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은 어떻게 '베스트셀러 과학자'가 되었나?
정재승은 어떻게 '베스트셀러 과학자'가 되었나?
[월요일의 '과학 고전 50']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2016.11.28 06:42:45
정재승은 어떻게 '베스트셀러 과학자'가 되었나?
한 사람에 대한 첫인상이 상당히 강할 때가 있다. 나는 꽤 오래전 교육방송(EBS) 라디오에서 청소년 도서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공동 진행한 적이 있다. 주로 책을 요약 소개하고 저자를 인터뷰하는 형식이었다. 그 프로그램의 한 부분으로 새 책을 낸 저자를 리포터가 직접 찾아가 인터뷰를 따와 소개하는 부분이 있었다.

이런저런 저자를 많이 소개했는데, 그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시쳇말로 '물건'이 나왔구나 싶었다. 목소리가 또랑또랑하고 군말 없이 영양가 있는 말만 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과학자란다. 인터뷰가 나간 다음 마이크가 꺼진 상태에서 리포터에게 물어보았다. 이 친구 몇 살이래요? 돌아온 답은 27살.

기억하기로 그 책 제목이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어크로스 펴냄)였던 듯싶다. 과학에는 문외한이라는 리포터가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고 자랑했다. 아쉽게도 나는 지은이의 이름만 머리에 새겨놓고 그 책은 정작 보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그런 책을 썼다는 사실보다 대학원생이라는 점에 더 꽂혔던 듯싶다.

물리학과 대학원생이 대중과 소통하는 글을 썼다는 점이, 그리고 목소리만 들어도 명민함이 묻어나는 이라면 그야말로 스타 탄생을 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어크로스 펴냄). 과학 교양 도서의 새 지평을 연 이 책은 2001년 나왔다.

사람에 대한 인상이 강했던 만큼 책이 나오자마자 열독했다. 겁은 났다. 나 같은 사람이 과연 과학책을 읽어낼 수 있을까. 예상한 대로 기우였다. 물론, 세세한 항목을 정확히 이해하며 읽어낸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과학이 또는 물리학이 다루는 영역이 이토록 넓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이를 풀어나가는 지은이의 글 솜씨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아마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에 대한 초기 반응은 나와 비슷하지 않았을까싶다. 이 책이 무엇을 다룰지는 서문에 잘 나왔으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책은 복잡한 사회 현상의 이면에 감춰진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들을 독자와 함께 나누기 위해 쓰였다. 나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경제, 사회, 문화, 음악, 미술, 교통,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사회 현상들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으며, 카오스와 프랙털, 지프의 법칙, 1/f 등 몇 개의 개념만으로 그 모든 현상들이 그럴듯하게 설명된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길 바란다."

지금이야 일반 교양 차원에서도 상식이 되었지만, 어떻게 과학 이론이 사회 현상까지 설명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도 이미 서문에 실려 있으니, 이렇다.

"20세기 후반 일련의 과학자들에 의해 '복잡한 시스템을 다루는 과학적 패러다임', 이른바 '복잡성의 과학' 분야가 발전하면서 물리학자들은 자연에서 발견되는 복잡한 패턴들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그 속에 담겨 있는 법칙들이 무엇인지 탐구하기 시작했다. 지난 20년 동안 카오스 이론과 복잡성의 과학은 그동안 과학자들이 손대지 못했던 복잡한 자연 현상 속에서 규칙성을 찾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데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왔다. 그리고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행동 패턴, 다시 말해 '복잡한 사회 현상'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직 세상을 다루기엔 부족한 점이 많지만, 물리학자들은 이제야 비로소 그것을 다룰 '용기'를 갖게 된 것이다."

명민한 젊은 물리학자는 서문에 이미 승부수를 던졌다. 무엇을 다룰 것인지, 왜 그것이 가능한지 다 밝혀놓았잖은가. 그렇다면, 문제는 그 주제를 얼마나 잘 다루었는지에 따라 평판이 나누어질 테다. 대중이 알아먹게 할 만한 글 솜씨가 있는지, 다양한 주제를 전문성을 놓치지 않고 설명할 수 있는지, 서로 다른 주제를 하나로 꿰뚫는 주제 의식은 선명한지 등이 평가 항목이 될 수밖에 없을 터다. 29살의 물리학 박사, 그리고 손꼽히는 대학의 연구교수가 쓴 책이라는 점도 화제의 기폭제가 되었다.

출판계에는 이른바 정재승 '빠'가 있다. 눈에 보이는 상찬과 은밀한 뒷담화 수준의 비난이 난무하는 가운데 합리적 기준으로 정재승의 성취와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 이들이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고(故) 구본준 기자이다. 나중에 책으로도 나온 <한국의 글쟁이들>(한겨레출판 펴냄)에서 구 기자는 다음처럼 정재승을 평가한다.

"정 씨가 독자들을 사로잡은 가장 큰 요인은 역시 책의 내용과 정재승식 글쓰기였다. 정 교수는 물감을 흩뿌리는 현대 화가 잭슨 폴록의 그림으로 카오스 이론을 설명하고, 통계학이 저지르기 쉬운 오류를 오제이 심슨 사건으로 보여주는 식이다. 물리학자들이 경제 영역에 뛰어든다든 등 당시 국내에서는 접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이야기들이 과학을 설명하는 소재로 등장했다. 문화와 과학, 경제와 과학을 연결해 과학을 설명하는 책은 그동안 없었기에 독자들은 열광했던 것이다."

이 글에는 내가 이 책의 특징을 설명한 말이 인용되어 있다. 나는 구 기자에게 정재승의 장점으로 명민함과 기동성을 들었다. 다양한 분야의 신간들은 물론 외국 과학 저널에 나온 논문이나 기사들을 꾸준히 파악해 신속하게 글쓰기감으로 활용하는 기동성과, 이런 정보를 엮어 완결된 글로 써내는 명민함을 두루 갖추었다는 것. 예나 지금이나 나도 어쩔 수 없는 정재승빠인 셈이다.

소문난 정재승빠로 천문학자 이명현이 있다. 그는 나보다 정재승식 글쓰기를 더 높이 평가했다. "흩어져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모두 삼켜서 소화시킨 뒤 치밀한 네트워크 과정을 거친 후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서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다시 토해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정재승의 인문학적 관점에 대해서도 잘 지적했다. "사회 현상에 대한 물리학적 해석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분명하게 밝혀놓고 있다. 이미 인문학적인 성찰이 녹아있는 것이다"라며.

이 점은 정재승을 평가하며 기실 많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다. 정재승을 잘 아는 한 물리학자는 사석에서 그를 과학자라기보다는 인문학자라고 해야 진면목이 보인다고 말한 바도 있다. 이명현이 인용한 다음의 글을 읽어보면 누구나 동의할 성싶다.

"파레토의 법칙은 경제적 불평등이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자 인간의 숙명인양 주장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시스템의 동역학적 특징을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은 파레토의 법칙이 경제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아니라 시스템을 재정립하도록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사이렌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이제 그들이 해야 할일은 파레토의 법칙이 성립하게 된 원인을 규명하고, 어떻게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경제적으로 평등하고 정의로운 분배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 연구하는 일이다. 인간의 법칙은 변할 수 있는 법칙이기 때문이다."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는 전문가의 호평과 대중의 사랑을 동시에 받으며 판매에 호조를 보였다. 이후 문화방송(MBC)의 한 예능 프로의 선정 도서가 되면서 폭발적으로 읽히기도 했다. 이 책은 2011년 개정 증보판을 내고 새로운 서문과, '10년 늦은 커튼콜'을 수록했다. 10년 세월을 넘어 여전히 사랑받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구본준 기자의 글에 보면 정재승 교수는 <네이처> 게재 논문과 베스트셀러를 모두 쓰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정재승 교수에게 다른 것을 바란다. <네이처>에 쓴 논문으로 베스트셀러 과학책을 냈으면 싶다. 나는 그 가능성을 김호와 함께 쓴 <쿨하게 사과하라>(어크로스 펴냄)와 <1.4킬로그램의 우주, 뇌>(사이언스북스 펴냄)에 실린 '우리는 어떻게 선택하는가? 의사 결정의 신경 과학' 에서 이미 확인한 바 있다.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는 이제 추억의 콘서트다. 그가 선택을 주제로 펼칠 새로운 뇌 과학의 콘서트를 기다려보자.
tyio@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