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는 트럼프의 멘토? 그럼, 미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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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통] <포스트 민주주의>
2016.06.08 15:52:23
극우 포퓰리즘이 세계를 집어 삼키고 있습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프랑스의 마린 르펜(장마리 르펜의 딸),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등의 극우 정치인이 대표적입니다.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극우 신생 정당이 대단한 득표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고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많은 사람이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가 낳은 괴물 정도로 극우 포퓰리즘을 평가합니다. 실제로 여러 전문가가 이에 동의하고요. 신자유주의가 기성 정치를 무력화하면서, 자신의 이해를 대변할 정치 세력을 찾지 못한 대중이 증오로 무장한 극우 포퓰리즘에 혹한다는 것이죠.

현충일인 지난 6일, '독서통'은 신자유주의가 이처럼 정치에 수갑을 채운 상황을 새로운 개념으로 설명한 <포스트 민주주의>(콜린 크라우치 지음, 이한 옮김, 미지북스 펴냄)를 놓고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김윤철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를 모시고 왜 신자유주의가 극우 포퓰리즘을 낳았는지를 짚고, 더불어 한국의 상황도 점검해 보았습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입니다.

▲ 극우 포퓰리즘 광풍이 일고 있다. ⓒAP=연합뉴스



극우 포퓰리즘, 신자유주의 광풍이 낳은 괴물

김종배 : 최근 외신을 장식하는 인물이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입니다. 트럼프가 집권할 가능성에 전 세계가 떨고 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 칼럼니스트는 "트럼프가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면 내가 신문을 먹겠다"고 했다가, 정말 먹게 됐죠.

미국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필리핀의 트럼프도 있어요.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당선인이죠. 이 사람도 막말로 유명합니다. 언론에 보도된 것 하나만 얘기하면, "범죄자들의 시체를 빨랫줄에 널어버리겠다"고 했다죠.

오스트리아의 트럼프로 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노르베르트 호퍼 자유당 후보죠. 이 사람은 대선 결선 투표까지 갔더군요. 극우 정당의 리더인데, 전형적인 반이슬람주의자입니다. "남쪽 국경에 담을 쌓고 무슬림의 침략을 저지하자"고 했죠.

브라질에도 있어요. 자이르 보우소나르 하원의원인데, 이 사람은 차기 대선 유력 주자라더군요. "내 아들이 게이라면 밖에 나가 죽는 게 낫다"고 했어요. 아이티 여성을 비하하면서 "그 나라 여성은 씻지도 않고 몸을 판다"고 막말하기도 했고요.

막말 정치인이 뜨는 세계적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극우 포퓰리스트들이 세계적으로 활개치고 있죠. 왜 이런 인간들이 세계적으로 약진하는가, 여러 가지 분석이 나왔죠.

강양구 : 가장 많이 거론되는 건 신자유주의로 인한 양극화, 그리고 중산층의 붕괴입니다. 붕괴한 중산층의 불만을 받아 줄 정치 세력이 부재한 틈을 타 극우 포퓰리스트가 등장했다는 거죠.

김종배 : 그렇죠. 많은 사람이 이런 분석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런데 딱 거기서 멈추는 것 같아요.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 하지 않을까요? 왜 기성 정치는 신자유주의 광풍에 그토록 무력했는가?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읽어볼 책이 바로 이 질문에 대답하는 책이죠?

강양구 : 사실 이 문제를 놓고서 씨름하는 책은 꽤 있어요.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책이 바로 콜린 크라우치의 <포스트 민주주의>입니다.

콜린 크라우치는 영국의 유명한 사회학자입니다. 최장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가 1943년생인데, 크라우치는 1944년생이에요. 원로 사회학자라고 할 수 있죠. 이 분은 원래 영국과 유럽의 공공 정책, 노동 시장이 신자유주의 충격으로 어떻게 망가졌는지를 연구했어요. 그러다 만년에 더 큰 질문을 던집니다.

유럽, 또 세계 곳곳에서 이렇게 공공 정책과 노동 시장이 망가지는데, 왜 정치는 이것을 막지 못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크라우치는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현대 민주주의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품게 됩니다. 이에 관한 본인 나름의 답변을 내놓은 책이 바로 <포스트 민주주의>입니다.

이 책에서 크라우치는 현재 유럽 정치를 지배하는 개념으로 '포스트 민주주의'를 주장합니다. 처음 이 개념이 등장한 건 2000년이고요. 그 뒤에 여러 논쟁까지 포함해 종합적으로 정리한 책이 바로 2004년에 나온 <포스트 민주주의>입니다.

김종배 : 오늘 포스트 민주주의 개념을 함께 얘기할 분은 누구시죠?

강양구 : 과거 팟캐스트 <이쑤시개>에서 이철희 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호흡을 맞추며 정치, 사회 현상을 논평해주셨던 정치학자 김윤철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입니다.

김종배 : 교수님, 어서 오십시오.

김윤철 : 안녕하십니까.

김종배 : 교수님은 이 책을 언제 읽으셨어요?

김윤철 : 2008년 한국에 나왔을 때 읽었습니다. 이 책은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교재로도 사용되고 있어요. 근대 문명의 여러 문제점, 특히 그 가운데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짚는 과정에서 크라우치의 글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 김윤철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자본, 민주주의 무력화의 도구

김종배 : 이 책의 부제가 '민주주의 시대의 종말'입니다. 우리가 아는 고전적 민주주의 시대가 갔고, 지금은 포스트 민주주의 시대라는 것 아닙니까? 포스트 민주주의 개념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윤철 : 우선 크라우치는 포스트 민주주의가 비민주주의, 반민주주의 개념은 아니라고 명확히 합니다.

강양구 :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 대 반민주주의' 식의 이분법으로 생각하곤 하죠. 그런데 크라우치는 그런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죠.

김윤철 : 네. 기존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는 인민 주권 개념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또 이를 작동하는 중요한 제도인 정당이나 선거도 살아있죠.

하지만 크라우치는 이런 민주주의가 인민 주권의 실현을 위해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시대의 기업 지배 권력 아래에서 민주주의가 기존과 다르게 움직인다는 걸 중요한 문제로 꼽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거나, 그들의 권리를 대리해 실현하는 정치 질서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거죠.

강양구 : 민주주의의 형식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민주주의의 본래 목표인 보통 사람이 지배하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정치는 부재한 현실을 짚은 거죠.

김종배 : 쉽게 얘기해 포스트 민주주의란 기업 권력에 의해 조종되는 민주주의라고 보면 되겠네요.

그렇다면, 기업 권력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조종한다는 겁니까?

김윤철 : 역시 돈이죠. 크라우치 책에서 핵심적 개념이 '정치 계급'입니다.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면 직업 정치인입니다. 계속해서 국회의원을 하는 사람이 기업의 돈으로 정치인의 지위를 유지한다는 것이죠. 따라서 예전에는 당원이 낸 당비로 운영되던 정당이 이제는 기업의 돈으로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결국 정치가 기업 영향력 아래에 놓여 버렸죠.

강양구 : 직업 정치인 하면 현역 국회의원만 떠올리기 쉽죠.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정치 계급에는 사실 세 가지 범주의 직업군이 포함됩니다. 현역 정치인뿐만 아니라 전문가, 로비스트 등도 정치 계급이라는 거예요. 특별한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어요.

요즘 정부나 정당이 정책을 만들 때 외부 전문가의 도움이 필수예요. 심지어 정당의 공천을 외부 전문가에게 맡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외부 전문가는 바로 정당이 새로운 정치인을 충원하는 대표적인 '풀(pool)'이죠.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와 현역 정치인 사이의 경계는 흐릿해집니다.

국회의원이나 정치인 출신 관료를 지내다가 임기가 끝나면, 이들은 기업이나 로펌의 고문 등으로 위촉되어서 막대한 급여를 받으며 로비스트로 활동합니다. 그러다 기회가 되면 다시 선거에 나가서 국회의원이 되거나, 혹은 관료로 임명되죠. 그러니 로비스트와 정치인의 경계도 흐릿하죠. 크라우치는 이들을 모두 정치 계급이라고 부릅니다.

김종배 : 이제 본격적으로 얘기를 해보죠. 정치 계급을 이끄는 두 가지 힘이 있겠죠. 한 쪽에는 유권자인 시민이 있고, 반대쪽에는 기업이 있습니다.

크라우치는 신자유주의 광풍이 일면서 노동 부문의 변화, 즉 전통적 계급 구조가 해체되고 노동조합이 주변화했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이로 인해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국민의 힘이 약화했다고 보죠. 따라서 정당도 전통적인 계급 정당을 벗어나 무지개 정당으로 변했고요.

김윤철 : 정당의 역사라고 할 수 있겠죠. 정당 정치의 전성기가 19세기 말 노동 계급 등장과 함께 열렸습니다. 대중 정당이라는 모형이 유럽에서 처음 나왔으니까요. 당원을 중심으로 한 정치죠.

그런데, 정당 정치가 특히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친 후 변화합니다. 복지 쟁점이 정치권에서 소화되고, 산업 구조가 변화하면서 노동 계급은 안정화됐죠. 그러니 노동 계급의 대표성만 내세워서는 표를 얻을 힘이 떨어지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정당이 정교한 정책적 차이를 부각하거나, 이미지를 강조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이게 말씀하신 무지개 정당, 포괄 정당이죠.

포괄 정당의 과정을 거치면서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요? 정당의 목표가 표를 많이 끌어오는 것이니, 정교한 정치 공학이 필요하죠.

김종배 : 노동 계급 같은 특정 지지자에 기반을 둔 정치가 아니라, 공학 정치가 중요해진 거군요. 전략과 기법을 중시하는.

김윤철 : 그렇습니다. 안젤로 파네비안코라는 정당 이론가는 "선거 전문가 정당이 등장했다"고 하죠. 이 사람이 바로 강양구 기자가 말한 관료, 전문가 출신과 같은 사람입니다. 선거 이미지 전략을 강화하는 데 뭐가 필요합니까? 돈이죠. 그러니 정당이 기업과 같이 막대한 후원을 하는 자본에 기대게 됩니다.

크라우치는 이 현상을 두고 '기업 정당'이라고 표현합니다. 정당이 기업에 완전히 종속되는 거죠. 대표적인 예가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와 같은 기업가 출신 정치인입니다. 한국에도 정주영과 같은 인물이 있었죠. 기업가가 아예 정치 무대 전면에 나섰습니다. 이런 일을 통해 정치가 자연스럽게 대중으로부터 멀어지죠.

김종배 : 정치를 끄는 힘 중 국민의 힘이 약해지니까, 정치가 기업 쪽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는 거군요.

김윤철 : 네, 크라우치는 그렇게 설명합니다. 흥미로운 건, 그렇다면 정치의 국민 기반을 누가 방치하고 해체했느냐는 거죠. 정치 계급이 결국 이를 주도했고, 특히 신자유주의 시대에 본격화했다고 크라우치는 보죠.

신자유주의의 압도적 승리

김종배 :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정당이 동심원 구조를 가졌다가 타원형 구조로 변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부분을 설명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김윤철 : 정당 조직 이론을 정립한 정치학자 모리스 뒤베르제는 정당 구조를 동심원 구조로 설명합니다. 가운데에 핵심 그룹이 있고, 그 바깥으로 활동가 그룹, 지지자, 유권자가 존재하죠.

강양구 : 우리가 막연히 정당에 관해 생각하는 모습이 이와 같죠. 코어에 있는 사람을 정치 계급으로 보면 되고요.

김윤철 : 맞습니다. 그런데 크라우치는 이런 동심원 구조가 왜곡되고, 정치 계급과 기업 간 연결 고리가 생기면서 타원형으로 변한 게 현재의 정당 구조라고 봅니다. 기업과 정당이 후원-수혜 관계가 되면서 정당에서 핵심 활동가와 당원이 빠져버린 거예요.

김종배 : 다국적 기업이 정치와 어떤 상관관계를 맺는가를 설명하는 부분도 재미있습니다. 국적이 없는 기업(다국적 기업)이 한 국가 안에서 어떻게 정치를 흔드는가를 분석했어요.

김윤철 :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세계적으로 경제 성장이 멈추다시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정치는 투자 안 한다는 자본이 투자하도록 유도해야죠. 기업이 국가 안에 갇혀 있을 때는 정치가 투자하라고 윽박지르거나, 인센티브를 줄 힘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구화, 세계화가 이뤄지면서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게 되었죠.

그러니 정치가 투자하라고 해도 자본이 말을 듣지 않아요. 오히려 조건이 마음에 안 든다며 떠나겠다고 위협합니다. 정치인은 빨리 경기 활성화에 성공해야 표를 얻는데, 이게 마음대로 안 되는 거죠. 그러니 점점 자본에 유리한 방식으로 정책을 쓸 수밖에 없게 되고, 따라서 자본의 영향력은 더 강해지죠.

강양구 : 이와 관련해 크라우치는 자본의 요구가 공갈 협박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국내를) 못 떠난다는 거죠. 왜냐하면, 이사 비용이 많이 드니까요. (웃음) 이미 해당 국가에 투자한 매몰 비용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해당 국가의 제도나 인프라가 사업에 중요합니다. 이걸 훌쩍 버리고 떠나기가 기업 입장에서도 쉽지 않다는 거예요.

그런데도 정치는 이런 공갈 협박에 넘어가죠. 여기서 크라우치는 사실 정치와 기업 간 은밀한 연결 고리가 작동하는 것 아니냐고 보죠.

김윤철 : 공모 관계죠. 정치권이 '기업 욕하면 안 된다'고 나서면서 자본이 못 떠나게 한다는 핑계를 대고, 뒤로는 자본의 요구대로 해줍니다. 그리고 기업이 안 떠나면 '이게 다 내 공'이라면서 유권자에게 표를 구걸하죠. 또 그 과정에서 기업으로부터 돈도 받고요. 실제로 자본의 세계화를 연구한 결과를 보면, 공갈 협박이 많다는 게 입증되기도 했습니다.

김종배 : 현재 상태에서 기업 권력의 정치 개입을 막는다는 건 난망하군요. 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대중, 특히 가난한 사람이 기성 정치에 분노하는지는 이해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대안으로 얘기하는 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사정도 마찬가지입니까?

김윤철 : 사정은 비슷합니다.

김종배 : 크라우치의 분석대로라면 그 방향도 대안이 아니겠군요.

강양구 : 크라우치의 책이 국내에 두 권이 나왔어요. <포스트 민주주의>가 나오고 나서 2011년에 <왜 신자유주의는 죽지 않는가>(유강은 옮김, 책읽는수요일 펴냄)라는 책이 나왔어요. <포스트 민주주의>의 후속편인데, 제목처럼 크라우치도 답답한 거죠. (웃음) 2008년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크라우치는 신자유주의가 결정타를 맞았고, 따라서 큰 폭의 변화가 일어나리라 기대했는데 현실은 아니었던 겁니다.

<왜 신자유주의는 죽지 않는가>는 왜 기대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는지 질문을 던지고 나름의 답변을 내놓은 책인데요. 결국 <포스트 민주주의>와 내용이 통합니다. 아니, 오히려 논조는 더 비관적이에요.

김윤철 : 한국 국민도 2008년 촛불 집회와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민주주의에 새로운 지평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잖아요? 오히려 크게 좌절했죠.

역설적으로 생각해 보면, 어쨌든 2008년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정치인도 겁은 났어요. 그런데 기존에 그들이 누린 기득권을 보장해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권력이 자본이거든요. 그러니 정치인이 넓게 보지 못하게 되었죠. 넓게 보면 자기 쇄신을 해야 하는데, 이미 현 정치 계급의 커리어가 자기 쇄신을 할 역량과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강양구 : 저는 <포스트 민주주의>를 읽으면서 한국의 정치인 충원 시스템의 변화를 연상하게 되더라고요. 예전에 정치한다고 하면 유력 정치인 쫓아다니는 걸로부터 시작했죠. 이른바 '가방 모치'라고 불리던 사람들이죠. 정당의 동심원 구조를 염두에 두면 핵심 활동가, 혹은 열성 당원이죠. 그러다 정당의 보직을 맡고, 공천을 받아서 선거에 나가고.

지금은 이런 정치인 충원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는 식으로 새로운 정치인이 충원되죠. 두 방식 간에 결정적 차이가 있어요. 정당의 핵심 활동가로 일했던 사람은 자연스럽게 당원, 또 정당의 지지자와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죠. 아래로부터의 목소리에 귀를 열게 되요.

그런데 외부 전문가는 어떤가요? 그들은 대체로 판사, 검사, 변호사, 대학 교수 같은 사람입니다. 먹고 살 만한 사람이에요. 당원, 정당 지지자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이 어떻게 살고, 무엇을 욕망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면 어떻게 될까요?

애초에 친하게 지냈던, 자기가 평소 만나던 기득권 집단과 친밀할 수밖에 없어요. 권력이 더 생겼으니, 만나고 연결되는 사람도 기업인이나 다른 전문가겠죠. 이런 정치인이 촛불 집회 같은 것을 본다면 무서움과 이질감을 느낄 거예요. 자연히 정치가 대중의 요구에서 더 멀어질 수밖에 없죠.

한국의 포스트 민주주의

김종배 : 이 책에 매우 재미있는 표현이 나옵니다. 정치 계급이 바라는 건 '최대 다수의 최소 참여'라고요. 이게 핵심이죠. 선거 참여는 시키되, 운동으로서의 정치에서는 국민을 완전히 배제하자는 거잖아요.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를 거세해야 국민을 조종, 관리, 통제하는 게 용이해진다는 거죠.

이게 포스트 민주주의의 특징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선거 기권하지 마세요'라고 하면서, 정작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싫어한다는 거죠. 크라우치는 이처럼 서구의 경우를 기반으로 포스트 민주주의 개념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분석 틀이 한국의 현실에는 어느 정도 부합한다고 보세요?

김윤철 : 거의 유사하다고 봅니다. 특히 나쁜 걸 중심으로요.

강양구 : 한국은 크라우치가 민주주의 전성기라고 부르는 시기조차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그 조건 자체가 없었죠.

민주주의 전성기의 핵심 요소는 강한 노동조합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노동조합이 강했던 적이 없어요. 당연히 노동 조직과 연계된 정당이 힘을 가진 적도 없습니다. 시민운동이 한때 활성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시민의 이해를 표출하는 결사체의 조직이나 활동도 외국과 비교하면 한국에선 약하죠.

이 책에서 그나마 포스트 민주주의를 넘어설 기반을 마련할 거점으로 거론하는 게 위에 열거한 조건인데, 한국은 애초에 거점이 없었다는 거죠. 반면 김윤철 교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포스트 민주주의 들어 서구에서 나빠진 상황은 한국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일어나죠.

김종배 : 이 책에 현재 서울시 교육감이신 조희연 당시 성공회대학교 교수께서 한국 상황에 관해 글을 실으셨어요. 그대로 읽자면 "한국의 포스트 민주주의와 현상은 서구의 경우처럼 사회적 민주주의 하에서 실현된 민주주의적 과제의 실현 후가 아니라, 실현 전의 상황과 결합되면서 진행된다"고 하셨네요.

서구에서는 사회민주주의가 계급 타협의 산물이었고, 포스트 민주주의 시대에 들면서 타협의 산물이 후퇴했는데, 한국에서는 이러한 타협조차 달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후퇴 현상이 나타난다는 거죠. 그러니 한국의 포스트 민주주의 상황이 더 극악하다는 거고요.

김윤철 : 그렇죠. 유럽은 그나마 복지국가 시스템을 경험했고, 당시의 제도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소위 '복지국가 불가역성 테제'라고 해서, 한번 복지 국가가 되면 이해관계가 걸린 대중이 생기므로 완전히 탈복지국가로 퇴행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로 확립된 제도의 힘이 셉니다.

그러나 한국은 이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대중 정당 경험도 없습니다. 전부 명사 정당 중심 아닙니까? 뭔가 문제가 있으면 당원이 문제 제기하는 것조차 한국 정치에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러니 한국의 포스트 민주주의는 유럽보다 더 기업 중심으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조희연 교수께서 이런 점을 지적하신 거죠.

김종배 : 지난 2012년 대선 때, 심지어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까지도 경제 민주화를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한국 정치 지형에서 경제 민주화 담론은 신자유주의 광풍을 억제하기 위한 대책으로 포장되어 있었죠. 그런데 크라우치의 지적대로 선거 후에 경제 민주화 얘기가 쏙 들어갔습니다.

김윤철 : 경제 민주화란 민주주의에 작용하는 경제 권력을 실제로 민주화하자는 겁니다. 기업에 관한 정책을 대중이 결정하도록 하자는 거죠. 그런데 한국의 경제 민주화 담론은 그게 아닙니다. 잘 살펴보면, 여야 할 것 없이 경제적 수혜, 즉 복지라는 이름으로 물질적 수혜를 베푼다는 데 머물렀어요. 대중이 경제 정책을 결정하도록 하자는 게 아니라, 우리가 정책은 결정하지만 여태 너희한테 10 정도 준 수혜를 앞으로는 30 정도 주겠다는 수준이에요. 그러니 경제 상황이 나쁘면 '지금은 30이 아니라 5밖에 못 줍니다'는 식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죠.

박근혜 정부가 경제 민주화했다고 하잖아요. '10 주려고 했는데 경제가 나빠서 5 드렸지만 우리 할 만큼 한 거예요'라는 겁니다. 한국 정치권이 설정한 경제 민주화라는 개념 자체가 크라우치가 말한 신자유주의 시대의 기업 지배 체제를 유지하는 데 머물렀다는 거죠.

강양구 : 세계적으로 경제 민주화의 가장 성공적 사례의 하나로 꼽는 게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New Deal)입니다. 많은 사람이 뉴딜이라면 정부가 나서서 공공 사업한 것만 생각하죠? 사실 뉴딜의 핵심은 노동조합 설립을 용이하게 해주고, 노동조합의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도록 보장해 준 데 있어요. 이게 바로 경제 민주화의 핵심이죠.

한국에서 경제 민주화라고 하면 재벌 개혁과 똑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이런 식의 경제 민주화는 결국 정치 계급과 기업 사이의 유착을 유지할 뿐입니다. 예를 들어, 외환 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가 재벌 개혁을 했어요. 이때 정부가 살생부를 쥐고 어떤 재벌은 살리고 어떤 재벌은 죽였죠. 이 과정에서 유착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례를 돌아보면, 우리가 경제 민주화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신자유주의는 극우 포퓰리스트의 토양

▲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 기업과 정치가 결합해 부패를 키우는 사례의 대표로 꼽을 만한 인물이다. ⓒwikipedia.org

김종배 :
우리가 오늘 얘기를 시작할 때 처음 제기한 문제가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극우 포퓰리스트, 막말 정치인이 왜 약진하느냐는 거죠. 이 문제가 신자유주의 정치의 결과라고 했습니다.

크라우치의 분석에 따르면 포스트 민주주의의 폐해로 극우 포퓰리즘이 팽배한 건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신자유주의 지배의 부작용이 드러난 현 체제를 비판하는 막말 정치가 일어나려면 오히려 극좌 포퓰리스트가 나타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김윤철 : 한병철 베를린예술대학교 교수의 <심리 정치>(문학과지성사 펴냄)라는 책이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단순히 부자만을 편드는 정치가 아닙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이 공공의 역할을 기대하지 않고, 각자가 잘 해야 한다는 개인적 책임을 중시하는 체제입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의 '자유'는 자유롭다는 게 아니고, 모든 게 내 책임이라는 겁니다.

이러니 사람들은 강자에게 공정한 결과를 요구하는 대신, 나보다 못한 사람 혹은 강자이지 못한 스스로를 억압하는 길로 가게 됩니다. 이 분노가 혐오로 이어집니다. 강자가 아니라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분노를 표출하게 되죠.

김종배 : 여성 혐오, 무슬림 혐오로 나타난다는 거죠?

김윤철 : 그렇죠. 따라서 신자유주의 코드는 극우적 요소와 맞닿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와 다른 세력의 대표 격이 인종일 텐데, 이런 코드와 연결되어서 극우적 세력이 활개칠 좋은 조건이 만들어진다는 거죠.

김종배 : 일종의 심리 정치로 간다는 거네요?

김윤철 : 그렇죠. 저는 심리 정치가 신자유주의 정치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강양구 : 한국적 상황도 염두에 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은 특히나 공공 부문이 매우 미약합니다. 대부분 사람이 기업에 속해서 노동자로 일합니다. 또 다수가 자본가 마인드를 갖고 버텨야 하는 자영업자죠.

따라서 한국 시민의 대다수는 공공성보다 시장의 마인드를 체화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처지에 놓입니다. 이러니 경제나 정치에 문제가 생겨도 공공성의 가치로 문제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본인이 체화한 기업의 가치, 시장 마인드로 접근하게 됩니다. 자연히 좌파보다 우파적 해법에 더 솔깃하게 되죠.

김종배 : 왜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포스트 민주주의 시대에 오히려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극우에 이끌리는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극우 포퓰리스트 대부분은 정치권에서 아웃사이더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기성 정치에서는 주류에 편입된 적 없었고, 기성 정치적 가치에 반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왜 아웃사이더일까요?

김윤철 : 신자유주의가 가진 고약한 지점인데요, 스스로를 비하하니, 자연히 정치도 나쁜 것으로 몰고 갑니다. 정치인 하나하나의 부패를 숨기지 않고 드러냅니다. 정치 혐오를 일반화해버리죠. 그러니 유권자의 기존 정치에 관한 불만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투표율 현황을 보면, 소득이 낮거나 자산 보유액이 낮을수록 투표 참여율이 떨어집니다.

이때, 정치와 멀리 있었던 사람이 기성 정치 자체를 비판하고, 한편으로 화난 유권자에게 그들보다 못한 사람을 타깃으로 던져줍니다. 그러니 유권자는 이른바 '새로운 정치'에 기대하게 되죠.

안철수와 트럼프의 공통점?

김종배 : 아웃사이더 정치인이 약진하는 원리는 알았습니다. 그런데 기성 정치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란 말이에요. 여기서 재미있는 건, 서구에서는 막말 정치의 대응으로 기성 정치권이 선택하는 게 연합입니다. 중도 좌파와 중도 우파의 연합을 통한 극우의 약진 제어죠. 그렇게 모이는 기성 정치권은 기업의 영향력 하에 있으니 신자유주의 기업은 오히려 더 치고 들어가기 용이한 구조가 만들어지고요.

미국의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트럼프의 약진을 공화당 주류와 민주당이 막아낼 것이냐가 되겠죠. 오스트리아는 겨우 막아냈고요.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이 대목에서 제가 가장 먼저 떠올린 인물은 허경영 씨입니다. (웃음) 허경영 씨야말로 대중의 박탈감을 전면에서 해소해주지 않습니까? 신혼부부에게 1억 원씩 준다는 공약이 대표적이죠.

김윤철 : 저도 허경영 씨에 관해 생각해 봤는데, 트럼프와 같은 존재가 되기에는 너무 재미있으세요. (웃음)

강양구 : 글쎄요. 허경영 씨는 원래 가진 게 별로 없었잖아요. (웃음) 허경영 씨가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처럼 선거에 나오기 전에도 '허경영' 하면 누구나 떠올릴 만한 상징 자본을 갖고 있었다면, 그의 영향력이 지금과는 달랐을 거예요.

김윤철 : 웃자고 한 소리에 진지하게 반응한 것 같지만, (웃음) 강 기자가 중요한 지적을 했어요. 신자유주의 정치 시대의 지상이데올로기가 성공이에요. 트럼프도 그냥 막말쟁이가 아닙니다. 성공한 사업가에다가 엄청난 부자죠. 앞서 심리 정치를 말씀드렸습니다만, 잘난 사람이 막 나가는 걸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것도 멋스러운 거죠.

강양구 : 한국에서는 허경영 씨보다 안철수 공동대표가 오히려 등장 과정만 놓고 보면 트럼프에 가깝지 않나 싶어요. 오해를 할까봐 말씀드리자면, 저는 안철수 대표와 트럼프를 같은 선상에 놓고서 비교하는 것은 아니에요. 전혀 다른 범주의 정치인이죠. 다만 등장 과정만 놓고 보면 비슷한 대목이 있어요.

안철수 공동대표 역시 기성 정치권의 아웃사이더였습니다. 정치권 입성 전에는 트럼프처럼 기업가로서 성공했다는 상징 자본을 가지고 있었죠. 안철수 공동대표가 정치인으로 부상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무릎팍 도사>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먼저 떴죠. 트럼프도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름을 알렸죠.

그 다음 법륜 스님 등과 전국 순회 강연을 하면서 정치인 안철수 이전에 기업가 안철수, 유명인 안철수로서 전 국민이 이름 석 자는 알 만큼 유명해졌죠. 이후 제3의 정치, 다른 정치에 관한 열망이 한창이었던 2011년에 정치권에 등장하면서 '안철수 현상'을 낳았습니다. 등장 과정만 놓고 보면, 트럼프와 안철수 공동대표가 비슷한 부분이 있어요. 

김종배 : 기성 정치에 관한 반감, 불신이 안철수 현상의 중요한 동력이었다는 점을 보면, 안철수 공동대표의 정치적 기반이 극우 포퓰리스트의 부상과 유사한 측면이 있긴 하군요. 물론 그 이후의 정치적 행보는 전혀 다르지만요.

김윤철 : 일단 트럼프는 못 가진 자, 몰락한 백인 중산층을 타깃으로 했습니다. 그들의 분노를 대신 표출해줬죠. 반면 안철수 공동대표는 트럼프에 비하면 고급이에요. (웃음) 고학력 중상층을 타깃으로 했습니다. 막말을 하지도 않았죠. 최근에는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논쟁했습니다만, 당시에도 막말이 오간 게 아니죠. 센 말이 오간 수준이죠. 

김종배 : 안철수 공동대표의 정치적 기반이 될 대중 정서에는 극우 포퓰리스트 지지층 정서와 중첩되는 부분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릅니다. 세계적으로 퍼지는 극우 포퓰리스트는 간단하지만 확실한 킬러 콘텐츠를 갖고 나옵니다.

강양구 : 크라우치가 네덜란드 극우의 부상 사례를 지적하면서 언급한 내용이 있습니다. 극우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중요한 특징은 웅성대는 여러 사람에게 하나의 정체성을 부여한다는 겁니다. '우리'를 만드는 거죠. 그런데 한국의 기성 정치 세력뿐만 아니라 '새정치'를 들고 나온 안철수 공동대표도 이걸 못하고 있어요.

반기문, 한국 정치의 아웃사이더?

김종배 : 얼마 전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고 때 안철수 대표의 트윗이 설화를 빚은 데서 알 수 있습니다. 본질적 문제는 먹고사는 문제였는데 이를 포착하지 못했죠. 안 대표와 누리꾼 사이에 접점이 없었어요. 이게 어떻게 보자면 안철수 공동대표의 새정치가 가진 근본적 한계이자, 극우 포퓰리스트와의 다른 지점이죠.

기성 정치권에 관한 불신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 이외에는, 안철수 공동대표와 극우 포퓰리스트의 공통점은 거의 없다는 거죠.

또 다른 대안 세력으로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은 어떻게 봐야 합니까? 정치권의 아웃사이더라는 점 외에는 포퓰리스트와 중첩되는 건 없는 것 같은데요.

김윤철 : 저는 반기문 총장은 인사이더 중의 인사이더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아웃사이더로 여겨지는 건 여의도에 없었기 때문이죠. 예전 이명박 대통령과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마치 한국에서 정치는 여의도에서만 일어나는 일인 양 인식되어 버렸습니다. 여의도에서 일 안 하면 탈 정치인이나 비 정치인이라는 식으로 얘기되죠. 이게 일종의 현실 조작 아닌가 싶습니다. 반기문 총장은 전혀 아웃사이더가 아닙니다.

강양구 : 반기문 총장은 1970년 외무고시에 합격한 후부터 공무원 생활을 하신 분이에요. (웃음) 

김윤철 : 제5공화국 노신영 총리 시절에는 참모 역할까지 한 분입니다. 오래전부터 정치를 하셨죠.

강양구 : 반기문 총장이 대선 국면에서 힘을 더 받을 수 있을까요?

김종배 : 저는 없으리라고 봅니다. 반기문 총장이 이번 방한에서 내세운 자신의 콘텐츠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통합과 통일이죠. '쌍통'이죠. (웃음)

통합만 얘기해 보자면, 세계사적 흐름에서 통합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세계사적 추세는 피아를 정확히 구분함으로써 더 많은 숫자를 확보하는 게임이죠. 통합이 고상하고 멋있어 보이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정치 전략과 선거 승리 전략은 아닙니다.

강양구 : 그런데 왜 반기문 총장뿐만 아니라 한국의 많은 기성 정치 세력이 통합과 중도를 외치는 걸까요? 이런 이야기에 식자층도 고개를 끄덕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윤철 :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게 이른바 대안 정치 세력의 특징인 것 같습니다. 이건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전쟁을 치른 지 아직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에 더해 반민주 세력이 여전히 살아 있고, 정권을 잡고 있죠. 이 과정에서 국민 다수가 경계를 분명히 하는 데 반감을 가지는 것 같아요.

또 한편으로, 대안으로 나오는 분들이 원래 모호한 분들이에요. (웃음) 기존 정치 무대에 자기 색을 갖고 표를 얻으려는 새누리당 세력이 있고, 민주당 세력이 있고, 진보 정당 세력이 있죠. 공학적 계산으로도 모호해질 때 내가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상황이 안철수 대표의 새정치, 반기문 총장의 통합으로 나타나는 것 아니냐고 봅니다.

▲ 이명박은 한국의 극우 포퓰리스트? ⓒ프레시안


이명박, 한국의 극우 포퓰리스트

김종배 : 그렇다면 한국에는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극우 포퓰리스트가 없었던 걸까요? 제 주장부터 말씀드리자면, 한국은 이미 선제적으로 거쳤다고 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입니다.

대중의 눈에 비친 이명박 대통령은 기성 정치에 때 묻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747 공약'으로 대변되는 정책도 다른 나라 극우 포퓰리스트의 프로파간다와 대단히 비슷합니다.

강양구 :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의 어록을 훑어보면 트럼프와 막상막하 수준의 것이 많아요. 

김종배 : 맞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막말'이라고 하는 게 표현 기법이 아니잖아요. 얼마나 적을 잘 설정해 프로파간다를 퍼뜨리느냐는 점에서 보면, 이명박 대통령과 트럼프가 다를 바 없습니다.

김윤철 : 저도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말씀하시는 내용만 들어도 예전 이명박 대통령의 이미지가 팍 떠올랐습니다. 특히 대선 후보로 나온 시절 TV 토론을 보면, 다른 후보는 매우 어려운 말을 쓴데 반해 이명박 대통령은 사용하는 언어부터 달랐습니다. 

강양구 : 사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한 계기도 트럼프와 유사합니다. 성공한 기업가 출신인 트럼프가 예능 프로그램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았죠. 역시 성공한 기업가 출신의 이명박 대통령도 드라마 <야망의 세월>(이종수 연출)로 대중에게 알려졌죠. 성공 신화 역시 마찬가지고요.

김종배 : 집권 후 정치를 기업 권력에 자발적으로 넘겼죠.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기업 권력의 일부였고요.

김윤철 : 이명박 정부 이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잖아요? 포퓰리즘 정권 이후 어떤 정권이 들어서느냐는 본보기를 한국이 세계에 보인 거죠. 기업 지배 질서, 신자유주의 질서를 완전히 공고화하고, 거의 독단적으로 정국을 운영하는 정권을 만들어냈죠.

김종배 : 이제 가면을 쓸 필요조차 없어진 거죠. 이런 면에서는 한국이 선진적이네요.

강양구 : 수십 년 지난 후 'MB의 유산'이라는 책이 나올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동료 기자들과 한 기억이 나네요. 지난 보수 정권 10년을 돌아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뭔가를 새롭게 한 건 없어요. 다 이명박 정부 때 만든 거죠. 한국 사회를 질적으로 바꿨다는 측면에서 박근혜 대통령보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물어야 할 책임이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김윤철 : 크라우치가 중도 개혁주의의 한계를 이야기하면서 대처가 저지른 일을 블레어가 '제3의 길'이라는 포장으로 더 공고화했다고 지적하는 대목이 있죠. 한국은 그 경로가 조금 반대죠. 자유주의 개혁 정권이 만든 걸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우파적으로 아주 나쁜 식으로 공고화했죠. 이런 부분에서 보자면 경로는 서구와 반대인 것 같지만, 이런 흐름 자체가 크라우치가 제기한 신자유주의 지배 하의 포스트 민주주의화와 유사합니다.

김종배 : 하나 더 얹자면, 왜 서구에서는 포퓰리스트가 쌍욕하면서 인기를 얻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을까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유권자의 정서와 한국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한 유권자의 정서 차이가 있다는 거죠.

▲ <포스트 민주주의>(콜린 크라우치 지음, 이한 옮김, 미지북스 펴냄). ⓒ미지북스

강양구 :
한국 유권자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요. 싸가지 없는, '양아치' 같은 방식의 메시지 전달에 결코 동의하지 않죠. 이 점도 한국 정치를 말할 때 놓쳐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인구 통계학적으로 봐도 한국은 아직 내부에서 특정 세력을 타자화해 희생양으로 삼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전라도, 여성 등 혐오 집단으로 지목되는 이들이 있지요. 하지만 유럽의 이민자 배척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죠.

김윤철 : 크라우치도 유럽이 비록 포스트 민주주의 시대를 보내고 있지만, 아직 시민 사회의 건강성은 남아있다고 합니다. 한국도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전통적으로 종교나 인종 갈등은 없었죠. 다만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빨갱이 억압이 있었습니다. 이게 민주화를 거치면서 예전보다는 약화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흉악 범죄나 특히 분노 범죄가 늘어난다는 점을 보면, 분노 정치와 같은 극우의 선동 정치가 등장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지난 총선 때도 특정 종교를 앞세운 정당이 원내 진출할 뻔해 많은 분이 놀랐죠. 우리 사회가 처한 정치 심리적 환경을 보면 우려할 대목이 분명 있다고 봅니다.

김종배 : 오늘 콜린 크라우치의 <포스트 민주주의>를 들고 우경화하는 세계, 그리고 한국 정치 현상을 이야기했습니다. 김윤철 교수님,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윤철 : 예, 감사합니다.
서강대학교 철학과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이솔 씨가 독서통에서 소개된 책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핵심 개념을 설명합니다. 오늘 이솔 씨가 설명할 핵심 개념은 '상징 자본'입니다.

아웃사이더(outsider)는 인사이더(insider, 내부자)의 반대어로 직역하자면 '외부자'로 번역될 수 있는 표현입니다. 본래 아웃사이더는 전문적 지식이나 소양이 없는 문외한(門外漢), 혹은 어떤 그룹 속에 끼지 못하는 국외자(局外者)를 의미하는데요. 1956년 평론가 콜린 윌슨이 <아웃사이더>라는 이름의 저서를 낸 이래로 이 말이 널리 쓰이게 되었습니다. 이 <아웃사이더>에서 윌슨은 사회에서 소외되어 있는 국외자적(局外者的) 존재들로부터 사회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질서가 발견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물론 아웃사이더의 사전적인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였을 때, 한국 정치계에 새롭게 발을 들여놓고 있는 몇몇 정치인들을 '아웃사이더 정치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명칭은 이들이 아직까지는 한국 정치계의 주류 혹은 대표격인 인물이 아니라는 협소한 의미에서 이해되었을 때만 그렇습니다.

사실상 한국 사회 전체를 염두에 두고 보았을 때 이들을 사회에서 소외되어 있으며 집단의 외부에 있는 '아웃사이더'라 부를 수는 없을 듯합니다. 이들은 오히려 가장 막대한 상징 자본을 가지고 있는 인사이더 중의 인사이더라고 말해야 온당하지 않을까요?

오늘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토막 지식은 바로 이 '상징 자본(symbolic capital)'이라는 개념입니다. 이 '상징 자본'의 개념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한국의 '아웃사이더 정치인들'이 어떻게 단숨에 기대주로 정치계 내부에 자리 잡을 수 있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상징 자본'은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제시한 개념인데요. 부르디외는 하나의 사회는 경제, 정치, 법, 교육, 학문, 예술 등 그 안에서 행위자들의 '실천(practice)'이 이루어지는 다수의 '장(field)'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분석합니다. 말하자면 사회는 문학적 장, 정치적 장, 경제적 장 등 위계적으로 조직된 일련의 장들에 의해 구조화되어 있는 거죠. 사회 전체를 하나의 대우주라고 간주한다면 그곳에는 무수한 소우주들인 장들이 있고, 그 각각의 장에는 그것에 고유한 경쟁의 목표물(stake)과 이해 관심사, 그리고 지배의 원리가 있다는 겁니다.

이러한 각각의 장 안에서 개인들은 해당 장에 고유한 상징 자본을 얻기 위한 일종의 게임을 수행합니다. 부르디외는 각각의 장마다 서로 다른 '상징 자본'들이 있다고 말하며, 상징 자본을 얻기 위한 경쟁은 곧 인정과 영예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과 같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문학 장에서의 상징 자본은 곧 문단에서의 권위와 인정이라고 볼 수 있고, 그것을 얻기 위한 투쟁은 훌륭한 저작을 집필하는 것이 되겠지요.

각각의 장마다 서로 다른 '상징 자본'이 있다는 것은 또한 특정한 장에 고유한 목표물과 이해관심이 다른 장의 행위자들을 사로잡지 못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문학적 장에서 추구되는 문학적 상징 자본은 정치적 장에서는 그 의미와 효력을 잃게 되는 것처럼요. 그런데 각각의 장들은 사실 완전히 폐쇄적인 체계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때때로 지명도 높은 문인이 자신의 문학 장에서의 권위와 유명세를 바탕으로 정치에 입문한다거나, 혹은 저명한 정치가가 유명한 출판사에서 쉽게 자신의 저서를 펴내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즉 각각의 장들에 고유한 상징 자본들의 독자성에도 불구하고, 이들 사이의 전환(conversion)이 가능하다는 거죠.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상징 자본의 전환'이 얼마나 자유로운가하는 문제입니다. 부르디외는 어떤 장의 진입 장벽이 낮을 때 "그 장의 자율성이 낮다"고 규정합니다. 즉 특정한 장에 진입하는 비용(entry cost)이 적다는 것은, 그 장이 자율적인 규칙을 가진 엄격성을 가진다기보다는 외부의 기준과 외부의 상징 자본에 의해 쉽게 좌우되는 타율성을 가진다는 거죠. 그리고 그렇게 진입 장벽이 낮을수록 그 장 내부에서의 순수한 완전 경쟁은 불완전해지고, 행위자들이 해당 장 내의 투쟁에 있어 외부의 힘을 개입시킬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는 겁니다.

이렇게 보았을 때 한국 사회의 '정치 장'은 장의 자율성이 매우 낮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듯합니다. 다른 장에서 가지고 있었던 상징 자본을 큰 손실 없이 그대로 가지고 진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 장은 장 자체의 규칙의 독립성도, 공고함도 현저히 떨어지는 장인 거죠. 이렇게 자율성이 낮은 장에서는 그 장 내부에서의 순수한 경쟁보다는 외부의 상징 자본을 빌려오는 방식의 경쟁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말하자면 해당 장 안에서 진검 승부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장 외부에 있는 트로이 목마를 끌어들여 오는 거죠.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직능 대표와 같은 개념이 보여주듯이 본래 정치에서 외부의 전문 영역을 끌어들이는 것이 당연한 일이며, 또 정치는 다양한 장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특별한 기능을 가지는 장이라는 점에서, 정치 장이 보여주는 이러한 특징을 단순히 비관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을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상징 자본'의 개념을 통해 오늘 논의가 된 "'아웃사이더 정치인들'은 정말 아웃사이더인가?"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진단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 아웃사이더 정치인들은 한국의 정치 장에 있어 장 밖에 있었던 외부자였다는 점에서는 분명 '아웃사이더'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들이 이미 속해 있던 각각의 필드에서 가지고 있던 막대한 상징 자본을 그대로 전환하여 정치 장에 참여한다는 의미에서는 결코 '아웃사이더'라고 말할 수 없겠지요.


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기자가 되면 거지부터 왕까지 누구나 만난다고 들었다. 거지한테 혼나고 왕은 안 만나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