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행태에 대해 내가 느낀 배신감과 분노는 지난 4월에 이미 경험한 것이다. 민주당 김한길·최원식 의원은 그들이 발의했던 차별금지법안을 자체적으로 철회했고,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있어 최악의 선례를 남겼다. 김한길·최원식 의원이 차별금지법안을 철회한 것이 보수 개신교계의 조직적인 방해공작 때문이었음이 알려지면서 보수 개신교계에 비난이 쏟아졌고, 보수 개신교계에서 억울하다며 낸 논평이 문제의 전면광고다.
문제의 전면광고 ; "동성애는 죄악이자 질병"?
나는 <한겨레> 전면광고를 통해 "차별금지법 제정 논란과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계의 입장"을 읽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이 글을 <한겨레>가 전면광고로 내보냈다는 것보다, 이런 글을 논평이라고 내놓을 수 있는 한국교회언론회의 패기였다.
| ▲한국교회언론회 홈페이지 '논평'란 ⓒ프레시안 |
글은 기독교가 사회 일반의 보편적 가치임을 전제하고 시작한다. 요지는 이러하다.
"우리(보수 개신교계)는 국민의 기본권리인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존중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성애는 죄악이며, 치료받아야 할 질병이며, 국가의 근본을 뒤흔들고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기에 반대하는 것이다. 마치 기독교가 차별금지법 자체에 반대하는 세력으로 비춰진 것은 일부 언론의 왜곡보도 때문이며, 우리는 이를 규탄한다."
참으로 기가 막히지 않은가? 동성애를 차별하자는 취지의 글을 무려 A4용지 6매 분량으로 써놓고는 인간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존중한다니.
마치 기독교계가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세력으로 비친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보수 개신교계가 본인들이 전체 기독교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양 떠들어왔기 때문이다.
글은 동성애를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비정상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동성애가 성적지향의 하나가 아닌 질병, 비정상으로 규정되어야 할 실증적인 근거는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다. 동성애가 질병이나 비정상으로 규정되어야 할 어떤 합리적인 근거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검증된 지는 벌써 수십 년이 지났다.
또 글은 동성애가 국민정서에 위배되고 미풍양속을 해치므로 동성애에 대한 차별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면서 국민정서와 미풍양속을 근거로 동성애를 차별하자고 하는 건 무슨 못된 말장난인가.
심지어 이들은 동성애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보수 개신교계의 불가침적인 권리라고 호소한다. 인간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말과의 괴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다. 한 입으로 하나님과 예수의 사랑을 말하며 다른 한 입으로는 폭력을 행사하는 행태에서 이들의 인지부조화를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민주당 김한길·최원식 의원의 차별금지법안 발의와 자체 철회
문제의 글이 나오게 된 계기는 지난 4월에 있었던 차별금지법안의 철회다.
민주당 김한길·최원식 의원은 그들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에 대해 더없이 무책임했다.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민주당 내에 성적지향을 차별금지법안에서 배제하려는 논의의 기류가 포착되었다. 그리고 불과 며칠 후 이들 의원이 차별금지법안을 아예 철회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더니, 시민사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결국 철회를 하고야 말았다.
차별을 금지하자는 법에서 성적지향을 배제하려는 논의는 성소수자 차별을 더욱 조장했을 뿐 아니라 차별금지법의 의의 자체를 훼손했다. 또 차별금지법안이 발의한 이들의 손에 철회가 된 것은 너무나 굴욕적이었다.
김한길·최원식 의원이 이런 모습을 보인 것은 보수 개신교계의 조직적인 방해공작 때문이었다. 보수 개신교계는 병력(病歷),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성적지향, 학력(學歷)을 비롯한 20가지 영역을 차별금지조항으로 규정한 차별금지법에서 '성적지향'조항을 악의적으로 강조하며 차별금지법을 "동성애 '허용'법"이라 왜곡했다. 동성애에 대한 왜곡된 정보를 대대적으로 흘려 사회적 차별과 혐오를 조장했다. 법제처 게시판에 테러를 가하고 의원실에 전화를 걸어 욕설과 협박을 쏟아냈다.
이런 보수 개신교계의 행동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김한길·최원식 의원이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대해 조사했다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위의 일들이었다. 두 의원은 정치적 입지라는 그들의 이해를 앞세워 성소수자의 인권을 팔아넘겼다. 덕분에 보수 개신교계는 '그들만의 하나님'의 승리를 또 한 번 맛보았다.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가 다시금 좌절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보수 개신교계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보수 개신교계가 대응을 할 거라고 생각지 못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한겨레>와 <경향신문>에 보수 개신교계의 궤변을 담은 전면광고를 게재한 것은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그동안 성소수자의 입장을 변호해온 언론이 성소수자에 가하는 폭력에 동참하는 일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당신의 인권을 거래한다면
민주당 김한길·최원식 의원이 차별금지법안을 철회한 것은 보수 개신교계에 위험한 용기를 불어넣었다. 보수 개신교계는 그 기세를 몰아 성소수자 관련 조항이 들어있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와 국가인권위원회법을 훼손하려고 시도했다. 김한길·최원식 의원의 무능함과 무책임함으로 인해 헌법적 가치, 국민의 평등권, 보편적 인권정신을 수호하는 민주국가의 역량이 대폭 후퇴할 위기에 놓였다.
보수 개신교계에 대한 비난들은 그들이 꾸준히 저질러 온 만행의 결과다. 그들의 만행이 사회의 소외된 자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 예수의 뜻에 따른 것일까? 보수 개신교계는 반성하기는커녕 여전히 하나님 예수님 운운하며 궤변을 늘어놓았고, 그것을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전면광고로 내보냈다.
차별금지법은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평등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함으로써 헌법정신을 구현하는 법이며, 인간의 기본권을 박탈당할 위협에 노출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하기 위한 기본법이다.
차별금지법 안에서 성적지향을 배제하는 것은 성소수자 국민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계속해서 방기하자는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가 3회나 좌절된 것은 한국사회가 그만큼 무능할 뿐 아니라 이를 개선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
민주당 김한길·최원식 의원은 표와,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광고료와 성소수자의 인권을 맞바꿨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거래하고 차별금지법의 제정에 찬물을 끼얹은 순간, 이들은 보수 개신교계와 마찬가지로 국민평등권과 소수자 인권을 짓밟은 것이다.
혹자들은 김한길·최원식 의원, <한겨레>·<경향신문>에 대한 이런 비난이 다소 과하다고 한다. 그들도 보수 개신교계를 상대로 적잖이 피곤했을 거라며 두둔한다. 그러나 성소수자의 인권을 거래한 이들의 행태를 감싸는 구차한 변명들에서 성소수자의 입장에 대한 고려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성소수자의 인권과 관련된 사안에서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성소수자의 입장과 관점이다. 이 말을 이해하기가 그렇게나 어려운지 묻고 싶다. 누군가가 당신의 인권을 표심이나 광고료 따위로 거래해도 당신은 같은 말을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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