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은 왜 압록강서 '장님'이 되었나?
소설가 김훈은 왜 압록강서 '장님'이 되었나?
[강주원의 '국경 읽기'] 압록강에서 북한만 바라보지 말자
2015.10.05 10:13:09
소설가 김훈은 왜 압록강서 '장님'이 되었나?
'통일' 관련 답사의 단골 코스 : 압록강

1992년 한중 수교 전후부터, 압록강과 두만강은 한국 사회의 다양한 단체와 모임이 기획한 '통일' 답사의 단골 코스다.

일정을 살펴보면, 단둥-집안-백두산-연길-도문-방천 코스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상황이 있다. 예를 들어, 두만강을 제외한 압록강의 답사만 살펴보자. 편도만 계산해도 약 1000킬로미터를 짧은 기간(3박4일 혹은 4박5일)에 소화해야 하는 벅찬 일정이다. 때문에 한 지역에서 반나절을 할애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중국 단둥 일정은 신의주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압록강단교' 방문과 '압록강에서 유람선 타기' 그리고 북한 섬 '황금평'을 '버스로 바라보기'가 전부인 경우가 많다. 북-중 국경 지역인 중국에 갔음에도, 사람들의 시선은 강 건너 북한에 고정되어 있다. 그렇다보니, 그들의 시각과 여행 후기는 '휴전선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것'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광복 70년, 분단 70년 : 반복되는 '북한만 바라보기'

2015년에만 단둥을 다섯 번 방문했다. 그때마다 나는 압록강단교, 유람선, 황금평 근처에서 다양한 한국의 시민·사회단체, 연구자, 언론인이 북한을 바라보면서 "단절과 분단을 이야기하고 미래의 통일과 교류"를 고민하는 모습을 보았다. 또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기념하기 위해, '평화 통일 기행'을 다녀온 모습과 내용을 뉴스와 블로그 등을 통해서 접하였다.

그 가운데, 지난 20여 년 동안의 단둥 답사 코스의 전형과 보편적인 한국 사람의 시선이 압축된 것 같은 답사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중앙일보>가 기획한 '평화 오디세이 : 평화를 향한 성찰과 소통의 오디세이…한국 대표 지성 31인의 5박 6일 동행'이다. 이를 보도한 <중앙일보>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국경은 철조망이다. 장벽이요 단절이다. 접경 지역은 동면, 죽음의 땅이 된다." (<중앙일보> 2015년 7월 6일자)

황금평을 보고서는 이렇게 썼다.

"북-중 경제 협력의 상징인 경제 특구로 지정된 지 5년째다. 하지만 변변한 건물 하나 없다. 짓다 만 청사 건물 주위로 농민들이 논밭을 부치고 있을 뿐이다."

유람선에서의 소회는 이렇다.

"중국의 개방과 북한의 폐쇄가 상황을 역전시켰다. 지금 단둥은 경제적으로 신의주를 지배하고 있다. 단둥에선 강변을 따라 고층 건물이 높이 경쟁을 하는 반면 신의주의 주택은 낡고 공장은 멈춰 있다."

<중앙일보>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단둥을 떠나 집안으로 향한다.

"단절의 접경이 아닌 교류의 접경을 찾아서 온 단둥에서도 답을 찾는 데 한계가 있었다."

압록강단교와 유람선 위에서 신의주의 전경이 보이지 않는다.

<중앙일보> 기사의 숱한 오류는 앞으로 설명할 것이다. 예를 들어, 압록강의 국경을 단절의 국경선으로 보는 오류, 황금평 너머 단둥의 신시가지에서 5년 넘게 북-중 경제 협력이 실천되고 있다는 내용 등. 그런데 숱한 오류 속에서도 하나는 맞는 말이다. 단둥에 가서 압록강 너머 신의주만 보면 평화와 교류의 답을 찾는 데 한계가 있다.

▲ 중국 단둥의 압록강변에서 북한의 신의주 전경을 보기는 쉽지 않다(2015년). ⓒ강주원


한번만 생각을 해보자. <중앙일보>를 따라간 소설가 김훈은 유람선 위에서 신의주를 망원경을 통해서 보고자 했다(<중앙일보> 2015년 7월 6일자). 하지만 망원경은 높은 곳에서 아래를 조망할 때, 비로소 효과적이다. 하물며, 망원경도 아닌 인간의 눈으로 평지와 같은 눈높이로 강 건너 신의주를 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더구나 신의주의 압록강 변에는 주로 군부대 혹은 항만 시설이 주를 이룬다. 나름 북한 제2의 도시인 신의주의 전경은 압록강단교와 유람선 위에서 눈으로 어렴풋이 보이지도 않는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부쩍 자란 신의주 압록강변의 나무는 또 하나의 장애물이다. 그러니 당연히 압록강에서 바라본 신의주는 여전히 낡은 어선과 건물들이 주를 이룬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서울 이북으로 뻗은 도로는 차 한 대 없이 한적하다. 보이는 것은 남북 분단을 상징하는 도로를 따라 설치한 철조망뿐이다."

예를 들어, 한강 건너편에서 차가 한적한 시간대에 도로를 따라서 철조망이 쳐진 자유로만 카메라 앵글에 잡은 다음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이렇게 묘사한다면 가당치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중앙일보>와 김훈을 비롯한 그 숱한 유명인사는 바로 이런 식으로 신의주와 북한을 이야기하고 있다.

"생활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고 언급한 김훈에게 안타까운 마음에 조언해주고 싶다. 단둥의 20층 높이의 호텔과 아파트 옥상에서 망원경이 아닌 눈으로도 확인되는 신의주의 또 다른 모습이 있다. 2~3년 사이에 압록강단교와 유람선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는 약 15층 높이 이상으로 보이는 약 열 동의 아파트단지가 신의주에 건설되고 있다.

▲ 20층 높이의 단둥 호텔 옥상에서 바라본 신의주. 압록강단교나 압록강변에서 보이지 않는 신의주 전경과 최근의 변화상이 그나마 보인다. 건설 중인 신의주의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온다(2015년). ⓒ강주원


▲ 단둥 시내 고층 건물에서 바라본 2015년과 대비되는 2007년의 신의주 모습. 이와 같은 7~8년 동안의 변화의 밑거름과 원인을 북중 국경의 단절과 분단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둥 시내에서 그 답의 일부분을 찾을 수 있다(2007년). ⓒ강주원


▲ <중앙일보>나 소설가 김훈의 관찰과는 달리 신의주 시내뿐만 아니라 신의주 쪽 압록강변에도 외형 변화가 있다. 북중 합작으로 관광과 관련된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2015년). ⓒ강주원


북-중 국경은 휴전선이 아니다

사람들은 압록강에서 북한만 바라본다. 나아가 남북의 휴전선과 압록강으로 대변되는 북-중 국경은 성격과 특징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북-중 국경은 휴전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압록강에 간 그들은 휴전선의 이미지, 단절과 분단으로만 압록강과 북-중 국경지역을 이야기한다.

송호근 서울대학교 교수가 그 전형적인 예다. 그는 압록강단교를 걸으면서 '휴전선의 이미지'로 압록강을 바라본다.

"지금은 막힌 강, 헐벗은 강, 초라한 능선만 드러낸 불임(不姙)의 강이 되었다. 분단 70년 동안 그랬고, 광복 70주년을 맞는 오늘도 그러하다. 간도 이편에서 바라본 저 강은 오랫동안 건널 수 없는 강, 국경이었다." (<중앙일보> 2015년 7월 13일자)

일단 팩트(fact)가 틀렸다. 압록강이 한국 사람이 건널 수 없는 강이 된 것은 2010년 5.24 조치 이후이다. 그리고 2015년 지금도 한국에서 출발한 한국 물건은 압록강을 건너 이틀이면 북한 평양에 도착을 한다. 신의주는 하루면 충분하다.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최소한 그가 말한 불임의 강은 아니다.

소설가 김훈도 마찬가지다. "월경 이탈자를 막기 위해 철조망이 처져 있고" 혹은 "이 강가에서 지금 중국 공안들이 월경한 북한 사람들을 잡으려고 풀숲을 뒤지고 있다"(<중앙일보> 2015년 7월 9일자)고 쓸 때도 팩트 자체가 틀렸다. 북-중 국경 지대의 철조망은 휴전선처럼 끝없이 이어진 것이 아니다.

철조망 사이마다 열린 공간은 수없이 많다. 그곳을 이용해 중국 사람은 철조망 너머에서 농사도 짓고 빨래도 한다. 또 북한 사람과 삶을 공유한다. 또 중국 국경 지역에는 탈북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단둥에는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북한 사람이 2만여 명 넘게 존재한다. 두만강 지역의 중국 국경 도시에도 탈북자가 아닌 북한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

편견에 차서 부분만 보면서 "분단은 일상의 질서와 정서로 고착된 것이 아닌가 하는 위기감을 안고 돌아왔다(<중앙일보> 2015년 7월 6일자)'는 김훈의 글이 아쉬운 이유다.

두만강과 압록강변 즉 북-중/중-조 국경 지역은 우리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곳이다. 단둥 시내를 걷다보면, 눈으로 보고 경험을 하면서 북한의 변화와 교류의 실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와 공간이 산재해 있다. 또 남북 교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북한 사람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물론 그곳에는 압록강과 국경에 기대어 살고 있는 한국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압록강에서 부분만 보여주는 북한만 바라보고, 국경 지역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고 휴전선의 시각으로 단절과 분단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 평양으로 귀국할 때 북한 사람은 조선족 식당뿐만 아니라 정통 한국 요리를 표방하는 식당들의 도시락을 애용하곤 한다. 단둥에서는 북한 사람과 한국 사람이 같은 식당과 술집을 이용한다(2015년). ⓒ강주원


▲ 2010년 5.24 조치 이후, 한국 사람이 단둥-평양행 국제열차에 몸을 싣고 북한 사람과 함께 도시락을 나누어 먹을 수는 없다. 그러나 국제 기차를 타는 북한 사람의 가방에는 도시락과 함께 어떤 물건들이 있을까? 중국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단둥 시내에는 한국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2015년). ⓒ강주원


단둥에서의 남북 교류는 20년 넘게 현재 진행형

2004년 여름, 중국의 최대 국경 도시 단둥에서 마주친 내용은 인류학 박사 학위 논문을 위한 연구 지역을 찾던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신의주에서 왔다는 (탈북자가 아니라 공식적으로 돈을 벌러 단둥으로 건너온) 북한 아줌마가 삼시세끼를 준비해주던 민박집의 조선족 사장님은 단둥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다. 1992년부터 시작된 모습이다.

"중국 학교에 가보세요. 같은 반에 조선(북한), 한국, 조선(북한)화교, 조선족 아이들이 중국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2010년 5. 24 조치 이후, 한국 사회는 남북 관계가 대부분 단절되었다고 말한다. 남북의 일상적인 만남은 미래의 일로 치부한다. 하지만 다시 찾은 2015년 3월의 단둥은 1992년, 2004년, 2010년과 비교해서 남북의 만남의 현장과 사례들이 달라진 것이 없었다.

어떤 한국 사람의 술자리에서는 대북 사업 파트너로 자주 만나는 북한 주재원 아들의 단둥 생활, 그러니까 '그의 빠른 중국어 실력 향상'을 놓고 덕담이 오갔다. 이른 아침, 단둥역 광장에는 여전히 평양행 국제 기차를 기다리는 수많은 북한 사람을 볼 수 있었고, 그곳에서 북한 사람을 만난 조선족은 한국에서 하루 전에 구입한 의약품과 단둥의 한국 식당에서 주문한 도시락을 건네주고 있었다.

10년 넘게 만나고 있는 단둥의 한국 사람은 나에게 이렇게 푸념하곤 한다.

"단둥만큼 한국의 매스컴에 많이 나오는 외국 도시도 없다. 또 단둥만큼 왜곡되는 도시도 없다. 왜 한국 사회는 단둥에서 남북 만남이 20년이 넘게 진행되고 있는 사실을 주목하지 않을까! 통일이 미래가 아니고 현재임을 보여주는 것이 단둥인데! 왜 단둥에 와서 북한만 바라보고 단절만 이야기 하는가! 단둥에는 북한 사람도 있고 한국 사람도 있다."

나는 감히 '압록강에서 북한만 바라보지 말자!'고 제안을 한다. 앞으로 나는 압록강에서 강 건너편이 아닌 강 이편을 보면서 남북 관계, 북-중 관계의 현실과 미래를 이야기하겠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tyio@pressian.com 다른 글 보기
▶ 필자 소개
강주원 박사는 북한 사람, 북한 화교, 조선족, 한국 사람 그리고 탈북자를 동시에 연구하는 인류학자다. 2006년 10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15개월 동안 단둥에서 살면서 현장 연구를 한 것을 비롯해 지난 10년간 단둥을 수없이 방문하며 수백 명의 단둥 사람과 인간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국내외 언론 및 시민·사회단체의 국경 취재 및 관광을 자문하는 일도 병행 중이다.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글항아리 펴냄) 등의 저서가 있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