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젠체하며 딱딱한 문학이론을 거론하려는 것은 아니다. 책을 쓰는 직업을 떠나서 나 또한 한 사람의 독자로 책을 읽고 감동 받고 눈물 흘리고, 몇몇 작품은 사랑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보기 싫은 책은 헌책방에 헐값에 팔기도 한다. 책을 쓴 작가에게는 미안하지만 모든 책이 다 귀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선택되고 어떻게든 평가를 받는다. 반대로 우리는 어떻게든 책을 선택하고 어떻게든 평가한다. 여기에 각 개인의 한계가 있고 치졸함이 있고 우아함이 있고 교양이 있다. 우리의 인생처럼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학을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각 개인의 답이 존재한다.
그런데 문학을 전혀 읽지 않았다면? 당신의 삶과 문학이 동떨어져 있다면?
그래도 답은 있다. 물론 '정답'은 없다. 정답이 없는 답은 얄궂게도 질문으로 존재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의 인생처럼 말이다.
먼저 책 소개를 간단히 하면, <파이 이야기>(공경희 옮김, 작가정신 펴냄)의 저자로 유명한 얀 마텔이 '자신을 지배하는' 캐나다 수상 스티븐 하퍼에게 문학을 소개하며 문학을 읽으라고 권하는 편지를 묶은, 책을 소개하는 책이다. 얀 마텔은 친절하게도 서문 전에 우리를 '지배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편지를 썼다.
"현재의 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광적인 정치적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대통령님이 진정으로 무엇을 하기를 바라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냉철하게 판단하기 힘듭니다. 그렇기에 독서가 필요한 것입니다. 픽션을 읽으십시오. 그것이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모든 정치인이 원하는 것이 새로운 세계, 더 나은 세계를 이룩하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 ▲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작가정신 펴냄). ⓒ작가정신 |
하지만 문학을 전혀 읽지 않는다면, "<이반 일리치 죽음>이나 다른 러시아 소설을 전혀 읽지 않았다면, <줄리 아씨>나 다른 스칸디나비아 희곡을 전혀 읽지 않았다면, <변신>이나 다른 독일 소설을 전혀 읽지 않았다면, <고도를 기다리며>와 <등대로> 등과 같은 실험소설이나 실험희곡을 전혀 읽지 않았다면, 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노드롭 프라이의 <문학의 구조와 상상력> 같은 철학적 탐구서를 전혀 읽지 않았다면, (…) 그의 마음에는 대체 무엇이 있겠는가? 인간다운 감수성을 어떻게 구축했겠는가? 무엇을 근거로 상상하고, 그 상상의 색깔과 무늬는 무엇이겠는가?"
권력가뿐만 아니라 우리가 왜 문학을 읽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의 답으로 이처럼 열정적이고 충분한 질문이 있을까?
그럼 이제 나에게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할 차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에게 문학이란 유용하지 않은 것이다. 읽어봐야 쓸데없다. 하퍼 수상이 저자 얀 마텔에게 보낸 '야멸치게 정직한 답장'에서 "나는 소설이나 시, 희곡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낭비하는 기분입니다. 선생에게는 달갑지 않게 들리겠지만 내가 알 바는 아닙니다"라고 쓰고 있듯, 내가 소설이나 시, 희곡을 사랑하지만 시간을 낭비하는 기분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어, 그럼 왜 글을 쓰고 읽는 직업을 가졌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기쁜 마음으로 떠벌릴 말이 생긴다.
김현이란 평론가가 있다. 내가 막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 나는 그의 책을 처음 접했다. 딱딱할 줄 알았던 평론가 글은 부드러웠다. 그리고 놀라웠다.
김현의 글을 대충 요약하자면 문학은 유용하지 않다. 써먹을 수가 없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문학은 그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먹는다." 바로 이 지점, "문학은 유용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대신 문학은 억압하는 모든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그 정체를 파악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억압하는 세계를 개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당위성을 느끼게 한다. 한편의 아름다운 시는 그것을 향유하는 자에게 그것을 향유하지 못하는 자에 대한 부끄러움을, 한 편의 침통한 시는 그것을 읽는 자에게 인간을 억압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자각을 불러일으킨다."(<한국문학의 위상>(김현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28쪽)
오, 문학은 인간을 억압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그것을 바꾸는 힘이 있구나.
문학이 정말 그런 힘을 지녔는지에 대해 확실한 과학적 데이터를 델 수 없다. 그냥 한 평론가의 말일 뿐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나도 모르게 감탄했고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한 평론가의 글, 소설이나 시가 아니더라도 나에게 문학 작품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얀 마텔은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스티븐 하퍼 수상처럼 나를 지배하는 사람이 어떤 방향으로 무엇을 상상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의 꿈이 자칫하면 나에게는 악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을 읽는 사람은 알게 모르게 억압하는 자들에 대해 생각하고, 또한 자기를 억압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더 나아가 자신을 억압하는 것을 풀어내고 세계를 개조하게 만든다. 특히 권력가는 자신의 잘못된 억압 때문에 자칫 잘못된 선택을 했을 경우 수많은 사람들을 억압하게 된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를 통해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문학을 읽지 않는 각하를 뽑아놓고, 읽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너무 늦은 투정인지도 모른다. 문학을 읽는 각하를 뽑으려면, 그러니까 "새로운 세계, 더 나은 세계를 이룩하는 것을" 꿈꾸는 정치가를 뽑으려면, 이 책을 소개 받는 당신이 바로 문학을 읽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세상은 조금 더 올바르게, 조금 더 억압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소개 받아 읽는 당신도 그 당위성에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문학 작품을 소개하는 한 권의 훌륭한 문학 작품을 당신이 읽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사건으로 시국이 어수선하다. 윤창중 전 대변인도 박근혜 대통령 측근으로 권력가다. 나는 권력가인 그에게 이 책을 권한다. 2013년 제37회 이상 문학상 작품집. 상을 받은 김애란 작가의 '침묵의 미래'와 다른 작품들 모두 좋은 작품들이지만, 특히 이 작품, 편혜영 작가의 '밤의 마침'을 권한다. 감히 말하면 당신이 경험하기 전에 세상 어딘가에 그 경험을 깊이 사색해 써 놓은 훌륭한 문학작품이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잘못(성추행)을 감추고 자신이 성추행한 여고생을 맞고소해 결국 무고를 법적으로 입증하고 잃어버린 명예를 회복하는데 성공한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과연 자신의 잘못을 감추는데 성공한 사람의 삶은 어떨까? 문학이 당신에게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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