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영아, 너에게 또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숙영아, 너에게 또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기고] 삼성전자 유방암 피해 노동자가 동료에게 쓰는 편지
"숙영아, 너에게 또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작년에 너에게 띄우는 글을 썼지만, 지금은 또 너에게 다른 말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펜을 든다. 가을 문턱이 이제 성큼 다가왔다. 쌀쌀한 가을바람이 지붕을 휘감고 지나간다. 그곳에서 넌 뭐 하고 지내니? 유미도 만나고 먼저 간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지내고 있니? 너와 유미가 법원에서 승소한 일은 알고 있니? 그곳에서 유미랑 기뻐했었니? 유미 아버님이 반올림과 7년 동안 너희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힘쓴 결과가 그나마 지금에서야 종지부를 찍게 해주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숙영아. 네가 아파 떠난 후에 무수히도 많은 이들이 병마와 싸우고 있고 절망 속에서 희망의 줄을 놓지 않고 있구나. 나 또한 결혼해서 불임(난임)이고 유산하는 아픔을 겪었다. 나는 그 이유가 수많은 장비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내 몸에서 빠져나가지 못해서인 줄 알았다. 화학물질과 방사선으로 점철된 환경은 상상도 해보지 못했지. 너 또한 급속히 찾아온 병마가 설마 산업재해로 얻은 병일 거라고 생각조차 할 겨를 없이 하늘 문을 열었겠지만. 지금에서야 삼성은 산재를 인정은 한다면서 두 얼굴의 가면을 쓰고 우리처럼 아픈 사람들을 두 번 울게 하고 있구나.

반올림과 협상단과의 갈등을 조장하고 지쳐서 떨어지게 만드는 태도가 집요하고 추악하기 그지없구나. 유미랑 너의 법원 최종 승소 판결 결과가 있긴 하지만, 너무나 먼 길 돌아 제자리를 찾은 것에 감사해야 한다니.

고3. 앳되고 앳된 어린 애들을 데리고 와서는 화학가스와 화학용액, 방사선에 노출시켜 일 시켜놓고 회사는 이상 없다고만 했고, 영업 비밀이라는 변명으로 회피했지. 그러더니 올 봄 세월호 사건이 터진 후 얼마 되지 않아 산업재해로 의심된 질환으로 투병 중이거나 사망한 가족에게 합당한 보상을 한다는 여론몰이를 해놓고, 지금까지 협상하는 행태를 보니 과히 삼성답다는 생각뿐이다. 우리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죽거나 암, 불임(난임), 각종 희귀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너무 안타깝고 너무 분하고 억울하구나. 사람에게 해가 되는 걸 알면서도 제대로 작업 환경을 개선해주지 않았다니.
 
삼성과의 교섭도 언젠가는 종지부를 찍을 날이 있겠지만, 굉장히 복잡한 과정이 계속될 것 같구나. 보상만이 아니라 사과도, 무엇보다 재발방지대책이 마련되었으면 좋겠구나. 지혜롭게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좋은 결과로 이끌어서 병을 완치하는 데 하루빨리 도움의 손길 미치길 하늘에서 너도 도와주겠니?

민숙 언니가. 

ⓒ반올림


박민숙 씨는 1991년 6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 7년 동안 근무한 뒤 퇴사했습니다. 박민숙 씨는 고 이숙영 씨와 함께 근무했습니다. 이숙영 씨는 최근 법원으로부터 산재를 인정받았습니다. 

이 글은 ‘전자산업여성건강권 모임’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전자산업여성건강권 모임은 전자산업의 ‘여성’ 노동자의 ‘건강’ 과 ‘삶’을 기록하고 이를 알리고자 만들어진 모임입니다. 전직 삼성반도체 여성 노동자, 직업환경의학 의사, 간호사, 여성 활동가, 정책연구자, 관심 있는 학생, 노동안전보건 활동가, 변호사 등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dongglmoon@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