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촛불을 보며 강유위를 생각하다
100만 촛불을 보며 강유위를 생각하다
[장현근의 중국 사상 오디세이] 이상과 현실의 갈등, 강유위(康有爲)
2016.11.16 07:5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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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촛불을 보며 강유위를 생각하다
장현근 용인대학교 교수
1) 묵자는 왜 전쟁에 반대했을까?
장현근 용인대학교 교수
3) 마오쩌둥을 키운 지식인, 참혹한 교수형…
장현근 용인대학교 교수

100만의 인파, 그 넘치는 에너지가 분노를 넘어 미래의 길을 밝히는 데 쓰인다면 우리 사회는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지식인은 언제나 어두운 현실과 불투명한 이상에 대해 갈등한다. 백여 년 전 당대의 지식인 최익현 선생은 촛불이 일렁이는 광화문 바로 그 자리에서 도끼를 등에 지고 엎드려 일본 사신을 처단하라고 상소를 올렸다. 그는 먼 섬으로 유배를 당했고 나라는 망했다. 그로부터 20년 뒤 중국 광동성 남해(南海) 사람 강유위(康有爲)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1300여 유생들의 뜻을 모아 공거상서(公車上書)를 올렸다. 당장은 거부당했지만 3년 뒤인 1898년 무술년에 광서제(光緖帝)는 강유위를 불러 정치 개혁을 단행하였다. 백일천하로 끝나고 말았지만 변법(變法)의 필요성은 각인되었고 중국은 마침내 스스로의 혁명을 완성했다.

한 사람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데 큰 역할을 할 수는 있으나 한 사람 때문에 세상의 모든 문제가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나라의 혼란은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다. 하물며 권력을 비판하고 권력자의 잘못을 지적하고 보다 많은 사람의 미래와 꿈을 얘기해야 하는 지식인으로서 작금의 혼란을 한 사람의 문제로만 돌리는 것은 책임 회피다. 사람들이 문제의 본질을 직시할 수 있도록 글로 보여주고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단기 처방과 장기 처방을 모두 고민하여 다시 행복한 꿈을 꿀 수 있도록 민중의 쓰라린 가슴을 어루만져줘야 한다.

갈등하는 지식인, 방황하는 지식인

돈만을 추종하는 세상, 선거로만 인식하는 민주주의 제도의 문제, 우리 내면에 불편하게 웅크리고 있는 독재에의 향수, 공부하지 않는 지도자들, 이기심과 기득권을 지키려는 음모들. 열린 다양성의 대 토론회가 필요하다. 백지 위에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새 그림을 그려가야 한다. 혁명가들은 기존의 것을 다 없애고 완전히 새 그림을 그리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많은 지식인들은 급진혁명보다 온건개혁을 선택한다. 

▲ 강유위(1905년). ⓒwikimedia.org



강유위 또한 평생 혁명을 거부했다. 일본에 도망해 있을 때 혁명가 손문(孫文)을 만나는 것을 거부했고 그의 제자 양계초(梁啓超)에게 혁명은 성은을 저버리는 짓이라고 힐난했다. 그는 개혁과 보수, 현대와 전통이 뒤섞인 복잡한 삶을 살았다. 전통 성리학을 공부하다 스무 살부터 서양에 빠져들었고 중화민국 초기엔 공자교를 국교로 삼자는 복고 운동을 벌였다. 무술변법으로 정치 개혁의 선봉장 노릇을 하다 나중에는 청나라 황제를 다시 옹립하자는 보황당(保皇黨)이 되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고문으로 삼아 중국, 일본, 영국, 미국의 합방을 주장하다 서태후에게 쫓겨 전 세계를 떠돌았다.

골동품을 훔치기도 했고 61세에 18세의 가난한 집 여자아이와 억지로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좋게 말하면 망명과 풍류가 엇갈리는 삶이었겠으나 이런 저런 이유로 오늘날도 강유위에 대한 논란은 끊임이 없다. 그가 영면하고 있는 칭다오(靑島) 명산의 무덤 아래엔 청도 대학이 있고 멀리 백사장이 아름다운 석노인(石老人)이란 기이한 이름의 해변이 펼쳐져 있다. 말년의 그는 이 동네서 초탈한 듯 살았으나 엉뚱하게 식중독으로 급서했다.

강유위의 이름과 자와 호를 합치면 열 개나 된다. 광동에도 청도에도 상해에도 심지어 스웨덴에도 집이 있었다. 망명을 여행처럼 다녔다. 그는 놀라운 서예가이자 서예 이론가이기도 했다. 그는 외국에서도 글씨를 팔아 연명한 적이 있으며 글과 말로 기녀를 유혹하다 돈을 안 갚고 몰래 도망가기도 했다. <유럽 11개국 유람기>를 쓰기도 했다. 뒷담화도 중구난방이다. 고집스런 지식인, 혹세무민의 지식인, 천재 지식인, 우국우민의 지식인, 자기과장의 지식인 등등.

그의 제자 양계초는 선생을 자신감 넘치는 지식인이면서도 사실을 곡해하여 자신의 주장에 끌어다 붙이는 집요한 분이었다고 평가했다. 그의 글을 읽고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격동기 '지식인'의 부초 같은 약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나는 그가 젊어서 쓴 <신학위경고>, <공자개제고>, <대동서>를 읽고 감동했던 적이 있다. 중국 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세계의 중국화를 꿈꾸는 공양학자의 태도가 싫고 이중적인 삶의 태도와 견강부회가 싫지만, 그의 글엔 허투루 보기 어려운 고민의 깊이가 있다. 유학을 구세의 열정으로 해석하는 학문 자세. 부민(富民)과 양민(養民)과 교민(敎民)의 3단계를 정치 개혁으로 실천한 행동. 문제는 많으나 적어도 꿈을 잃지 않는 학자의 태도를 볼 수 있었다. 그는 갈등하고 방황하는 지식인이었다.

▲ 칭다오에 있는 강유위의 묘. ⓒ장현근


고통 없는 극락 세계, 대동(大同)

갈등이 없으면 정치도 필요 없다. 현실의 갈등은 이상과의 충돌 때문에 생긴다. 그래서 이상을 견지함으로써 현실의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할 수 있는 것이다. 강유위도 이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고뇌했다. 그의 <대동서>의 진지한 상상은 인간의 고통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여 이상 사회로 끌어가려는 정치적 상상으로 가득하다. 이 책은 '인간이 세상에서 느끼는 모든 괴로움'을 첫 장으로 시작해서 '괴로움이 없는 극락의 세계로'로 끝 장을 맺는다. 나중에 공교(孔敎)를 만드느라 서양 종교를 깊이 연구했으나 이 책을 쓸 때 강유위는 중국적 대동(大同)을 종교 세계로 보지 않았다. 이 땅에 살아가는 민중의 애환을 헤아리고 중앙정부에서 지방자치, 양로원의 설치 등 민주와 평등을 중심에 놓은 정치적 상상을 펼친다.

국경의 경계, 등급의 경계, 피부색의 경계, 성별의 경계, 가정의 경계, 재산의 경계, 정부의 경계, 생물의 경계, 생존의 경계가 없다면 이 세상의 모든 차별과 억압은 없어질 것인가. 아니 이 경계가 허물어뜨릴 수 있는 경계인가? 9가지 경계가 사라지면 진정한 대동 세계가 열릴 것이라는 강유위의 견해는 그래서 허황되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그로부터 120년이 지난 지금 국가의 경계는 많이 무너졌으며, 남녀의 성차별은 많이 넘어섰으며, 산업간 경계도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단단한 경계의 벽이 버티고 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소수의 차별과 억압이 대동의 태평시대를 막고 있는 것이다. 강유위의 상상이 모두 현실이 되는 데 얼마의 세월이 걸릴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이 역사의 흐름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상상과 현실이다. 이상과 현실의 갈등이다. 강유위는 여기서 방황하고 말았다. 그의 139종 저술이 모두 창조적 상상은 아니지만 <대동서>는 자신을 공자화시키는 정치적 이상을 발현하고 있고, <실리공법전서>와 <춘추동씨학>은 동서양을 아우른 이상 국가 체제를 다룬 정치적 상상력을 보여준다. 상상은 변혁의 원동력이다. 인류 문명의 진전은 인간의 상상력 때문에 가능했다. 강유위는 대동의 세계를 상상하고 거기에 이르는 길을 상상하고 제도를 상상했다. 하지만 모두 상상에 가두어두었을 뿐이다. 기왕 경계가 허물어지면 태평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 상상했다면 방황하지 말고 거기에 이르는 구체적인 방법, 즉 현실의 기득권을 무너뜨리는 명확한 길을 제시했어야 한다. 그가 많은 경계를 허물어뜨린 손문의 공화 혁명을 인정하지 못하고 불철저한 공상주의자로 남은 것은 바로 그 지식인의 가녀린 방황 때문 아니었을까.

지식인은 선뜻 문을 박차고 나서지 못한다. 현실 정치에선 대체로 보수적이다. 그럼에도 이상에 관해 앞서 갔다면 학자로서 손색이 없다. 상상은 빈곤하고 이상을 말하지 못하면서 현실에서 보수적이라면 그는 기득권의 일부일 뿐 참된 지식인라고 부르기 어렵다. 우리 사회의 앞날을 가로막고 있는 저 초라한 학벌과 연공서열과 기득권의 벽이 무너지면 '고통 없는 극락 세계'가 열릴 수 있을까? 100만 인의 에너지가 거대한 토론장으로 거듭나기를!


"어진 사람이 지도자로 뽑히고, 서로가 신뢰하고 화목하며, 모두가 자기 가족만을 아끼지 않고, 충분한 일자리와 사회복지가 이루어지기를! 재물을 사적으로 독점하지 않고 노력하면 모두가 성공하기를! 도둑도 폭력도 없고 대문을 잠그지 않아도 되는 대동 세상이 열리기를!" 


(위의 구절은 <예기> 예운편 '대동'장을 요약한 것임)

장현근 용인대학교 교수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국 길림 대학교 문학원 및 한단 대학교 등의 겸임교수이다. 중국문화대학에서 '상군서' 연구로 석사 학위를, '순자'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가 사상의 현대화, 자유-자본-민주에 대한 동양 사상적 대안 찾기에 몰두하고 있다. <중국 사상의 뿌리>, <맹자 : 이익에 반대한 경세가>, <순자 : 예의로 세상을 바로잡는다>, <성왕 : 동양 리더십의 원형>, <중국의 정치 사상 : 관념의 변천사> 외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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