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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책 뒤에 숨어 있던 남자, 바로 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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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책 뒤에 숨어 있던 남자, 바로 나예요!

[프레시안 books] 이시바시 다케후미의 <서점은 죽지 않는다>

서점은 죽지 않는다. 선언인지 희망인지 알 수 없는 제목이지만, 지난 십여 년간 하루에 하나 꼴로 서점이 사라진 현실(1994년에 5683개이던 전국 서점이 2011년에는 1752개로 줄었다는 한국출판인회의 조사 결과)에서, 이 책은 선언이든 희망이든, 그게 아니라도 무엇이든 되어야만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만큼 반갑게 책을 열었고 꼼꼼하게 읽기 시작했다. 서점에서 일하는 내 밥줄이어서 그랬을까? 물론 어떻게 하면 서점이 죽지 않을 수 있는지 처방전을 발견하고픈 마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독서가 주는 즐거움이 그렇듯) 내가 찾던 답은 쉽게 보이지 않았고,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오히려 서점인의 감각을 일깨웠다.

<서점은 죽지 않는다>(이시바시 다케후미 지음, 백원근 옮김, 시대의창 펴냄)는 일본의 출판 저널리스트가 일본 각지의 서점과 서점인을 취재한 르포다. 대형 서점에서 근무하다 도쿄 한 켠에 다섯 평짜리 자그마한 서점을 열고 스스로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책을 독자에게 전달하겠다는 의지를 관철하는 히구라시문고의 하라다 마유미, 책을 다루는 서점이라는 공간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꾸준하게 글을 써내는 서점계의 논객 후쿠시마 아키라, 서점이 있다는 게 오히려 어색할 법한 한적한 시골에 서점을 열어, 한낮에는 아이스크림을 팔고 때로는 연애 상담도 해주는 이하라 하트숍의 이하라 마미코 등 각기 다르지만 책에 대한 자신의 태도, 서점에 대한 자신의 상상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 <서점은 죽지 않는다>(이시바시 다케후미 지음, 백원근 옮김, 시대의창 펴냄). ⓒ시대의창
문제는 이런 이야기들이 별반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에 없던 시도도 아니고, 이런 정도의 이야기라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계룡문고 이동선 대표의 '책 읽어주는 아빠' 프로그램이나 여러 오프라인 서점이 함께 펴내는 서점 서평지 '책방 나들이' 그리고 여러 번역서를 직접 읽고 선별해 진열하고 작은 출판사의 좋은 책을 포스터로 만들어 서점 바깥에 크게 붙여 놓기도 하는 '대학로 이음책방' 등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사라지는 서점이 아니라 '살아있는 서점'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게다가 '종이책의 미래를 짊어진 서점 장인들의 분투기'라고 부제를 붙이고 사라지는 서점의 미래를 말하기에는 스펙터클하지 않다는 느낌도 받았다.(물론 이건 내가 대형 온라인 서점에서 일하기 때문에 생긴 시차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시 읽기 시작했다.(나는 뭔가를 발견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무릇 서평이란 그런 것 아니겠는가.)

이번에는 후반부에 나오는 '카리스마 서점인'이 눈에 들어왔다. 서점을 살릴 마땅한 방도를 찾지 못하자 그게 아니라면 이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한 번 가늠해보자는 생각도 있었지 싶다. 어쨌거나 카리스마 서점인이라 불리는 서점 직원이라니, 폼 나지 않는가. 하지만 역시 카리스마 서점인은 아무나 될 수 없는 법. 출판사조차 판매에 성공하지 못한 책을 하나의 서점이 판매에 공을 들이기 시작해 전국 단위의 베스트셀러로 만드는, 이른바 서점 발(發, 서점이 만드는) 베스트셀러를 여럿 만들어낸 남다른 안목의 소유자 이토 기요히코, 엄청난 독서량을 바탕으로 한 권의 책을 서가에 진열할 때 하나의 지식 계보를 구성하는 후루타 잇세이 등 그저 몸을 열심히 놀려 모자란 감식안을 간신히 메우는 나로서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위인들이 즐비했다. 하물며 이토 기요히코의 수제자로 꼽히는 다구치 미키토는 역사 코너를 맡으며 600여 권의 역사 소설을 읽었다고 하니, 카리스마 서점인은커녕 서점인이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 있다는 데에 안도해야 할 상황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카리스마 서점인을 포기할 수는 없다. 아, 카리스마. 카리스마 서점인 '바갈라딘'(서경식 선생님께서 붙여주신 서점인 박태근의 애칭). 이제 어떻게 할 텐가. 도리가 없다. 이럴 때는 다시 읽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어느새 서평을 쓰겠다는 애초의 목적은 사라지고 카리스마 서점인이 되겠다는 일념만 남았다.) 그리고 세 번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발견했다.(이건 이 책의 문제가 아니라 아둔한 내 탓이다.) 이 책이 독특한 서점 운영이라든지 특출 난 서점인을 다루는 게 아니라 결국 책에 대한 태도를 말하고 있으며, 그런 태도를 서점에서 구현하기 위해 그들이 어떤 갈등과 고민을 마주하는지를 다루고 있다는 걸 말이다. 이렇게 방향을 바꿔 읽으니 주옥같은 문장들이 속속 눈에 들어왔다.

"독자와 서점의 요구는 곧잘 괴리됩니다. 독자는 우리 서점에서 10년에 한 권 팔릴 듯한 희소한 책을 사면 왠지 기쁘겠지요. 그렇지만 서점은 10년에 한 권밖에 팔리지 않는 책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말로는 뭐라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거의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죠." (209쪽)

고객은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진열한 서점을 만났을 때 좋은 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책은 이미 갖고 있기 때문에 서점에서 또 사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 책은 팔리지 않겠지만, 고객은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비치해둔 그 서점에, 다른 재미난 책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몇 번이나 다시 찾아와서는 다른 책을 사간다. 숫자상으로 매출이 제로인 책이 이렇게 매출액 향상에 공헌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서가를 만들기 시작하면 서점은 매력 없는 공간이 되어버릴 것이다.(<서점인의 일>, 34쪽, <서점은 죽지 않는다> 61쪽에서 재인용)

온라인 서점은 거의 모든 책의 정보를 거의 제한 없이 등록해두기 때문에 이런 고민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물론 어떤 책의 재고를 챙겨두어 당일배송 서비스를 하느냐 아니냐에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이런 고민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게다가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서점은 어디서나 같은 책을 판매하기 때문에, 서가를 구성하여 독자에게 제안하는 일이 곧 그 서점의 고유성, 독자성과 바로 연결된다. 매일 수백 권의 책이 쏟아지는데 각각의 책을 무슨 기준으로 판단하고 분류하고 정리해서 고유성과 독자성을 확보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역시 '직관'이라고 답하겠다. 물론 이 직관에는 오랜 경험, 머릿속에 저장된 판매 수치,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정보가 포함되겠지만, 짧은 시간에 판단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그 자체는 직관이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지키고 있는 서점 중 하나인 '길담 서원'의 내부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그렇게 짧은 시간에 책을 분류하는 것이 자랑할 정도가 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척척 진열하고 나서 나중에 확인해보아도 틀림없다는 것을 수긍하곤 해요. 하지만 그렇게 해도 좋은 건지 생각하곤 합니다. 뭔가 나쁜 짓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18쪽)

서점에서 자주 보게 되는 서점원들의 이 모습이 나는 정말 좋다. 저 책을 서가의 어디에 놓고, 그 대신에 어떤 책을 빼서 어디로 옮길까? 그 오른손의 움직임 하나가 어쩌면 책 한 권의 운명을 바꿀지도 모른다. 실로 신성하면서도 잔혹한 장면이다.(74쪽)


그 직관은 이런 죄책감을 낳기도 한다. 사람이 하는 일이고, 짧은 시간에 직관에 의지하기 때문에 판단에 잘못이 있을 수도 있지만, 위에서 하라다 마유미가 말했듯 사실 큰 맥락에서는 실수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뭔가 책에게, 출판사에게, 편집자에게, 저자에게 그리고 독자에게 잘못한 듯한 느낌을 갖는 건, 서점인이라면 받아들여야 할 숙명 같은 게 아닐까. 부적절한 예이지만, 사형 집행인도 잘못은 없지만 죄책감을 갖게 되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이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 어떻게 책과 전면적으로 마주할 수 있을까.

"항상 진열해야 할 작가의 대표작을 파악하고 있지 못하면 제대로 서가를 만들 수 없고, 역사 소설 전체 흐름 속에서 그 작가의 위치도 보이지 않습니다. 대표작을 찾을 때 옛날에 가장 많이 팔렸다거나 상을 받았다거나 하는 것들은 참고가 되지 않습니다. 직접 읽어보고 이 책이야말로 이 작가의 진수라고 스스로 파악하지 못하면 서가를 만들 수 없습니다. 통독하지 않고 여기저기를 펼쳐 읽거나, 이른바 속독술 같은 것은 쓸모가 없습니다. 제대로 통독해야만 합니다. 읽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보다는 빠를지 모르겠습니다만, 당연히 시간이 걸립니다."(165쪽)

"서점에는 본래 사명이 있었습니다. 사명감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 서점입니다. 즉 책에 관한 고객의 개별적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지요. 부탁을 받으면 어떤 책이든 입수하지 않으면 안 되고, 책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잘 모른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창피한 일이니까 열심히 책을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지역 주민들에 대한 서점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225쪽)

"대표작을 찾을 때 옛날에 가장 많이 팔렸다거나 상을 받았다거나 하는 것들"을 주요한 참고 자료로 삼는 나로서는 분통 터질 노릇인데, 엄청난 일상 업무와 각종 보고 그리고 새로운 사업 계획 등으로 책을 읽을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다는 핑계조차도 "당연히 시간이 걸립니다"라는 초연한 모습 앞에 서니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공감하는 부분은 서점이 책에 대한 고객의 개별적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점이다. 고객의 요구는 끝이 없다. 자신의 요즘 심경을 고백하며 이에 적당한 심리학 책을 추천해달라는 사연을 받은 적도 있고, 새로 이사한 집 도배를 위해 고서가 그대로 담긴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아달라는 요청에 '훈민정음 해례본'으로 만든 도배지를 찾아서 알려드린 적도 있다. 내가 일하는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서는 '어딘가에 한 권은 있다'라는 품절/절판 도서 수급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나로서는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내가 맡은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의 최신 학문 동향과 그간의 학문 지향을 충분히 알지 못하지만, 각 분야의 책을 수백 권씩 독파하며 진수를 발견하지도 못했지만, 어쨌거나 책으로 시작한, 책으로 연결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이에 끝까지 부응하려는 태도는 갖췄다고 자평하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조금은 편해진 마음으로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서점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부탁드리고자 한다.

'이런 책은 안 팔릴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서점인은 머릿속으로 그 책을 어떻게 하면 매장에서 팔 것인지를 생각한다.(77쪽)

그들은 자신의 경험칙으로부터 일시적인 붐으로 끝날 책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 서점이란 그런 책까지도 시대의 산물로 매장에 진열하며 좋든 싫든 어른스럽게 대처하는 곳이다.(71쪽)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다. 직접 책을 쓰는 저자가 될 수도 있고, 저자가 쓴 원고를 책으로 만드는 편집자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이 책을 독자에게 전하는 영업자가 될 수도 있고, 독자가 책을 만나는 공간인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일할 수도 있다. 물론 독자로 남아 끝까지 책을 사랑할 기회를 갖는 방법도 있다.(가장 훌륭한 선택이다.)

앞서 말한 선택지를 모두 경험해보진 못했지만, 서점은 출판사와 독자의 중간에서 이쪽저쪽 눈치 보며 열심히 책을 전달하지만(팔지만), 그저 책을 파는(전달하는) 장사꾼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그렇다고 서점인이 책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을까? 책에 대해 무책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책을 아이라고 할 때, 흔히 저자를 아버지에, 편집자를 어머니에 비유하는데, 나는 서점인을 교사라고 덧붙이고 싶다. 우리는 잘난 아이, 못난 아이 가리지 않는다. 잘난 아이는 잘난 대로, 못난 아이는 못난 대로 각각의 가치와 의미를 고민해서 적절한 자리를 만들고 길을 제시한다. 때로는 갈 곳이 없는 아이를 돌보기도 하며, 짝이 없는 아이에게 짝을 찾아주기도 한다.

그런데 교육은 학부모와 교사, 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일이다. 나는 서점, 서점인도 출판 생태계의 주요한 주체로 이야기되고 평가받고 대접받기를 기대한다. 그래야만 서점이 사라지지 않고, 그럼으로 책은 더 많은 독자를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 나 역시 카리스마 서점인에 꾸준히 도전하겠다. 아래와 같은 태도로 말이다.

"팔리는 책보다는 팔고 싶은 책이 중요합니다. 항상 그걸 봅니다. 그다음은 어찌 되든 상관없어요."(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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