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원의 한복 문화 산책.5] 조선 후기 외출복은 어땠을까?
[윤지원의 한복 문화 산책.5] 조선 후기 외출복은 어땠을까?
드라마 '짝패'로 본 조선시대 복식 - 김진사 한복 편
[윤지원의 한복 문화 산책.5] 조선 후기 외출복은 어땠을까?
드라마 '짝패'로 본 조선시대 복식 -김진사 한복 편조선의 복식(服飾)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적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인해 사회, 정지, 문화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조선 후기로 넘어간다. 그 시기 사회적으로는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부(富)의 분배 구조에 변화가 생기고, 정치적으로는 붕당 정치가 시작된다.

▲ ⓒ한복나라 남가람 제공

복식착용은 사회 분위기에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조선 후기 복식은 다양한 변화를 나타낸다. 더불어 1897년에는 예복 및 의복의 간소화가 시행되면서 남자의 다양한 포(袍)도 흑색 두루마기 하나로 간소화 되는 등 큰 변화를 가져온다.

드라마 '짝패'를 보면 조선 후기 외출복이 보인다. MBC 드라마 '짝패'의 김진사(최종환 분)는 조선 후기의 세도가 양반으로 극 중에서 주로 도포와 답호를 착용한다. 도포와 답호는 조선 시대 양반들이 외출할 때 입었던 옷이다.

▲ ⓒ한복나라 남가람 제공

도포는 조선 남자들이 착용했던 포(袍;외투)의 하나로, 뒷자락에 '전삼'이라 하는 자락이 하나 더 있다. 원래 도포는 양반들에게 국한됐던 옷이지만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서민들에게도 제사 때에 한해 착용이 허용됐다.

▲ ⓒ한복나라 남가람 제공
드라마 '짝패'의 김진사 '도포' 역시 고증에 의해 조선 후기 복식과 같은 형태를 보인다. 하지만 방송용이기에 약간 수정된 모습으로 제작됐다. 깃여밈이 조금 더 깊고, 고름은 조금 짧고 좁게 했다. 또한 방송용 의상은 계급이 높고 더 부유해 보이도록 소매 넓이와 길이가 더 길다. 예를 들어 보통은 도포가 바닥에서 25㎝ 떨어진 지점까지 오게 되지만, 김진사와 귀동의 도포는 15㎝ 떨어진 지점까지, 즉 10㎝ 길다. 무의 넓이도 5㎝ 더 넓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옷감의 양도 만만치 않게 더 들어간다.

다음으로, 답호를 살펴보자. 답호는 고려 말 원으로부터 수입된 반소매 옷이 한국화된 것을 말한다.

양옆에 크게 무가 달려 있던 반소매 옷 답호가 조선후기에 들어 차츰 간소화되며 깃이 달리지 않은 '전복'도 등장하게 된다. 답호와 전복 모두 외투인 포(袍) 위에 덧입는 소매가 없거나 짧은 옷으로, 깃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답호와 전복으로 구분된다. 드라마 '짝패'의 김진사 답호는 깃이 달린 것과 달리지 않은 것 두 가지 디자인 모두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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