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몰락한 북한, '히로뽕 왕국'으로 바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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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books] <우리의 소원은 전쟁>
2016.12.02 09:20:20
장강명 소설의 힘은 서사를 에두르지 않는 속도감과 현실 경계에 맞닿은 이야기의 힘에서 나온다. 온갖 문학상을 휩쓴 그의 전작 소설이 이를 입증했다. 헬조선, 댓글 조작 사건 등 우리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이슈를 그는 소설의 세계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해당 주제는 우리 삶에 밀접하게 맞닿았으면서도, 현실과 조금 동떨어진 듯한 비관적 메시지로 질주했다. 비관할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가 그의 서사에 곧바로 빠져들고 마는 이유였다. 

신작 <우리의 소원은 전쟁>(예담 펴냄) 역시 마찬가지다. 예전보다 더 큰 스케일의 무대에서 본격 액션 스릴러 스토리를 풀어놓는 이 책은 북한 독재 정권이 무너졌다는 가정 아래에 일어나는 근 미래상을 독자에게 던진다.

독자는 장강명의 전제에 우선 충격 받는다. 정권이 무너지자, 순간 권력 공백기에 빠진 북한은 지방 군벌이 득세하는 무법천지가 된다. 이들 중 조선해방군을 자처하는 군벌 마피아는 양강도에 거대 마약 기지를 세워 세계에 필로폰을 퍼뜨리는 마약 왕국을 세운다. 이 이권을 노리고 개성에서 마약 유통 군벌이 일어나는 것을 비롯해 북한 각지가 순식간에 마약 카르텔에 지배당한다. '남조선식 자본주의' 논리를 나름의 논리로 채득한 이들은 부패한 정치인, 남한에서 파병된 평화유지군을 매수해 북한을 남미 마약 왕국처럼 공권력이 무너진 정글로 만들어놓았다.

이 협잡의 최전선인 무법 지대 장풍군에서 소설이 본격적으로 출발한다. 혈혈단신의 몸으로 마약상과 싸움을 벌이는 전직 특수부대원 장리철, 남한 출신의 무기력한 평화유지군 장교 강민준, 말레이시아에서 파견된 마약수사팀의 미셸 롱 대위, 남한식 교육을 받은 은명화가 물 만난 물고기처럼 펄떡이며 이야기의 얼개를 엮어나간다.

이 작품의 미덕은 장르 소설을 읽는 쾌감과 한국 정치 상황을 절묘하게 엮음으로써 배가된다. 우리는 북한이 이미 망가진 체제임을 안다. 우리는 "통일은 대박"이라는, (어쩌면 임기를 채우지 못할 지도 모르는) 박근혜 대통령의 괴상한 이야기를 기억한다. 하지만, 만에 하나 실제로 김 씨 왕조가 무너진다면? 통일은 우리 기대처럼 갑작스럽게 다가와 버릴 것인가? 장강명은 이 가정에 과감히 '아니'라고 선을 긋고, 분단 체제가 더 확고해지리라고 선언한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통제 불가능한 마약 천지가 되어버려, 동아시아의 진짜 골칫덩어리로 전락하고 말리라는 뜻이다. 북한은 실제 국가 단위로 마약을 팔아 돈을 버는 마약 제조국이다.

따라서 독자는 장강명의 소설이 늘 그렇듯,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 주는 액션의 쾌감을 즐기는 한편 가정이 주는 상상의 나래를 머리 한편에 열어두곤 책을 따라가게 된다. 이 상상은 당연히 신문 내용과 궤를 같이 한다. 북한이 정말 통제되지 않는 마약 왕국이 되어버린다면, 그런데도 우리는 통일을 말할 수 있을까. 소설에서 남한은 붕괴한 북한의 상황에 경악하며 휴전선 경계를 더 강화한다. 북한 사람들은 "차라리 예전이 탈북하기 좋았다"며 김 씨의 하수인에서 마약상으로 탈을 바꿔 쓴 군벌의 폭력에 신음한다. 남한이 마약 소굴이 되어버린 북한과의 경계를 더 곧추세우는 광경은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는 도널드 트럼프의 호언과 절묘하게 겹친다. 정말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우리라고 다른 선택을 하겠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 <우리의 소원은 전쟁>(장강명 지음, 예담 펴냄). ⓒ예담

북한 출신 노동자는 남한에서 철저히 천대받는다. 이제 북한 사람들은 남한 사람들이 기피하는 더럽고, 불쾌하며, 노동 조건이 열악한 서비스업, 육체 노동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자리를 대체한다. 남한은 이를 '자본주의'라고 북한 사람들에게 선전한다. 북한 군인 출신이 마약 카르텔의 하수인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사회적 요인으로 묘사되는 이 상황은 작가가 말했듯 이응준의 소설 <국가의 사생활>(민음사 펴냄)의 설정과도 궤를 같이한다.

실제 장강명은 이 소설 후기에서 이응준의 작품을 비롯해 잭 리처 시리즈(주인공 이름이 장리철인 이유도 이 시리즈에 관한 오마주다), 마약 조직과의 전쟁을 그린 걸작 스릴러 <개의 힘>(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황금가지 펴냄) 등의 소설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무엇보다 여러 탈북자와의 인터뷰가 소설의 디테일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소원은 전쟁>은 통일을 결코 낭만적으로 생각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준비되지 않은 통일은 결코 대박도, 승리도 아니리라는 메시지를 경쾌하게 던진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북한을 우선 이해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잃지 않는다. 북한 사람이 남한 평화유지군을 일제 순사로 생각하리라는 강민준의 독백이 특히 그러하다.

판도라의 상자가 준비 없이 열리려 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좀처럼 책이 손에 잡히지 않는 시절이지만, 이 책은 즐기며 생각해볼 거리를 던진다.
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기자가 되면 거지부터 왕까지 누구나 만난다고 들었다. 거지한테 혼나고 왕은 안 만나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