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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경이로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알림]선불교학교 2012년 봄학기 참가 안내

프레시안 알림 2012.01.26 17:42:00

선불교에서 삶은 늘 경이롭습니다. 삶의 경이로움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선불교(禪佛敎)의 경이로운 세상을 열어간 사람들의 족적을 살펴보려는 선불교학교(교장 박재현)가 2012년 봄학기 강의를 마련합니다.

박재현 교장선생님은 불교철학자이며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입니다. 경북 상주(尙州)에서 태어나 같은 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습니다. 경희대학교 상경계열에 다니면서 철학을 엿보다가,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불교철학을 연구하여 석·박사를 모두 마쳤습니다. 저서에는 <무(無)를 향해 기어가는 달팽이>와 <깨달음의 신화> <한국 근대불교의 타자들>이 있고 박사학위 논문은 <한국불교의 간화선 전통과 정통성 형성에 관한 연구>입니다.

박재현 교장선생님은 <선불교학교를 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교는 삶이란 끝내 고단할 수밖에 없다는 마음의 준비를 한 사람들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고통의 바다[苦海]와 부질없음[無常]은 불교의 영원한 공간적 배경이요 시간적 배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선불교(仙佛敎)는 좀 다릅니다. 선불교에서 삶은 늘 경이롭습니다. 새벽닭 우는 소리도 경이롭고, 장작 패는 소리도 그렇고, 세수하다 코 만지는 것조차도 그러합니다. 이런 경이로움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8세경부터 선(禪)은 중국불교의 전면에 나섰습니다. 선은 민감하기 그지없는 깨달음의 문제를 전격적으로 제기했습니다. 선과 전통 불교의 관계는 쉽게 단정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선불교도 어차피 불교 아니겠냐는 식의 얘기는 무의미합니다. 선은 좀 다른 길을 모색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인도를 향해 떠나지 않았고, 붓다의 음성을 궁금해 하지도 않았습니다.

선은 파렴치한 세상을 두고 보거나 박차고 나갈 수도 없는 자들이 모색한 아득한 길입니다. 경전과 형이상학으로 세상을 해석하려는 이들에게 세상은 어쨌거나 일목요연하겠지만, 세상의 속살을 그냥 봐 넘기지 못한 선사(禪師)들에게 그것은 늘 낯설고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습을 담아내는 선의 언어는 무미지담(無味之談), 아무 맛도 없는 말, 의미가 종잡히지 않는 말로 나타납니다. 선의 언어는 의미가 없거나 의미를 거부한 말입니다. 선은 말과 의미가 구축한 모든 체계를 깡그리 무너뜨리면서 새로운 의미를 구축해나갔는데, 그것이 바로 공안(公案)과 화두(話頭)를 통해 열린 경이로운 세상의 모습입니다.

선불교학교에서는 이 경이로운 세상을 열어간 사람들의 족적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선이 사실의 세계를 보여주는지 마술의 세계를 보여주는지, 저는 아직 결론 내릴 수 없습니다. 만일 사실이라면 더욱 무서운 일입니다. 문제의 본질이 결국 <나> 자신에게로 되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나>는 진실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요.
▲ 삶의 경이로움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선불교학교


선불교란 무엇일까요? 교장선생님의 설명을 들어봅니다.

동아시아인들이 인도에서 불경을 들여와 한역(漢譯)하고 읽기 시작한 시기는 2세기 중반경입니다. 이 무렵부터 시작해서 <서유기(西遊記)>의 주인공인 현장(玄奘, 602? ~ 664)법사가 활약했던 600년대 중반까지 무려 400여 년 동안이나, 불법(佛法)을 번역하고 이해하고 흡수하는 일에 중국 역사상 최고의 지적 엘리트들이 총동원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불법을 배우고 불경을 구하기 위해 인도로 향했고, 대부분이 길에서 숨졌습니다. <왕오천축국전>의 저자 혜초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불경의 한역 작업이 일단락되던 시점을 전후해서 동아시아의 불교도들은 불경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소화해낼 수 있었습니다. 교학(敎學)불교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교학불교의 대가들은 체계 없이 유입된 불경을 철학적으로 분석하고 체계화하는 일에 돌입했습니다. 이른바 교상판석(敎相判釋)입니다. 이는 불경에 내포된 철학적 의미를 통찰하고 사상적으로 체계화 해내는 고난도의 작업이었습니다. 이 시대를 이끈 선두주자가 신라의 원효(元曉, 617-686)였습니다.

선이 등장한 시기는 당나라 시대로 교학불교 시대와 중첩됩니다. 교학불교 시대와는 달리, 선종에서 종교적 정통성에 집요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경전과 같은 실물적 근거를 부정했기 때문입니다. 실물적 근거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心]>의 문제를 파고들었습니다. 이런 집요함은 폐쇄적이고 배타적으로 나타나 선교(禪敎)논쟁은 물론이고 선종 내부에서조차도 오가칠종(五家七宗)이라는 분열양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선이 이론적으로 본격화된 때는 중국에서는 송대(宋代), 한반도에서는 고려 중엽부터였습니다. 송대의 대혜선사(大慧禪師) 종고(宗杲, 1089-1163)는 화두(話頭)를 사용하여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간화선(看話禪)을 통해 수행자의 능동적 자세와 적극적인 현실참여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선의 정통성을 확보하려고 했습니다. 이후 불교의 주류가 된 간화선은 현재까지 동아시아, 특히 한국불교의 정체성으로 자리잡았습니다.

2012년 봄학기 강의는 5, 6월 금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총 8강으로 열립니다.

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강[5월4일] 선불교에서 보는 마음의 구조와 원리
인도불교와 선불교에서 파악하는 마음의 구조와 원리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는 인도와 동아시아라는 지역적 조건과 불교이론의 변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대 심신치유 이론과 관련하여 선불교에서 보는 마음의 구조와 원리를 살펴본다.

제2강[5월11일] 중국적 사유의 특징과 선불교
유학(儒學)사상과 도가(道家)사상은 중국 사유구조의 양대 축이다. 이러한 사유구조는 동아시아 전체의 사고방식을 구조화 하고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틀로 작용했다. 유학과 도가 사상 가운데 불교와 밀접한 관련한 보이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제3강[5월18일] 선불교와 선어록(禪語錄)
중국 당대(唐代)에 등장한 선불교는 불교사에서 독특한 경향과 특징을 보여준다. 선불교의 등장 배경을 살펴보고 선어록 가운데 중국적인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방거사어록>(龐居士語錄)을 통해 선어록의 원형을 살펴본다.

제4강[5월25일] 송대(宋代) 주자학과 간화선
선불교는 동아시아라는 지역에서 배태된 사상 전통을 간과하고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특히 간화선의 경우는 송대를 전후한 중국 지성사에 대한 포괄적 이해를 통해 온전히 파악할 수 있다.

제5강[6월1일] 선불교 어록 읽기 : '벽암록'과 '무문관'
여러 선불교 문헌 가운데 첫 번째로 꼽는 책이 종문제일서(宗門第一書)로 불리는 <벽암록>(碧巖錄)이다. 1700공안 가운데 100개를 엄선하여 편찬하였다. <무문관>(無門關)은 <벽암록>과 함께 선불교를 대표하는 또 한 권의 책이다. 첫 번째로 실려 있는 공안이 바로,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무(無)"라고 대답한 것이다.

제6강[6월8일] 선 수행의 기본 원리와 실습
간화선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수행전통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간화선의 원리와 구조에 대해서는 많은 알려져 있지 않다. 화두와 선문답에 대한 이해해보고 간화선을 통해 실제로 어떻게 마음 수행을 도모할 수 있는지 살펴본다.

제7강[6월15일] 본능과 마음의 경계 : 현재 심신치유와 선 수행
현대 서구의 불교에 대한 가장 큰 관심사는 심신치유와 관련된 주제이다. 선 혹은 명상 수행을 통해 심리적 병리상태를 개선 내지는 치유하려는 시도는 이미 보편화 되어 있다. 선 수행의 심신 치유적 가능성과 효과를 살펴보고, 치유와 수행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제8강[6월22일] 한국 선불교 : 만해선을 통해 본 이상적 인간과 삶
만해 한용운은 한국불교에서 잊힌 선사(禪師)다. 그는 항일독립투사나 시인의 이미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철저한 선사의 삶을 살았다. 선과 관련된 훌륭한 글도 많이 남겼다. 한국불교에서 잊힌 선사, 만해의 목소리를 다시 들어본다.

강의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인문학습원 강남강의실에서 열리며 자세한 문의와 참가신청은 인문학습원 홈페이지 www.huschool.com 전화 050-5609-5609 이메일 master@huschool.com을 이용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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