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고용 '물량팀', 죽음을 부른다
다단계 고용 '물량팀', 죽음을 부른다
[조선소 잔혹사] 조선업계의 복잡한 고용구조가 '사고 원인'
2015.09.04 10:16:54
조선업에서 사내하청은 '입안의 혀'로 사용된다. 원청 입장에서는 고용 유연성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노동비용을 낮출 수 있어 기업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된다. 불황기에는 사내하청 노동자 고용 축소로 현장인력을 감축해 고용 탄력성을 확보한다. 반면, 호황기에는 이를 증대해 인건비 절감 효과를 누렸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조선업 성장이 정체되자 노동조합 보호를 받는 정규직 노동자 대신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리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조선업 빅3가 최대 적자폭을 기록하는 지금도 이러한 구조는 반복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조선업 사내하청은 원청과 계약관계라기보다는 단일 기업조직에 가깝기 때문이다. '지휘-명령'이 일원화된 조직이라는 의미다. 원청은 사내하청업체에서 담당하는 공사 물량과 드는 비용 전반 관련, 직영 생산 부서와 같은 수준의 통제력을 행사한다. 사내하청업체의 경영능력이란 주어진 물량에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는 것에 불과하다. 

조선업이 제조업보다 노동집약적 산업이기에 그 효과는 상당했다. 점차 하청노동자를 늘려나갔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이 2014년 발표한 '조선산업 사내하청의 확산과 공정별 현황'을 보면 2013년 기준 국내 9대 조선소의 인력현황은 기능직(직영) 3만5712명·기능직(하청) 10만5041명 등으로 집계됐다. 기능직 중 직영과 사내하청의 비중은 294.1%로, 직영 1명에 하청 3명꼴로 근무하고 있다. 10년 전인 2003년에는 직영 대 하청 비율이 107.5%, 20년 전인 1993년에는 직영 대 하청 비율이 33.3%였다. 

이러한 조선업 사내하청 제도는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세계 조선업 1위'의 현대중공업의 사내하청 제도 형성 전개 과정을 살펴보자. 

ⓒ매일노동뉴스(정기훈)


'위임관리제'로 시작한 사내하청 제도

신원철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가 2003년 발표한 '사내하청공 제도의 형성과 전개: 현대중공업 사례'를 보면, 조선소 사내하청 제도는 조선소가 만들어질 때부터 존재했다. 1970년대 초반부터 '위임관리제'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제도는 경영자가 작업능률에 대한 직접 통제능력이 결여된 상태에서 선택할 수 없었던 간접적 노무관리의 일환이었다.

원청인 현대중공업이 사내하청 제도를 사용한 이유는 경영자가 노동자들의 작업과정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관리체제를 갖추지 못했던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조선소는 인력을 어떻게 관리할지, 어떤 일을 시킬지에 대한 고민이나 시스템이 없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이런 혼란이 사라졌다. 생산관리능력을 확보한 경영자는 그간 경험을 바탕으로 노동자들을 직접 통제하기 시작했다. 경영자는 생산 공정을 파악하고 관리능력이 일정 수준에 이르자 노동자를 직접 관리했다. 하청 제도는 일정 시점이 지나자 생산성 향상에 오히려 장애가 되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1979년을 기점으로 하청 노동자를 직영화하기 시작했다. 1978년 1만2629명이었던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 노동자는 1983년 5423명까지 줄어들었다. 반면, 이 시기 원청 노동자 숫자는 늘어났다. 1980년 6084명에서 1984년 1만7114명으로 급속히 증가했다.

노동자 대투쟁 이후 사라진 하청 노동자, 하지만…

이후 그 이상은 하청 노동자를 원청으로 전환하지 않았다. 직접적 노무관리로 전환한 이후 일정 수의 하청 노동자를 남겨 고용조절기와 특수 작업부문 노동에 한정해 이용하려 했기 때문이다.

ⓒ매일노동뉴스(정기훈)

그러나 이러한 원청의 의도는 1987년에 일어난 노동자 대투쟁으로 무산됐다. 원청과 하청 노동자가 함께 노동권 보장을 요구한 당시 투쟁은 1989년 하청업체가 현대중공업 내에서 거의 사라지게 하는 역할을 했다. 노동자들은 하청 노동자의 원청 전환을 요구안으로 내걸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들의 이직률은 낮아졌다. 동시에 신규채용도 거의 중단됐다. 노동 고착화 현상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노조 압박으로 임금은 매년 인상됐다.

원청은 이런 상황에 대처하고자 1990년대 들어 하청업체에 고용된 사내하청 노동자 비율을 증가시키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의 영향력 확대를 막고 임금 비용 삭감과 노동 유연화를 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이러한 움직임, 즉 간접고용에 대한 규제에 매우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대기업 중심 기업별 노동조합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보니 사용자는 하청 구조를 더욱 확대해갔다. 지금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생긴 이유다. 

건설현장 '십장제'가 조선업 '물량팀'으로 

문제는 이러한 사내하청 제도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세분되고 있다는 점이다. 규모가 커지면서 사내하청 노동 내에서도 분화가 생겼다. 사내하청 내에 건설현장 '십장제'와 비슷한 '물량팀' 소속 사내하청 노동자가 생겨난 것.  

'물량팀'이란 일거리만 있으면 어디든 가서 일하는 이들을 말한다. 공기에 맞춰서 일해야 하는데 노동자가 부족할 경우, 하청업체는 이들과 단기 계약(1개월~3개월)을 맺는다. 압축적으로 일하기 때문에 물량팀 노동자는 하청노동자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다. 

그간 하청 노동자의 가장 큰 불만은 더 힘든 업무를 담당하고 있음에도 정규직과 차별적 격차가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연말 경영성과급의 차등적 지급, 기업차원에서 제공하는 복지에서의 소외 등이 불만 요인이었다. 사내하청에서 일하는 상당수 노동자들이 고숙련자가 되면 물량팀으로 옮기는 이유다. 

금속노조가 발표한 '2015년 조선업종 물량팀 노동조건실태 연구'를 보면 D조선사의 경우 2015년 4월 기준으로 사내하청 노동자 3만 명 중, 1만3000명이 물량팀 등 재하도급 관계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S사의 경우도 사내하청 노동자의 60%가 물량팀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제는 1차 하청업체라고 불리는 하청업체 고용구조가 그나마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협력업체 본공'이라는 정체불명의 용어까지 일반화됐다. 


가속하는 노동자의 죽음

주목할 점은 이러한 물량팀 노동자들이 대부분 산업재해의 당사자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김형균 현대중공업노조 정책실장이 물량팀에서 산업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다. 

"원청은 기성(톤당 단가)을 다운시켜 하청업체를 압박하고, 그에 따라 하청업체는 인건비를 다운시키기 위해 안전보다 공정능률에 더 신경쓴다. 물량팀을 부르는 이유다. 노동자 한 명당 인건비는 하청노동자보다 비쌀지 모르지만, 업무효율은 더 뛰어나다. 자연히 물량팀을 대거 투입하면 안전보다 공정을 더 빨리하는 식으로 일이 진행된다. 이는 작업환경을 불안정한 상황으로 만들고 유지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또 하나는 물량팀은 자주 옮겨 다닌다는 점이다. A란 작업장에서 한 달 일하고 B작업장에서 한 달 일하는 식으로 옮겨 다닌다. 작업장에 익숙해질 만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해 일하는 식이다. 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예를 들어 한 작업 현장에 오래 일한 용접공은 어떤 밸브에서 가스가 더 잘 나오는지 안다. 그리고 어떤 신호수가 어떤 버릇이 있는지도 잘 안다. 크레인 기사의 작업 버릇도 안다. 그렇다 보니 그에 맞춰서 여유롭게 일한다. 하지만 초심자는 그런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작업은 작업자들끼리 서로 연계해서 진행해야 하는데, 갓 들어온 사람에게는 어렵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동하면서 일하는 것도 문제다. 업무 이외의 생활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물량팀은 안정적인 주거지가 아니라 물량팀에서 마련해주는 숙소에서 먹고 자면서 일한다. 가족과 함께 지내지 못하다 보니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지 못한다. 삶이 구조 자체가 불안정한 상황에 있는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문제가 생긴다." 

실제 2014년 현대중공업에서 발생한 죽음의 절반 이상은 물량팀에서 발생했다. '노동의 유연화'를 넘어 복잡 다양한 다단계 고용구조가 하청노동자의 '죽음'을 가속하고 있는 셈이다. 

참고 자료 
- '울산광역시 동구 비정규직 노동자 실태 조사', 2012, 한국비정규노동센터
- '내부노동시장의 구조변화와 재해위험의 전가', 2013, 박종식 
- '한국 조선 산업의 사내하청과 고용관계', 2006, 신원철
- '사내하청공 제도의 형성과 전개 : 현대중공업 사례', 2003, 신원철

- 하청노동자의 역할이란

(이 기획 시리즈는 사단법인 '다른내일'준비위원회와 <프레시안>의 공동기획으로 제작되었으며, 이후 별도의 책자와 영상제작으로 발행될 예정입니다.) 

허환주 기자 kakiru@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