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올라간 베트남, 몸값 떨어진 대한민국
몸값 올라간 베트남, 몸값 떨어진 대한민국
[박홍서의 중미 관계 돋보기] 미-중-월 삼각 관계
10년 만에 베트남 방문하는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어제(11월 5일)부터 이틀간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다. 지난 10여 년간 중국 국가주석의 베트남 방문이 전무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이번 방문은 양국 관계 개선에 대한 중국의 의지를 선명히 드러낸다.

경제 분야에서 2014년 현재 양국의 무역 총액은 836억 달러로 중국은 베트남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고, 베트남은 아세안 국가 중에서 중국의 2번째 무역 상대국이다. 중국은 또한 야심차게 추진중인 '일대일로' 정책에 베트남의 적극적 협력을 기대하고 있기도 하다. 안보적 측면에서도 중국은 남중국해 분쟁 당사국인 베트남과의 관계 증진을 통해 역외 국가인 미국의 공세를 차단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미국 역시 베트남은 대중국 관계에 있어서 매우 유용한 카드일 수밖에 없다. 미국은 TPP(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에 베트남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평화유지군 등과 같은 군사 분야에 있어서도 베트남과의 협력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응웬푸쫑 베트남 공산당 총서기가 1995년 수교 이후 최초로 방미해 오바마 대통령과 접견했다. 이 자리에서 오바마는 조속한 시일 내의 베트남 방문을 약속하기도 했다.

미-중에게 이용당하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했던 베트남의 '과거'

베트남을 이용해 상대를 견제하려는 미-중 양국의 행태는 40여 년전 베트남을 매개로 상호 협력하려 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자못 흥미롭기까지 하다. 국제 정치의 씁쓸한 단면이기도 하다.

1964년 8월 통킹만 사건으로 '베트남 전쟁'이 현실화되자, 중국은 공병 및 포병 부대를 파병해 베트남에 대한 군사 지원을 개시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중국은 미국과의 전면적 무력 충돌은 회피하려 했다. 마오쩌둥은 1965년 1월 <중국의 붉은 별>의 작가 에드가 스노우(두레 펴냄)를 만난 자리에서 베트남으로의 출병이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이후 저우언라이도 방미를 앞둔 아유브 칸 파키스탄 대통령에게 이를 재차 강조했다. 미국에 대한 메시지였다.

미국 역시 바르샤바에서 비정기적으로 개최되던 미-중 간 대사급 접촉을 통해 중국에 대해 적의가 없음을 확인시켰다. 실제로 미국은 중국이 레드라인으로 정한 17도선 이북으로 지상군 파병을 자제하고 공군력에 의한 폭격('북폭')만을 감행했다.

미-중 양국의 몸 사리기는 한국 전쟁 때의 '실수'를 되밟지 않겠다는 학습 효과였다. 1950년 10월초 미군의 북진이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중국은 미군의 38도선 월경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를 무시한 미군의 북진은 결국 중국군의 대규모 군사 개입을 초래해 양측 모두에게 막대한 손실을 초래했던 것이다.

더욱이 중국은 중-소 분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소련의 '간계'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련이 중국을 베트남 전쟁에 연루시켜 미국과 대적케 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인 것이다. 소련이 한국 전쟁에 중국을 연루시켜 미국과 대적하게 했던 것과 동일한 상황이다. 실제로 중국은 베트남 지원에 있어 사회주의 각국의 '연합 행동'을 제의하는 소련의 주장을 일축하고, 중국의 영공을 통해 베트남에 대한 군수 지원을 하겠다는 소련의 요구 역시 거부했다.

베트남전에 대한 중국의 의도와 행태는 '원월항미(援越抗美)'라는 베트남전 당시 중국의 전쟁 동원 구호에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 전쟁기 구호인 '항미원조(抗美援朝)'와 비교해 보면, '항미'를 뒤에 위치시킴으로써 베트남전은 베트남 인민들이 주체적으로 싸워야 하며('인민 전쟁'), 중국은 보조적 역할에 머무를 것임을 드러낸 것이다.

문제는 중국의 소극적 지원 행태가 전쟁 후 중-베트남 관계를 악화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중국의 대미, 대소 관계 속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하더라도 중국의 행태는 베트남의 입장에서는 '배신 행위'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다. 베트남 통일 직후 중-베트남 관계가 급속히 경색되기 시작하고 급기야 1979년 양국 간의 무력 충돌까지 발발하게 된 연유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특히, 2월 17일 발발한 중-베트남 전쟁은 그해 1월 1일 수립된 중-미 관계 정상화와 깊은 상관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2월초 방미해 미국의 환대를 받은 덩샤오핑이 귀국하자마자 베트남에 대한 '징벌전'을 개시했다는 사실은 중-베트남전 당시 중-미 관계가 헨리 키신저의 표현대로 '준동맹' 상태로까지 진전되었음을 보여준다. 미-소 간 신냉전의 전조가 꿈틀대는 상황에서 중-베트남 전쟁은 '소련+베트남 vs. 미국+중국'의 전쟁이기도 했던 것이다.

2015년 미중 양국이 이제는 상대를 견제하기 위해 각기 베트남과의 관계 증진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제 정치의 이익 추수적 속성을 극명히 드러낸다. 강대국 간의 '적절한' 경쟁은 그들과 동맹 관계로 엮여 있지 않는 중간 지대의 약소국들에게 소위 '약자의 힘'을 선사한다. 현재 베트남의 상황이 바로 그렇다. 2011년 남중국해 문제를 둘러싸고 국민 동원령까지 준비하며 대중국 강경책을 구사했던 베트남의 '기개'는 이런 구조적 상황에 기인한다.

몸값 올라간 베트남과 한반도의 현실

베트남의 경험은 한반도에 어떠한 함의를 주는가. 역사적으로 한반도와 베트남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매우 유사한 경로를 걸어왔다. 전통 시기 중화 질서의 '충순한' 구성원이었던 양국이 1884년 청불 전쟁과 1895년 청일 전쟁으로 독립국이 되었다는 사실, 이후 분단과 내전이 이어졌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베트남은 먼저 통일이 되었고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되어 있다.

그러나 미-중 경쟁 구조 속에서 한반도의 '몸값'은 베트남의 그것처럼 크지는 않다. 중국에게 북한이라는 보험이 있고 미국에게 남한이라는 보험이 있는 이상,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상대방의 동맹국을 '포섭'해야 할 절박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남북 관계의 개선 및 그를 바탕으로 한 제도적 통합이 되기 전까지 한반도는 현재 베트남이 누리는 '약자의 힘'을 가지기 힘들다.

한국이 베트남에 비해 경제적으로 부유하다고 국제정치의 입지마저 부유한 것은 아니다. 훨씬 빈곤하다. 한반도는 여전히 베트남의 과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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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한국외국어대에서 중국의 대한반도 군사개입에 관한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덕여대 연구교수 및 상하이 사회과학원 방문학자를 역임하고, 현재 강원대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관계 이론, 중국의 대외관계 및 한반도 문제이다. 연구 논문으로 <푸코가 중국적 세계를 바라볼 때: 중국적 세계질서의 통치성>, <북핵 위기시 중국의 대북 동맹 딜레마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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