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 말을 듣지 않는다"…집현전 학생도 '동맹휴학'
"세종이 말을 듣지 않는다"…집현전 학생도 '동맹휴학'
[화제의 책] 이만규의 <다시 읽는 조선 교육사>
"세종이 말을 듣지 않는다"…집현전 학생도 '동맹휴학'
<조선 교육사>의 저자 항일 민족주의 교육자 이만규(1888~1978)는 남한에서 오랫동안 잊혔던 인물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위험인물로 취급받았다. 월북학자였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교육전문가나 교육사학자가 아니라면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조차 드문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울지 모른다. 연배가 높은 이들 가운데는 교육자이자 서예가였던 이철경의 아버지가 이만규라면 '아! 그랬던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작고한 이철경이 중진 가수 서유석의 어머니이니 이만규가 서유석에겐 외할아버지다.

이만규는 일제 강점기에는 중등학교 교단에서 아이를 가르친 교육 실천가이자 교육 행정가였다. 해방 직전과 직후엔 식민교육학에서 벗어나 우리 민족의 교육사 체계를 다시 세운 자주적 교육사학자이자 통일운동가였다. 북한에서는 초·중·등 교육 정책을 집행했던 교육 혁명가였다. 그는 이데올로기나 분단과는 상관없이 그의 삶 전체를 우리 민족의 내일을 위해 헌신한 민족 교육자였다.

그는 일제 말기 민족주의 실력양성운동단체인 흥업구락부 사건과 한글보호운동인 조선어학회 사건에 각각 연루돼 총 2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 기간에 <조선 교육사> 집필 구상을 한다. 출옥하고 나서 2년 7개월간 해직 교사 생활을 하는 동안 책을 완성해 펴냈다. 어떻게 의학도에 지나지 않았던 사람이 이렇게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조선 교육사>라는 책으로 편찬할 수 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만규의 <조선 교육사>는 남북한 교육사학사에서 '원조' 또는 '고전'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 책만큼 한국의 교육 역사를 교육의 역사학적 관점이나 교육 사상의 조명을 통해 잘 보여주는 교육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조선인에 의해 최초로 쓰인 한국 교육사의 기념비적 저술이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다음 해에 새로운 나라의 건국을 위해 교육의 좌표를 제시한 것은 학문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이다. 원시시대부터 1945년까지의 교육사를 망라한 이 책은 그동안 지은이가 월북학자였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재출간되지 못했다. 1980년 말 필자가 익명으로 재출간했지만 곧 절판돼 시중에서는 품절 상태였다.

▲ <다시 읽는 조선 교육사>(이만규 지음, 살림터 펴냄). ⓒ살림터
이처럼 뜻 깊은 책을 필자가 옛 글투인 초판의 상당 부분을 읽기 쉬운 현대어로 고쳐 <다시 읽는 조선 교육사>(살림터 펴냄)로 재탄생했다. 이 책은 우리 교육사를 문화의 한 분야로 보고 시대마다 교육 제도와 사상을 체계적으로 서술한 일종의 '한국교육통사'다.

1988년 이 책을 재출간하면서<조선 교육사>를 재발행할 필요를 느낀 것은 교사가 진정한 교육을 하려면 한국 교육의 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매일의 교육적 삶을 긴 안목으로 바라보는 제대로 된 교육의 역사 공부가 절실하게 요청되던 때였다.

<조선 교육사>가 '계급주의적 시각'으로만 저술한 책이 아니고 '민족주의적 시각'이 물씬 녹아 있음에도 월북한 사람이라는 사실 자체로 인해 접근할 수 없는 '금서'에 속했다. 이러한 위험한(?) 인물이 지은 <조선 교육사>이지만 시대적 엄혹함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재출판의 용기를 내어 현대어로 발간하기로 하였다.

이만규의 교육 사상을 두고 일부에서는 유물론적 교육사관에 편향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고, 이에 반발하여 그의 인맥 교류를 거론하며 민족주의 교육사관을 가진 사람이라고 우회전을 시도하고 있는 학자도 있지만, 필자는 양자의 입장이 동시에 녹아 있다고 본다.

이만규의 민족주의 교육사학은 민족 교육의 현재적 요구에 부응하면서 또 식민주의 교육사관에 반대하는 저항적 민족주의 사관의 정립을 시도하면서, 동시에 교육사의 사회경제사학적 관점에 근거한 민족 교육의 세계사적 발전 과정을 추구함으로써 식민주의 교육사관을 넘어서는 보편적 역사관을 보이고 있다. 기존의 교육사가 왕조사 중심으로 나열식 교육사가 태반인 데 반해 이만규의 <조선 교육사>는 '현재주의적 관점'이 투영되어 기존의 박제된 교육사를 살아 있는 교육사로 바꾸어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이만규는 교육사의 연원을 삼국시대가 아닌 우리 민족이 출현했던 원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세계사의 보편성을 찾아내고, 그 보편성을 통해 민족의 유구성을 증명한다. 그는 이 책에서 통일신라가 당나라에서 유교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 중국 역사를 주로 가르친 것을 '사대주의'라고 혹평한다.

특히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최치원이 지은 <계원필경>을 사대와 아첨에 사상이 절었다고 매도한다. 통일신라를 남조의 교육으로, 고구려의 후신인 발해를 북조의 교육으로 구분하여 조선 교육사의 한 부분으로 통합하고, 통일신라가 당나라 유교를 무조건적으로 유입하면서 자기 나라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고 중국의 역사를 주로 가르친 것은 사대주의에 마취된 결과로서 민족의식을 흐리게 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반면 신라의 화랑도 교육을 세계사에 견줄 만한 우리 민족의 고유한 교육 방식으로 드높이고 있다. 화랑도의 국토 순례가 불교나 예수의 성지 순례와 같으며, 무예·용기·예절·충의·체면·여성 존중을 중세 유럽의 기사도 교육에 비길 수 있다고 호평한다. 이런 호평은 세계사의 보편성에 부합하는 사회경제사관에 토대를 둔 것이다.

송나라의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을 인용하며 조선시대 중기에 '서당 교육'이 시작되었다는 일반론을 뒤집고, 이미 고려 시대에 우리 고유의 교육 형식으로 존재했다고 적시하고 있는 것은 조선 교육의 세계적 보편성을 드러내는 시도이다.

인재 등용 관문인 과거의 교육 사상적 폐해를 신랄하게 꼬집는다. 그려 광종 때부터 조선 고종 때까지 936년간 시행된 과거로 말미암아 지식은 겉치레만 화려할 뿐 천박해지고, 학문은 모리와 투기의 도구로 변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인재 등용도 공평성을 잃었다고 비판한다. 그는 고려, 조선 시대의 교육이 '계급 편파 교육' '지방 편파 교육' '성 편파 교육'이어서 진정한 '국민 교육'이 아니었다고 깎아내린다.

그러나 조선 시대 교육을 마냥 폄훼하는 것만은 아니다. 질의문답식 교수법, 시험 점수와 평소의 근무 태도, 품행·인물 됨됨이를 종합한 성적 평가법, 학생 자치권 같은 스트라이크 행사까지 허용한 사기 배양법 등은 지금의 서양에서도 더 나아가지 못할 만큼 우리 교육사의 문화적 유산으로 자랑할 만하다고 상찬한다.

이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으로 봉건 제도 아래서 유생들에게 정당한 학원의 자유를 보장한 것을 꼽는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옳은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세 가지 스트라이크 수단을 동원할 수 있었다. 권당(捲堂·식당 들어가지 않기), 공재(空齋·기숙사에서 나오기), 공관(空館· 성균관에서 퇴거하기로 일종의 동맹휴학)이 그것이다.

세종 때 집현전 학생들이 "왕이 학생의 말을 듣지 않는다"며 '공관'을 단행했다. 세종이 영의정 황희에게 "집현전 학생들이 나를 버리고 갔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꼬" 하고 물었다. 황희는 자신이 타이르겠다고 나서 학생들의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간청했다. 그때 한 한생이 황희에게 "공은 정승이나 되어 임금의 잘못을 고치지 못하느냐"고 따졌다. 하지만 황희는 전혀 화를 내지 않고 기쁜 얼굴을 대했다고 한다.

교육 사상은 늘 정치사회 사상과 병행한다고 여긴 이만규가 일제 강점기 교육을 '민족 교육 파멸기'로 규정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는 일제의 교육적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학생들의 민족의식의 각성과 계몽 운동을 통해 민족의 얼 형성, 항일 교육, 민족 독립 교육을 목표로 한 '민족주의 교육'에 중심을 두었다. 그는 일제 강점기의 교육을 선진 국민의 자존심을 무시한 교육, 정치적 자주 독립성을 무시한 교육, 조선 교육자의 구차한 교육 태도 등으로 나누어 서술하면서 일제 강점기의 교육사 서술에 있어서는 더욱 선명한 민족주의 교육사관을 보이고 있다.

<조선 교육사>는 민족 교육사라고 할 정도로 자신의 민족 교육론이 곳곳에 깃들어 있다. 그러면서도 일제 강점기의 민족 교육 운동사에서 거의 제외하다시피한 민족주의 좌파 진영의 교육 활동, 즉 신사상연구회, 학생운동, 노동쟁의, 민족운동 등 민족주의 좌파 진영의 교육 활동을 적게나마 복원해놓은 것은 민족사관의 우익 편향성을 시정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리고 친일 교육자에 대한 척결 운동이 해방 직후에도 있었음을 강조함으로써 신교육의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 국가 교육의 기초를 바로 세우려는 민족(국민)국가의 정체성 형성을 엿보게 한다. 조선시대까지 애군(愛君), 애민(愛民)이라는 말은 있었어도 애국(愛國)이라는 말은 없었다고 말하면서 근대 민족국가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민족 교육의 핵심인 애국사상이 일제시대에 발아되기 시작했다"고 본다. 민족과 계급에 기반을 둔 역사인식에 기초해 친일식민사관을 극복하고, 나아가 새로운 조선의 건설을 위한 신교육체제를 구상하였다.

<조선 교육사>는 사회경제사학자들의 역사인식을 받아들이면서도 교육사 서술에서는 독자적인 입장도 견지하려고 했다. 인류 문명사를 중요시하면서도 제도사, 개인 인물사적 열전이나 정신사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소수 특권 지배층의 교육사, 지배 권력의 인재 양성사를 비판하면서 한국 민중의 생활사도 중요히 다루었다. 한마디로 이만규의 교육사관은 한국교육사에 '현재성'과 '세계성'을 동시에 불어넣었다고 할 수 있다.

이만규의 교육사관은 교육을 독립적으로 보지 않고 정치·사회 사상과 접목시키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새로운 교육 사상을 창출하고자 했다. 교육 사상은 정치·경제·문화에 대한 과학적·철학적인 현 단계의 이론과 현실에 상응하여 병행 발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만규는 모든 역사적 사실은 교육의 배경을 형성하며, 교육사는 배우는 사람에게 넓은 경험을 쌓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며 교육사의 학습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이만규의 교육사관은 문화사학, 민족사학, 사회경제사학이라는 3차원성이 어우러졌다. 인간의 교육 행위에 대한 문명사적 이해(문화사학), 잃어버린 민족교육사를 복원하려는 강한 민족주의적 노력(민족사학), 교육의 물질적 토대를 규명하려는 사회경제사적 해석(사회경제사학)을 종합적으로 시도한다.

이만규의 교육사관은 통일신라가 당나라의 문화 정책으로 점점 자기 고유의 문화를 더욱 향상 시킬 정신을 잃었고 그래서 그 수명이 짧았다며 우리 민족의 주체성, 창작성 내지는 우수성을 강조하였다. 일제의 정치적·문화적 침투 과정에서 크게 대두된 신채호의 '민족사학' 또는 '민족주의 사학'에 가장 큰 기둥을 두고 있다.

민족사관은 봉건적 유교사관을 지양하고, 근대 역사학의 성립과 발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일제시대에 형성되기 시작한 민족사관은 일제시대의 정치적 현실에 대한 저항과 일제의 왜곡된 식민사관을 극복하려는 데서 탄생한 것이다. 단재 신채호를 위시하여 박은식, 장지연 등 일련의 역사학자에 의해 발전되었다.

동시에 이만규는 교육사 서술에 있어 민족사학이 범하기 쉬운 지나친 주관주의적 역사 해석, 세계사와의 관련성 부족, 경제사 등 관련 학문의 연계 부족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민족 내부에 관심을 보인 백남운의 '유물사관적 사회경제사학'의 관점을 접목하려고 노력하였다.

전반적으로<조선 교육사>는 종래 친일 학자들이 파놓은 '정체론'의 함정을 뛰어넘어 조선의 독특한 '내재적 발전 법칙'이라고 보이는 중요한 단서를 찾아 '문화사학', '민족주의 사학', '사회경제사학'이라는 3차원성이 어우러진 이만규의 교육사학관이 책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

요즘 입장에서 보면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우선 '교육사 시대 구분론'에 대한 서술이 없다. 조선 시대이 이전의 교육, 조선 시대의 교육, 조선 시대 말 27년간의 교육, 일제 강점기 36년간의 교육으로만 나누고 있는 것은 민족주의 사학이나 사회경제사학의 관점에 의한 시대 구분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사상가를 언급하면서 신라의 원효, 실학의 정약용과 홍대용, 일제시대 구국교육운동을 벌인 안창호의 흥사단 운동, 조소앙의 삼균주의 등을 소개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

그럼에도 작고한 남한 교육사학자 영남대 정순목 교수는 이만규의 <조선 교육사>를 두고 한국 교육사에서 이를 능가할 만한 저서가 나오지 않았다며 '교육사의 압권'이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국내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한국 교육사 개설서에는 <조선 교육사>를 인용하지 않는 것이 아예 없을 정도이다. 1946년 초판본이 출간된 이후 60여 년 전에 나온 책을 다시 펴낸 것도 이 때문이다.

교실의 감옥에 갇혀 원대한 교육 이상을 실천하지 못한 교사, 하루 종일 수업을 열심히 하였으나 그것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교육인지 궁극목적을 깨닫지 못해 방향을 잃어버린 교사, 정권의 변화에 따라 요동치고 있는 교육 정책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강하게 가진 교육 운동가, 교과목의 단편적 지식을 가르치는 데 머물지 않고 교육을 긴 안목에서 통섭적으로 성찰하고자 하는 교사라면 한번 쯤 읽어보아야 할 교육사의 고전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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