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장 볼 마음으로 이 악물고 만화 그렸죠"
"끝장 볼 마음으로 이 악물고 만화 그렸죠"
또 다른 용산참사 이야기 <떠날 수 없는 사람들> 북 콘서트
2012.01.19 08:41:00
"끝장 볼 마음으로 이 악물고 만화 그렸죠"
용산참사는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쫓겨나는 이가 존재하는 한 '용산참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이런 현실에 눈을 감는다. 용산참사 3주기에 맞춰 만화집 <떠날 수 없는 사람들>(보리출판사)이 출간된 이유기도 하다.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2009년 용산참사 이후 만들어진 <내가 살던 용산>(보리출판사)의 속편 격이다. 전편이 용산 유가족을 다뤘다면 속편은 또 다른 '용산참사'를 겪고 있는 철거민 이야기를 다뤘다.

고양시 덕이동(<그 길옆에>, 심흥아)을 비롯해 경기도 부천시 중3동(<중3동 여자들>, 이경석), 성남시 단대동(<갈 곳이 없다>, 김홍모), 서울시 용산구 신계동(<니 편한세상>, 유승하), 동작구 상도4동(<꿈결 같은>, 김성희) 등 총 6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재개발'이란 이름하에 강제 철거는 계속되고 있다. 물론 '대책 없이 내쫓지 마라'는 저항의 목소리도 그치지 않고 있다. 이 책은 현재의 철거민이 처한 상황은 용산참사 때 망루에 오른 이들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주최로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북 콘서트에 참석한 김홍모 작가는 "용산참사가 끝나고도 끝나지 않는 철거민 문제를 보고 끝장을 보자는 마음으로 작업했다"고 집필 배경을 설명했다.
▲ 북콘서트에 참석한 실제 만화 주인공들. ⓒ프레시안(허환주)

"이를 악물고 작업을 했다"

다른 작가들도 비슷한 이유로 동참했다. <내가 살던 용산>에서 '레아호프, 그들이 만든 희망'을 그린 김성희 씨는 작업하는 내내 너무 괴롭고 힘들었다고 했다.

"내가 만화를 그린 상도4동의 천주석 씨의 경우 용산참사로 아직 복역 중이다. 구속되지 않아야 할 사람이 구속됐다. 그분의 집은 이미 철거됐다. 용산참사 이후 변화된 걸 찾았으나 좋아진 건 없고 나빠진 것만 보였다. 이런 분들 이야기를 하려니 너무 화가 났다. 이를 악물고 작업했다."

물론 이번 작품에 참여한 작가 모두가 김홍모 씨처럼 처음부터 '독한' 마음으로 작업을 시작한 건 아니다. 심흥아 씨는 "함께 하자"는 김홍모 씨의 제안을 바쁘다며 거절했다. 무거운 주제로 만화를 그려 본 적이 없었기에 부담감이 컸다.

심 씨는 "사회 문제에 소극적인 사람이었다"며 "TV에 나오는 뉴스를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심 씨는 "그런 내가 이번 작품을 함께 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며 "내가 이런 나라에서 살고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고백했다.

유승하 씨도 마찬가지였다. 유 씨는 "제안을 받았을 때 너무 부담스러웠다"고 밝혔다. 유 씨는 심 씨와는 좀 다른 이유였다. 철거민이라고 하면, 너무 고집스럽고 독불장군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다가가기 어렵다는 편견이 있었다.

유 씨는 "제안을 받아들인 이후로도 철거민에게 연락하기가 두려워 한참을 자료만 찾았다"며 "하지만 어렵게 한 발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들의 너무나 안 좋은 상황이 보였다"고 설명했다.

유 씨는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는 등 간단한 일상조차도 그들에겐 어려운 일이었다"며 "그들의 상황을 알게 된 후엔 너무도 미안하고 죄송했다. 그들의 상처를 감싸주고 다독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화장했다"

고양시 덕양동 철거민 김명자 씨는 그런 유 씨의 말을 듣고는 "하도 전국철거민연합이 이상하다고들 해서 잘 보이기 위해 오랜만에 화장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김 씨의 상황은 그렇게 웃을 수만은 없었다. 김 씨는 "지난 5년 동안 재개발에 맞서 싸우며 가정까지 파괴됐다"며 "개발이라는 이름 속에서는 어디에도 보호받지 못한다는 걸 지난 5년간 몸으로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 씨는 "아무리 말을 해도 통하지 않았다"며 "보이지 않는 유리관 속에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날 북 콘서트에 참석한 <떠날 수 없는 사람들> 실제 주인공들도 김 씨의 이야기에 동의했다. 동작구 상도4동 철거민 김 모 씨는 "집을 철거를 당하기 전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주부였다"며 "하지만 철거를 당한 이후부터 모든 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김 씨는 용산참사에서 망루 투쟁을 한 천주선 씨 부인이다. 현재 4년형을 받고 대구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김 씨는 "늘 용역들의 폭력에 시달려야 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며 "스스로를 보호하는 건 스스로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강실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공동대표는 "3년 전 참사를 통해 많은 변화가 있어야 했지만, 또다시 제2, 제3의 용산을 써야 하는 작가들을 보니 현실이란 게 참 서글프다"고 말했다. 이강실 대표는 "지금도 어디에서는 철거민들이 싸우고 있을 것"이라며 "이런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당부했다.
kakiru@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