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망치한, 중국은 북한을 포기하지 못한다
순망치한, 중국은 북한을 포기하지 못한다
[박홍서의 중미 관계 돋보기] 중국에게 북한이란?

"B-52가 한반도 상공을 비행했다고? 김정은 공로네. 미국이 한국에 최신 무기 배치하고 한-미-일 동맹 강화해 중국 견제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명분이 어디 있겠어. 북핵 때문에 접경 지역 위협받는 거 빼고 중국한테 도대체 무슨 좋은 점이 있는데? 김정은 절대 가만 놔두면 안돼!"

북한 핵실험 이후 미 공군 B-52 전폭기가 한반도 상공을 경고 비행했다는 <인민일보> 기사에 달린 중국 네티즌의 댓글이다. 북한 핵실험에 대한 중국 네티즌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김정은을 노골적으로 욕하는 이들이 한쪽에 있다면, 그 반대쪽은 북한이 저럴 수밖에 없는 건 결국 미국 때문이라는 이도 있다. 또 1960년 우리(중국)의 과거를 생각해 보자는 이도 있다. 지금 북한과 뭐가 달랐냐면서.

중국 정부의 시각은 어떤가? 중국 정부의 입장은 공식적인 것과 비공식적인 것 두 가지로 나뉜다. 공식적인 입장은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에 잘 요약되어있다.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안정과 평화,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희망한다."

그 방법은 물론 6자 회담의 조속한 개최다. 십수 년 동안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다.

반면, 북핵에 대한 중국의 비공식적 입장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걸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북 정책 결정자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다. 정치국 상무위원들, 외사영도소조 그리고 인민해방군이 그들이다. 문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의사 결정 과정이 비밀스럽기도 하거니와, 어떤 국가의 외교 정책 결정자들이 그 속내를 알려주겠는가?

피로감은 있으나 포기할 수는 없는 존재

따라서 우리가 중국의 대북 정책을 알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사후적 행태를 통한 추론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사후적 추론을 통해 보면 결론은 결국 하나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피로감'은 갖고 있을지 모르나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2006년 1차 북한의 핵실험부터 4차 핵실험까지 중국은 '공식적'으로 격앙된 반응을 보여 왔다. 특히, 북한의 3차 핵실험은 시진핑 집권과 맞물리면서 북중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중국의 꿈"을 외치면서 출발한 시진핑 정권에 북한은 초장부터 어깃장을 놓았다. 중국에게 북한은 여전히 냉전적 사고에 머물러 있는 철부지다. 무엇인가를 얻어내기 위해 심술만 부리는 '응석받이'다.

그 결과 시진핑 집권 이후 고위급 외교도 단절되었다. 류윈산 정치국 상무위원의 방북이 그나마 최고위급 인사교류였다. 모란봉 악단 공연으로 순풍이 부나 했는데, 석연치 않은 이유로 공연은 취소되었다. 이제 북한은 4차 핵실험까지 감행했다. 당연히 이번 핵실험으로 북-중 관계는 더욱 경색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북한의 강압 외교에 대한 중국의 격앙된 감정이 곧 북한 포기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1차 핵실험부터 지금까지 북핵 문제의 '설겆이'는 결국 중국이 했다. 유엔 대북 제재에 찬성하면서도 "유관 국가의 냉정"을 요구해왔다. "좀 더 실질적 압력을 행사해야 하는거 아니냐"는 미국의 요구에 언제나 "북한은 주권 국가이고, 우리의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다"란 말로 맞받아쳐왔다.

사실일 리 없다. 많은 논자들이 지적하듯, 북한은 원유 대부분을 중국으로부터 공급받는다. 그게 막히면 북한의 군사력은 무용지물이다. 당장 전투기를 띄울, 전차를 굴릴 기름도 없다. 공장의 기계도 모두 멈춘다. 북한에 대해 영향력이 없다는 소리는 "작전권은 우리가 갖고 있지만 한국군이 뭐든 알아서 한다"고 주장하는 미국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 부담은 최소화하고 효용은 극대화하려는 미니맥스 전략이다.

북한 문제가 터질 때마다 한국의 신문 지상이건 연구자 집단이건 항상 터져 나오는 목소리가 있다.

"이번에야말로 중국의 입장이 달라질 거라고.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 게다가 한중 관계가 좋아졌잖아."

불행히도 '자기 희망적'인 단견들이다. 이러한 주장의 가장 큰 맹점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정책을 '행위자'의 문제로 환원해 버린다는 것이다. 즉, 북한 정권이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중국의 대북한 포기 가능성을 평가한다. 김정일 정권이 또 김정은 정권이 중국을 계속 괴롭히기 때문에 포기해 버릴 것이라는 소리다.

과연 그런가? 1차 핵실험부터 지금까지 중국은 과연 북한 붕괴를 불사하고 있는가? 중국의 북한 포기론은 중국의 대북 정책이 북한 정권 때문이 아니라 보다 큰 구조적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지 못한다.

중국과 한반도, 그 순망치한의 역사

1592년 왜군이 서울을 유린하고 평양을 점령하자 다급해진 명 조종은 파병을 결정한다. 파병소식을 조선에 알린 사신 쉐판(薛藩)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 선조를 뒤로 하고 황제에게 장계를 보낸다. <선조수정실록>에 나오는 한 대목을 그대로 옮겨보자.

"돌아보건대 안타깝게 여겨야 할 상황은 조선에 문제가 있지 않고 우리 나라의 강역에 있다는 점이며 어리석은 제가 깊이 염려하는 바는 강역에만 그치지 않고 내지(內地)까지 진동할까 하는 점입니다. 그러니 군사를 징발하는 것을 한 순간인들 늦출 수 있겠습니까. 대저 요진(遼鎭)은 경사(京師)의 팔과 같으며 조선은 요진의 울타리와 같습니다. (…) 200년 동안 복건성(福建省)과 절강성(浙江省)이 항상 왜적의 화를 당하면서도 요양과 천진에까지 이르지 않았던 것은 어찌 조선이 울타리처럼 막아주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순망치한의 논리다. 그로부터 300년 후인 청일 전쟁기 이 순망치한의 논리는 다시 조선 문제에 그대로 대입된다. 당시 중국 외교를 총괄하던 리홍장의 일관된 논리였다. 1882년 임오군란 때 일본과의 분쟁을 우려하여 강경파 대원군을 잡아갔던 중국은 갑신정변이 터지자 부랴부랴 대원군을 돌려보낸다. 이제 대원군을 이용해 친일파들을 견제하려 한 것이다. 중국에게 중요한 건 대원군이나 고종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조선이라는 지정학적 가치였다.

그리고 50년 후인 1950년 10월 초. 미군이 중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38선을 넘어서자 베이징에서는 일련의 정치국 회의가 열린다. 회의에서는 파병을 둘러싸고 격론이 오간다. 린뺘오를 비롯한 다수가 파병을 반대했다. 논리는 간단했다. 불과 1년 전 신중국이 건립된 마당에 무슨 파병이냐고. 내부 통합과 건설이 중요하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결정적 키를 쥔 마오쩌둥은 파병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가 제시한 논리가 바로 순망치한이었다.

물론 이런 얘기들을 봉건 시대나 냉전 시대의 우화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1994년 6월. 영변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공습 가능성이 높아지던 무렵 북한 인민군 총참모장인 최광은 중국으로 달려가 장쩌민을 만난다. 바로 그 자리에서 장쩌민은 순망치한이란 단어를 끄집어내며 최광을 안심시킨다. 1592년과 1994년 사이에 차이는 없었다.

명, 청, 냉전기 중화인민공화국, 그리고 탈냉전기 중화인민공화국, 이들은 분명 그 정책 결정자들의 구성원도, 이념도, 정책 방향도 달랐다. 그러나 그들 모두 400년이란 시차를 두고 '순망치한'을 주장했다. 결국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은 행위자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구조의 문제란 것을 극명히 보여준다. 그 누가 중국 지도부가 되든 동일하다는 얘기다.

2016년. 아시아로의 회귀네, 재균형이네, 또 한-미-일 동맹이네, 남중국해 문제네 하며 중국을 견제해 들어오는 미국. 당연히 중국에게는 가장 위협적인 국가일 수밖에 없다. 미국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고 B-52를 띄운다면 중국에게는 북한 전체가 대미용 사드고 B-52다. 불편한 진실이다.

향후 중국의 대북 정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계속 이렇게 북한에 끌려다닐 것인가? 중국에게 상책은 북한을 중국품 안에서 중국식 개혁 개방을 통해 국제 질서의 안정적 행위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1882년 이후 조선에 대한 '권도 정책'을 통해 미국 및 서구 제국과의 수교를 중재하던 중국의 입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권도 정책의 핵심 역시 조선이 중화 질서에서 달아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였다.

실제로 중국은 덩샤오핑 시대 이후 끊임없이 북한에 중국식 개혁 개방을 권유해 왔다. 문제는 북한이 그걸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 통치 권력의 최대 목표는 결국 권력 유지이며 개혁 개방은 오히려 그 목표에 하등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중국의 차선책은 6자 회담이다. 사실 6자 회담으로 북핵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핵 문제는 근본적으로 북핵 포기라는 미국의 입장과 그것을 거부하는 북한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에 그 타협점을 찾기 어렵다. 단지 타협했다는 '자기기만'만 있어 온 게 사실이다. 제네바 합의, 9.19 공동 성명, 2.13, 10.4 합의처럼.

그래도 중국이 6자회담을 외치는 목적은 결국 현상 유지다. 더 이상의 악화를 막자는 것이다. 최소한 6자 회담 과정 중에는 상황을 악화시키는 행동들을 자제할테니. 문제는 북한이 이제 6자 회담마저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게 남은 선택은 무엇인가?

북한의 '게토화'다. 북한을 방치해 놓고 북한발 위기가 중국으로 또 동아시아로 퍼져나가는 것만 막자는 전략이다. <디스트릭트 9>란 영화가 있다. 권력은 외계인으로 상징화되는 '문제아'들을 한 구역에 몰아넣고 방치해 버린다. 단 한 가지 철칙만 제시된다.

"뭘 하든 그 지역만 벗어나지 말라!"

후기 산업 국가에서 흔히 보이는 '슬럼화' 전략을 국제 정치로 확장한 것이다. 미국은 이미 '전략적 인내'라는 이러한 구역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기도 하다.

4차 핵실험 이후의 북-중 관계는?

4차 핵실험 이후 북-중 관계는 보다 경색될 수밖에 없다. 중국의 대북 정책도 6자 회담과 게토화 전략 사이 어디쯤에서 결정될 것이다. 물론, 북한 붕괴는 논외의 문제다. 그건 미국에게 북한을 던져주는 것과 진배없다. 중국이 그런 선택을 할 가능성은 타이완 독립을 허용할 가능성보다도 낮다. 실리적인 측면만 놓고 보면 타이완보다도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가 더 크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는 권력들 간의 이해관계가 합치되기 전까지는 해결되기 힘들다. 문제는 권력들 간의 이해관계가 근본적으로 합치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 전에는 북한과의 수교를 거부할 것이고, 북한은 핵 포기 자체를 정권의 붕괴로 생각할 것이다.

중국은 북한으로 인해 미국과의 분쟁에 연루되는 것도 방지해야 하고, 반대로 북한이 붕괴되는 것도 방지해야 한다. 북한에 '은밀한' 압력을 넣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바라는 대로 북한에 실질적 압력을 행사할 어떠한 합리적 동인도 없다. 따라서 한반도 비핵화, 안정과 평화,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그리고 6자 회담만을 반복해 외칠 것이다. 이렇다 할 전략적 레버리지가 없는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방황하다 가끔 중국을 원망할 것이다. 왜 안 도와줘, 이러면서.

결국 북핵 문제는 영원히 풀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이해관계가 완전히 소멸되지 않는다면. 그래서 비극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북핵이라는 비극은 권력들의 작품이지 이 땅에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게까지 비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 그들이 북핵이라는 권력 놀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고 휘둘리고 또 동원당해야 한단 말인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하기'가 필요한 때이다.

tyio@pressian.com 다른 글 보기
▶ 필자 소개
한국외국어대에서 중국의 대한반도 군사개입에 관한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덕여대 연구교수 및 상하이 사회과학원 방문학자를 역임하고, 현재 강원대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관계 이론, 중국의 대외관계 및 한반도 문제이다. 연구 논문으로 <푸코가 중국적 세계를 바라볼 때: 중국적 세계질서의 통치성>, <북핵 위기시 중국의 대북 동맹 딜레마 연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