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이 좋은데, 4등 하면 안 되나요?
수영이 좋은데, 4등 하면 안 되나요?
[이종훈의 영화 같은 스포츠] 패럴림픽 첫 수영 3관왕 이룩한 조기성과 <4등>
2016.09.19 17:39:05
우리에게 지난 12일동안 열전과 감동의 드라마를 선물해줬던 2016 리우 패럴림픽이 19일 폐막식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번 리우 패럴림픽이 낳은 최고의 스타는 한국 패럴림픽 수영 역사상 최초로 3관왕에 오른 조기성(장애등급 S4)이다. 조기성은 지난 9일 100m 남자 자유형 금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14일 자유형 200m, 그리고 18일 자유형 50m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대한민국 패럴림픽 수영 역사상 첫 3관왕에 올랐다.

사실 조기성은 이번 대회 이전부터 다관왕을 노릴 선수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아온 선수다. 조기성은 지난 2015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00m와 200m에서 금메달, 5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면서 단숨에 대한민국 패럴림픽 수영 대표팀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조기성은 태어날 때 뇌혈관이 터져 선천적 뇌병변 장애를 앓았던 탓에 하체를 쓰지 못한다. 때문에 그는 처음에는 물에 들어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온몸이 경직될 정도로 물을 무서워했다. 하지만, 어느날 지인으로부터 "수영을 하면 걸을 수 있다"는 말을 스치듯 들은 뒤부터 그는 변했다. 정말이지 미치도록 걸어보고 싶었던 조기성은 그 길로 재활센터로 달려가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게 2008년의 일이다. 이후 조기성은 비록 다른 사람처럼 두 발을 쓰지는 못했지만, 두 손으로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헤엄칠 수 있었다. 수영만 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때부터 수영장은 그에게 더는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즐거운 놀이터가 됐다. 

조기성이 얻은 새로운 즐거움은 어머니와 누나의 헌신과 희생 덕분이다. 조기성의 어머니는 개인 시간을 모두 희생하며 아들 뒷바라지에 몰두했다. 조기성의 말처럼 "어머니의 희생은 오늘날 조기성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는 가장 큰 빚"이 되고 있다. 조기성의 누나는 이런 어머니로 인해 어머니의 사랑을 마음껏 받지 못하고 자라왔다. 때문에 조기성은 "누나의 희생이 수영 선수 조기성을 만들었다"며 누나와 어머니에게 고마움을 자주 드러낸다.

▲ 조기성은 한국 패럴림픽 수영 사상 최초로 3관왕에 올랐다. 한국 스포츠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다. ⓒ연합뉴스


조기성의 인생 스토리를 접하면서 떠오른 영화가 하나 있다. 지난 2015년에 개봉한 영화 <4등>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초등학생 준호다. 조기성과 마찬가지로 수영 선수다. 영화 속 준호는 그냥 수영하는 것이 좋아서 수영 선수의 길을 선택한 평범한 남자 아이다. 준호는 대회에 나갔다 하면 늘 4등이다. 물에 들어가 수영하는 것 자체가 즐거운 준호에게 4등이라는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때문에 준호는 늘 즐겁다. 

하지만 준호의 엄마는 다르다. 준호 엄마는 4등이라는 숫자가 미치도록 싫고, 4등을 하고도 밝게 웃으며 돌아다니는 아들이 못마땅하기만 하다. 이후 준호 엄마는 '아들의 인생이 4등에 머무르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준호에게 새로운 코치 광수를 붙여준다. 준호는 광수와의 훈련 후 출전한 대회에서 1등과 거의 차이가 없는 2등을 차지한다. 준호 엄마는 흥분과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이후 가족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준호의 메달 획득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이 모여 고기를 구워먹을 때, 준호의 부모는 준호의 동생 기호로부터 "형, 맞으니까 메달 딴 거야? 안 맞았을 때는 4등하더니"라는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다. 준호에게 메달을 안겨준 코치 광수의 새로운 지도방식은 매질이었다. 아들이 온 몸에 멍이 생길 정도로 맞으며 훈련한다는 사실에 준호의 부모는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준호의 엄마는 남편에게 "난 준호가 맞는 것보다 4등하는 게 더 무서워"라고 말하며 광수의 체벌과 폭력에 눈을 질끈 감고 만다.

이후 준호는 수영을 즐기지 못한다. 결국, 수영을 그만두고 만다. 그럼에도 수영을 향한 갈증을 버리진 못한다. 결국, 준호는 수영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엄마와 코치가 원하는 1등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진짜 1등을 하고 싶어요. 그래야 수영을 계속할 수 있으니까요." 준호는 스스로 진짜 1등을 꿈꾸게 되고, 엄마도 코치도 없이 홀로 대회에 출전한다.

조기성은 작년 한 인터뷰에서 "패럴림픽은 수영을 시작하고 꾸기 시작한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에, 꼭 메달을 따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누구보다 많은 구슬땀을 흘렸다. 본인 말에 따르면 '거의 미친 듯이' 훈련에만 몰두했다. 조기성 역시 영화 후반부의 준호처럼 진짜 1등을 하고 싶었던 거다. 

사실 패럴림픽에 출전하는 거의 모든 선수는 가족의 희생과 헌신 덕분에 패럴림픽 무대에 서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는 장애를 가진 자식이 스포츠를 통해 즐거움을 느끼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꺼이 희생을 자처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수가 해당 종목에 점점 더 즐거움을 느끼고 재능을 보이면 보일수록, 부모는 영화 속 준호 엄마처럼 내 자식이 메달을 따서 국가로부터 연금을 받거나 실업팀 소속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가 "꾸리꾸리한 삶"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새로이 얻은 목표가 처음의 즐거움을 앗아버리는 셈이다. <4등>의 부모의 선택을 마냥 비난하기란, 현실을 볼 때 결코 쉽지 않다. 

영화 <4등>의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는 물 속에서 자유롭게 노는 준호를 따라다닌다. 카메라에 담긴 준호의 자유로운 모습과 숨소리, 물결의 일렁임 등은 묘한 긴장감을 준다. 그리고 물 밖으로 준호가 얼굴을 내밀었을 때, 준호는 난생 처음으로 엄마가 그토록 바랬던 1등을 하게 된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준호의 얼굴은 기쁨에 벅찬 표정도, 즐거움에 환하게 웃는 표정도 아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대회가 재미없을 것 같다. 터치패드를 찍고 물 밖으로 나온 선수들에게 응원을 보내줄 사람이 한국에는 없다."

폐막식을 앞두고 조기성은 이렇게 말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패럴림픽 수영 3관왕에 올랐고, 대통령으로부터 "역사에 남을 영광의 기록을 세웠다"며 축전을 받은 선수의 마지막 말은 대한민국에서 장애인 스포츠 선수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어쩌면 축제가 끝난 지금, 조기성을 비롯해 이번 리우 패럴림픽에 출전했던 81명의 우리 선수들과 그 가족들은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 그리고 허탈함 등으로 인해 애매모호하고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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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스포츠가 좋아서 스포츠 전력분석 일을 하다가 현재는 기고와 방송활동을 업으로 삼는 스포츠평론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무한경쟁과 승리의 스포츠'보다는 '휴식과 힐링의 스포츠', '내가 응원하는 스포츠'보다는 '나를 응원해주는 스포츠'라는 관점으로 스포츠를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자칭 색다른 스포츠평론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