 필름으로 존재하지 않더라. (편집자 주 -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 감독의 <탐욕>은 원래 7시간 20분 가량으로 완성됐으나 제작사에 의해 여러 차례 편집된 뒤 최종 140분 가량으로 개봉됐다. 이는 영화사에서 '산업'에 대한 '예술'의 패배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회자된다.) 결국 가능한 것은 18프레임의 140분 버전이었다. 이것도 괜찮겠냐고 홍감독에게 물어보니, 예전에 본 것도 140분 버전이었다며 그 이상 긴 버전은 과욕이라고, 140분 버전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대답하더라. 안성기도 배우 중심으로 <디어 헌터>, <아마데우스> 등을 포함해 4편을 추천했는데 결국 <미드나잇 카우보이>로 정해졌다.
| ▲ 탐욕 |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은 건 박찬욱, 오승욱 감독의 '최선의 악인들' 상영작이다. 오승욱 감독의 첫 추천만 12편 가량이었으니까 잘만 됐다면 20편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환율이 올라가니 경비가 두 배가 되더라. 예산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결국 상영작 수를 줄여 최종적으로 각 세 편씩 여섯 편이 됐다. 빠진 작품이 너무 많다.
- 기자회견 때 박찬욱 감독이 "20편 가량 하고 싶었지만 안 됐다"며 맛뵈기라 한 게 그 말이었나.
그렇다. 맛뵈기란 표현이 맞다. 진짜로 좋은 조건이라면 스파게티 웨스턴을 추천하듯이 25편 정도를 하면 좋았겠지만. 참여하시는 분들이 씨네토크 등에서 매번 원래 추천했던 영화도 같이 얘기하곤 하니까, 결국은 또 다른 방식의 프로그램이 존재할 수도 있었구나 생각해주면 좋겠다. 상상의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거다, 결국은.
- 내년에도 그런 식의 게스트 프로그래머 방식이 계속될 예정인가?
그렇다. 자주 참여하시는 분들에게 독자적으로 프로그램을 꾸리도록 맡기는 건 '김지운의 B무비'나 '류승완의 액션스쿨'처럼 이미 전례가 있다. 앞으로도 진행할 생각 있다. 감독만이 아니라 평론가나 배우가 게스트 프로그래머가 될 수도 있다. 참, 재작년보다 상황이 안 좋아진 것 중 하나가 해외 초청 부문이 없어졌다는 거다. 작년 아벨 페라라 특별전처럼 원래 해외 초청 부문도 고려했지만 환율 때문에 포기했다.
- 물망에 오른 감독이 누구였는지 공개할 수 있나?
두기봉 감독도 있었고 미국과 유럽의 감독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힘들겠다 싶어서 초창기부터 접었다. 덕분에 올해 프로그램이 좀 심플하다. 게다가 참여할 수 있었는데 못 하신 분들도 꽤 된다.
- 모든 작품이 다 추천작이겠지만, 그래도 '이건 꼭 봐야 한다'는 개인적 추천작이 있다면?
글쎄... 놓고 보니 각각 이유는 다르지만 다 한 번씩 다시 들여다봐야 할 작품들이다. 지금의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영화들이 많다. <탐욕>과 <선라이즈>는 시대 안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육욕의 탐욕이나 이 사회에서 갖고 있는 불안, 본질적인 위험성 등을 다룬다. 예술이란 게 이 시대가 제대로 가고 있는가, 질문을 던지는 것 아닌가. 일견 문제가 없어 보여도 멘탈리티의 면에서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사회가 정상적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실물보다 큰>도 마찬가지다.
| ▲ 선라이즈 |
<4월>은 지금 이 시대에 잘 어울리는 영화다. 2월에 미디어법 통과 문제도 있지만, 미디어와 영화의 교투의 흔적들이 많이 들어있는 영화다. 옛날엔 극장에 가야 영상을 봤지만 지금은 텔레비전과 각종 다양한 미디어로 모두가 쉽게 영상을 접하며 미디어가 영상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걸 반대로 얘기하면 영화하는 사람들이 미디어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잘못된 영상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져야만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작년 말 타종식에서 보도 영상의 문제도 있었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과 관련된 영상들이나 미디어법 같은 문제를 돌아볼 수 있는 영화다. 이 작품을 추천한 정윤철 감독이 원래 사회 문제에 관심을 많이 드러내기도 하고, 당시 이탈리아와 지금 우리의 상황이 많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배창호 감독이 추천한 <분노의 포도>는 대공황 기근 때문에 이주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문제들을 다루는 영화로, 존 포드 영화중 사회적 리얼리즘이 가장 강하게 배어나오는 작품이다. 흥미로운 건 이 영화가 2, 30년대 대공황 기근을 다루고 있지만, 포드의 머릿속에선 19세기에 감자기근 때문에 아일랜드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자기 선조들의 여정을 <분노의 포도> 안에 똑같이 겹쳐놓는 부분이 있다. 지금 우리 현실 하에서 재개발이나 경제적인 문제와 관련해 겹치는 면을 발견할 수 있는 영화다.
| ▲ 분노의 포도 |
<캘리포니아 돌스>는 상대적으로 희망적인 영화라 할 수 있다. 여자 프로레슬링의 세계를 다루고 있고 피터 포크가 그들의 매니저로 나오는데, 로버트 알드리치의 유작이라 더 의미가 있다. 마지막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링'은 그나마 규칙이 적용되며 승자가 결정되는 게임이 벌어지는 곳이지 않나. 지금 우리 사회는 규칙도 없는 게임이 강요되는 곳이니 말이다.
'최선의 악인들' 상영작들은 악인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오승욱 감독이 지적했듯, 사회에서 직접 본다면 접근하기 두려운 사람들이지만 자기들 나름의 원칙과 규율을 갖고 살아가려 했던 인물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범죄영화의 범주를 묶어놨다기보다 시대적 징후의 흔적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이명세 감독이 추천한 <카리비아의 밤>도 이런 괴로운 시대에 볼 수 있는 따뜻한 영화라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이런 때에 영화제를 하면서 어떤 영화를 보고 어떤 얘기를 나눌까 고민한 결과가 반영된 것 같다.
- 시대가 어지럽다는 사실이 친구들의 선택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얘긴가?
그런 것 같다. <란>도 전쟁과 전쟁 이면에서 발생하는 허망함 등을 다루고 있지 않나. <미드나잇 카드보이>도 마찬가지다. 친구들 각자 고른 영화들이지만 각각 시대적인 곤경과 고통 불행, 이런 것 아래서의 사람들의 문제들을 다루는 작품들이다. 어떤 공통적인 멘탈리티가 보인다. 한 편만이 아니라 여러 편을 상영하면서 그런 주제의식이 더 잘 드러내게 되는 것, 그게 게스트 프로그래머를 도입한 이유인 셈이다.
영화란 게 90%의 사람이 보는 영화가 있고 10%의 사람이 보는 영화, 두 가지 종류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셈이지 않나. 우리가 상영하는 영화는 10%가 보는 영화들이다. 그런데 과거적 시점에선 그 영화가 90%의 사람들이 보던 영화일 수 있다. 그런 영화를 90%까진 아니더라도 10%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보고 이야기하자는 취지가 있다. 훨씬 예외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10%의 영화를 가지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할 시기라 생각한다.
어떤 하나가 변했을 뿐인데 전체 사회적으로는 10% 이상이 바뀌는 경우가 왕왕 있지 않나. 하나의 미세한 변화가 90%의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기도 하고. 지금 영화를 가지고 어떤 고민을 주창해 나가야 하는가의 문제에 있어 시네마테크의 경우 10%의 영화를 갖고 그보다 더 대중적으로 사람들과 만나며 얘기할 필요성이 있다. 그런 게 이해를 받지 못한다면 시네마테크도 쉽게 없어질 것이다. 여기에 오는 사람이 모두 만족하는 것도 아니고.
- 얼마 전 실버영화관 개관 소식도 있었지만, 영화산업이 침체돼 있다 보니 과거 라이브러리 안에서 특별전, 기획전 등의 형태로 재상영되는 영화들이 많다. 새로운 걸 하기보다는 원래 있는 걸 재조합하는 셈인데, 시네마테크의 프로그래머로서 이를 어떻게 보는가?
관객들이 지속되지 못하는 조건들이 많은 것 같다. 시네마테크도 이제 10년이 됐는데 과연 관객이 축적됐는가. 2002, 2003년도에 왔던 사람들이 지금도 다시 오는가. 대부분은 젊은 시절에 좀 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들고, 새로운 세대의 관객들이 유입된다. 새로 온 사람들이 몇 년이 지나도 계속 올 수 있는 조건이 형성돼야 하는데, 반복이 불가피한 것도 그래서다. 예를 들어 4년 전 모리스 피알라나 필립 가렐, 장 으스타슈의 영화들을 틀었는데, 지금 시네마테크를 찾는 관객들 중 상당수는 그 영화들을 못 봤을 것이다. 새로운 영화들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계속 찾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매번 신작만 찾아가는 건 일반 극장들이 갖는 전략이다.
그러므로 시네마테크에서는 재상영과 첫상영, 두 가지 배분을 잘 맞춰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런데 재상영이란 걸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들이 존재한다. 한마디로 '한번 봤으면 됐지 왜 또 보나' 식이다. 진정한 영화광이란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결국 영화를 만드는 것이란 얘기가 있다. 그렇다면 2년 전 무르나우 회고전에서도 상영됐던 <선라이즈>의 경우, 두 번째 상영이니 언급도 두 배 이상이 돼야하지 않을까. 씨네필이란 말이 지금은 경멸적이거나 조잡스러운 뉘앙스도 갖게 됐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씨네필이란 처음 보는 영화들에 열광하는 것뿐 아니라 그것에 대해 글을 쓰거나 다른 방식으로라도 영화를 알릴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는 처음 상영하는 영화의 첫 프리뷰를 쓰는 데에만 너무 열광하는 듯하다. 새롭고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을 찾아나가는 탐색, 이것이 다시 상영되거나 할 때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다리 끄집어내는 것, 이 두 가지가 병행되어야 한다.
- 전용관이 아니어서 어려운 부분이 있겠지만, 시네마테크에선 아카이브와 라이브러리 문제도 중요하지 않나. 지금은 너무 공간이 한정돼 있고 영화자료들이 대부분 사무실 공간 안에 있어 폐쇄적이다. 조금 더 오픈해서 밖으로 내보낼 방법은 없을까?
그걸 해보려 하는 게 '공간의 재발견' 아니겠는가. 원래 전용관 구상이 처음 될 때 가장 염두에 두었던 것도 그런 부분이다. 전통적인 관객이란 마치 플라톤의 동굴에 있는 죄수들처럼 한정된 공간 안에서 묵묵히 영화만 들여다보는 관객일 것이다. 그러나 이동이 자유로운 관객들을 설정하는 것도 공간을 변화시켜 나가는 힘이다. 박물관, 갤러리처럼 '방문자'로서의 관객 말이다. 예를 들어 묵묵히 시네마테크에 앉아 10년간 영화만 보는 관객이 있다고 치자. 과연 몇 퍼센트의 영화나 볼 수 있을까. 단지 영화 상영만이 아니라 책을 비롯한 다른 미디어 자료들도 볼 수 있고, 토론을 할 수도 있는 '자유로운 방문자' 층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전용관을 구상하면서 많이 고려했던 부분이지만, 한정된 공간 안에서는 그런 게 묻히기 마련이라 해결을 고민하고 있다. 제한적이긴 해도 현재 로비에 앉아있을 수 있는 공간이나 책을 읽을 수 있는 테이블을 만들어둔 상태다. 친구들영화제를 하면서 그 공간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 관객들의 선택이 <열대병>이었는데, 다른 작품을 예상하고 있던 터라 다소 의아스러웠다. 당신은 어떻게 보는가?
투표에 의해 결정된 작품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다른 작품을 민 사람들이 투표에 열의가 없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 어떤 작품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면 장렬하게 글을 쓰던가 할 텐데 그런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 '참여'라는 게 여러 의미가 있는데, 영화를 보러 오는 것도 참여지만 글을 쓰는 것도 참여가 될 수 있다. 세상에 대고 빈정대는 건 쉽지만 참여해서 뭔가를 변화시켜 나가는 건 쉽지 않다. 외형적으로 그런 부분들을 좀더 대중화시켜나가는 게 필요한 듯하다.
- 천사들의 선택으로 상영되는 <무셰뜨>는 배우들이 필름을 기증했다. 어떻게 성사된 것인가?
배우들의 모임인 씨네마엔젤에서 이나영 씨를 통해 필름 기증을 하겠다는 제안이 먼저 왔다. 이나영은 고전영화도 많이 보는 사람이고, 아트선재 시절부터 아트시네마에 자주 왔던 데다 예전 인터뷰에서도 <무셰뜨>를 자주 언급한 바 있다. 나중에 보니 이나영뿐 아니라 박해일 등 많은 배우들이 포함돼 있더라. 매년 한 편씩 그렇게 진행할 수 있을 거라고 전망하고 있다. 작품들의 목록은 씨네마엔젤에서 선별할 수도 있겠고.
| ▲ 무셰뜨 |
- 다소 놀라운 얘기다. 배우들이 시네마테크나 고전영화에 진지한 관심이 별로 없다고 오해하거나 그렇게 믿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하다.
제안도 먼저 그쪽에서 적극적으로 해줬다. 우리뿐 아니라 독립영화를 비롯해 다양하게 지원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란 게 원래 욕망의 투사되는 매체이긴 하지만 그 욕망이 과연 건전한가는 다른 문제다. 그 욕망을 해체하는 게 영화 및 예술의 기능이기도 하다. 게다가 영화가 하나의 투기이기도 한데, 그런 투기적 행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게 영화를 보는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어쨌든 누구나 다 각자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며 각자의 욕망을 투사하게 된다. 영화라는 게 그렇게 자명한 게 아니기도 하고. 영화에 대해서 자꾸 이건 좋다, 이건 아니다 평가를 해나가는 것이 좋은 관객이라 오해되는 부분이 있다. 평가 이전에 그 작품이 존재할 수 있을지 없을지 '생산' 문제 자체를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민감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 민감하게 여기지 않는 게 아니라 무력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
힘들어도 뭐든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어디서 봤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인상깊게 본 말이 있다. "영화라는 건 늘 패배해왔다. 자본에도, 권력에도, 국가에도 패배해왔다. 마치 승리해온 것처럼 생각하는 건 환상이다."라는 거다. <탐욕>의 경우 7시간 반짜리가 그나마 버티고 남은 게 140분짜리다. 위대한 영화를 망쳤다고 분개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영화란 게 그 모든 걸 거치고도 승리해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이건 너무 희망적인 얘기다. 실제로는 <탐욕>의 초기에 편집되고 버려진 부분은 남아있는 게 전혀 없으니까. 그런 현실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영화는 늘 사라져왔고 늘 패배해왔다.
- 그 말은 역설적으로 매우 희망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이제껏 그렇게 패배해왔으니 지금의 이런 시련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결국 '뭐라도 해야 한다'로 다시 돌아오는 셈이다.
나도 역설적인 의미로 파악하고 있다. 그런 역사가 있었으니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겠지. 그렇게 뭔가를 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유지되는 부분도 더 커질 것이다. 친구들영화제의 경우만 해도, 단순히 영화를 상영한다는 의미뿐 아니라 시네마테크를 지켜주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관객의 힘만으로는 지키기 힘든 게 사실이다. 작년도 어려웠지만 올해 더 어려워질 것 같은데, 친구들영화제같은 프로그램으로 시네마테크의 필요성이나 위상 같은 게 대중적으로 홍보되는 면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친구들로 참여해주시는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다.
- 올해의 소망이라면?
아무래도 시네마테크로서는 전용관의 설립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다. 문화와 예술의 영역에서 언제나 지원이 절실하다. 이번에 상영하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의 경우 구로사와 감독은 당시 일본에서 영화 제작의 자본을 구할 수 없었다. 그의 영화에 돈을 지원한 것은 프랑스였다. 당시 자크 랑 문화성 장관은 구로사와 감독에게 "일본에서 구로사와 같은 감독이 영화 자금의 조달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정말 이상한 일이다. 작품에서나 흥행에서 성공하고 있는데"라고 의문을 표했었고, 구로사와는 "일본 영화계의 수뇌부는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영화를 사랑하지도 않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수뇌부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다. 일본의 뛰어난 감독들은 다 죽고 나 혼자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문화와 예술은 시간이 오래 묵으면서 깊어지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영화와 관련해선 어찌된 일인지 언제나 이런 단순한 사실이 부정되곤 한다. 과거를 지워버리면서 산업은 승리한 것 같지만 문화와 예술에서는 언제나 후퇴가 있었다. 지난 8년간, 아니 1999년부터 작가들의 회고전 필름 상영회의 역사를 보자면 이미 십 년이 지난 과거의 역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세밀하게 볼 필요가 있다. 부언하자면, 뉴욕이나 파리를 제외하자면 니콜라스 레이나 알드리치, 타르코프스키, 존 포드, 무르나우 등의 영화와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이런 일도 언제든 쉽게 부정될 수 있다. 거장들이 영화계에서 그렇게 쉽게 사라질 수 있듯이 말이다.
시네마테크를 전위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 반대로 이곳은 후위라고 말할 수도 있다. 영화를 문화로, 예술로 생각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게다가 이곳은 가장 뒤늦게 변하는 곳이다. 영화는 산업으로 무성을 버리고, 흑백을 버리고, 필름을 버렸지만 이곳에서는 아직 그런 영화의 유산을 버릴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언젠가 배창호 감독님이 "장 르누아르는 영화가 산업과 예술과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싸움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예술은 산업에 졌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걸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시네마테크에 오면 아직 그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올해의 소망이라면, 그래, 이랬으면 한다. 모든 불행에도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며 그나마 잠깐이라도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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