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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여행 가이드들은 왜 파업하나?

한국 대형여행사의 여행단가 '후려치기'가 근본 원인

최하얀 기자  2012.12.07 18: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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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한국 여행객을 대상으로 여행지 안내를 하는 가이드 200여 명이 지난 5일 오전 11시(현지시각)부터 일제히 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은 발리 소재의 한국 여행사(랜드사)들을 상대로 불공정 임금체계를 개선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랜드사란 국내여행사로부터 여행객을 넘겨받아 현지(발리) 여행을 주관하는 한국여행사를 말한다.

파업 중인 가이드들은 '발리 한국어 가이드 협회(HPI)' 소속으로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인도네시아 현지인들이다. 지난 10월부터 발리에 있는 약 35개 랜드사와 현행 임금체계를 놓고 줄다리기를 해왔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 기본료(가이드 피) 인상 △ 콜렉트 팁(Collect Tip) 제도 폐지 △ 마이너스 투어 피(Minus tour fee) 제도 폐지 △ 쇼핑·옵션 프로그램 등에 대한 수수료율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이 중 '콜렉트 팁'과 '마이너스 투어 피'는 국내 대형여행사-현지 랜드사-현지 가이드로 이어지는 불공정 관광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여행객에게 받은 팁이 다시 여행객에게 돌아간다?

우선 '콜렉트 팁'이란, 가이드가 여행객에게 거두어 랜드사로 송금하는 팁을 말한다. 팁은 일반적으로 서비스의 대가로 지급되는 것인 만큼, 원칙적으로는 가이드가 받아야 하는 돈이다.

하지만 일부 랜드사는 가이드가 여행객에게 받은 팁을 모두 거둬들인 후, 이를 여행객들을 위한 지상비(숙박비, 교통비, 관광비 등과 같이 여행 도중 현지에서 나가는 각종 비용)에 사용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 남은 돈 일부만을 추후에 가이드에게 되돌려준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 A씨는 "랜드사들은 보통 국내 여행사에 여행주관을 넘겨받을 때 아예 '콜렉트 팁'을 지상비에 포함하겠다고 전달한다"며 "이렇게 해서 단가를 낮춰야 랜드사들 간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한 여행팀이 일정을 진행하는데 필요한 지상비가 100달러라고 한다면, 랜드사들은 애초에 국내 여행사에 지상비를 70달러에 맞추고 나머지 30달러는 가이드가 팁을 수금해 메꾸겠다고 하며 계약을 성사시킨다는 얘기다. 그리고 랜드사는 가이드들에게 30달러 상당의 팁을 수금해오라고 지시한 후, 이렇게 모인 팁을 가지고 여행일정을 진행한다.

결국, 가이드들은 서비스의 대가로 자신이 받아야 할 팁을 한국 여행객들에게 되돌려주고 있는 꼴이다. 자칫 수금한 팁을 지상비에 쓰고 한 푼도 남지 않으면 '무료노동'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팁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여행객들에게 "팁을 달라"는 부탁 아닌 부탁까지 해야 한다.

패키지 여행에 '쇼핑'이 항상 끼어 있는 이유

'마이너스 투어 피'도 비슷한 제도다. 다만 이 제도와 콜렉트 팁 제도의 차이점은, 국내 여행사가 랜드사에게 보내는 지상비와 랜드사가 실제 여행에서 지출하는 금액 차이를 팁이 아닌 가이드의 쇼핑·옵션 수수료로 메운다는 점이다.

국내 여행사들이 판매하는 패키지 상품에는 보통 일정 마지막에 쇼핑 일정이 포함돼 있다. 또 현지에 도착하고 나면 현지 가이드가 옵션 프로그램(일반적으로 마사지, 공연 등)을 추가로 판매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이드는 여행객이 이 쇼핑에서 물건을 사거나 옵션 프로그램을 수락하면, 호객의 대가로 쇼핑샵이나 옵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업체에서 일정한 수수료를 받는다. 그리고 이를 지상비에 사용하고, 남은 돈을 랜드사와 일정 비율로 나눠 갖는다.

따라서 만약 여행객이 쇼핑 일정에서 아무 물건도 사지 않거나, 옵션 프로그램을 거부하면 랜드사는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되고, 가이드는 추가소득을 얻지 못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 손해 난 부분을 가이드가 자비로 메꾸는 경우도 있다고 알려졌다. A씨는 이같은 마이너스 투어피 제도를 두고 "한마디로 도박"이라고 말했다.

결국, '콜렉트 팁', '마이너스 투어 피' 등과 같은 임금체계 속에서 가이드와 랜드사의 소득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팁을 많이 주는 여행객, 쇼핑을 많이 하는 여행객, 옵션 프로그램을 진행하길 원하는 여행객을 만나면 이들은 많은 돈을 번다. 하지만 팁을 주기를 거부하거나, 쇼핑·옵션 프로그램에 아무런 지출도 하지 않으려는 여행객을 만나면, 손해가 날 수도 있다.

▲ 발리의 한 쇼핑몰 ⓒ연합뉴스

국내 대형여행사들의 단가 '후려치기'가 근본 원인

이에 대해 한 공정무역 업계 관계자 B씨는 "근본적인 원인은 국내 대형여행사들이 조금이라도 더 싼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여행 단가(지상비)를 깎고 또 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국내 여행사들이 여행 단가를 '후려치기'해서 생겨난 결과란 설명이다. 이어 B씨는 여행객들이 좋아하는 '특가' 여행상품은 보통 이렇게 후려치기를 해서 나오는 상품이라고 전했다.

A씨는 "현재와 같은 관광산업 관행 속에서는, 여행객들이 발리에서 아무리 많은 돈을 쓰더라도 그 돈의 80~90%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단가에 맞는 여행비를 적정 수준으로 지불하고, 이에 따라 관광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현지 가이드)과 관광지(발리)에 그 돈이 제대로 흘러들어 가는 게 바람직한 구조라고도 설명했다.

현재로선 발리 가이드 파업은 기약 없이 이어지고 있다. 발리 가이드 S씨는 "당장 오늘이라도 파업이 끝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간혹 나쁜 회사는 우리를 노예처럼 대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한편, 현지 랜드사 관계자 C씨는 "이곳 가이드가 버는 돈은 발리 평균임금보다 높은 수준"이라며 "발리 가이드들이 지나친 요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 법에 따라, 인도네시아에서는 현지인만 가이드를 할 수 있으며, 외국인이 가이드를 하면 추방된다"며 "이런 법 조건에서 가이드들이 파업을 함에 따라, 발리 여행업 전체가 위태로워지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