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리아' 편에 서는 '진보 정치'는 왜 없나?
'메갈리아' 편에 서는 '진보 정치'는 왜 없나?
[장석준 칼럼] 유리창 깨는 여성 편에 선 진보 정치
지난 여름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는 <서프러제트>였다. 20세기 벽두에 영국 사회를 격동시킨 여성 참정권 쟁취 운동을 다룬 영화다. 주인공은 세탁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다. 영화는 착취와 차별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하루하루를 살던 그녀가 어떻게 여성 운동가로 성장하게 됐는지 담담하게 그린다.

하지만 투쟁의 장면은 그리 담담하지 않다. 아주 격렬하다. 영화 속 여성 투사들은 상점 유리창을 깨고, 정부 인사의 별장에 폭발물을 투척한다. 그야말로 테러다. 영화라서 과장이 섞인 게 아니다. 그 시대 여성 운동이 실제 그랬다. 에멀린 팽크허스트와 그녀의 딸들이 이끌던 여성사회정치연합(WSPU)이 제1차 세계 대전 직전 몇 년 동안 여성 참정권 도입에 미적대는 의회에 항의하며 이런 저강도 테러 전술을 구사했다.

21세기 한국에서는 '메갈리아'가 남성들의 여성 혐오 언어를 '미러링'한다고 해서 논란이 됐지만, 100년 전 영국의 여성사회정치연합은 단지 말만을 '미러링'하지는 않았다. 경찰이 여성 집회를 폭력으로 탄압하는 만큼 그 폭력을 '미러링'해주었다. 더 많은 유리창을 깨고 우체통을 폭파하고 공공 시설을 파손했다.

당대 남성 정치가의 반응이 어땠을지는 빤하다. <서프러제트>에는 당시 집권당이던 자유당 정치인이 나온다. 자유당은 그나마 보수당에 비해 개혁적인 정치 세력이었다. 영화에서 점잖은 거짓말쟁이로 나오는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만 해도 현대 복지 국가의 신호탄이 된 이른바 '인민 예산'을 발표해서 대영제국을 뒤흔들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런 로이드 조지라 해도 여성 참정권 문제 앞에서는 그저 남성 정치인 1인에 불과했다.

그런데 <서프러제트>에는 자유당 의원들은 나와도 노동당 의원들은 나오지 않는다. 이 무렵 노동당은 이미 하원에 40여 석을 확보한 상태였다. 노동당이라면 여성과 마찬가지로 정치 참여의 장벽과 마주했던 노동 계급을 대변한다는 정당 아닌가. 이런 정치 세력이니만큼 여성들의 격렬한 투쟁에 어떻게 반응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 참정권을 위해 의석을 내던진 노동당 하원의원

노동당이 다른 원내 정당과 다르기는 했다. 보수당은 여성 참정권에 반대했고 자유당은 일부 의원만 지지했지만 노동당은 보통 선거 제도가 당론이었다. 그러나 당론이기는 했으되 가장 중요한 현안은 아니었다. 총선 공약집 어딘가에 여성 참정권이 적혀 있기는 했지만, 노동당 의원에게는 항상 '더 중요한' 다른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노동당도 여성사회정치연합의 전술에 대해서는 보수당, 자유당만큼이나 거리를 두었다. 램지 맥도널드가 이끌던 노동당 원내 집행부는 "우리도 여성사회정치연합의 극렬 행동은 비판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목표는 공감하지만 극단적인 운동 방식은 안 된다"는 말. 딱히 틀린 구석은 없지만, 정치적으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이었다.

노동당 집행부에게는 좋은 알리바이도 있었다. 여성사회정치연합에 비해 온건 노선을 추구한 또 다른 여성 운동 조직, 여성참정권협회전국연합(NUWSS)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당 의원은 여성참정권협회전국연합의 노선을 지지한다고 천명함으로써 별로 어렵지 않게 전투적 여성주의자들과 선을 그을 수 있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서프러제트>에 노동당이 중요하게 등장하지 않는 게 그다지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별 이야기 거리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 한 명의 노동당 하원의원을 셈해 넣지 않았을 때에만 이것은 맞는 말이다. 이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놀라운 이야기가 있다.

1912년 6월 25일 하원은 감옥에서 단식 투쟁 중이던 여성사회정치연합 활동가 에밀리 데이비슨(<서프러제트>에서 "여성에게 투표권을!"이라고 외치며 경마장에 뛰어들어 사망한 바로 그 여성)에게 음식물을 강제 투입한 사건을 논의했다. 자유당 소속이던 허버트 애스퀴스 총리는 정부가 여성들을 가두고 싶어서 가둔 게 아니라고 발언했다. 여성 운동가들이 투쟁의 수단으로 일부러 법을 어겨 감옥에 갔으니 정부 책임이 아니라는 변명이었다.

바로 이 때 기나긴 영국 의회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가 펼쳐졌다. 의원 한 사람이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와 총리 면전에 대고 호통을 쳤다.

"이 욕먹을 가치도 없는 작자야! 죄 없는 여성에게 음식물을 강제 투입해서 거의 죽게 만들다니. 당장 총리 자리에서 쫓겨나도 시원치 않아!" ([George Lansbury : At the Heart of Old Labour](John Shepherd 지음, Oxford University Press 펴냄, 2002년). 112쪽)

그러고 나서 이 의원은 투옥된 여성사회정치연합 활동가들에 대한 정부의 폭압을 규탄하는 연설을 했다. 의장이 연설을 제지했지만, 이 의원은 굴하지 않았다. 마침내 의장은 퇴장을 명했다. 단순히 퇴장하라고 한 것이었지만, 신문들은 "의원직이 정지됐다"고 보도했다. 이 의원은 노동당 소속의 조지 랜스베리였다.

맥도널드는 부랴부랴 신문사마다 자필 서한을 보내 당의 공식 입장을 해명했다. 그는 랜스베리 사건이 "여성 투표권 획득에 치명적인 곤란을 야기"했다고 평했고, 여성사회정치연합의 행동을 "바보짓거리"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랜스베리 본인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그는 여성들의 요구에 미온적인 당을 규탄하면서 여성 참정권 문제에 정치 생명을 걸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몇 달 뒤에 돌연 의원직 사임을 발표했다. 자신의 사임으로 실시될 지역구(런던 동부에 위치) 재선거에 "즉각적인 여성 참정권 인정" 공약 하나만을 들고 다시 출마해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겠다는 것이었다.

이때 랜스베리의 나이는 53세였다. 평생을 자유당 지역구 조직책, 사회주의 단체의 선동가, 노동당의 지역 개척자로 살다 어렵사리 하원의원에 당선된 지 2년밖에 안 된 처지였다. 그런데 힘들게 얻은 그 의원직을 걸고 당이 지지해주지도 않는 승부에 나선 것이다.

너무 즉흥적이고 모험적이라는 비난을 들을 만도 하다. 하지만 그의 정치 이력을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여성 참정권 인정"은 선거 때마다 그가 내세운 핵심 공약이었다. 사회주의, 여성주의, 평화주의는 기독교와 함께 랜스베리의 굳건한 신념이었다.

랜스베리와 보수당 후보가 양자 대결을 벌인 재선거는 여성 참정권을 둘러싼 논란의 일대 전장이 됐다. 랜스베리는 정말 "여성 참정권 인정" 하나만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반면 보수당 후보는 "여성 참정권 반대"로 맞섰다. 노동당은 랜스베리를 지원하지 않았지만, 여성사회정치연합은 그의 선거 운동에 전력투구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보수당 후보는 4042표를 얻은 반면 랜스베리는 3291표를 받았다. 랜스베리의 패배였다. 이로써 그의 첫 하원의원 경험은 2년도 채우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노동당 부활의 원동력이 된 랜스베리의 이야기

다른 정치인이라면 이제부터라도 급진적 여성 운동과 거리를 둘 방도부터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랜스베리의 행보는 정반대였다. 여성사회정치연합의 집회가 열릴 때마다 거기에는 랜스베리 전 의원이 있었다. 1913년 앨버트 홀에서 열린 집회에서는 이렇게 연설했다.

"우리 모두 여성 투사들과 어깨 걸고 나아갑시다. 그들의 투쟁에 함께 합시다. 지도자들을 잡아 가두는 데 맞서서 그들은 방화든 파괴든 무엇이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유리창이 깨지고 골프장이 공격 받고 경마장이 불에 타서라도 그들의 말이 울려 퍼져야 합니다." ([George Lansbury : At the Heart of Old Labour], 131쪽)

이 발언 때문에 랜스베리는 감옥에서 석 달을 보내야 했다. 노골적으로 테러를 선동했다는 죄목이었다. 이렇게 1910년대의 나머지 세월 동안 랜스베리는 재야 인사로 살아야 했다. 여성 참정권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쯤에야 실현됐고, 랜스베리는 1922년에야 하원의원에 다시 당선됐다. 10년만의 복귀였다.

한데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후일담이 있다. 1931년에 영국은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당시 집권당은 노동당이었다. 맥도널드가 총리였다. 맥도널드 정부는 대공황으로 인해 재정 위기가 닥치자 증가일로의 실업 급여부터 삭감하려 들었다. 당연히 당과 노동조합은 결사반대했다. 그러자 맥도널드 총리는 당에 알리지도 않고 보수당, 자유당과 거국 내각을 수립해서 실업 급여 삭감을 단행했다.

분노한 노동당은 현직 총리이자 대표를 출당시켜 버렸다. 맥도널드를 비롯해 창당 때부터 당을 이끌어온 지도자들이 노동당을 버리고 떠났다. 곧이어 실시된 조기 총선에서 노동당 의석은 225석에서 52석으로 줄었다. 사실상 당이 붕괴했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대표를 맡아 무너진 당을 추스른 사람이 바로 노구의 랜스베리였다. 다들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그 이야기 속에서 그는 고통 받는 이들, 투쟁하는 이들 곁을 떠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우리 곁을 결코 떠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대표가 됐다. 사람들이 발걸음을 되돌렸고, 마음들이 다시 모였다. 그가 대표로 있던 3년 동안 노동당은 사회주의 정당으로 전열을 정비했다. 차기 지도자들도 성장했다. 그 중 한 명이 전후에 총리로서 복지 국가 건설을 책임지게 될 클레멘트 애틀리였다.

흔히 제러미 코빈을 노동당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대표라고 하지만, 여기에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 "조지 랜스베리 이후"에 가장 급진적인 노동당 대표라고 해야 맞다.

지금 한국의 진보 정당은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가

여성 참정권 운동부터 대공황에 이르기까지 맥도널드와 랜스베리가 마치 양극처럼 대표해온 영국 노동당의 역사는 정당을 구성하는 요소들 중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당원은 많을 때도 있고 적을 때도 있다. 지지자는 흩어질 수도 있고 다시 모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요소만 존재한다면, 당은 어떤 경우든 죽지 않는다.

그것은 '이야기'다. 이야기가 있는 정치 세력은 절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함께 나눌 이야기가 있는 정당은 어떤 실패든 위기든 딛고 일어설 수 있다. 랜스베리는 노동당에 그런 이야기를 더해준 사람이었다.

한국의 진보 정당 운동은 어떠한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 기회는 선거처럼 달력에 날짜를 박고 오는 것도 아니고, 당료들이 기획 문서를 열심히 쓴다고 해서 오는 것도 아니다. 그 기회는 항상 느닷없이, 늘 당황스러운 선택들로 닥친다. 지금 우리 진보 정당 운동은 과연 이런 시험의 순간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지난 여름 우리는 무엇을 했던가?

갈 길이 아직 멀다.

사족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돼 인기를 끈 <제시카의 추리 극장(Murder, She Wrote)>이라는 미국 TV 드라마가 있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인 아줌마 탐정으로 나온 명배우 안젤라 랜스베리가 바로 조지 랜스베리의 손녀다.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녀도 평생 노동당 지지자였다고 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tyio@pressian.com 다른 글 보기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