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강사' 출신 이범이 꼽은 5대 교육 개혁안은?
'스타 강사' 출신 이범이 꼽은 5대 교육 개혁안은?
국‧공‧사립대 공동선발 등 '진보교육 5대 개혁안' 발표
2015.06.15 07:19:51
"차기 의제가 없다." 

스타강사 출신이자 교육평론가로도 유명한 이범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이 진보 교육의 아젠다가 없다면서 한 말이다. 

진보진영에서는 그간 무상급식, 혁신학교 등 교육 관련, 수많은 정책을 냈고 상당부분 성과도 이뤄냈다. 하지만 그러한 결실 이후에도 여전히 한국 교육 현장은 척박하기만 하다. 사교육 문제, 무한입시 경쟁 등 셀 수 없는 교육 현안이 존재한다. 

하지만 진보진영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차기 의제를 내놓지 못하는 실정이다. 더 정확히는 내부에서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범 부원장이 '총대'를 맸다. 짧게는 진보진영의 차기 의제를, 그리고 길게 보면 과열 경쟁을 해결하고 공교육을 혁신하기 위한 핵심 의제 5가지를 제안했다.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이 주최한 '함께 만들고 다듬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진보교육 5대 개혁안'에서였다. 
진보교육 5대 개혁안

1. 경쟁 완화 :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국‧공‧사립대 공동선발 추진 - 정부 추가 지원 보장을 통해 수도권 지역에 집중된 사립대들이 학부 학생선발권을 양보해, 전국적 인구비율에 맞는 국‧공‧사립 공동 학생선발 체계를 만든다. 

2. 교육 선진화 : 교권 개념을 확정하고 '자율적 전문가로서의 교사'상 설립 - 평가권과 교재선택권이 없고, 학기 시작 직전 과목, 학년을 통보 받는 게 현재의 대한민국 교사다. 교육청과 교육부의 사업과 지시에 휘둘리지 않고 전문가로서의 교사권리를 강화해야 한다. 

3. 민생 교육 : 공교육의 이중플레이를 일소하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 공교육은 사교육 붕괴를 외치면서 '사교육에서 배울 것'을 전제로 교과교육을 구성한다. '학원에서 배워라'가 아닌 '나머지 교육'을 책임지는 학교로 나가야 한다.  

4. 고교 체계 : 수평적 고교선택제와 보편적 수강신청제를 통해 교육기회의 극대화 - 시대에 맞는 고교평준화로 '획일적 교육과정'을 거부하고 교육과정 및 교과목 선택, 즉 ‘수강신청권’을 학생들에게 보장해 배울 과목과 속도를 스스로 결정하여 교육기회를 극대화하자. 

5. 대입 제도 : 정부‧고교‧대학 간 타협을 통해 내신‧수능‧논술을 통합한 영국식 입시제도인 'A-레벨'의 단계적 도입 - 'A-레벨'은 논술형 평가가 포함되고 고교 수업과 유기적 연계를 극대화할 뿐만 아니라 내신평가 신뢰도를 높인다.

이범 부원장은 이 자리에서 "무상급식, 혁신학교로 대표되는 정책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지지가 확인됐다"며 "하지만 우리 교육의 상황은 현재 상황에 결코 만족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과열 입시경쟁과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 교육을 선진화시킬 방책이 필요하다"며 "의제 5가지는 우리 교육의 미래에 관심을 가진 모든 이에게 던지는 일종의 화두"라고 제안 배경을 설명했다.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요인은 무엇일까. 일단 한반도 전쟁, 백두산 대규모 분화, 대형 원전 사고의 가능성이 있다. 이 3대 사건을 제외한 우리 내부의 구조적 문제로는 저출산 고령화가 가장 심각하다. 출산율이 사실상 세계 꼴찌 수준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경제학자들은 1.2명의 출산율로는 나라 경제가 지탱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OECD 보고서는 2030년께 한국 잠재성장률이 0이 되리라 예측한다. 고용, 주거, 교육‧보육 등 3대 영역에서 강력한 혁신이 이뤄지지 않으면 우리가 올라탄 한국사회라는 큰 배는 출산파업으로 인해 서서히 침몰할 것이다. 

왜 고용, 주거, 교육‧보육이 핵심일까. 고용과 주거는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삼포 세대를 만드는 주요인이다. 교육과 보육은 둘째 아이를 낳지 않게 만드는 주요인이다. 첫째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둘째를 낳지 않는 이유는 주로 보육 때문이고,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둘째를 낳지 않는 이유는 주로 교육 때문이다. 경쟁으로 인한 사교육비 부담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제 교육문제를 이러한 시각에서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 바로 한국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열쇠를 우리 교육에서 찾아야 한다."

이날 발표한 다섯 가지 제안의 요약 내용을 싣는다. 

▲이범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이 발제를 하고 있다. ⓒ프레시안(허환주)


①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국‧공‧사립대 공동선발 추진

대학서열화 및 이로 인한 학벌주의에 대한 진보 교육계의 대안은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였다. 2012년 대통령 선거 때에는 문재인 민주당 후보의 공약에 담기기도 했다. 서울대의 위상을 활용해 '서울대를 전국에 만든다'는 목표로 국립대에 집중 투자해 수험생들을 공동선발하면 대입 경쟁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바로 지역별 국립대 분포와 인구 분포 사이에 큰 격차가 있다. 특히 인구가 집중된 수도권에 국립대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국립대 네트워크 정책은 경쟁 압력을 줄이는 데 거의 무용하다. 한 학생이 입학정원이 적어도 수만 명인 통합국립대와 입학정원이 3000여 명인 연세대‧고려대에 동시 합격한다면 어느 대학에 진학할까. 말할 것도 없이 연‧고대를 선택할 것이다. 서울대의 자리를 연‧고대가 대신하게 될 것이고 대입 경쟁은 완화되지 않을 것이다. 

대담한 상상력을 발휘한 사회적 타협책이 필요하다. 내가 제안하는 방법은 수도권 지역에 집중된 사립대가 학부 학생선발권을 양보, 전국적 인구비율에 맞는 국‧공‧사립 공동학생선발 체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신 정부가 사립대에 적절한 보상을 해주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세대나 고려대가 학생선발권을 양보하는 조건으로 정부는 대학당 매년 1000억 원을 지금보다 추가 지원하고 대학은 이를 연구비에 집중 투자해 연구업적을 끌어올려 세계 대학순위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 제도를 통해 사교육비(연간 20조 원) 가운데 적어도 절반은 줄일 수 있다. 

거칠게 보아 2023년 이후 매년 고교 졸업자가 40만 명, 대학진학 희망자가 30만 명이라 할 때, 주요 국립대와 수도권 사립대 등이 15만 명 정도를 공동선발하여 선지원 추첨으로 각 대학에 배정하자는 것이다. 지원자들이 1지망 A대학 갑 학과, 2지망 B대학 을 학과, 3지망 C대학 병 학과 식으로 신청하고 단계별로 일정 비율씩 추첨, 배정하자. 

초기에는 다들 서울대‧연‧고대를 1지망으로 쓰겠지만 어차피 입학성적에 따라 배정되는 것이 아닌데다가 졸업 이후에 차별받지 않으리라는 인식이 확산되면 점차 지원 경향이 변화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입 경쟁 압력은 상당히 낮아질 것이다. 

② '자율적 전문가로서의 교사'상 설립 

우리 교육에서 부족한 게 무엇인가. 우리의 교권 개념이 무척 낡고 협소하다는 게 핵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세 차례에 걸쳐 국사를 배운다. 자연히 임진왜란 같은 중요한 사건은 세 번 모두 배운다. 하지만 한 번도 난중일기를 보지 않는다. 얼마 전 모 지역 교장연수에서 60명의 예비교장에게 난중일기를 일부라도 읽어본 사람에게 손을 들라고 하니 다섯 사람이 들었다. 

작년 모 지역 1급 정교사 자격연수에 모인 초등학교 교사 500명 가운데 손들라고 하니 십여 명에 불과했다. 이상한 일도 아니다 우리나라 국사 교육은 난중일기를 읽고 느끼고 토론하는 교육이 아니라 난중일기, 네 글자를 외우는 교육이기 때문이다. 

어떤 교사가 난중일기를 가지고 읽히고 토론하고 에세이도 학생들에게 받겠다고 하는 게 가능할까. 어렵다. 일선 학교 교사들이 신학년에 자기가 담당할 학년과 과목을 언제 알게 될까. 예전에는 3월 2일 아침에 알려줬다고 한다. 지금도 2월 중순이나 돼야 알려준다고 한다. 즉, 자신이 한 학기 수업을 구성하고 준비할 기간이 일주일 정도 밖에 없는 것이다. 겨우 열흘 전에 알려주고는 '잘 가르쳐라'라고 하는 건 교사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학원강사 시절에 새로운 과목을 가르치게 되면 6개월 전부터 수업과 교재를 준비했었다. 

적지 않은 국민이 교사들의 철밥통을 질시하고 게으름을 질타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교사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자율적 전문가로서의 자존감과 역량을 키워갈 기회가 박탈된 불행한 존재다. 교사들에게는 무엇보다 뭘 어떻게 가르치고 평가할지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없다. 학년 단위로 평균 석차를 매기도록 교육부 규칙에 규정돼 있다. 그러니 모든 학급 시험문제가 똑같아야 한다. 

교재 선택권도 없다. 학교 단위로 똑같은 교과서를 사용해야 한다. 교사의 권리를 점진적이되 혁신적인 수준으로 확장하고 교육당국의 권한을 점진적으로 축소해 인력을 교육현장으로 하방하는 게 필요하다. 

ⓒ프레시안(허환주)


③ 공교육의 이중플레이를 없애고 '정성'이 가득한 학교

교육부가 매년 실시하는 사교육비‧의식 조사 결과에서 사교육에 참여하는 목적을 물었더니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학교수업 보충'(44.3%)이었다. 이상한 결과가 아니다. 엄마들이 학벌주의로 중무장해 어린 시절부터 아이를 학원으로 내몬다고 여기는 분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런 엄마들은 강남지역에서나 주류일 뿐 전국적으로 소수다. 그런데 왜 다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사교육을 많이 시킬까. 그건 우리나라 공교육이 놀랄 정도로 불합리하고 무책임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아마 전 세계 유일하게 모국어 문자 해독 교육을 공교육에서 책임지지 않는 나라다. 공식 교육과정에는 초등학교 1학년 때 한글 읽기를 읽히게 돼 있는데, 할애된 시간이 겨우 4주다. 이미 초등학교 입학 전에 글자를 배우고 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당국의 합리적인 태도는 둘 중 하나다. '한글 읽기를 초등학교 1학년 때 몇 개월에 걸쳐 충실히 가르칠 테니 한글 읽기를 미리 선행할 필요가 없다'고 공지하든가, 한글 읽기를 아예 유치원 단계에서 익히도록 교육과정을 개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당국은 이런 합리적 대안을 택하는 게 아니라 '이중플레이'를 한다. 

영어를 예로 들어보자.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처음엔 주당 2시간, 나중엔 주당 3시간 수업을 받는다. 이는 1학년 때 한글을 배울 때와 유사한 문제가 발생한다. 주당 2~3시간 수업만으로 영어를 익히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의 전제, 즉 주당 2~3시간 영어 수업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다는 가정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추가 영어 노출시간이 필요하다. 

교사도, 학생도, 학부모도 이런 이중플레이에 익숙하다. 모국어 문자 해독능력을 부모와 사교육의 책임으로 넘기는 나라, 이것이 우리 교육의 현주소다. 이런 상황에서 대입경쟁 압력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해도, '학교수업 보충'을 위한 사교육이 필요하다. 

앞에서 지적한 한글이나 영어 교과 등에서 두드러지는 불합리한 교육과정과 이중플레이 관행을 신속히 바로잡기 위해서는 분위기 쇄신과 제도개혁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우선 교무회의에서 계급장을 떼고 회의하는 게 필요하다. 내가 아는 교사는 교무회의에서 한마디 할 때까지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잘 되는 혁신학교의 경우, 회의를 하면 부장, 교감, 교장이 계급장을 떼고 회의를 한다. 

교사들에게 내려오는 교육 관련 업무 외의 업무를 줄여야 한다. 1년 동안 일선 학교에 내려오는 공문이 많게는 7000건 정도 된다고 한다. 이는 교사의 업무가 된다. 이를 소홀히 하면 '왕따'를 당하고 승진에서 미끄러진다. 이를 하다보면 자연히 주객이 전도된다. 학생을 가르치고 돌봐야 하는 교사가 정작 학생보다는 잡무에 시달리는 것이다. 교사를 대상으로 '교사로서 회의를 느낄 때가 언제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1위가 '잡무에 시달릴'였다.  

④ 수평적 고교선택제와 보편적 수강신청제를 통한 교육기회의 극대화

일반고의 교육과정을 보면 학생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은 거의 없다. 선택과목이라는 용어가 넘쳐나지만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문과/이과' 말고는 거의 없다. 이는 과목을 선택하는 주체가 개인이 아니라 집단으로 설정돼 있기 때문이다. '학생'이 아니라 '학교'가 통째로 과목을 선택하는 것이다. 

선택과목의 구성도 매우 희한하다. 수학의 경우 8~9개 과목으로 쪼개져 있는데 이름만 선택과목에 불과하다. 실질적으로는 문과수학/이과수학 두 가지 선택이 있을 뿐이다. 국어의 경우도 7개 과목으로 쪼개져 있는데, 미국 고등학교의 교과목과 비교해 보면 전체적으로 작문과 독서 위주로 이뤄진 미국의 경우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화법과 작문'이라든가 '독서와 문법'과 같은 희한한 과목명이 눈에 띄는데, 이는 학생들이 수능준비에 도움이 되는 '화법'과 '문법'에 몰릴 것이 예상되므로 비인기 과목인 '작문'과 '독서'를 기형적으로 각각 화법과 문법에 묶어놓은 것이다. 

최악의 코미디는 집중이수제를 둘러싸고 일어난다. 집중이수제는 나름 상당한 명분을 가진 제도다. 그런데 집중이수의 주체를 '개인'이 아니라 '집단'으로 설정해, 누구나 획일적인 시간표를 따라가도록 만들어 놓았다. 자연히 학교 당국 입장에서는 대입 준비에 유리하도록 국·영·수 비중을 최대화하는 쪽으로 집중이수제를 운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아무리 역사에 관심이 많아도 다른 과목 비중을 줄이고 역사과목을 더 많이 이수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어떤 학생이 다양한 외국어과목을 배우는 데 관심이 있다 해도 이를 정규교육에서 실현하려면 외국어고로 진학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역발상으로 학생들이 일반고에서 다양한 종류와 수준의 외국어를 수강신청해 배울 수 있다면 외고가 필요 없어진다. 서구 선진국에 한국의 외고와 유사한 유형의 고등학교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은, 학생들에게 폭넓은 과목선택권이 존재해 일반 학교에서도 다양한 외국어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서 진정한 의미의 선택과목을 운용하려는 노력은 최근 몇몇 혁신학교로 지정된 고등학교에서 이뤄진 바 있다. 2014년 교육감 선거에서 부분적으로나마 경기도와 세종시의 교육감 선거 공약으로 제시된 바 있다. 하지만 진보적 교육계에서 이 문제가 본격적인 의제로 설정된 적은 없다. 자유주의와 다양성의 가치를 수용하는 것과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진보적 교육계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사상적 도전이기도 하다. 

▲이날 이범 부위원장의 발제 이후에는 패널 토론이 이어졌다. 발언하고 있는 박거용 대학교육연구소 소장. ⓒ프레시안(허환주)


⑤ 내신‧수능‧논술을 통합한 영국식 입시제도의 단계적 도입

한국의 고교 교육과정은 심각한 수준의 이중플레이를 하고 있다. 국가 수준 교육과정을 편성할 때는 대입시험이 없다고 전제하고 3년간 배울 분량을 짠다. 마치 고교에서 대입시험 준비를 해주지 않는 미국‧캐나다처럼 고교 교육과정을 편성한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에서 고3, 11월 초에 치러지는 수능을 준비해주지 않을 수 있는가. 수능 대비 문제풀이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적어도 고3, 1학기 중에 수능 과목 진도를 모두 끝내고 수능 모의고사 문제와 EBS 교재를 풀어댄다. 워낙 오랫동안 이런 편법과 파행에 익숙해져 있어 다들 문제의식도 무감각해진 상태였다. 

그러나 2014년 9월부터 이른바 선행학습 금지법이 시행되면서 이러한 편법을 지속하기 어려워졌다. 물론, 자사고나 특목고는 교육과정 편성의 자율권을 활용해 합법적으로 과속 진도를 나감으로써 선행학습 금지법을 피해갈 수 있지만 자율권이 적은 일반고는 과속 진도를 나가는 게 불가능해진다. 뒤늦게 교육부에서 후속대책을 내놓았지만 교육과정에서 나타나는 고질적인 이중플레이를 정면으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이중플레이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즉 고교교육과정과 대입시험을 합리적으로 연계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무엇보다 수능(객관식)과 논술(논술형)로 이원화된 대입시험을 일원화해야 한다. 다시 말해 대입시험의 대안은 '고교수업과 연계된 논술형 공인평가'로 요약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평가 제도를 가진 나라는 어디에 있을까. 영국의 경우, 고교수업과 입시를 통합한 'A-레벨' 평가를 운영 중이다. 이 평가제는 고등학교 내에서 시행되지만 다섯 군데의 외부 독립기관에서 관리하는 독특한 제도다. 영국에서 대학진학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고등학교들에서는 이 기관들 가운데 하나를 선정해 거기서 제공하는 A-레벨 운영지침에 따라 수업하고 평가한다. 얼핏 보기에는 전통적인 내신과 유사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내신평가와 달리 '공인 평가'로 인정받는다는 점이 다르다. 외부 기관의 정교한 운영지침에 따라 수업과 평가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대학에서 전공별로 4~5과목과 A-레벨 성적을 요구하므로, 학생들은 원하는 A-레벨 과목을 수강신청해 평가받고 지원하는 대학에 이 성적을 제출한다. 

이 제도는 우리 실정에 상당히 잘 들어맞는 장점들을 공유하고 있다. △실험이나 탐구활동 평가 등 단순한 논술형 평가를 넘어서는 요소 포함 △내신평가에 대한 낮은 신뢰도 극복 △사교육에 대한 우려 최소 등이다. 

kakiru@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