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경험한 것, 나의 가장 큰 문학적 자산"
"한국을 경험한 것, 나의 가장 큰 문학적 자산"
[2014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①] 문학 : <밤이 선생이다>의 황현산
2014.03.04 16:57:51
"한국을 경험한 것, 나의 가장 큰 문학적 자산"

"어느 날 나는 그렇게도 읽고 싶은 책을 눈앞에 두고도 읽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조심스럽게 말했더니, 도리어 그쪽에서, 서적 통관이 쉬운지 아느냐,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책이라도 있으면 어쩔 거냐고 공격한다. 이 책들은 그런 책하고는 거리가 멀며, 문학에 관한 이론서일 뿐이라는 내 설명을 무지르고 다시 돌아오는 대답이 이렇다. "책 내용을 그렇게 잘 알면서 왜 책은 사세요?" 나는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도 없이 창구의 가로대를 뛰어넘었다." (<밤이 선생이다>(난다 펴냄) 11쪽) 

지금이야 아마존에서 '원 클릭'으로 가능하지만, 70년대에는 "'꿈은 이루어진다' 같은 표어를 내걸고 감행해야 하는 일대 사업"이었다는 외국 서적 구입. 불문학자 황현산의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는 저자가 외국 책으로 문학을 공부하던 그 당시, 구입한 책을 손에 넣는 마지막 관문과도 같았던 서대문 국제우체국의 퉁명스러운 '미스 아무개'와의 슬픈 추억으로 시작된다. 이 글에서 황현산은 분노도 숨겨야만 했던 유신 시대를 윤색해서 아름다게 받아들이는 것은 과거에 대한 착취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형편이 그때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할 수 있는 2014년 현재, 자주 이 글을 되새기게 된다. 인터넷 서점부터 스마트폰까지 어디서나 '문학' '문학 책'을 볼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문학가'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문학을 둘러싼 담론들은 위기를 반복해 말하고, 자꾸 지워져 가는 듯한 문학의 자리를 만드는 데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문학의 효용성'을 말하는 사람들, 그 시효가 끝났다는 선언들도 익숙하다. 

지난 2월 14일 KT&G 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열린 황현산의 특별 강연 '이 시대, 우리가 문학을 읽는 이유'에서는 그 사이에 익숙해진 냉소도, 강연이란 형식이 쉽게 빠지곤 하는 유혹인 기만도 없었다. 그가 말하는 문학의 핵심인 '타자를 만나고자 하는 의지'를 곱씹는다면, 그것의 형식이 반드시 서사를 갖춘 출판 시장의 줄글 낱권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글을 쓰고 싶다' '문학을 하고 싶다'는 수많은 젊은 청중들 앞에서 원로 문학자는 결코 차갑지 않게, 그러나 애써 상냥하지도 않게 "외로움을 견뎌 내라"고 말했다. 출판사 문학동네와 인터넷 서점 YES24, 프레시안이 함께 만든 '5인의 명사에게 듣는다 - 2014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첫 번째 시간이었던 황현산의 특별 강연을 정리해 싣는다. <편집자>

문학동네+YES24+프레시안
'5인의 명사에게 듣는다 - 2014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기사 게재 순서
①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2월 14일 진행) - 3/4 화
② <화첩기행> 김병종 (2월 17일 진행) - 3/5 수

③ <애완의 시대> 이승욱&김은산 (2월 18일 진행) - 3/6 목
④ <삶을 위한 철학수업> 이진경 (2월 24일 진행) - 3/7 금


ⓒ프레시안(최형락)




▲ <밤이 선생이다>(황현산 지음, 난다 펴냄). ⓒ난다

<밤이 선생이다>의 표지 그림은 옛 동독 출신의 화가 팀 아이텔의 작품입니다. 늙은 남자가 뒷모습을 보이고 있죠. 그런데 제 첫 책 제목이 <얼굴 없는 희망>(문학과지성사 펴냄, 1990)이었고, 제가 번역한 아폴리네르의 <알코올>(열린책들 펴냄) 표지는 중절모 쓴 젊은 남자가 창문을 바라보는 뒷모습을 그린 마그리트의 작품입니다. 모두 우연인데, 누군가 '황현산은 얼굴 없는 사람을 수집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해서 공교로이 세 권 모두 공통점이 있구나 하고 알았습니다.

 

사람의 얼굴이란 주체의 표현입니다. 가령, 마네킹을 보면 무섭다고 우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명백히 사람의 얼굴과 닮아 있지만, 거기에는 자기의 생명이나 어떤 사람이고 싶다는 표현이 없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목구비라도 살아있을 때와 죽어있을 때의 그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자고 있을 때와 깨어 있을 때의 그것도 상당히 다루고요. 또 다른 사람이 내 얼굴을 보고 있다는 자각이 있을 때와 없을 때도 다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서도, 즉 면접 볼 때와 친구와 잡답할 때의 얼굴도 달라집니다.

 

하지만 뒷모습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뒷모습을 의식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어쩌다 사진이 찍혀서 보게 되면, 마치 다른 사람처럼 생각되곤 합니다. 말하자면 얼굴은 주체를 표현하지만, 뒷모습은 주체를 표현하지 않습니다. 자기 모습인 동시에 타인의 모습인 거지요. 주체로서 의식되지 않은 모습을 나타내 줍니다.

 

문학의 특징 중 하나는 주체의 글쓰기이면서 타자를 드러내는 글쓰기라는 것입니다. 주체를 드러내고자 쓰지만 결국 타자를 드러내고 마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가끔 "내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100권은 나올 것"이라고 하는 어르신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실제로 소설을 쓰는 예는 없습니다. 설사 쓴다고 해도 좋은 소설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의 온갖 이야기가 소설이 되는 게 아니라, 자기 이야기면서 동시에 자기 아닌 것의 이야기가 소설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자기'에는 여러 층위가 있고, '자기 아닌 것'에도 여러 층위가 있습니다. 나 아닌 옆 사람 이야기를 쓴다고 해서 '자기 아닌 것의 이야기'가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지요. 많은 경우 '자기 이야기'에 머무르면 결국 아무 것도 안 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자기 아닌 이야기'를 쓰기란 굉장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를 가지려면 결국 '자기 아닌 이야기'를 쓸 수 있어야 합니다.

 

타자가 얼마나 타자인가 혹은 얼마나 타자가 아닌가 하는 문제, 즉 '타자의 층위'가 결국 우리가 쓰는 글의 깊이를 결정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들은 글 속에서 자기 모습이면서 동시에 전혀 그것이 아닌 듯한 자기 모습을 발견할 때 놀라거나 감동을 합니다. 거기엔 '이건 나에게밖에 없을 거야'라고 자랑하고 싶었던 것도 있고, '왜 나만 이상할까' 하는, 감추고 싶은 것도 있을 겁니다.

 

▲ <밤이 선생이다> 저자, 불문학자 황현산. ⓒ프레시안(최형락)

자기인데 자기라고 내세우고 싶지 않았던 것, 혹은 사회에서 그것을 내세우도록 용납하지 않았던 것들이 있습니다. 누구나 그걸 갖고 있지요. 기독교에서는 원죄라는 이름으로 불렀고, 누군가는 무의식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예전부터 늘 문제가 되었던 것이지요. 

 

가령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은, 가끔은 자만심에 차게 만들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열등감에 사무치게 만들기도 합니다. 도덕적으로 형편없어서 혹은 너무 가난하고 거칠어서, 그 사람과 같은 국민이라 내세우기 싫은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각자의 동네에 있고, 바로 옆에도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지만, 내세우기 두렵거나 부끄럽게 만드는 그런 사람들을 역시 '타자'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타자의 속성은 언제나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들에겐 내가 모르던 능력 같은 게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예지력이 있고, 누군가에겐 노래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능력도 있을 수 있고요.

 

문학에서는 타자의 두 가지 면, 즉 형편없고 수치스러워서 드러내기 어려운 측면과 보통 사람이 가질 수 없는 뛰어나고 특별한 능력을 결합해 놓은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악마'입니다. 그리고 문학이란 이 악마들과 협약해서 하는 활동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이상한 것, 별로 바람직스럽지 못한 것,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를 뛰어넘는 뛰어난 능력과 손을 맞잡는 것이지요.

 

<밤이 선생이다>의 '밤' 역시 그런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제목을 지은 이유 하나는 제가 게을러서 늘 밤에 작업을 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밤이 주는 해방감 때문입니다. 아무리 혼자 있어도, 낮에는 다른 사람들이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뭔가 억압이 되잖아요. 뭔가를 해야 할 것 같고, 바빠야 할 것 같지요. 그런데 밤에는 모두 자니까 비로소 억압이 풀리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말하자면 밤은 낮의 온갖 규율, 낮이 요구하는 온갖 노력들로부터 우리를 풀려나게 해 주는 시간입니다. 그 자체로서 우리를 타자들의 세계로 들어가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이 문학이 갖는 여러 특징을 은유하고 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최근에 들기 시작했습니다.

 

동양에서 주로 쓰이는 말이지만, 문학, 그 중에서도 시를 평가할 때 귀기(鬼氣)라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그것이 가진 비범한 성격이 있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다는 뜻이지요. 저는 타자가 드러나는 것을 곧 '귀기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어떤 독창성을 뽐내게 하고, 초월적 힘을 갖게 하기 위한 귀기는 반드시 완전한 미지의, 신비한 것과 교섭해서 생겨나는 것은 아닙니다. 타자라는 것들도 아주 사소한 것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제가 80년대에 한 시인의 시를 아주 자세히 해설한 것을 두고, 민주화투쟁을 하며 참여 문학을 진흥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한 비평가가 격렬한 항의를 해왔습니다. 우리가 지금 거대한 전망을 만들어야 할 때인데 이렇게 사소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시 편집위원으로 있던 잡지에 간단히 반박하는 글을 썼습니다. 세상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어떤 거대한 이론들과 깃발이 아니라, 자그마한 것들이라고요.

 

가령 "우리는 대한민국이다"라는 말을 할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거대한 구호 아래 뭉쳐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뭣 하러 세상을 변화시키겠습니까? 그 바깥에는 늘 거기에 끼지 못하는 사람들, 자신의 절실한 문제에 대해 언제나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무시의 말을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변화가 필요하다면, 바로 이 문제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도 몰라주는 나의 고통, 나의 사소한 사정 때문에 변화가 필요한 게 아닐까요? 그 모든 것들을 무시해야 세상이 변하고 전망이 생긴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마치 공기가 통하지 않는 작업장의 노동자들이 숨을 쉬고 싶다고 말하면, "우리가 수출 대업을 달성해야 하는데!"라며 거대한 문제를 들먹이는 공장주와 같은 태도 아닐까요? 

 

영화 <시>에서 김용택 시인이 시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물건을 자세히 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봐도 사과는 사과, 연필은 연필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사회의 철학, 사상, 의식들 안에서 보는 방식과 보는 결과는 항상 다 결정이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그걸 넘어서는, 거기에 붙잡히지 않는 시선과 방법, 태도야말로 우리에게 사물을 새롭게 보게 만들고, 글을 쓰게 만드는 것 아닐까요. 어떤 사물에서 특별한 것을 보았고, 그걸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낱말을 생각해 냈다고 하면, 그 자체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컨대 플로베르가 말했다는 일물일어(一物一語)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사물들은 그것에 대한 기존의 정의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후에 온 사람들은 그 정의 바깥으로 벗어나기 어렵고, 그 정의 안에서만 사물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걸 정말 오랫동안 보고 생각하면 어떤 말이 떠오릅니다. 그 사물의 다른 모습이 보이고, 거기에서 '그 말을 하는 순간 바로 저 사물이다'라는 완벽한 합치의 순간이 태어납니다.

 

그러면 그 말을 통해 사물 자체가 전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립니다. '일어(一語)'는 바로 그러한 것, 즉 덧붙이는 말이 아니라 이제까지 보아왔던 관점을 완벽하게 뒤집어버릴 수 있는 한마디 말을 뜻합니다. 바로 그 말을 통해서 이제까지 나무였던 것에서 나무의 타자를 끄집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의식, 태도, 세계관 전체를 뒤엎는 순간이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여러분이 오늘 어떤 이성을 만났는데, 그 혹은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집에 돌아갈 때 어제까진 아무렇지도 않았던 플라타너스 잎이 반짝이고 거기에 이는 바람이 뭐라고 말하는 것 같은 순간입니다. 그게 조금 더 깊어져서, 우리가 갖고 있던 문화적 습관까지 변하게 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 자체의 바탕을 변화시키고 자신이 사는 목적까지 다른 것이 되게 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런 순간을 가리켜 시적 순간, '에피파니'라고 합니다.

 

그런 순간은 술을 먹다가도 오는 것이기에 아주 드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과 자기 자신이나 세상에 대한 여러 염려, 전망을 확보하려는 욕망이 합쳐지면 미학적인 생산성을 띄거나 세상을 변혁시키는 사상 체계가 되기도 합니다. 다만 문학은 사상 체계를 만들 수는 없고, 그것을 안내해 줄 수는 있습니다. 철학자들에게 '저기 가 보라'고 가리키는 게 다일 것입니다. 어느 현자가 우둔한 자의 손짓에 답을 찾게 되었다는 옛 우화를 제 힘으로 해석한다면, 바로 철학자와 시인에 대한 우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시나 소설이 없으면 새로운 사상도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진정한 의미에서 세상에 대한 희망도 없다는 뜻입니다. 가전제품이나 자동차의 발전은 시나 소설, 인문학적인 탐구 없이도 계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빨라져서 뭐 해'라는 사소한 질문이라도 하게 된다면, 시나 소설을 읽어야만 하겠지요.

 

이 작업에서 중요한 점을 요약하면, 문학에서 주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타자들과의 대화라는 겁니다. 많은 타자들을 만나고 이 경험을 미학적 생산성과 연결시킬 수 있는 길은, 자신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사소한 것들에 대한 스스로의 다른 가치평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에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매기는 기준, 즉 가치체계가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뭐가 중요하고, 교회에서는 뭐가 덜 중요하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그런 식의 체계를 넘어설 수 있는 시각의 확보가 있어야 실제로 타자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거기서 '나'를 '다른 나'로 변화할 수 있게 하는 그 믿음이 바로 문학의 믿음입니다.

 

<밤이 선생이다>는 반드시 마감을 지켜야 하는 신문 칼럼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일관된 주제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신념은 있었지요. 그게 바로 '타자들을 만나자'라는 것. 사소한 것들을 통해 세상 자체와 교섭하여 아주 작은 변화라도 일으키려는 의지, 혹은 그 변화를 일으키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자 하는 의지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제가 나름대로 지녀 온 문학적 소신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황현산에게 묻는다 - 청중과의 1문 1답

Q. 선생의 이름 앞에는 '이 시대의 어른'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습니다. 그런 선생에게 있어 어른과 같은 존재는 누구입니까?

 

A. 그 수식어는 제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입니다. 결국 늙었다는 거잖아요. (웃음) 지혜를 주는 말을 듣고 싶어서인 것 같은데, 사람이 나이 든다고 지혜로워지는 건 전혀 아닙니다. 다만 '내가 살아보니 어떻더라'라는 경험을 젊은이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생각은 있습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저는 어디 가서 놀고도 싶고 춤추고도 싶은, 그런 한 남자입니다. (웃음)

 

Q. 나중에 세계관이 좁고 소통이 안 되는 노인이 되지 않으려면 젊어서부터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A. 이런 질문이라면 내 세대 사람들을 욕해야 하잖아요. (웃음) 그런데 정말 욕할 일이 있긴 합니다. 전 65학번인데, 동기 중에 지금 운동, 정치, 관(官) 여러 분야에서 현역으로 종사하는 유명한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최근 그들이 함께 등산에 가서 제 험담을 했다는 겁니다. "황현산이 책을 읽어보니, 앞에는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마지막 문단 가서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요. 그건 그 친구들이 학교 졸업한 이후 책 한 권 제대로 안 읽었다는 얘깁니다. (웃음) 책 한 권 안 읽고 5년이 지나면 아무리 똑똑한 사람일지언정 아무 말도 이해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다면, 그게 바로 꼰대입니다. 나이 들어도 젊고 활기차게 살려면, 책을 읽는 수밖에 없어요.

 

Q. 글 잘 쓰는 것이 인생의 목표입니다. 그런데 소설을 쓰다보면, 냉정하게 허구의 세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언제나 '나의' 이야기에 갇혀 버립니다. 또는 항상 매듭을 짓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저도 이해가 갑니다. 저 역시 소설가가 되려고 노력했던 사람 중 하나거든요. 제가 할 수 있는 답은, 계속 써 보시라는 겁니다. 매듭이 안 지어지면 안 지어지는 대로, 자기가 구축하려 하는 세계와 자기 자신이 겹치면 겹치는 대로요. 그렇게 어느 매수, 어느 단계까지 일단 죽 끌고 나가 보세요. 그러고 나서 스스로 점검을 하고, 다른 이에게도 점검을 부탁해 보는 겁니다. 

 

Q. 현대시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시와 나 사이를 잇는 감정의 지대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제가 사회과학도 때문에 바로바로 이해되는 문서들에 익숙해져서이기 때문일까요?

 

A. 말의 상징체계, 의미 관계를 가르치는 교육들이 있는데, 그것이 동시에 어떤 말을 못 알아듣게 만들기도 합니다. 만일 고양이에게 사람 말을 가르치면, 고양이들끼리의 소통은 못 하게 될 수도 있어요. 바꿔 말해, 시를 이해하기 위한 여러 교육이 있는데 그게 새로 등장하는 시들을 이해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때 '매직아이'라는 그림책이 있었지요. 그 속에 숨은 그림을 죽어라고 못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웃음) 시 읽기도 비슷한 측면이 있지요.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말들이 갖는 여러 가지 심상을 떠올리면 '이게 무슨 소리구나' 하고 알아들을 수 있는데, 다른 교육을 받아 논리적으로 탄탄하게 무장되면 오히려 안 보이고 안 들리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말씀하신 대로, 사회과학의 언어에 익숙해지면 거기에 있는 명백한 틀이 있기 때문에 시를 읽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거꾸로, 어떤 시인들은 굉장히 머리가 좋지만 책 한 권을 못 읽기도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있어 난독증이 있다고 할까요. 우리가 세상을 볼 때, 막 보는 듯하지만 실은 그 밑에 여러 가지 체계가 있습니다. 그 체계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쉽게 해석하는 세상의 어떤 것들이 혼란스럽게 보이겠지요. 우리가 기존에 받은 교육과는 다른, 시 읽는 훈련을 한다면 창조적 세계를 만나는 데 이로운 측면들이 있을 겁니다.

 

Q. 지금의 20대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A. 20대라 해도 다 처지가 다르고 능력이 다르니까 한꺼번에 해당되는 말이 생각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살아 보니, 창조적인 삶이 진짜 삶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영어 속담에도 있듯 "정직함이 가장 좋은 정책"입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를 정직하게 하려고 하면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지고, 그것이 대개 창의적인 것으로 연결됩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해도 괜찮고 안 해도 괜찮은 거짓말들을 늘어놓고 삽니다. 세상 말 90% 정도가 입에 발린 소리인데, 정직하게 말하고자 하면 입에 발린 것이 아니게 되며, 그것이 바로 창조적인 말과 삶이 되는 것 아닐까요?

 

Q 선생에게도 닮고 싶은, 혹은 과거에 닮고 싶다고 생각한 문장가가 있습니까?

 

A. 젊을 땐 굉장히 많았지만, 환갑 지나고도 10년이 되니 이제 닮아보았자 뭐 하겠어, 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예전에는 바로 윗세대 선배인 김현 선생의 문장을 닮고 싶었습니다. 그의 문장을 통해 '평론 문장은 이렇게 쓰는 것이다'를 알게 되었지요. 제게 특히 영향을 준 것은 프랑스 작가들인데요. 젊을 때 사르트르의 글을 혼자 번역하면서 문장 연습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생텍쥐페리, 플로베르, 보들레르 등이 나름의 문체를 만드는 데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Q. '문학 번역'을 하며 느끼는 고충이나 유의할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A. 제가 오랫동안 표방해 온 것은 직역, 직역이면서도 동시에 순순한 우리말이 되는 직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저는 우리말로 글을 잘 씁니다. 결국 우리말로 글 쓸 수 있는 능력이 곧 번역을 하는 능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즉 문학적인 지식과 감수성이 결국 원문을 잘 이해하게도 하고 좋은 번역문을 만들기도 합니다. 번역가 이세욱이나 김석희는 우리 시대의 문장가들이지요.

 

이 세상에는 거의 번역가만큼의 번역론이 존재하는데요, 그 번역론이라는 게 현장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번역을 하며 만나는 문제는 항상 새로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남의 번역론에서 답을 찾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작은 것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라고 하셨는데요, 선생 본인을 변화시켰거나 만든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얼마 전 문학동네 팟캐스트를 녹음하면서 문학평론가 신형철 씨가 내게 있어 큰 재산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때 전 서슴지 않고 한국에서 살아온 것, 한국을 경험한 것이라고 답했지요.

 

저는 일제로부터 해방되기 두 달 전에 태어났고, 한국전쟁을 겪었습니다. 철이 들고 나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피난길이나 잔혹한 죽음들이 있었다는 것은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4.19도 경험했지요. 한국 사회에 있어 4.19는 그 이전과 이후를 명확히 가르는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5.16도, 군사독재와 유신 시대도, 신군부 독재, 김대중과 노무현의 시대, 이명박의 시대도 겪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우여곡절과 슬픔, 고통을 포함해 세상의 변화에 대한 제 개인적인 체험도 들어 있습니다. 저는 다행히 문학 공부를 했기 때문에, 문학과 함께 이것들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습니다.

 

문학은 모든 것을 재산으로 쓸 수 있는 활동입니다. 못 사는 대로, 잘 사는 대로, 고통스럽게 산 대로, 수치스럽게 산 대로 다 재산이 되는 것이 바로 문학입니다. 그러니 한국 사회에서 제가 겪은 역사적·개인적 불행이 하나의 재산이 되게끔 하게 한 것도 문학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글쓰기란 온전히 홀로 하는 활동입니다. 그래서 외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선생은 그 외로움이나 두려움을 어떻게 이겨내 왔습니까?

 

A. 외로움을 이겨내는 특별한 방법은 없습니다. 특별한 방법이 있어서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견뎌내는 것입니다. 외로운 것은 우리의 존재론적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입니다. 연애를 해도 궁극적 외로움은 남는 거니까요. 외롭기 때문에 쓰는 것이라고, 또는 훈련의 시간이라 생각하면 어떨까요. 자신을 깊이 있게 만드는 시간으로 역이용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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