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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소풍...거문도·백도 수국(水國)기행"

[알림]9월의 두발로학교 <거문도 비경능선 트레킹&백도 선상유람>

프레시안 알림 2012.04.02 11:10:00

두발로학교(교장 전형일, 전 언론인)의 9월 걷기는 <거문도·백도 수국(水國)기행>입니다. 제19강으로, 9월 22(토)~23(일)일 1박2일, 살랑살랑 가을바람 쐬며 남해의 거문도 비경능선을 트레킹하고 백도를 선상유람합니다.(6월 30(토)∼7월 1(일)일 예정이던 답사는 기상악화로 9월 22(토)~23(일)일로 연기됐습니다)

숲속을 나와
다시 숲속으로
나는 천국에서 걷는 걸음을 모르지만
이런 길은 이렇게 걸을 거다
가다가 하늘을 보고
가다가 바다를 보고
가다가 꽃을 보고
가다가 새를 보고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머리로 고민하지 않아도
웬일로 나를
나무가
꽃이
새가
혹은 벌레가
아직 살아있는 나를
행복의 길로 몰고 가는지 모르겠다
너무 행복해서 죄스럽다
까닭없이 내게만 편중된 행복
남들이 시기하겠다
사람들에게 매 맞겠다
사랑도 속박이니
지나친 행복도 구속이니
다시 슬프고 외롭게 해다오

(이생진의 <거문도 등대로 가는 길1>)

거문도 걷는 길은 시인의 표현처럼 <너무 행복해서 죄스러운> 길입니다. 거문도 능선길은 동백숲 터널과 기암절벽의 해안 능선을 잇는 아름다운 길이며, 백도는 우리나라 최고의 절경으로 꼽히는 섬입니다.


▲ 여름바다를 가르며...거문도 가는 길은 한없이 부드럽다.Ⓒ두발로학교

거문도는 전남 여수시 삼산면에 속하는 섬으로, 여수와 제주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다도해의 최남단 섬입니다. 서도·동도·고도의 세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삼도·삼산도·거마도 등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청나라 제독 정여창이 거문도에 자주 상륙하여 섬 주민들과 필담했는데, 섬에 학문이 뛰어난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문장가들이 많다는 뜻인 '거문(巨文)'으로 개칭하도록 건의하여 거문도가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거문도는 여수항과 고흥 녹동항을 통해 갑니다. 여수에선 하루 2회 운항되고 운항시간은 2시간 20분 정도 걸립니다.

[거문도] 여수에서 114.7km 떨어져 있으며, 섬 일대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한다. 대표적인 관광지로는 거문도등대, 불탄봉, 보로봉, 목넘어, 관백정, 영국군묘지 등이 있다. 유림해수욕장과 한나라 시대 오수전(五銖錢, 중국 한나라 때 동전)이 대거 발견된 서도해수욕장, 신지께라는 인어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신지께여 등도 볼거리이다.




▲ 1905년부터 불을 밝힌 거문도등대. 동백숲을 따라 등대에 이르는 길이 아름답다.Ⓒ여수시

동도의 망향산(247m), 서도의 음달산(237m)·수월산(128m) 등이 산지를 이루며 해안은 작은 돌출부가 많고 드나듦이 심하여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서도는 세 섬 중 가장 큰 섬으로 온 섬이 동백나무로 뒤덮여 있어 연중 푸르며, 서도의 수월산(水越山)에는 다도해의 뱃길을 비춰주는 거문도등대가 있다.

섬에는 동백나무가 가장 많이 분포하고, 상록교목인 구실잣밤나무·생달나무·후박나무·참식나무·까마귀쪽나무 등과 상록소교목인 감탕나무·자금우 등이 분포하고 있다. 또 돈나무·다정큼나무·사스레피나무·우묵사스레피나무·광나무 등이 있고, 상록만경식물인 멀꿀·큰보리장나무·송악 등과 상록침엽수림인 곰솔 등이 분포하여 상록수가 우세한 식생을 이루고 있다. 낙엽소교목인 꾸지뽕나무와 낙엽관목인 천선과나무·실거리나무·초피나무·가막살나무 등도 보이며 천연기념물인 흑비둘기 등 30여종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다.

세 개의 섬이 병풍처럼 둘러쳐서 1백만 평 정도의 천연적 항만이 호수처럼 형성되어 있는 곳을 도내해(島內海)라고 하는데, 큰 배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항구 구실을 하고 있다. 입지적 여건 때문에 거문도항은 옛부터 빈번히 열강의 침입을 받아왔다.

1396년 흥양면(현 고흥군)에 속하였고, 1701년에 통영으로 군정을 이관하여 별장을 두다가 1855년 흥양현으로 복귀하였다. 1885년(고종 22)에는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다는 구실로 이 섬을 불법 점령한 '거문도사건'이 일어났으며, 이때에는 '해밀턴' 항구라고도 불렸다. 1896년 거문진을 폐하고 초도, 손죽도를 상도, 거문도를 하도라 하여 돌산군에 편입시켰다. 1910년 상·하도를 합해 삼산면이라 하였다. 1914년 여수군에 편입되고 1949년 여천군에 속하였다가 1998년 여수시로 통합되었다. 삼산면 인구는 1천여 명에 넓이는 약 17㎢이다.

주민들 사이에 구전되고 있는 <거문도 뱃노래>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360여 년 전 추씨가 처음 거주했다고 전해지며, 매년 음력 섣달 그믐날에는 추씨 할머니를 수호신으로 모시는 제사를 지낸다. 1월 평균기온 2℃ 내외, 8월 평균기온 25℃ 내외, 연강수량 1,361㎜ 정도이다. 주요 농산물로는 고구마·감자·마늘·보리·콩·유채·참깨·양파 등이 생산된다. 연안 일대에서는 삼치·멸치·장어·도미·갈치 등이 주로 잡히며, 자연산 굴·미역·조개류 등이 채취된다.

백도는 전남 여수시 삼산면에 속한 아름다운 섬들로, 1979년 섬을 포함한 주변 해역 200m가 명승 제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거문도에서 동쪽으로 약 28㎞ 지점에 있는 무인도군으로 상백도와 하백도로 나뉩니다.

섬 전체가 기암괴석의 절경을 보여주는 바위섬들로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아열대의 독특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최남단의 무인도로, 육지에서 멀고 일찍부터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제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백도] 백도(白島)라는 이름은 섬이 온통 하얗게 보인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과, 섬의 수가 하도 많아 100개에서 하나가 모자란 99개이기 때문에 '일백 백(百)'에서 '일(一)'을 빼 '백도(白島)'로 했다는 두 가지 설이 있지만, 실제로는 39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무인군도이다.
▲ 황홀한 백도 일출Ⓒ거문

전설에 의하면 옥황상제의 아들이 아버지의 노여움을 받아 이 세상으로 내려와 다시 못된 짓을 하자 옥황상제가 화가 나서 아들과 신하들을 벌을 주어 돌로 변하게 하였는데, 그것이 크고 작은 섬인 백도가 되었다고 한다.

상백도와 하백도 모두 파랑의 침식작용에 의해 수직절리가 발달하여 섬 전체가 전형적인 해안침식지형을 이루고 있다. 상백도에는 각시바위·서방바위·궁성바위가 있고 많은 종류의 식물이 분포한다. 덩굴옻나무 등을 비롯하여 총 97종이 자생하고 있다. 까마귀쪽나무, 왕밀사초, 거문억새혼효군락이 가장 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광나무군락, 우묵사스페레피나무군락 순으로 군락의 크기가 조사되었다. 섬개개비 등 5종의 조류가 확인되었다.

하백도에는 태양전지식 무인대가 설치되어 있으며 10여개 이상의 섬들로 이뤄져 있다. 병풍바위·형제바위·매바위·오리섬·노적섬·탕근대가 있고 후박나무·돈나무·억새·보리수나무를 비롯하여 20종의 식물이 자생하고 있으며 곰속군락·검은억새군락·까마귀쪽나무군락 등 다양한 식생경관을 보인다. 조류는 칼새·흰꼬리수리 등을 비롯하여 10종이 관찰되었다.

백도 일원은 남해 황금어장의 중심 해역으로 조기·갈치·돔·민어 등의 어장으로 유명하며, 섬은 뛰어난 자연경관과 함께 남국적인 정서가 짙은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 아름다운 백도는 옥황상제의 '작품'이란 전설이 전해온다(현재 섬을 보호하기 위해 선상유람만 할 수 있음). Ⓒ여수시

두발로학교 제19강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9월 22일(토)>

06:30 서울 출발(6시 20분까지 서울 강남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두발로학교> 버스에 탑승바랍니다.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11:00-11:40
여수시 도착, 점심식사(여수시 학동 <여수회관>에서 게장정식)
12:30 여수여객선터미널 도착
13:00 거문도행 쾌속여객선 승선
15:20 거문도 도착
15:30-17:30 백도 선상유람
18:30-19:50 저녁식사 겸 뒤풀이(고도 <늘푸른식당>에서 갈치회&갈치조림정식)
20:00 취침(고도민박. 다인실)

<9월 23일(일)>

07:00-07:40 아침식사(고도 <늘푸른식당>에서 한식)
08:00-12:30 거문도 비경능선 트레킹
고도→덕촌리→불탄봉(195m)→억새군락지→기와집몰랑→신선바위→보로봉
→365계단→목넘어→거문도등대→등대선착장
12:30-13:00 배편으로 고도로 돌아옴
13:00-14:00 고도에서 점식식사(갈치구이정식)
14:00-15:00 자유시간(영국군묘지, 장보기 등)
15:00 여객선터미널 집합
15:30 거문도 출발
17:30 여수 도착, 서울 향발



[거문도 트레킹 안내]

-트레킹 코스 : 고도→덕촌리→불탄봉(195m)→억새군락지→기와집몰랑→신선바위
→보로봉→365계단→목넘어→거문도등대→등대선착장
-트레킹 거리 : 약 7km
-소요시간 : 약 4시간 30분(충분한 휴식시간 포함, 쉬엄쉬엄 걷는다)
▲ ⓒ프레시안

[준비물]

걷기 편한 차림(등산복/배낭/등산화, 반드시 긴 바지^^), 스틱, 무릎보호대, 식수, 윈드재킷, 우비, 따뜻한 여벌옷, 간식(초콜릿, 과일류 등), 세면도구와 수건, 멀미약, 자외선차단제, 헤드랜턴, 개인용 깔개, 필기도구 등(기본상비약은 준비됨)

[트레킹 자료]

[거문도 팔경] '역사의 섬'으로 알려진 거문도에는 예로부터 명망 있는 학자가 많이 배출되었는데 그 중 귤은(橘隱) 김류(金瀏, 1814~1884)가 가장 많이 알려졌다. 김류가 쓴 <삼호팔경(三湖八景)>은 거문도 세 섬 사이 호수 같은 바다 위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자연을 표현하고 있으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귤정[유촌리]에 비치는 가을 달빛
준촌의 밤 대나무 숲에 밤비 내리는 소리
서도 녹싸이(산) 끝의 수십 길 절벽 아래 바람 부는 날의 성난 파도
용냉이 용물통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해넘이
배골[서도리 남동쪽 해안]의 하얀 모래와 어우러진 삼호의 경치
불배를 이용하여 고기를 잡는 거문도 내해 밤바다 고기잡이
안개 낀 기와집 몰랑과 신선 바위 부근의 풍경
백도에서 고기잡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돛단배.
(橘亭秋月 竹林夜雨 鹿門怒潮 龍巒落照 梨谷明沙 紅國漁化 石凜歸雲 白島歸帆)

▲ 불탄봉을 지나 보로봉 가는 길Ⓒ두발로학교

[거문도사건] 1885년 4월부터 약 2년간 영국의 동양함대가 전남 거문도를 점령한 사건. 당시 세계적인 규모로 남하정책을 쓰는 러시아에 대항해온 영국은 동북아에서도 러시아의 남진책에 예민한 반응을 나타냈다.

러시아는 일찍이 1860년 한반도 동해에 접한 블라디보스토크를 확보했으나 겨울에 얼어 활용가치가 적었으므로 부동항을 물색하였다. 그 대상지는 영흥만(永興灣)·제주도·쓰시마섬[對馬島] 등이었고, 이 중에서도 함남 영흥만이 가장 유력한 점령 대상지였다고 한다.

한편 영국은 1882년 한영수호 교섭이 시작되던 무렵부터 이미 거문도의 조차(租借)를 제의함으로써 거문도에 대한 관심을 표시해왔다. 또 1884년 갑신정변이 실패한 후 한국의 조정이 급속히 제정러시아에 접근하여 한·러밀약[韓露密約]을 체결한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국외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싼 영국과 러시아의 사태가 급박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국은 러시아의 선점(先占)을 예방하고 러시아를 견제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영국 선박 1척이 러시아가 점령 대상지로 삼았다는 영흥만 일대를 탐사한 후, 4월 15일 군함 6척·상선 2척으로 거문도를 점령하고 그 달 하순경 영국기를 게양하였다.

조선은 영국 부영사(副領事)와 청나라 주재 영국 대리공사에게 항의를 제기하였다. 또 미국 ·독일 ·일본에게 조정을 요청하는 한편, 엄세영(嚴世永)과 묄렌도르프를 일본에 파견하여 교섭하게 하였다. 러시아는 청나라에 사건의 중재를 요청하였는데, 이 무렵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둘러싼 영국과 러시아의 위기가 고비를 넘기고 9월 10일 아프가니스탄 협상이 조인됨에 따라, 청나라 이홍장(李鴻章)은 이때가 거문도 문제를 해결할 기회라고 보고 적극적으로 중재하였다.

그 결과 이홍장은 청나라 주재 러시아공사로부터 러시아는 조선 영토를 어느 곳도 점령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영국에 통보함으로써 드디어 1887년 2월 27일 영국 함대가 철수하였다.
▲ 거문도사건 당시 영국군과 사진 찍은 거문도 주민들Ⓒ디지털여수문화대전

[거문도 영국군묘지] 1885년(고종 22)부터 1887년까지 약 23개월에 걸친 거문도사건 과정에서 병이나 사고로 죽은 영국군을 묻은 묘지다. 원래 거문도 여객선터미널에서 동북쪽으로 100m 떨어진 지점에 있는 고도의 하늘땀에 위치해 있었으나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와 함께 일본인들이 고도를 삼산면 면소재지로 만들면서 현재의 자리로 이장되었다.

거문도사건 당시 영국군의 철군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거문도에 내려온 경략사(經略使) 이원회(李元會)의 보고에 의하면 사망자의 묘지는 모두 9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3기만 남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영 타도 주장이 높아져 일본인들에 의해 지금 남아 있는 묘비보다 더 큰 서구식 묘비는 파손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서구식 비석도 두 동강이 나 굴러다니는 것을 해방 이듬해 섬의 유지들이 보수하여 다시 세웠다.

서구식 비문에는 "1886년 3월 알바트로스(Albatross)호의 수병 2명이 우연한 폭발 사고로 죽다. 윌리엄 J. 머레이(William J. Murray)와 17세 소년 찰스 댈리(Charles Dale)"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십자가에는 "1903년 10월 3일 알비온호 승무원 알렉스 우드(Alex Wood) 잠들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 거문도 능선길은 환상적인 동백숲 터널로 이어진다.Ⓒ두발로학교

[신지께] 거문도에 전해 내려오는 인어 이야기. 거문도 서도마을에는 사슴뿔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 붙여진 녹사이[鹿山] 해안가에 아주 작은 여(섬)인 신지께여가 있다.

거문도 사람들은 매일 새벽 1시에서 3시경 사이에 주로 신지께여 부근으로 삼치 미기리(줄낚시)를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흐린 날은 틀림없이 조금 먼 곳에서 보면 물개 같은 형상이고, 가까운 곳에서 볼 때는 분명히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팔과 가슴이 여실한 여인이 나타났다고 한다. 하체는 물고기 모양이었지만 상체는 사람 모양을 한 하얀 인어가 분명했으며, 특히 달빛 아래서의 모습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고 한다. 섬사람들은 그 인어를 신지께, 신지끼 혹은 흔지끼라고 불렀다.

신지께는 동도, 서도, 고도의 세 섬으로 둘러싸인 내해에서는 나타난 적이 없고, 녹사이 같은 섬 밖에서만 출현했다고 한다. 때로는 거문도 죽촌마을 넙데이 해안의 절벽 위에도 나타났으며, 백도 해변에도 자주 출현했다고 한다. 해상에 나타난 신지께는 반드시 배를 쫓아오고, 절벽 위에서는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에게 돌멩이를 던져 훼방을 놓았다고 한다. 만약 이를 무시하고 바다에 나갔다가는 반드시 큰바람을 만나거나 해를 입었으며, 신지께가 나타난 이후에는 틀림없이 풍랑이 일거나 폭풍우가 몰아쳤다고 한다.

거문도 사람들에게 신지께는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날씨를 예측해 주는 고마운 해신이다. 바람이 몹시 불거나 물결이 세차게 일면 혹 사고가 날까 염려하여 거문도 사람들을 미리 뭍으로 쫓아낸 것이니, 바다를 텃밭처럼 나다니는 섬사람들의 지혜라 할 수 있다.

[거문도등대] 해발 127.9m의 수월산에 세워진 등대로서 1905년 4월 10일 준공되었으며 이틀뒤인 12일 처음으로 불을 밝혔다. 등탑은 높이가 6.4m에 이르며 흰색의 원통형으로 벽돌과 콘크리트의 혼합 구조물이다. 등명기는 3등대형으로 유리를 가공한 프랑스제 프리즘렌즈를 사용하였으며, 수은통에 등명기를 띄우고 중추로 회전시켜 15초 간격으로 불빛을 밝혀 약 42km 거리에서도 볼 수 있게 설치되었다.

노후된 시설을 대신하여 높이 33m의 새로운 등탑이 신축되면서 2006년 1월부터 선박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100년 동안 사용한 기존 등탑은 남해안 최초의 등대로서 보존 가치가 높아 등탑 외벽과 중추식 회전장치를 보수하고 회전식 등명기인 DCB-36을 설치하여 해양유물로 보존하고 있다. 등대까지 오르는 길을 따라 늘어선 동백나무숲이 울창하고 등대 절벽 위에는 백도(白島)를 바라보며 남해 바다의 절경을 즐길 수 있는 관백정(觀白亭)이 있다.

[고도민박] 90년 전통의 일본식 다다미로 꾸며진 일본식 민박집. 거문도의 가운데 섬인 고도에 있다. 일제시대 여관을 주인아주머니의 할아버지가 인수한 이후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자료 출처 : 여수군, 네이버 백과사전, 디지털여수문화대전 등>

두발로학교 제17강 참가비는 26만원입니다(왕복 교통비, 선상유람비, 4회 식사와 뒤풀이, 숙박비, 진행비, 여행보험료, 운영비 등 포함). 이 답사는 현지 사정에 의해 일부 변경될 수 있으며, 기상 악화로 섬 체류가 연장되는 경우 추가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버스 좌석은 참가 접수순으로 지정해드립니다. 참가신청과 문의는 사이트 www.huschool.com 전화 050-5609-5609 이메일 master@huschool.com 으로 해주십시오.

☞참가신청 바로가기

전형일 교장선생님은 언론인 출신으로 오랜 동안 일간지 기자 생활을 했습니다. 현재 외국기업체에 재직 중이며, 원광대학교 동양철학박사 과정중입니다. 그는 틈틈이 여기저기 <걷기의 즐거움>에 몰입하며 <걷기의 철학>에도 빠집니다.

교장선생님은 <두발로학교를 열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걷기>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걷기 코스의 명소들이 생겨나고 <걷기 동호회>도 부쩍 늘어나고 있습니다. 각 지자체들이 고유의 <길>을 경쟁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인간이 한동안 잊었던 <걷기의 가치>를 되살리고 걷기를 통해 몸과 마음의 즐거움과 건강을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직립보행(直立步行) 이후 걷기를 멈춘 적은 없습니다. 최소한 집안이나 사무실에서도 걸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걷기가 새삼스럽게 각광을 받는 이유가 뭘까요.

성경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길을 본받는데, 길은 스스로 그러함(자연)을 본받는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길>에서 이처럼 종교적 진리나 철학적 깨달음 같은 거창하지는 않지만, 길을 걸으면서 내면의 기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루소는 <고백록>에서 "나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길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마음은 언제나 나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고 말했습니다. 걷기의 리듬은 사유의 리듬을 낳는다고 합니다. 경치를 구경하며 생각할 수 있고, 미지(未知)의 것을 기지(旣知)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레베카 솔닛의 저서 <걷기의 역사>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의사가 둘 있다
.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 말이다. 몸과 마음이 고장날 때 나는 이 의사들을 찾아가기만 하면 되고, 그러면 다시 건강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장 경제적이고 신체에 부담이 적은 운동을 택한 것이 <걷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는 속도와 능률이 지배하는 세상에, 목적에 대한 부담을 덜고 걷기를 통해 느림의 미학으로서 세상을 보고 싶은 것은 아닐까요.

사람마다 걷기를 통해 찾고자 하는 의미와 기쁨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모두 함께 찾으려는 것은 <몸과 마음의 건강> <새로운 경관> <자연을 즐기는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의 세 가지가 아닐까요.

<두발로학교>는 <아름다운 길 걷기> 전문학교입니다. <두발로학교>에서 세 마리 '토끼몰이'를 해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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