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급 넘쳐나는 쇠고기, 이제 '기름기' 아니라 '취향'으로
1등급 넘쳐나는 쇠고기, 이제 '기름기' 아니라 '취향'으로
[쇠고기, 너 고향이 어디니?④] 이력제, 유기 축산의 새로운 미래
2011.07.24 18:13:00
2008년 광화문에서 타올랐던 촛불. 국민이 먹을거리의 안전성에 대해 얼마나 민감한지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후 정부는 식품 안전에 대한 갖가지 대책을 내놓았다. 원산지 표시제를 확대·강화하고, 국내산 쇠고기의 이력제는 물론 지난 겨울에는 수입쇠고기도 '유통이력관리시스템'을 도입해 운영 중이다. 이제 어지간한 먹을거리는 '출신 성분'을 파악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다만 정부가 이렇게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식품 안전 시스템을 갖추더라도, 생산자와 소비자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제도에는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에 프레시안은 총 5회에 걸쳐, 원산지 표시제, 수입쇠고기 유통이력제, 국내산 쇠고기 이력제 등의 시행 상황을 점검하고 개선점을 짚어본다.<편집자>

[쇠고기, 너 고향이 어디니?]
"20년간 먹던 고깃집 고기 맛이 변했어. 조사해봐"
후쿠시마 세슘 쇠고기가 국내에 수입됐다면?
日 세슘 쇠고기 사태, '이력제' 없었다면…

새로운 바람, '그래스 페드'

Cows were designed to graze on grass.(소는 원래 풀을 뜯어 먹게 설계됐다.)

30대의 강사 박정훈 씨. 그는 미국 유학시절 채식주의자인 친구를 따라 뉴욕의 한 수제 햄버거 식당에 갔다가 벽에 적혀 있는 위의 문구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www.brgr.com

식당 벽에는 이 문구 말고도 '들판에서 풀을 뜯어 먹는 소가 더 안전하고 건강하다', '우리에 가둬 곡물을 먹여 키우는 소보다 지방은 더 적고, 오메가3는 참치만큼 많으며, 키우는 과정에서 화석연료는 절반이 든다' 등의 캠페인성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 AGA와 AWA의 인증 마크.
친구는 콩으로 만든 '베지 버거'를 먹었고, 박 씨는 '방목돼 풀을 먹여 키운 소'로 만든 치즈 버거를 먹었다. 별로 맛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윤리적으로 키운 소라는 생각에 마음은 더 편했다. 미국에서도 이와 같은 목초 사육 쇠고기가 점점 인기를 끌고 있다. 그는 이후 가끔 쇠고기를 구입하거나 식당에 가서 먹게 될 때는 미국목초사육협회(AGA: American Grassfed Association)나 동물복지인증협회(AWA: Animal Welfare Approved)에서 인증한 농장의 쇠고기나 식당을 찾아 다녔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박 씨는 국내에서도 이와 같은 쇠고기를 찾아보려 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국내산 쇠고기는 '1++', '1+'과 같은 육질 등급만 표시돼 있을 뿐 '어떻게 사육했는지'에 대한 아무런 정보를 알 수 없었다. 국내에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이 됐지만, AGA나 AWA의 인증을 받은 쇠고기는 찾을 수 없었다.

'그래스 페드', '그래인 페드', 온실가스 논란

최근 현대자동차가 가솔린 엔진과 전기 모터 두 가지 방식으로 구동하는 소나타 하이브리드 모델을 내놓으면서 전파를 탄 TV 광고가 낙농업계의 반발을 샀다. 광고에서는 자동차의 친환경성을 강조하기 위해 소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다고 홍보했다. 이에 대해 낙농업계는 소가 하루 동안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자동차가 1km를 주행할 때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등가 비교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항의했다.

현대차 측은 광고를 중단했는데, 이 광고의 배경에는 소의 이산화탄소·메탄 등 '온실가스' 배출 논란이 있다. 소의 대규모 사육이 이뤄지는 미국 등지에서는 이미 오래된 논란이다.

▲ 논란이 된 현대자동차의 소나타 하이브리드 광고의 한 장면.

지난해 초 호주의 한 기관이 "목초로 사육된 소가 온실가스를 더 많이 배출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풀을 뜯어 먹는 소의 경우 되새김질 등을 통해 풀이 발효되는 과정이 더 길기 때문에 곡물을 먹는 소보다 더 많은 메탄을 배출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목초 사육(Grass Fed)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단순 비교의 오류"라고 반박했다. 일반적으로 소에게 먹일 사료를 만들기 위해 옥수수, 콩을 재배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화석연료가 압도적으로 많을 뿐만 아니라, 소의 방목을 위해 필요한 면적보다 옥수수와 콩을 재배하기 위한 면적이 넓어 곡물 사육(Grain Fed)이 더 많은 산림을 훼손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소의 환경오염 논란은 '쇠고기 소비를 줄이자'는 운동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환경운동가 그래햄 힐(Graham Hill)은 '주중 채식주의자'다. 공장식 축사에서 1000만 마리의 소가 잔혹하게 키워지고 있고, 이 소들이 배출하는 오염물질은 자동차, 비행기, 배 등 모든 교통수단이 내는 오염물질의 3배이며, 이들을 먹이기 위해 키우는 곡물에 드는 물의 양도 엄청나다.

그는 TED 강연에서 "우리는 50년대보다 2배 많은 고기를 먹고 있다"며 "주중에는 채식을 하고 주말에 마음대로 고기를 먹어도 고기 섭취의 70%를 줄일 수 있고, 그러면 오염을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동물들한테 마음이 편해지며 살이 빠지고 건강에 좋다"고 강조한다.

상대적으로 고기 섭취가 많지 않은 우리나라와 사정이 다르지만, 미국에서는 '레드 미트'(red meats), '그린 미트'(green meats) 논쟁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더 적게 더 양질의 고기를 먹자"는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1등급이 태반인 국내 쇠고기

국내에서도 쇠고기 등급 체계에 대한 불만이 생겨나고 있다. 현재 쇠고기 등급은 1++, 1+, 1, 2, 3등급의 5단계로 표시된다. 도축 과정에서 '마블링'이라 불리는 근내지방도를 기준으로 육색, 지방색, 조직감, 성숙도에 따라 매긴다. 보통 마블링이 대리석 무늬로 촘촘하게 퍼져 있을 경우 더 좋은 등급을 받는다.

그러나 '중간' 등급도 '1등급'이라고 표시돼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주는 점, 부위별 용도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체계, 사육 방식에 대한 정보가 전혀 포함되지 않은 점 등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면서 등급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호주, 뉴질랜드는 소의 연령, 거세 여부 등 성별, 사육 방식 등으로 등급을 나눈다. 뉴질랜드의 경우 '셀렉티드 영 비프'(SYB)는 성장촉진제를 사용하지 않고 목초로 키운 영구치 4개 이하의 소를 뜻한다. 등급만 봐도 어떻게 사육됐는지 대충 알 수 있는 것이다.

▲ 수입 호주 쇠고기 포장 박스. 제품 정보 라벨 아래 'GRAIN FED'라고 표시돼 있다. 이 제품은 곡물로 비육된 쇠고기다. 국내에는 '목초 방목한 소는 질기다'는 인식이 퍼져 있어, 호주에서 곡물 비육 소가 많이 수입된다. ⓒ프레시안

국내에서도 얼마 전 SBS TV에서 방영된 <옥수수의 습격>에서 옥수수 등 곡물사료로만 키운 쇠고기가 포화지방산이 높고, 콜레스테롤을 유발한다는 내용이 방영되면서 소비자들의 '목초 사육'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마블링이 많다는 것은 '비만 소'라는 것인데, 사람처럼 좋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기름기로 줄 세우기 보다는 다양성 존중을

경기도에서 축산업을 하는 이동훈 씨도 <옥수수의 습격>을 보고 축산 방식에 대한 고민이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올해 초 구제역 파동으로 소들을 모두 차가운 땅에 묻은 뒤 새로 입식하지 않고 축산 방식 자체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미국이나 호주, 뉴질랜드처럼 방목해서 풀을 뜯어 먹게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땅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 대안은 유기농 사료를 먹여 유기농 인증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비싼 사료 값을 감안했을 때 경제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유기 축산을 한다는 경남 산청에 견학도 가보고 조사를 해본 결과 '지역 순환형 농업'이 해답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쌀과 콩 등을 유기농으로 재배하고 그 부산물을 소에게 먹이고, 소의 축분 등은 퇴비로 다시 유기농 재배에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혼자 할 수는 없는 일. 그는 요즘 지역 주민들과 인근 축산 농가를 열심히 설득하는 중이다. 일단은 사육 두수를 줄이고 축사부터 해섭(HACCP) 인증을 받기 위해 개량 중이다.

들어는 봤나, 유기농 쇠고기?-쇠고기 이력제와 유기농이 결합하면

'그래스 페드' 쇠고기를 찾던 박정훈 씨는 최근 대안을 마련했다. 생협의 유기농 한우다.

보통 채소와 쌀 등은 유기농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지만, '유기 축산'에 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생활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유기 축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한살림'은 충남 아산 지역의 유기한우 생산자 조직을 기반으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유기 축산' 인증을 받은 쇠고기를 판매하고 있다. 축산 선진국들에 비할 바 아니지만 소들이 자유롭게 클 수 있도록 마리 당 10㎡(3평) 정도의 공간을 제공하고 환기, 채광, 바닥 등도 쾌적하게 유지한다. 특히 유기 볏짚과 함께 전체 사료를 유기사료로 공급하는데, 사료는 '지역순환축산' 방식에 의해 인근에서 생산된 유기 콩비지 등 유기농 작물을 이용한다. 또한 유전자조작(GMO) 사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항생제, 성장호르몬, 비육촉진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동물복지를 위해 거세와 뿔 자르기도 하지 않는다. 어떤 유기 축산 지역에서는 수소가 많이 태어나게 되면 수소들이 하도 싸워 동네에서 민원이 들어올 정도라고 한다.

▲ 국립축산과학원의 한우들. ⓒ뉴시스

'유기 축산'은 '친환경농업육성법'에 따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인증을 받아야 한다. 제품 품질 향상을 위해 물리적 거세 등은 허용하고 있지만, 최근 유기 사료의 비율을 85%에서 100%로 상향하는 등 인증 기준을 엄격하게 하고 있다.

유기 축산이 아닌 경우 사료는 수입에 의존하는 형편인데, 거대 곡물 자본에 의해 생산되는 사료는 종자 단계에서 유전자 조작, 발아촉진물질, 항균물질이 포함되고, 재배 단계에서는 화학비료, 농약, 살충제, 제초제가 뿌려지며, 저장 단계에서도 항균제, 화학적 항산화제, 흡후제, 흡착제, 훈연제, 항진균제 등이 사용된다. 가공 단계에서는 발색제, 향취제, 기계오일, 인공향미제, 분해제, 유기용매, 유화제 등 수많은 화학물질이 들어간다. 이 물질들이 사료를 통해 소에 축적되면 결국 인간에 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에 유기 사료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공장식 축산 과정에서 사용되는 행생제, 성장 호르몬, 대사 조절 물질 등도 경계 대상이다.

유기 축산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도 호의적인 편이다. 단국대 김호 교수가 석사과정 장기영 씨와 함께 2008년 12월 한국유기농업학회지(제16권 4호)에 발표한 '유기 한우쇠고기에 대한 구매의향과 지불의사금액 추정' 논문에 따르면 유기 쇠고기를 구매할 의향이 있다는 비율이 20대가 66.7%, 30대가 52.0%로 40대(42.3%), 50대(45.9%), 60대(12.5%) 보다 더 높았다. 젊은 세대가 유기 농축산물에 대한 관심이 더 높은 점을 감안하면 유기 쇠고기에 대한 수요가 더 확대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이에 국내에서도 유기 축산 단지가 확산되고 있다. 충남 홍성·아산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준비해와 안정적인 생산과 공급체계를 갖췄고, 최근에는 경남 산청의 유기 축산 단지도 벤치마킹 사례로 주목을 받고 있다. 산청 지역 유기 한우는 일반 한우보다 70% 높은 가격에 판매돼 고부가가치 사례로도 꼽힌다. 가끔 "잘 키운 유기 소 한 마리, 일반 소 열 마리 안 부럽다"는 식의 '소값 대박' 기사도 나온다. 강원대와 교육 협력 체계를 갖춘 강원도 삼척시는 유기 축산·생태체험공원을 조성해 한우는 물론, 돼지, 양계의 유기 축산 모델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 곳을 공원화해 관광은 물론 저변 확대에도 기여한다는 계획이다. 이밖에 전남 순천에서는 대규모 유기 초지가 조성됐고, 축산 농가들이 조합을 맺어 독자적으로 유기 축산을 실시하는 작목반이 늘어나는 등 유기 축산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통계에 따르면 2008년 유기 축산 인증을 받은 쇠고기가 4톤에 불과했으나, 2009년에는 423톤으로 껑충 뛰었다. 2010년에도 440톤을 기록하는 등 꾸준한 생산을 유지하고 있다. 유기 축산의 한 단계 아래인 '무항생제 축산' 쇠고기도 2007년 480톤에서 2010년 2만1334톤으로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와 같은 유기 축산이 생협이나 생산자 직거래 방식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기 축산의 경우 생산자와 소비자의 신뢰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생협에서는 주기적으로 생산지 견학·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쇠고기 이력제와 유기 인증 시스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쇠고기 등급제에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생협 관계자는 "유기 축산물 인증번호에는 생산자 정보와 인증일자, 인증기간 등이 나오지만, 사육 과정에 대한 노력에 비해 표시 정보의 양이 적고, 인증 번호에 대한 인식도 높은 편이 아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그나마 유기 쇠고기의 경우 이력제가 실시 중이어서 개체식별번호가 함께 붙어서 나가기 때문에 생산자, 생산일자 정보를 정확하게 알 수 있어 보완 작용을 한다"며 "다만 쇠고기 이력제에 단순 육질 등급 뿐만 아니라, 사육 과정에 대한 정보가 포함되면 소비자들이 더 신뢰할 수 있고, 생협을 통하지 않더라도 유기 축산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더욱 확산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richkhy@pressian.com 다른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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