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철학 "언론과 정치, 각자 정도를 가자"
노무현의 철학 "언론과 정치, 각자 정도를 가자"
[자유언론이 민주주의다]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 ④
노무현의 철학 "언론과 정치, 각자 정도를 가자"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과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은 20대 국회 시작과 더불어 발의된 '청와대 언론장악 방지법'(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에 공동발의자로 참여한 언론계 출신 야 3당 국회의원들의 기고를 받아 연속 게재합니다.

이 기획은 보수정권 9년 만에 국제단체가 실시한 언론자유지수 조사에서 70위까지 추락한 대한민국 언론 상황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언론장악 진상규명 청문회 실시 ▲청와대 언론장악 방지를 위한 법 개정 ▲부당하게 해고된 언론인들의 조속한 복귀를 촉구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편집자

노무현 대통령이 자주 하던 말이 있었다.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은 리더가 될 수 없다."

노 대통령은 토론을 즐겼다. 임기 내내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로 다양하게 국민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기회가 생길 때면, 으레 그 씩씩한 모습으로 카메라에 섰다. 반성하고 고개를 숙여야 할 땐 명확하게 책임을 인정했고, 논쟁이 될 수 있는 사안에서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는 사전에 질문자를 지정하지 않고, 현장에서 기자를 지명하는 자유 질문 회견을 시도하기도 했고, 언론사를 탄압하거나 부당한 압력을 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대통령은 언론과 친하지 않았고, 임기 내내 격렬한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나와 함께 일하던 몇몇 참모들은 '신문 보기가 두렵다'고 말할 정도였다.(강병원 의원은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으로 일했다. 편집자)

대통령은 보수 편향적인 언론 지형이 여론을 왜곡하고, 시민의 여론을 그릇된 방향으로 이끄는 풍토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폭력적인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말'과 '글'이라는, 선출직 지도자의 수단을 가지고 대응했을 뿐이다. "내가 임기 동안에 절대 하지 않을 일이 있습니다. 바로 KBS 사장에게 전화하는 것입니다"라는 정연주 전 KBS 사장과의 일화는,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언론정책 방향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보수 언론은 대통령이 너무 가볍다며 비난했지만, 참여정부 당시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언론 자유를 향유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이 정권을 움직였으면 움직였지, 정권이 언론과 결탁하여 국민 여론을 호도하거나 다른 정치 세력에 대한 보복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프레시안(최형락)


선명한 장면 하나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9월 26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당시 손석희 사회자가 진행하던 MBC <100분 토론>에 출연했다. 그날의 모습을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 접할 수 있다. 당연히 참모들 손에서는 땀이 흘렀지만, 대통령은 원고도 보지 않은 채 사회자의 날카로운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자신감 있게 답했다. 방송 관계자들 역시 "형식적인 대화가 아닌 솔직한 대화가 오갔다"고 상찬할 정도였다. 극히 예민했던 전시작전권 문제와 한미FTA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으레 기술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폭력적인 힘으로 언론을 제압하지 않았던 대통령은, 그럼에도 방송 후 언론의 융단폭격을 받았다. 그 순간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는 대통령의 마음을 조금도 짐작할 수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모든 것을 지도자의 선의에 의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노무현 대통령 같은 지도자가 또 나온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권력자들이 언론을 '손 보려는'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설령 '손 보려는' 시도가 있어도 막을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공공연히 벌어졌던 수많은 언론 탄압을 잊을 수 없다. 독재정권 시절처럼 하루가 멀게 해직기자가 속출했다. 청와대는 보도에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정권에 불리한 뉴스는 싹 감추었다. '언론은 죽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익숙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하필이면 또 세상에 (대통령이) KBS8를 오늘 봤네. 아이고, 한 번만 도와주시오"라며 KBS 세월호 보도에 개입했다. 이처럼 보수 정권은 단 하루도 언론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청와대 언론장악 방지법'(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은 그래서 절실하다. 쏟아지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가늠할 수 없으므로, 언론의 책임은 무엇보다 무겁다. 권력도 언론이 스스로 바른길을 갈 수 있도록 놓아주어야 한다. 언론장악 방지법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고, 한국방송공사의 최고의결기관인 이사회 구성과 한국방송공사 사장 선임 절차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보장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공영방송 본연의 임무인 방송의 공정성·공익성을 실현"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법이 국회에서 하루빨리 통과되어야, 공영방송을 비롯한 언론이 정권의 마수(魔手)에서 벗어날 수 있다.

▲ 강병원 의원 ⓒ연합뉴스

언론은 '민주주의의 파수꾼'이자, '사회의 공기'다. 권력의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는 것이 바로 언론의 역할이다. '현대 저널리즘의 개척자'라고 불리는 조셉 퓰리처 역시 "언론인은 다리 위에서 국가라는 배를 감시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언론이 자유로운 나라는 지속적으로 발전해왔고, 권력이 언론과 유착하거나 언론이 가진 자의 편에서 펜을 들면 그 사회는 후퇴했다.

우리는 군사독재 정권 시절부터 권력에 기생하며 국민의 자유가 억압된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지 못했고, 언론 보도 역시 권력의 입맛에 따라 천편일률적이었다. 소위 '땡전뉴스'는 권력과 언론의 유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암울한 세월 속에서도 양심 있는 언론인은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고, 마침내 국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만천하에 드러날 수 있었던 것도 언론이 제 역할을 수행했기에 가능했다. 자신의 이익과 편의를 돌보지 않고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과 헌정 유린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취재한 기자들은 단연 시대의 귀감으로, '2016년 촛불 시민 혁명사'에 남을 것이다.

언론은 언론대로 권력을 감시·비판하는 길을 가고, 권력은 권력대로 국민의 뜻에 따라 제 길을 가는 것.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규정하고 있는 '민주공화국의 원리'이다.
다른 글 보기
Top Headline
News Clip
Today Head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