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나를 고문했다"
"대한민국이 나를 고문했다"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①] 김관섭에서 유우성까지… 끝나지 않는 '간첩 잡기'

그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겨울, '종북 변호사'로 알려진 장경욱 변호사의 사무실에서였습니다.

"나는 한국의 안보와 자유를 사랑하는 김관섭이라 합니다."

딱딱하게 악수를 청하는 그를 한 번, 장 변호사를 한 번 번갈아 쳐다봤습니다. 그는 자신이 '멸북'을 주장하는 한 보수단체의 간부였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런 분과 '종북 변호사'가 한 공간에 있다니, 이 얼마나 낯설기 짝이 없는 조합입니까. 이상한 눈초리를 느꼈는지, 그가 헛기침을 한 번 한 뒤 말을 이었습니다.

"내 너무나 억울한 사연이 있어 여기까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김관섭 씨. ⓒ프레시안(최형락)


"목숨 걸고 바다 건넜는데…"

보수단체 간부인 김관섭(81) 할아버지는 과거 반공교육 강사였습니다. 30년 넘게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대한민국의 품에 안겨 행복하다"고 외치고 다녔습니다. '자유 수호'를 입에 달고 다니던 김 할아버지는 사실, 고문 피해자였습니다.

감옥 같은 북을 떠나 자유를 찾고 싶었습니다. 1974년, 결국 김 할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물길을 헤쳐 남한으로 내려왔습니다. 당시만 해도 귀순자들은 '용사'라며 대접받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연히 거창한 환영식이 기다릴 줄 알았습니다.

남한 땅에 첫발을 딛자마자 간 곳은 '대성공사'라는 정보기관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환대가 아닌, 고문이었습니다.

"너 간첩이지?"
"박통(박정희 대통령)을 죽이려고 온 건가?"

'아니'라고 말할 때마다 몽둥이와 발길질, 찬물 세례가 날아들었습니다.

깜깜한 독방에서 고문 받던 지옥 같은 날이 45일 흘렀습니다. 어느 순간, 고문은 끝났습니다. 그러나 간첩 누명을 벗었어도 '남한 사람'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꼬박 3년 6개월간, 그는 대성공사에 갇혀있었습니다. 의심이 풀렸는데 왜 계속 남아 있었어야 했는지 그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물어볼 수도 없었습니다. "혹시나 또다시…", 끔찍한 고문의 기억이 떠올라서입니다.


ⓒ프레시안(손문상)


"억울해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40년도 더 지난 일을 이제 와 꺼내는 이유가 무엇이냐,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내가 북한 싫어서 바다 건너 온 사람 아닙니까. 내가 대한민국 잘못했다 하면 북한이 좋아라 할 것 같았습니다. 북한이 틀리고 남한이 맞다는 생각은 여전합니다. 그러니 반공 강연을 30년 했죠. 그런데 죽을 때가 되니, 내 억울해서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대성공사를 나온 이후로도 불행은 이어졌습니다. 가족들도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아내와 아들 모두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고문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는 영영 마비 상태가 되었습니다. 모두 '간첩' 누명이 그에게 남긴 것들입니다.

"간첩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때려잡아 간첩이 맞으면 상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반대 경우엔 책임이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나를 때린 사람들이나 국가나 왜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 겁니까."

김관섭부터 유우성까지… 끝나지 않는 '간첩 잡기' 만행의 역사

김 할아버지가 귀순한 때는 1970년대입니다. 40년도 더 된 옛날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렇게 몽둥이로 때려서 간첩 잡던 시절도 있었지."

그렇다면 지금은? 간첩 때려잡는 시절은 이제 다 끝난 걸까요?

1995년 귀순한 이민복 씨의 증언을 들어봅니다.

"'인간쓰레기'라느니 하는 온갖 폭언을 듣고 마구잡이로 두들겨 맞았습니다. 대성공사를 나가서도 국가정보원에 끌려가 뺨, 가슴을 맞았어요."

2000년대는 어떨까요.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이 터진 건 불과 1~2년 안팎의 일입니다. 조작 간첩 사건의 피해자 유우성 씨의 동생 유가려 씨는 '오빠의 간첩 사실을 불라'며 뺨을 때리는 조사관의 폭행에 못 이겨 자살 시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유우성 씨. ⓒ프레시안(서어리)


"탈북자, 누구나 간첩이 될 수 있다"

단언컨대, '몽둥이로 때려서 간첩 잡던 시절'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탈북자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우리도 사람"이라고. 그리고 ”자유를 찾아온 동포"라고.

그러나 국가정보원 등 정보기관은 이렇게 대꾸합니다. "너희 중에 간첩이 섞여 있을지 모른다고".

1명의 간첩을 잡기 위해 99명의 인권을 유린하는 일을 이런 식으로 정당화합니다. 그렇게 해서 간첩을 잡으면? '장땡', 틀리면? '말고'. 정보기관이 탈북자들을 대하는 태도는 이렇게나 무책임합니다.

<프레시안>은 국가 정보기관이 지금까지 탈북자들에게 가한 '폭력'의 역사를 낱낱이 밝힐 예정입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소개할 이야기들은, 폭력적인 가부장을 닮은 국가권력이 제 발로 찾아온 적대국 사람을 어떻게 때리고 달래서 길들이는지에 대한 기록입니다.


▲김관섭 씨. ⓒ프레시안(서어리)


첫 편으로, 김관섭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김 할아버지는 여든 나이치고 기억력이 무척 좋습니다. 말소리도 또렷합니다. 그러나 압니다. 그가 살아갈 날이 길지 않다는 걸. 총기가 흐려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지난 1월부터, 경기도 안산에서 홀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살아가는 그를 여러 차례 만났습니다. 김 할아버지의의 머리가 녹슬기 전에, 그의 기억을 기록하기 위해….


* 이 기사는 미디어 다음과 공동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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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eori@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