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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작가 '전염시킨' 그 멘토, 마지막 편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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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작가 '전염시킨' 그 멘토, 마지막 편지는…

[뜨거운 대화] <카뮈-그르니에 서한집 1932~1960>

2년 전 <알베르 카뮈 전집>(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책세상 펴냄)이 완간된 데 이어 <카뮈-그르니에 서한집>(알베르 카뮈·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책세상 펴냄)까지 출간되었다. 카뮈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카뮈를 새로 접하게 될 이들에게도 행복한 일이다. <섬>(김화영 옮김, 민음사 펴냄)으로 잘 알려진 장 그르니에의 글도 여러 권이 이미 '선집'의 형식으로 번역이 되어있어 접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 그르니에의 정제된 에세이도 흡인력이 있지만,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은 그르니에를 알베르 카뮈의 스승으로, <섬>을 카뮈의 아름다운 서문으로 기억할 것이다.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 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서한집>의 앞부분에 등장하는 편지에는 바로 이 시기, "선생님의 저서를 다 읽자마자" 적은 스무 살 카뮈의 감상을 적은 메모가 있다.

"이것을 선생님께 보여드릴 생각은 아니었지만 제가 그 책을 읽고 느낀 바를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알 수가 없기에, 차라리 두서없지만 솔직하고 꾸미지 않은 제 글이 직접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도 진실했던 감동을 보다 더 잘 전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두서없는' 메모에는 "'신앙도, 연민도, 사랑도 없는', 아니 심지어 긍지도 없는-위대한 도약을 위한 준비"와 같은, 훗날 카뮈의 글을 예고하는 듯한 문장도 들어 있다.

▲ 알베르 카뮈·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책세상 펴냄). ⓒ책세상
작가들의 '서한집'에는 다른 내밀한 글들과 마찬가지로 작가의 소소한 일상과 관심사, 완전히 정제되기 이전의 사유나 감상이 주는 재미, 우리가 좋아하는 작품이 형체를 얻고 다듬어지는 과정과 그 시간 동안의 고민을 엿보는 즐거움이 있다. 그러나 편지는 일기와 달리 분명한 수신자가 있기에 상대방의 존재가 언제나 글보다 먼저다. 편지가 얼마나 흥미로워지느냐는 두 사람 사이 관계의 성격에 따라 결정된다. 자연히 편지를 쓰는 쪽 이상으로 받는 쪽이 중요해진다.

그런 점에서 가난하고 병약했던 고등학생 카뮈의 '멘토' 역할을 하며 그를 작가의 길로 이끌었던 그르니에와 <이방인>으로 찬란한 성공을 거두면서부터 세계적 작가가 되기까지 거듭 그르니에 '선생님'에게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던 카뮈의 관계는 사람들의 비상한 관심을 끄는 데가 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백인 빈민 가정, 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아버지,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말없는 어머니,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식구들, 흙바닥을 맨발로 뛰어다니며 원주민들 사이에서 고립된 느낌을 받던 유년기. 카뮈의 자전적 이야기이자 미완성 유작인 <최초의 인간>(김화영 옮김, 열린책들 펴냄)에 감동적으로 묘사된 어린 시절이다. 생계를 위해 일찍 직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을 그가 작가의 길을 가게 되었던 데는 분명 고교시절 만난 철학교사 장 그르니에의 영향이 컸다.

알제의 고등학교에 갓 부임한 그르니에는 졸업반 학생 카뮈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카뮈가 병으로 학교에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집으로 찾아가기도 했지만 카뮈의 태도는 무뚝뚝했다. 10여 년 후 이들은 이 시간을 회상한다. "당신의 눈에는 내가 '사회'를 대표한다고 보였겠지만 당신은 내게 결코 '이방인'이 아니었어요." 그에 대한 카뮈의 답장. "아마,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선생님은 '사회'를 대표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선생님이 제게 오셨으니 그날부터 저는 제가 생각했던 만큼 그렇게 한심한 것은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훗날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빛나는 성공을 이룬 카뮈였지만, 가족과의 갈등, 건강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청년시절의 그는 자신의 청년다운 포부와 두려움을 '선생님'에게 털어놓는다.

"제가 한 가지 믿음을 선택한 이상 그 믿음을 손상할 가능성이 있는 그 어떤 양보도 거부하고, 제가 한 가지 목표를 정한 이상 그 목표의 추구에 완전히 몰두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이 깊은 진실을 가르쳐주셨고 그것을 가르쳐줌으로써 그토록 많은 것을 주신 선생님이시니 저의 말을 부정하지는 못하실 것입니다."

자기 재능에 대한 회의를 유일하게 내보이고 조언을 구할 이도 그르니에였다. 처음으로 쓴 소설 <행복한 죽음>의 원고를 보인 후, 그는 그르니에에게 작가로서의 자기 미래가 있을 것인지 묻는다. "선생님께서는 솔직히 제가 계속해서 글을 쓰는 게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이후에도 카뮈는 새로운 작품을 쓸 때마다 그르니에에게 원고를 먼저 보이고 의견을 물었다. 카뮈가 보낸 두 편의 원고, <이방인>과 희곡 <칼리굴라>를 읽고 나서 그르니에는 지금까지 카뮈가 해 온 것에 비해 '결정적으로' 발전했다는 평가를 내린다.

"당신의 원고를 읽었소. <이방인>은 대단한 성공이요-카프카의 영향이 내 마음에 좀 걸리긴 하지만 특히 제2부가 좋소. 감옥 장면의 페이지들은 결코 잊을 수 없소."

<시지프 신화>를 읽고 나서는 절대에 대한 욕구, 통일성의 추구, 열정을 높이 평가한 반면, 감정적 힘에 비해 변증법은 불충분하며 논리적 추론 방식을 쓸모없이 동원하고 있다고 조목조목 견해를 적어 보낸다. 카뮈는 이런 지적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작품의 많은 부분을 수정했다고 답한다.

"선생님 이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전혀 할 말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저는 선생님의 의견을 들어보지 않고는 무엇이든 제가 하고자 하는 일에서 속수무책이 되고 맙니다."

스승의 영향력은 작품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카뮈가 철학 학사학위 취득 후 공산당에 입당한 것도 그르니에의 권유에 따른 일이었다. "공산당에 입당하라고 충고하신 선생님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로 시작되는 1935년의 편지에서는 "사상보다 삶"이 중요하며 경화된 독트린은 끝내 거부하고자 한다는 젊은 카뮈의 '입당의 변'을 들을 수 있다. 그는 공산주의를 "종교적 감각이 결여된 세속적 모럴이지만, 보다 더 정신적인 활동들에 토대를 마련해 줄 하나의 준비"로 이해하면서 공산당 입당이라는 경험을 시도하노라고 그르니에에게 말한다.

그르니에는 자신이 젊은 카뮈에게 무언가를 전달했다면 그것은 그가 이미 그 씨앗들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끼친 영향을 '병이나 정열의 전염'과 같은 것이라 말한다. 두 사람이 공유하던 이 병이나 정열은 그들의 글에도 같은 색채를 드리운다. 삶의 비극성을 항상 의식하고 있으면서도 행복에 대한 열망을 숨기지 못하는 것, 참아낼 수 없는 진실일지라도 그 진실을 삶보다 높은 곳에 두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 태양과 밤과 바다, 알제리의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 카뮈의 글을 읽고 그르니에는 말한다.

"만약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방향으로 끝까지 계속 밀고 나간다고 했을 때 바로 나 자신이 했을 법한 말들을 당신이 하고 있소."

그러나 차츰 카뮈는 그르니에의 '섬'과 다른 자신만의 견고한 대지를 찾아나간다. 선생의 줄기를 타고 올라간 넝쿨이 새로운 방향을 찾아 뻗어나가는 과정은 언제나 예의바르게 서로에게 경의를 표하는 서한집에서보다는 그들의 작품을 비교하며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치해서가 아니라 신뢰하고 존경하기 때문에 이어지는 깊은 교류는 편지가 오가는 내내 한결같다. 이들의 편지는 어떤 관계의 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제자는 선생을, 아니면 차라리 자신이 품는 선생에 대한 기대를 올려다보며 성장하고, 선생은 제자가 자신에게 구하는 바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며 깊어지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들의 편지는 차츰 작가이자 지식인으로서 같은 시대를 헤쳐나간 동료 또는 벗 사이의 대화가 된다. 양쪽 가족의 안부, 경제적 어려움(특히 2차 세계대전 와중 계속되는 식량 부족에 대한 이야기), 지인들, 새로 나온 글에 대한 견해 등에 대한 대화가 들어찬 서한은, 우리가 카뮈와 그의 시대에 대해 기억하는 이미지의 이면을 보여준다.

사르트르가 쓴 <이방인> 평에 대해 카뮈는 사르트르 글의 타당성을 인정하면서도 신랄한 어조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그르니에에게 털어놓는다. 사람들이 흔히 '카뮈와 사르트르'의 이름을 한 데 묶어 생각하는 데 비해, 실제 그들이 아주 가깝게 일상을 함께 보냈던 시절에도 카뮈가 그르니에에게 쓴 편지 안에는 사르트르에 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한편 이른 나이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던 당시, 카뮈는 그르니에에게 수상 행사의 지겨움만을 "잠시 후면 '투우'가 끝날 것입니다. 황소가 죽었으니까요. 아니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하고 짧게 적어 보낸다.

카뮈의 정치적 발언, 특히 알제리 전쟁에 대한 태도와 <반항적 인간>의 출간으로 논쟁의 중심에 서서 여러 세력의 공격을 한꺼번에 받던 즈음의 사건들은 카뮈가 털어놓는 심경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같은 믿음을 가진 어떤 파에 들어가지 않으면 사람들이 가만 두지를 않습니다. 어떻게 만사를 망쳐놓는 거짓을 고발하지 않은 채 멀찍이 물러서서 보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다 겁을 먹고 입을 다문 채 가만 엎드려 있습니다."

"벌써 여러 해 전부터 온전한 행복은 누려보지는 못한 채 어디를 가나 버림받는 느낌만 들고, 무슨 죄나 지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지낼 뿐만 아니라 자신의 대부분을 빼앗겨야 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모든 것을 다 팽개쳐버리고 아무 소득도 없는 이런 노력을 아예 포기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명성이 높아질수록 고립되고 고독 속에 갇히게 되는 작가의 내면은 신뢰하고 존중할 수 있는 한 사람의 수신자가 있어 직접 표현될 기회를 얻는다. "제 경우 벽 앞에서 살아나간다는 것이 점점 더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카뮈는 다시 알제리의 유년으로 돌아가 최초의 순간들, 근원적인 것들로부터 새롭게 시작하려 했다. 루르마랭에 집을 마련해 그 곳에서 그는 <최초의 인간> 집필에 전념한다. "저의 작업은 저 자신에게 가하는 일종의 폭력이 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 사이의 마지막 편지는 카뮈가 빨리 받아보고 싶다고 조른 <섬>의 재판본(찬사를 실은 카뮈의 서문이 담긴)을 루르마랭으로 발송한다는 추신이 덧붙여진 그르니에의 글이다. 이 책은 부조리의 증거처럼 닥친 교통사고로 카뮈가 사망한 후에야 도착한다.

ⓒ프레시안(손문상)

자신의 재능에 대해 늘 불안해하던 카뮈에게 그르니에는 위로와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진실한 스승이자 벗이자 동료로서 그르니에가 카뮈에게 보여준 태도를 엿볼 수 있는 구절을 일부 소개한다. <편집자>

1938년 7월, 알베르 카뮈가 장 그르니에에게
편지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 편지는 제게 몇 가지 나아갈 길을 보여줍니다. 최선을 다하여 그 길을 좇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만 저는 그렇게 함으로써 선생님이 저를 위하여 해주신, 그리고 지금도 해주고 게신 것에 언젠가는 어울리는 인물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선생님이 허락해주신다면, 그리고 제게 주소를 알려주신다면, 그때까지 계속하여 편지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941년 7월, 장 그르니에가 알베르 카뮈에게
가브리엘 마르셀과 마르셀 아를랑에게 그 글을 <칼리굴라>, <이방인>과 함께 읽혀보면 좋을 것 같소. 아주 일관성이 있는 삼부작이니까. 내가 그 친구들에게 당신 이야기와 당신의 글에 대한 이야기를 해두었어요. 당신이 원한다면 내가 <시지프 신화>를 G. 마르셀에게 보내는 일을 맡아 해도 좋고요. (…) 알캉 출판사에서 나오기로 되어 있는 나의 소책자 한 권을 당신에게 보내도록 하겠소. 나는 그 책에서 당신의 것과 유사한 주제를, 그러나 당신이 다루는 것을 반대쪽으로 뒤집어서 다루고 있소. 당신이 쓴 것은 정말이지 대단히 훌륭하오. 그래서 나는 여간 만족스러운 게 아니요.

1942년 3월, 알베르 카뮈가 장 그르니에에게
선생님은 제가 언급해보려고 했었던 개념들을 다룬다고 말씀하셨더랬지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다룬 것은 선생님의 작품에 비하면 구제할 수 없을 만큼 조잡합니다. 이 책은 대단히 중요한 저작입니다. 특히 우리 시대에는 말입니다. 전쟁 후 그와 같은 의미와 그런 역량을 갖춘 철학적인 저작은 없었습니다.

1943년 부활절, 장 그르니에가 알베르 카뮈에게
나는 당신의 내면에 있는 그런 떳떳한 자긍심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 자긍심 때문에 가끔 당신은 마치 당신만이 타협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라도 된다는 듯 본의 아니게 공격적이 되지요. 어쨌든 그 자긍심은 지극히 고귀한 감정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 우리는 항상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서로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그러나 당신은 한 번도 나와는 무관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생각도, 당신의 고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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