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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한 시대, 중립지대에 선 자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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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한 시대, 중립지대에 선 자의 슬픔

[시론] MBC 신경민 앵커의 강제 퇴진을 지켜보며

"답답하고 암울했습니다."

문화방송(MBC) 신경민 앵커가 13일 밤 마지막 클로징 코멘트에서 밝힌 심경이다. 지난 1년여간 뉴스데스크를 지켜온 앵커의 닻줄이 끊기는 것을 바라보며 많이들 비슷한 심정이었으리라.

70~80년대 독재 치하와는 또 다른 암울함이다. 사람들 가슴 속엔 이런저런 일로 답답함과 암울함이 쌓여가고 있다. 임계점이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언제 어떤 식으로 터져나올지 알 수 없어 불안함까지 더해지는 요즘이다.

진정한 공정성은 어떻게 이뤄지나?

갈등해결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이번 사건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신경민 앵커가 그동안 보여온 모습, 그리고 이번의 결말에서 사무치게 와닿는 것이 있다. '진정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리고 '가운데 선 자'의 고뇌와 비애는 얼마나 깊은 것인가 하는 점이다. 둘째,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에 중립지대가 얼마나 협소한가를 새삼 씁쓸하게 확인하게 된다는 점이다.

흔히 언론의 생명은 중립성 혹은 공정성이라고 한다. 물론 모든 언론매체에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언론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당파적인 매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공영방송 혹은 일반 대중지라면 중립성 혹은 공정성이 기본이다. 문제는 중립 혹은 공정성의 범위나 기준이 대단히 모호하다는 사실이다. 그 때문에 늘 논란이 벌어진다. 엄기영 사장이 13일 담화문에서 "공정하고 균형 잡힌 방송"을 위해 신경민 앵커를 하차시키기로 했다고 발표하고, 신 앵커가 고개를 갸웃하는 반응을 보인 것도 그런 맥락에서 벌어진 일인 셈이다.

이러한 논란을 제대로 살피려면, 중립의 개념을 톺아보는 게 도움이 된다. 중립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소극적 중립이다. 흔히 얘기하는 기계적 중립, 산술적 중립은 여기에 해당한다. 대립하는 양측 사이에서 그야말로 엄정 중립을 지키는 것이다. 흔히 언론인, 종교인, 교육자 등 사회의 중립지대에 몸 담고 있는 이들에게 요구되는 기본 윤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식이 중립이 실제로는 오히려 편파적이거나 불의를 거드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 특히 대립하는 양측 간에 힘의 불균형이 심할 때 혹은 중요한 공적 가치나 기본적 윤리 문제가 개입됐을 경우에 그렇다. 그런 때에 필요한 것이 적극적 중립이다. 찬송가의 한 구절처럼 "약한 자에게 힘을 주고, 강한 자를 바르게" 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진정 정의가 이뤄질 수 있다. 기울어진 시소에서 가운데에 똑바로 서기 위해선 먼저 시소 양쪽의 균형을 잡아줘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신경민 앵커는 경질되던 날 마지막 방송에서 자신의 '클로징 멘트'에 담긴 철학의 핵심을 이렇게 밝혔다.

"그 동안의 제 원칙은 자유, 민주, 힘에 대한 견제, 약자 배려 그리고 안전이었습니다."
자유 민주는 민주사회의 언론이라면 당연한 원칙이다. 주목할 것은 "힘에 대한 견제"와 "약자 배려"를 말한 대목이다. 그가 평소 힘의 문제, 정의의 문제를 얼마나 예민하게 생각해왔는지 드러난다. 이 역시 언론이라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교과서에서나 그럴 뿐, 현실에서는 다르다. 오히려, 힘 센 쪽에 붙거나 스스로 힘을 좇고 과시하는 언론 및 언론인을 우리는 그동안 신물 나도록 보아왔지 않은가.

"힘에 대한 견제, 약자에 대한 배려"

중립의 개념을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눠볼 때, 엄기영 사장이 말한 "공정하고 균형 잡힌 방송"은 '소극적 중립'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신경민 앵커는 "힘에 대한 견제와 약자 배려"로써 '공정하게 균형 잡는 방송'을 추구한 듯하다. 그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이 있을지라도 모름지기 공영방송은 '적극적 중립' 을 지향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이다. 요컨대, 소극적 중립과 적극적 중립 사이의 충돌이 결국 '힘'에 의해 일방적 승부로 귀결되고 만 셈이다.

그런데, 한 가지만 따져 보자. 정부 등 권력 기관은 어떤 존재인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힘을 대신 행사하는 곳이다. 그런 점에서 '힘에 대한 감시·견제' 역할은 더더욱 정당하고 필수적인 언론의 본령일 수밖에 없다. 결국 적극적 중립은 언론의 당연한 좌표여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런 정당한 이치를 왕왕 짓밟고 올라서는 것이 있다. 경영상의 문제 등을 앞세운 현실론 혹은 그 뒤에 도사린 정치-경제적 외압이 그것이다. 특히 근래 열악해진 정치경제적 상황 탓에 아주 당연한 원칙마저 부정되거나 위협받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그로 인해 언론의 정도를 지키려는 앵커는 항구에 도착하기도 전에 닻줄이 잘리고 말았다. "힘에 대한 견제와 약자 배려'로 정의를 세우려는 노력이 언제든 바로 그 힘에 의해 좌절될 수 있음을 우리는 지켜봐야 했다. 정도를 지키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험난한 일인가를 우리 국민들은 이번에 또 다시 '열공'해야 했다.

중립지대는 좁아지고, 고민은 커가고

비단 언론계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중립지대가 넓고 튼튼할수록 그리고 가운데 서 있는 이들이 적극적으로 제 역할을 할수록 사회가 안정되고 정의로와지는 법이다. 허나, 안 그래도 협애한 중립지대가 갈수록 더욱 좁아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마저도 우리 사회가 거꾸로 가고 있으니, 앞날을 생각하면 참으로 걱정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장 우리 사회의 그 숱한 갈등을 생각해도 그렇다. 거의 모든 갈등에는 힘의 문제가 결부된다. 갈등이 원만하게 풀리도록 하려면 '가운데 서는 자'의 '적극적 중립'이 필수적이다. '힘에 대한 견제' 그리고 '약자에 대한 배려 혹은 힘 주기(empowerment)'를 통해 진정 정의로운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근래 우리 사회의 흐름은 오히려 그 여지를 자꾸만 좁히는 쪽으로 가고 있어 고민이다. 얼마 전 책(<갈등 해결의 지혜>)을 쓰면서 그런 고민을 토로한 바 있는데, 이번 사건을 보면서 그런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참으로 답답하고 암울하다. (☞관련 기사 : "갈등은 힘으로 풀리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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