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30대 여성과 통하다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30대 여성과 통하다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⑫]
2016.06.24 11:22:39
출판 업계가 불황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아서겠지요.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인 1인당 연간 독서량이 9.2권, 월 0.76권에 불과했습니다. 다른 즐길 거리가 점차 많아지는 데다, 책을 읽을 삶의 여유가 없다는 점이 원인일 겁니다.

그러나 위기에도 기회는 오기 마련입니다. 언제나 불황을 이긴 베스트셀러는 나옵니다. 지금도 전국 곳곳의 출판사에서 좋은 글을 가진 작가와 새로운 아이디어의 편집자, 색다른 시도를 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디자이너들이 독자에게 멋진 책 한 권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은 이 불황의 시대에 독자의 마음을 훔친 베스트셀러를 이모저모 뜯어보고, 그 성공 원인을 분석하는 새로운 월간 기획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소개합니다.

출판업계에서 내로라하는 베테랑 두 분을 모셨습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전 민음사 대표)와 이홍 출판기획자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민음사, 황금가지, 리더스북 등의 출판사에서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직접 만든 출판계의 신화입니다.

이들이 때로는 신랄한 비평가이자 때로는 친절한 컨설턴트로 변신합니다.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이들이 직접 베스트셀러를 선정해 책의 성공 원인과 이후 과제를 짚어봅니다. 현장에서 그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 출판사의 편집자, 기획자의 이야기도 직접 들어봅니다. 교보문고가 전국의 판매 데이터를 제공해 분석의 신뢰를 더욱더 높였습니다.

이번에 다룰 책은 웃음과 눈물이 버무려진 이기호 작가의 소설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박선경 그림, 마음산책 펴냄)입니다. 짧은 이야기 40편과 예쁜 그림이 어우러진 콩트입니다.

박완서의 <세 가지 소원>, 정이현의 <말하자면 좋은 사람>에 이은 '마음산책 짧은 소설 시리즈'의 세 번째인 이 책은 한 신문에 작가가 연재한 이야기 가운데 일부를 묶어 만든 것입니다.

노력이 '노오력'으로 비웃음의 대상이 된 헬조선에서 살아가는 이 땅의 청춘이 가진 제일의 화두는 '개인이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것인가'일 겁니다. 폼나는 삶을 살기가 불가능해진, 평생 전전긍긍하며 불안한 삶을 유지하려 노력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작가는 특유의 웃음과 눈물로 그렸습니다.

우리 시대 사람들의 정서와 맞닿았기 때문일까요. 이 책은 5만 부 이상 팔리며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두 대담자는 이 책의 성공 요인으로 특히 편집과 출판사 고유의 정체성을 꼽았습니다. 13일 서울 서교동의 카페에서 열린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기획 1년을 맞아,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잠정 휴지기에 들어갑니다. 짧은 휴식 후 두 대담자는 새로운 콘셉트로 독자 여러분을 다시 만나뵐 예정입니다. 그간 큰 관심을 갖고 지켜봐주신 여러분께 감사 말씀 드립니다.

▲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잠시 쉰 후,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콩트로 버무린 해학

장은수 : 우리의 대담이 벌써 1년째네요. 오늘 우리가 이야기할 책은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입니다. 희극과 비극이 교차하는 짧게 담긴 소설인데, 5만 부가 넘게 팔렸습니다. 우선 책을 어떻게 읽었느냐부터 이야기해 보죠.

이홍 : 독자 입장에서는 대단히 친절하게 느껴지는 책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스타일의 책이 참 좋아요. 읽기의 즐거움과 사유의 깊이를 동시에 충족하기란 쉽게 가지기 힘든 매력입니다. 이 책에서 짧게 읽고 깊이 생각할 수 있다는 장점이 두드러졌어요. 저뿐만 아니라 요즘 독자가 이런 책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워낙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이다 보니, 텍스트가 많은 책은 읽다 지쳐버린다고 할까요? 출판사는 무척 탐나는 저자와 인연을 맺었어요. 축하드립니다. 저자의 입담이 워낙 좋아요.

정확하게 말하면 이 책의 글들은 콩트지요. 단편 소설은 아니고 짧은 소설도 아닙니다.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소설이라 부를 수 있는 최소한의 분량 기준에는 미달입니다. 물론 분량이라는 기준이 절대적일 수는 없습니다만, 어떤 구분의 잣대는 필요한 것이니까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짧은 글이라는 약점(?)에 짓눌리지 않고 독자와 나누고픈 이미지를 꽉 담았습니다. 탁월한 내공이 느껴집니다.

글뿐만 아니라, 편집도 좋았습니다. 이 책의 특성이 예쁜 그림이 적재적소에 실렸다는 점일 텐데, 특별하지 않은 유형임에도 불구하고 차별성을 인정해야 할 만큼 조율이 뛰어납니다. 그림이 필요한 지점마다 시각적 효과를 줍니다. 단순히 텍스트로만 이야기를 보는 책이 아닌 거죠. 편집에 공들인 책입니다. 한 마디로 좋은 저자가 좋은 출판사를 만났다고 정리하면 될 듯합니다.

장은수 : 트렌디한 책이에요. 요즈음 읽기는 스크린 미디어에 점차 맞춰졌어요. 우리 세대가 처음 만나는 콘텐츠 매체는 책이었다면, 젊은 세대는 스크린을 첫 매체로 맞이하죠. 영화가 먼저 뜨고 영화 원작 소설이 나중에 팔리는 현상이 이제 낯설지 않죠.

스크린 미디어 시대에 서사는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무겁고 길기보다, 짧지만 명확한 관점이 들어간 이야기가 아무래도 환영받는 듯합니다. 이 책은 이 트렌드에 잘 맞습니다.

사람들이 글을 읽고 얻으려는 건 나다움이죠. 내 인생의 중요한 어떤 지점을 건드려주고 일깨워달라는 겁니다. 이 책은 이런 성격이 강한 작품인 것 같습니다.

어른이 없는 시대라서 그럴까요. 예전보다 사람들이 문학이 인생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해 주길 원하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이 소설의 주 독자층인 30대 여성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간 듯합니다.

다만 아쉬움이 있어요. 소설가에게도 불행한 건데, 아마 이기호 작가의 작품 중 이 책이 가장 많이 팔렸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이른바 본격 소설은 아니잖아요? 소설의 본령은 서사의 힘일 텐데,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는 이를 추구한 소설이 아니죠. 이기호 소설의 유난한 특징이기는 하지만, 작가의 위트, 반짝이는 기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순간 포착 형태로 진행됩니다.

이 스타일의 소설이 많이 팔리는 시대가 아쉬워요. 소설가가 노력해야 하는 건지, 세상이 바뀌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단순히 소셜 미디어 시대라서 힘 있는 서사의 소설이 안 팔리게 되었다고 말할 수 없어요. 미국이나 일본의 소설가는 지금도 강력한 내러티브로 독자를 끌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반면 한국에서는 점점 가벼운 소설만 사랑받는 것 같습니다.

이홍 :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는 작가가 2014년 1월부터 올해 1월까지 2년 동안 <동아일보>에 연재한 짧은 이야기 중 40편을 선별해 정리한 책입니다. 신문 연재에 적합한 원고 분량을 고려해 만들어졌으니, 애초부터 콩트로 만들어졌죠. 작가가 서사의 힘을 보여주려고 쓴 책은 아닙니다.

마음산책은 이 원고를 정리해, 그간 꾸준히 낸 짧은 소설 편집 스타일을 적용해 일종의 시리즈로 엮었습니다. 마음산책은 이 책 이전에도 <세 가지 소원>, <말하자면 좋은 사람>을 냈죠. 따라서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의 편집은 이전 두 작품과 이어지는 흐름의 궤적을 갖게 됐다고 봅니다. 단권의 형태로 평가하기보다, 시리즈화한 편집 전략의 구도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거죠.

다만 이런 편집 스타일이 작가의 각기 다른 글들에 다소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게 옳은지는 판단의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출판사의 판단과 독자의 판단이 일치하느냐는 늘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튼 저는 이 작품을 고정적인 문학 범주에서만 평가하기보다, 주변 서사와 함께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 책이 가진 특유의 역할이 있다고 봐요.

소셜 미디어 시대의 새로운 문학 장르, 그래픽 에세이

장은수 : 일러스트레이션을 적극 활용했다는 점은 일단 트렌드적으로 중요합니다. 소셜 미디어 시대에 가장 강력한 텍스트 형식 중 하나가 그래픽 에세이입니다. 그림과 짧은 글이 어우러진 이야기죠. 카드 뉴스가 대표적입니다. 종래의 어떤 장르에도 편입하기 어렵죠. 그래서 저는 그래픽 에세이를 새로운 장르로 봅니다.

그래픽과 서사가 적절하게 결합되어 있는, 차라리 그래픽 내러티브라고 불러야 할까요? 저는 이런 스타일이 앞으로도 이어져서, 어쩌면 독립 장르로 뿌리내리리라고 봅니다. 짧고 번역도 쉬운 만큼, 글로벌 시장 진출에도 아주 유리하지요.

이 책은 소설이지만, 형식적으로 그래픽 에세이에 가깝습니다. 형태는 예전부터 존재한 콩트지만, 콩트 특유의 아이러니보다 감동 전달이 주된 목표입니다. 슬프지만 따뜻한 느낌을 독자에게 주려고 애썼어요.

개별 이야기마다 직접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는 한마디를 더 넣고 싶은 유혹을 작가가 받았을 텐데, 아슬아슬하게 그 욕망을 절제했다는 느낌입니다. 덕분에 이 책이 에세이가 아니라 콩트로 남았습니다. 전 작가의 이러한 자제심을 커다란 미덕으로 봅니다. 독자를 대놓고 가르치려는 태도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픽 내러티브를 잘 다루는 작가의 출현을 알리는 작품입니다. 이 장르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발전하고, 어떤 식으로 수용될지 지켜보고 싶네요.

이홍 : 독자 입장에선 장르 구분은 중요하지 않겠죠. 독자에게 중요한 건 감정의 해소입니다. 실컷 웃거나, 때로는 처절하게 우울해지거나, 가끔은 어떤 공포나 기시감에 사로잡히고 싶기도 하죠. 독자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아마도 책을 읽고 나서 읽은 이유를 모를 때 아닐까요.

이 책은 그 점에서 좋은 미덕을 갖고 있습니다. 개별 챕터의 분량이 짧은 덕분에, 읽는 즉시 감정이 일어납니다. 지금 시대의 독자가 원하는 바를 즉각적으로 충족합니다. 다만 이 장점이 지속적이고 절대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짧은 서사 모음의 유형이 사실 출판에서 새롭고 독특한 실험도 아니고요, 그래서 이 책이 성공했다고 해서 기획에서 새로운 전형을 발견했다고 할 만큼 요란한 상황이 벌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책이 가진 역할과 만족은 비교적 짧으리라 생각하고요. 현재의 감동이나 즐거움은 다른 책으로 대체될 겁니다.

좋은 문학이 즉시성보다 지속성을 갖고, 꾸준히 독자를 점유하면서 자기 가치를 높이는 작품이라고 본다면, 이 책은 이와는 조금 거리가 멉니다.

장은수 :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문학의 사명을 '감각의 정치'라고 한다면, 이 책은 그 지점까지 가진 못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독자 마음에 어떤 공감을 일으키는 데까지는 분명히 성공했죠. 소셜 미디어 시대에 소설이 어떻게 적응할 것이냐를 하나의 과제로 따져볼 때, 이기호 작가는 자기 역할을 확실히 했습니다. 경박단소의 시대에 경박단소한 장치로 전혀 다른 층위의 무언가를 만들었습니다.

출판사 : 이기호 작가께서 처음 <동아일보>에 연재 제안을 받았을 때, 실제로 요청받은 연재 형태가 에세이였습니다. 그러나 작가께서 잘 할 수 있는 일과 매체 특성을 고려해 짧은 소설로 가기로 했습니다. 

애초에 순문학을 고려하지 않으셨습니다. 작가께서 매체 인터뷰에서도 언급하셨습니다만, 본인은 이 작품을 통해 그간 책을 상대적으로 가까이 하지 않았거나, 책을 접할 여유가 없었던 현대인이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출판사의 '나다움'은?

장은수 : 이 책의 성공 요인으로 감각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을 꼽았습니다. 마음산책 출판사가 원래 잘하던 부분이죠. 마음산책 편집의 특징은 20~30대 여성의 심리에 기민하게 반응한다는 겁니다. 자기 독자를 잘 알고 출판한다는 느낌입니다.

출판사는 보통 독자와 함께 늙어가거나, 자기 독자를 기반으로 해서 다른 연령대의 독자층으로 확산합니다. 그런데 마음산책 독자는 항상 30대 전후의 여성에 머무르는 것 같습니다. 이미 창업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독자가 더 늙지도 않고 더 젊어지지도 않습니다. 어쩌면 이 점이 출판하는 책마다 항상 일정한 수준의 성과를 내는 이유겠죠.

결국 마음산책의 편집과 홍보 모두 시대에 맞춰 꾸준히 변화했다는 겁니다. 책 제목, 서체, 어투, 홍보 내용이 모두 새로운 30대 여성 독자의 특성을 따라서 기민하게 반응해 왔습니다.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이홍 : 출판사가 자기다움을 가진다는 건 매우 중요한 장점입니다. 독자가 출판사에 원하는 정서적 요소는 구매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출판사의 정서를 결정하는 데는 대표의 생각, 출판사 사명, 출판사가 내는 작품뿐만 아니라, 심지어 출판사의 위치, 출판사 사옥 모습도 영향을 미칩니다. 마음산책의 이미지는 편안함입니다. 독자가 '마음산책의 책에는 내 정서를 편히 동화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다만, 가슴을 뛰게 하거나, 휘젓는 건 아니고요.

이 이미지가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의 판매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교보문고가 제공한 자료를 보면, 이 책의 주요 독자는 30대 여성입니다. 전체의 무려 28.7%나 됩니다. 남녀 비율만 보더라도 여성 비율이 69.4%로 압도적입니다. 한국 소설 독자 평균보다 더 높습니다.

그런데, 책 내용만 보면 오히려 남성 독자가 더 읽기 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인공부터 남자니까요. 결국, 잔잔한 내용, 예쁜 편집이 남성보다 30~40대 여성에게 더 어필한 것 같습니다.

ⓒ프레시안


장은수 : 마음산책이 내는 책은 매우 감성적입니다. 이 책을 문학과지성사, 창비, 민음사와 같은 곳에서 냈다면 이렇게 편집하거나 홍보하지 않았을 겁니다. 가령, ‘새로운 문학의 출현’과 같은 커다란 문화적 의의를 들이댔겠죠.

마음산책의 책은, 굳이 말하자면 언니가 동생에게 이야기해주는 느낌을 준달까요. 속삭이는 듯, 작가의 톤을 날 서게 벼리는 대신에 살짝 눌러서 내보냅니다. 그래픽이 들어갔지만, 평화를 위한 편집이죠. 얌전하고 튀지 않습니다. 감성적인 텍스트와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쓰는 거죠.

출판사 : 저희의 모토가 '주장하지 않고 스며들겠다'입니다. 


장은수 : 한국 문학 출판에서 마음산책은 예외적입니다. 전통 문학 출판사들은 오랫동안 마음산책의 주 무대인 감성적 영역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당장 문학과지성사, 창비만 해도 창립 후 거의 30년 동안 감성적 에세이를 출판하지 않았습니다. 문학동네, 민음사도 에세이가 주력은 아니죠. 반면, 마음산책은 내는 소설마저 에세이에 가까운 잔잔함을 가집니다.

그간 독자와 무겁게 소통한 한국 문학 작가도 마음산책에서 책을 내면 독자와 부드럽게 이야기합니다. 이 해법을 마음산책의 편집이 만들어냈습니다. 가볍지만 고급인 에세이 시장이라고 할까요? 이 영역에서 마음산책은 고유한 역할을 했습니다. 오랜 기간 누적된 마음산책의 편집술이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에 반영됐다고 봅니다. '역시!'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홍 : 자기 독자에게 철저히 포커스를 맞춘 선택이 이 책의 성공으로 이어졌다고 봐요. 이 책의 내용, 작가의 힘을 전부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요즘처럼 책이 안 팔리는 시대에 5만 부나 나갔다는 건 대단합니다. 여성 독자에게 철저히 포커스를 맞춰서라고 봅니다.

출판사 : 마음산책의 정체성은 정통 한국 소설을 내지 않는다는 것, 애정을 갖고 짧은 소설을 만들어간다는 것일 텐데, 이 연장선에 이기호 작가의 대중 친화적 글이 결합했습니다. 작가의 글을 저희는 저희가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편집했고요.


이홍 : 제가 최근 진행한 강의에서 출판사 이름을 가리고, 이 책의 본문 텍스트 몇 개를 뽑아서 서른 두 명의 학생에게 읽혔습니다. 그리고 물어봤더니, 2명을 제외한 30명이 '20~30대 여성 취향의 책'이라고 답했습니다. 서점에서 이 책을 펼쳐본 남자는 '별로다'라고 덮어버린 반면, 여성은 자기 감성과 책을 연결하려 했을 수 있다는 거죠.

이 책의 메시지가 딱히 여성을 타깃으로 한 게 아닌데도, 책의 분위기에서 여성이 호감을 가졌다는 말이죠. 마음산책이 같은 편집 방향성을 추구한 다른 책과 이 책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 연결되었다고 봐도 될 것 같아요.

내 독자는 누구인가

장은수 : 1970년대 천경자 선생님이 에세이 편집을 혁신해서 독자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에 전시된 책들이 아직도 세련되었다는 느낌을 주니까, 당시로서는 얼마나 현대적이라고 느꼈을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출판사에도 흔적이 남아있지만, 크게 보면 샘터사의 에세이 편집이 그 세련됨을 오랫동안 이어갔습니다. 장영희 선생님의 에세이를 보면 그 느낌이 확실히 전해지죠.

에세이 편집은 1990년대 들어와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등의 출판인을 거쳐 계속 혁신해 왔습니다. '샘터식 편집술'이라고 부르고 싶은 전통에 다른 장르에서 체화한 편집술이 합쳐지면서 마음산책의 편집 스타일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출판사가 고유의 편집 방식을 가지는 건 중요합니다. 마음산책의 차별성이 무엇인지, 마음산책의 편집자들도 연구를 거듭해서 선명한 길을 제시했으면 합니다. 최근 출판 디자이너들이 관련 연구를 많이 하는 데 비해, 편집자들의 지면 구성 연구는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이 책의 성공을 계기로 편집자들이 자신의 편집술에 대해서 좀 더 의식적으로 사고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주제를 전환해 보죠. 대담 전, 출판사에 사전 질문지를 보냈습니다. 답변 중 재미있는 게 있어요. 마음산책이 이 책의 핵심 독자로 본 계층은 40~50대 여성이라는 겁니다. 실제로는 30대 여성이 압도적이죠.

우리가 여태 대담을 하면서 여러 출판사에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자기 독자를 정확히 파악한 출판사가 거의 없었어요. 대부분 출판사가 독자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활동하고, 편집자 역시 자기 독자를 거의 모르는 채로 책을 만들고 있다는 거죠.

대담을 통해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만, 독자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앞으로 점점 중요해질 겁니다. 이제 서점은 원하는 책만 파는 시대로 갑니다. 최근 붐이 일어나는 독립 서점은 당연합니다. 원하는 책만 팔고 싶으니 '독립' 아니겠습니까. 출판사가 원하는 책을 서점이 팔고, 팔리지 않으면 반품하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온라인 서점을 통해서 어떤 책이든 구매가 가능한 시대에서 예전 방식으로는 서점이 유지되기 어려우니까요. 최근에 나온 우치누마 신타로의 <책의 역습>(문희언 옮김, 하루 펴냄)은 그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그렇다면, 이제 출판사가 직접 독자를 관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출판사 : 우리 독자뿐만 아니라 한국 소설의 주요 독자층은 30~40대 여성이 맞습니다. 다만 이 책을 홍보할 때 독자 반응을 보면, <TV, 책을 보다>나 카카오 페이지처럼 40~50대가 더 많이 이용하는 프로그램에서 호응이 좋았습니다.


이홍 : 결국 출판사는 책이라는 상품을 만들어 파는 제조 업체입니다. 모든 출판 관계자의 문제이자 한계는, 내 상품을 만들면서 뭐가 중요한지 물어볼 줄 모른다는 겁니다. 우리 출판사의 전통, 우리 편집주간의 경험, 업무자의 의식에만 근거해 책을 만듭니다.

마음산책이 이 책 독자를 40~50대 여성으로 정했다면 그 이유가 뭔가요? 직관 외에는 없을 겁니다. 단순히 틀렸다는 게 문제가 아니에요. 애초에 독자 자료가 없었다는 게 문제입니다.

앞서 제가 학생들에게 책을 보여준 이야기를 했는데, 이런 작은 노력만 기울였어도 이 책 독자가 누구인지 알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독자에 맞춰 홍보 전략을 세울 수 있었겠죠. 많은 출판사의 기획과 편집 과정에서 이런 간단한 시도조차 외면받고 있습니다. 생산자로서의 경험은 소중하지만, 절대적이라 생각하는 오류는 늘 현실과 이상의 괴리라는 벽을 만들기도 합니다.

장은수 : 결국 경영이란 실패를 줄이고 성공 확률을 키우는 것 아니겠어요? 실패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가장 중요한 질문은 분명히 '누가 이 책을 읽을 것인가'일 겁니다. 즉, 모든 출판의 기초는 '나의 독자는 누구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독자를 파악하기 위해 포커스 독자 그룹이라도 운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마음산책처럼 자기 색깔이 뚜렷한 출판사는 50~100명 정도 독자로 구성된 포커스 그룹을 운영하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들과 일상적으로 대화하면서 책을 만드는 작업이 편집자나 마케터한테 아주 중요하리라고 봅니다.

▲ 우리는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은 듯' 살기를 강요받는지도 모른다. ⓒ연합뉴스


소셜 미디어 시대의 콘텐츠 홍보

장은수 : 초반에 저자의 사인본 증정 이벤트와 스티커 증정 이벤트를 실시했어요. 독자층에 딱 맞는 아이디어였다고 봅니다. 특히 비용 대비 효과가 좋았다고 봅니다.

샘플북 증정 이벤트도 실시했는데, 이는 그다지 효과적인 홍보 방식이 아니라고 봅니다. 독자 반응 확인이 불가능하잖아요. 차라리 오가닉미디어랩 윤지영 대표처럼 책 내용을 인터넷에 그냥 올리는 게 독자 반응을 끌어내는 데 더 도움이 될 겁니다.

소셜 미디어 시대에 맞게 홍보도 진화해야 합니다. 스티커 이벤트는 소셜 미디어 친화적이죠.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 같은 곳에 올리고 싶잖아요. 독자 움직임을 끌어냅니다.

이홍 : 꼭 어떤 이벤트가 책에 도움이 됐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중요한 건, 출판사가 책의 홍보에서 원인과 결과 분석을 잘 해야 한다는 데 있죠.

소셜 미디어 시대를 말하며 계속 언급되는 내용입니다만, 이제 독자가 책을 홍보하는 시대입니다. 생산자와 소비자라는 고정된 영역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출판사가 책을 파는 게 아니라 독자가 사는 것이고, 책을 전파하는 힘도 독자가 가지고 있습니다. 이 관계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출판사 스스로 변화를 모색해야 합니다.

출판사는 독자가 자발적으로 책에 관해 이야기할 동력을 제공해야 합니다. 1억 원 들여 큰 광고하는 것보다, 인스타그램에 수백 명의 독자가 이 책을 이야기하도록 돕는 게 더 중요합니다. 출판사가 소셜 미디어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장은수 : 요즘처럼 책이 안 팔리는 시대에 5만 부를 팔았다면 큰 성공입니다. 요즘은 과거에 비해 기회를 잡기 어렵습니다. 성공하더라도 그 크기가 작습니다. 빠른 속도로 신간이 팔리고, 빠른 속도로 가라앉습니다. 5만 부 팔았을 때 10만 부를 준비하는 출판사와 5만 부에 만족하고 마는 출판사의 실적이 장기적으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기회를 힘 있게 잘 끌고 가는 대표적 출판사가 김영사입니다. 우리가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김영사 펴냄)가 8만 부가량 팔렸을 때 대담을 진행했는데, 지금은 13만 부 이상 판매됐습니다. 그사이 출판사는 저자 강연회를 대대적으로 개최하는 등 계속해서 홍보를 이어갔죠. 1차 판매 목표를 달성했을 때,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관련 기사 : 불안한 중년 남성, <사피엔스>에 열광하는 이유는...)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의 판매 실적은 6월 들어 떨어지고 있습니다. 책을 더 알리기 위해 고민해야 합니다. 과거에 비해 기본 부수를 팔기가 힘드니, 실패했을 때 그만큼 권당 손해액은 커집니다. 기회가 왔을 때 좀 더 많이 팔지 못하면 경영상으로 어려워집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했느냐가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가 중요합니다.

이홍 : 단순히 '짧은 소설'에 초점을 둔다면, 이 책은 여러 소설 중 하나에 불과하죠. 이 책만이 가진 가치를 독자에게 알려야 합니다.

장은수 : 맞아요. 메시지 업그레이드가 필요합니다. 마음산책이 의식적으로 그림과 짧은 내용이 결합한 책은 내는데, 이 책의 성공 이후 다음 책이 제로에서 시작하지 않도록 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아주 중요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판 브랜드 시대

이홍 :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는 이 시대의 독자를 견인하고, 공감을 이끌어낼 내용으로 채워진 책입니다. 앞으로도 중요한 전형이 될 책이라고 봅니다. 향후 이 책의 홍보 메시지가 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도 함께 나눴습니다. 1만 부 독자, 5만 부 독자, 10만 부 독자는 다 다릅니다. 더 많은 독자가 이 책의 감동을 공유하길 기대합니다.

▲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이기호 지음, 박선경 그림, 마음산책 펴냄). ⓒ마음산책

장은수 : 출판사가 자기 정체성을 갖고 브랜드화하는 게 중요한 시대입니다. 마음산책은 이런 점에서는 본보기 출판사라고 봅니다.

마음산책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짧은 소설 시리즈화를 추진하는 것도 바람직해 보입니다. 대형 출판사 중 대표적 시리즈 출판물을 내지 않는 출판사가 없습니다. 시리즈의 힘이 독자를 고정적으로 잡아둡니다. 출판사가 가진 브랜드 가치의 가장 큰 지분이 바로 시리즈물에서 나옵니다. 유사한 독자 경험이 쌓이니까요.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를 통해 우리가 간략하게나마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자 브랜드의 중요성도 앞으로 출판인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소셜 미디어 시대에 맞춰 저자가 스스로를 브랜드화하는데, 이때 저자와 출판사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느냐는 앞으로 출판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겁니다. 고정적인 국내 작가를 거느리지 못한 마음산책은 이 부분에 더 신경 써야 하리라고 봅니다. 특히, 문학 출판에서 출판사와 작가의 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개인적인 소감을 조금 더 말하고 이야기를 끝내죠. 많은 느낌을 받은 소설입니다. 가벼운 내용인데도, 끈적하게 마음에 남는 게 많은 소설입니다. 우리들, 그리고 우리 동생들, 우리 조카들이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안쓰럽기도 했고,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울음 속에서 웃음을 발견하는 것, 웃음 속에서 울음을 창조하는 것, 이런 게 문학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기자가 되면 거지부터 왕까지 누구나 만난다고 들었다. 거지한테 혼나고 왕은 안 만나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