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시험' 권력자들이 아직도 모르는 주자의 가르침
'과거시험' 권력자들이 아직도 모르는 주자의 가르침
[장현근의 중국 사상 오디세이] 공부를 위해 산 사람, 주희

대강남북(大江南北)의 명산대천을 돌다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머물고 싶은 곳이 있다. 나는 어느 바닷가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 가슴의 외로운 짐을 부리고픈 사치스런 꿈은 꾸어보지 못했지만, 어느 고요한 산자락에 초막을 짓고 책을 벗 삼아 하늘 위의 진리를 깨치는 데 매진하고 싶은 생각은 더러 한다.

머물고 싶은 곳, 무이산

주희(朱熹)가 성장기를 보내고 나중에 천리(天理)를 궁구하며 제자를 키우던 복건성(福建省) 무이산(武夷山)은 누구에게나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곳이다. 청명한 하늘과 따뜻한 바람, 푸른 산 바위 사이엔 무이암차(武夷巖茶)가 자란다. 황제가 내린 붉은 도포를 둘러쓴 대홍포(大紅袍)가 유명해진 것은 명나라 때이지만 그보다 2백 년 전의 주희도 비슷한 차를 마셨을 것이다.

암벽을 타고 천유봉(天游峰)에 오르면 무이구곡(武夷九曲)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비취빛으로 굽이치는 아홉 골물 곳곳엔 실제로 은거하여 공부한 사람들의 흔적이 많다. 필시 뒷짐을 지고 리기(理氣)와 중화(中和)와 태극(太極)을 사유하며 걸었을 이 위대한 스승의 발걸음을 밟아보고 싶은 나 같은 말학도 많았을 것이고 산세와 물길로 보면 도사들도 무척 드나들었을 법하다.

주희는 여기에 무이정사를 세우고 제자들에게 '천리를 지키고 인욕을 없애라'는 '존천리멸인욕(存天理滅人欲)'을 가르쳤다. 그리고 등잔불을 밝히고 새벽이 될 때까지 <논어>, <맹자>, <대학>, <중용>에 꼼꼼히 주석을 달았다.

▲ 주희가 천리를 궁구하고 제자를 키우던 무이정사의 풍경. ⓒ장현근


정사(精舍)는 서원으로 발전하기 전의 학당이다. 주희는 워낙 서원 부흥운동을 많이 했고 서원을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는 유학의 가르침에 충실한 곳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1178년 주희가 지남강군(知南康軍)으로 재직하면서 부활시킨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은 그 후 동아시아 사립대학인 서원의 운영과 교육의 기본 틀을 구성하게 된 중대한 사건이었다. 주희가 직접 쓴 <백록동서원 학규(學規)>는 교육 목적, 교과목 배치, 수업 과정 등을 총괄하는 세계 교육학의 선구적 업적이다. 몇몇 강령을 살펴보자.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 공부란 이 다섯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다."

"폭넓게 학습하고, 자세하게 묻고, 신중하게 사유하고, 분명하게 구별하는 학(學), 문(問), 사(思), 변(辨)의 네 가지 궁리(窮理) 과정을 거쳐라."

"말은 신실하고 일처리는 근면하며 감정을 억제하고 선을 실천하며 잘못이 있으면 고치는 것이 수신(修身)의 요령이다. 정의는 넓히고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진리를 밝히고 실적을 따지지 않는 삶을 실천하라. 자신이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 것이며 자신의 행동이 소기의 목적에 다다르지 못했다면 자기 안에서 그 원인을 찾아라."

우리나라 교육도 이와 같이 이뤄진다면 불통과 몰상식과 파렴치가 만연한 사회가 상식이 통하고 염치를 아는 세상으로 바뀌지 않을까. 대학은 큰 공부를 하는 곳인데 취업 공부와 실적만 따지는 이익 추구의 실천기관이 되고 말았으니. 졸업 후 평생을 그렇게 살아갈 터인데 굳이 젊은 시절 그 몇 년의 진지한 궁리와 수신의 시간까지 현실이란 이름으로 속박을 하니 이 땅의 대학생들이 너무나 안쓰럽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내 자신을 반성하며 내려오는 무이산 뒷길이 매우 쓸쓸했다.

관학이 되어버린 주자학


주희는 다른 소년들처럼 열여덟 살에 향시에 붙고 스물두 살에 관직을 얻었으나 이십대 후반에 벼슬에 뜻을 접고 교육과 공부에 전념하기로 작심한다. 물론 생계 때문에 또는 정부의 부름 때문에 간헐적으로 공직에 나가기도 했으나 언제든지 "예의에 힘쓰고 풍속을 두텁게 하고 간악한 공무원을 탄핵하고 백성들의 아픔을 구휼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 충실했다. 일을 하면서도 언제나 불교와 도교의 유행이 세상을 망치고 있으니 유학을 중흥하여 국가를 중흥시켜야 한다면서 공부에 매진했다. 공부를 위해 산 일생이었다.

공부는 모래 위에 지어지지 않는다. 공자의 위대함이 선철들의 성취를 집대성해 얻어진 것처럼 주자 또한 북송오자(北宋五子)와 송나라 초 세 선생의 학문을 집대성해 내었다. 열네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부친 생전의 배려에 따라 주희는 무이산으로 왔다. 스물아홉에 삼라만상의 근원적 이치인 리(理)를 강조한 정호(程顥)와 정이(程頤)의 학통을 물려받은 이동(李侗)을 스승으로 삼아 '낙학(洛學)'을 이으면서 주희의 학문은 깊어졌다. 거기에 주돈이(周敦頤)의 '태극'과 장재(張載)의 기(氣) 본위론을 흡수하여 성리학의 방대한 형이상학체계를 수립했다.

리는 모든 자연현상과 사회현상에 앞서 존재하는 근원이다. 논리적으로 변화하는 현상인 기보다 앞선다. 모든 리는 하나로 귀결되는 데 그것이 태극이며 만물은 모두 각자의 태극이 존재한다. 이것이 주희 철학의 핵심인 리일분수(理一分殊)설이다. 리는 깨닫는 것이 아니라 탐구하는 것이다. 주희는 하루아침의 깨침으로 학문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에 반대한다.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치열한 학문적 노력과 기나긴 공부를 통해서만 세상의 존재 이치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주희보다 아홉 살 어린 육구연(陸九淵)은 "우주가 바로 내 마음이고 내 마음이 바로 우주이니" 그 마음이 바로 리라는 '간이직절'한 공부를 주창했다. 1175년 주희는 절친 여조겸(呂祖謙)과 <근사록(近思錄)>을 편집하고는 근처 아호사(鵝湖寺)에서 삼십 대 육구연과 학문방법을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격물과 점수(漸修)의 공부가 '지리멸렬하다'는 후배의 공격에 주희는 불만이었다. 그럼에도 나중 그를 불러 제자들에게 특강을 시키는 등 따뜻한 학문 사랑을 보여준다. 흔히 도문학(道問學)과 존덕성(尊德性)으로 불리는 사흘 간의 아호 논쟁은 동양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겐 아득한 그리움이다.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에 있는 악록서원(嶽麓書院)에 가면 주희의 따뜻한 학문 사랑을 흠뻑 느낄 수 있다. 모택동도 여기서 공부한 적이 있으며, 아직도 호남대학 역사학과에서 강의실로 사용하고 있는 중국의 위대한 서원 가운데 하나인 이곳에서 주희는 그의 학문적 동지 장식(張栻)과 유명한 회강(會講)을 했다. 여러 학파의 스승과 제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몇날 며칠 거대한 논쟁을 벌이는 장면, 회강은 나에게 꿈이다.

▲ 주희가 회강을 했던 악록서원의 입구. ⓒ장현근



성리학은 이렇게 성장한 학문이며 악록서원의 주장(朱張) 회강엔 수천 명의 군중이 모여들었다. 주희는 리를 탐구하는 사람이 감정에 휘둘려선 안 되므로 시를 짓지 않기로 했으나 친구 장식과 등반하며 아름다운 경관에 취하면 그만 저절로 시흥이 돋곤 했다. 논쟁이 차가운 이성의 산물만은 아닐 것이다.

주 선생님의 인기는 급등했으나 말년은 비참했다. 주희의 시대 송나라는 북방민족에게 시종 열세를 면치 못했으며 약해진 국력을 둘러싸고 숱한 정치적 논쟁이 벌어졌다. 성리학자들은 주전파였으며 패도를 숭상하는 공리주의에 반대했으며 공부보다 이익을 따지는 개혁 정책을 미워했다. 1196년 경원(慶元) 연간 당금(黨禁) 사건이 벌어졌다. 조정의 권신들은 잔혹하게 성리학자들을 단죄했으며 주희는 '위학(僞學)의 괴수'로 지목되어 교학이 금지되었다. 제자들은 감옥에 가거나 유배를 당했다. 칠십이 넘은 주희는 죽음을 예감했다. 공부 시간이 없다. 왼 눈은 멀었고 오른 눈도 거의 실명한 상태에서 1200년 봄 죽기 전날 밤까지 <대학장구>를 교정했다.

이렇게 공부를 위해 산 사람 주희에게 더 슬픈 일은 후대에 발생했다. 직업으로서의 학문에 반대하여 과거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지 말라는 주자의 가르침은 거꾸로 흘렀다. 원나라 이래 주자의 <사서집주>(1182년에 '四書'라는 이름으로 처음 정립됨)는 과거시험 교재가 되었고 모든 학인들이 달달달 외우는 표준 답안지가 되었다. 관료가 되기 위한 공부인 관학(官學)은 딱딱한 죽은 학문이다.

그 딱딱한 죽은 학문인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건재한 세상에서 죽을 때까지 진리의 등불을 좇는 것이 참된 공부라는 주자의 가르침은 살아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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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국 길림 대학교 문학원 및 한단 대학교 등의 겸임교수이다. 중국문화대학에서 '상군서' 연구로 석사 학위를, '순자'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가 사상의 현대화, 자유-자본-민주에 대한 동양 사상적 대안 찾기에 몰두하고 있다. <중국 사상의 뿌리>, <맹자 : 이익에 반대한 경세가>, <순자 : 예의로 세상을 바로잡는다>, <성왕 : 동양 리더십의 원형>, <중국의 정치 사상 : 관념의 변천사> 외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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