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 최순실 사태에 "갑질의 역사 계승"
소설가 김훈, 최순실 사태에 "갑질의 역사 계승"
신간 <공터에서> 기자회견서...탄핵 반대 집회에 "서글픈 마음 들어"
2017.02.07 08:05:12
소설가 김훈(69)이 한국사 70년을 두고 "우리 사회 70년의 유구한 전통은 갑질"이었다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대표되는 현 사태에 관해 "이런 야만성(갑질로 대표된 과거의 야만성)이 지금도 계승된다"고 한탄했다. 

극우 집단의 탄핵 반대 집회를 두고는 "해방 70년이 엔진이 공회전하듯 지나가 너무나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고 언급했다. 

김훈은 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신간 <공터에서>(해냄 펴냄) 발매를 기념해 기자회견을 갖고 이 같이 말했다. 

<공터에서>는 2011년 <흑산>(학고재 펴냄) 이후 김훈이 6년 만에 낸 장편소설이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로 1910년에 태어난 마동수(馬東守, 작가에 따르면 아이러니한 의미를 지닌 이름)와 1951년, 1953년에 태어난 그의 두 아들 마장세(馬長世), 마차세(次世)의 삶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그렸다. 

▲ 소설가 김훈이 6일 열린 신간 <공터에서> 발간 기념 기자회견에서 촛불집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갑질의 전통만 계승"

기자회견에서 언론의 관심은 단연 현 세태에 관한 김훈의 입장에 쏠렸다. 촛불집회와 탄핵 반대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고 두 차례에 걸쳐 두 집회를 각각 관찰했다는 김훈은 현 세태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에둘러 밝혔다. 

김훈은 "위정자가 만든 난세를 광장의 (촛불집회) 군중이 함성으로 정리한다는 건 큰 불행"이라면서도 "그 안에 희망의 싹이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분노의 폭발로 끝내지 말고,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는 동력으로 연결"하기를 바란다며 "이를 실현하는 건 정치 지도자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김훈은 보다 긴 시간을 탄핵 반대 집회에 나온 작가 또래의 노인 세대를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탄식이 주된 내용이었다. 

김훈은 "(탄핵 반대 집회에) 태극기와 성조기, 십자가가 등장했는데, 내가 어릴 적 전개된 반공의 패턴과 완전히 같다"며 "시간이 70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과거와 지금 모습이 같으니) 내가 선 곳이 어디인가 싶어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고 언급했다. 

김훈은 탄핵 반대 집회를 바라본 단상을 정리한 글을 조만간 한 계간지를 통해 발표할 예정이라고도 덧붙였다. 

김훈은 현 세태의 뿌리는 한국에서 오랜 기간 이어진 악습에 있다고 강조했다. <공터에서>를 쓰며 옛 신문을 많이 봤다는 김훈은 "그간 뿌리 깊은 악의 유습으로 이어진 우리 사회의 갑질이 옛 신문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표적 사례로 한국전쟁 당시 1.4후퇴에서 드러난 비리를 들었다. 김훈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50만 명의 피난민이 줄을 서서 한겨울 후퇴를 했는데, 이 나라 고관대작은 군용차와 관용차를 함부로 징발해 응접세트를 싣고, 피아노를 싣고 피난민 사이를 질주했다"며 "국방부 정훈관이 이를 비판한 성명이 당시 신문에 톱 기사로 나올 정도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 기사를 보고 '나의 조국이 (원래) 이런 나라였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이런 (갑질의) 야만성이 지금껏 계승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대표되는 집권층의 부패가 오래되었음을 상기한 셈이다. 

김훈은 "이런 문제에 관해 앞으로 제 나름대로 소극적이고 조심스러운 글쓰기를 할 것 같다"고도 언급했다. 그간 건강 문제로 인해 글쓰기를 자제했다는 김훈은 "올해부터 닭이 알 낳듯 열심히 쓰려 한다"고 다짐했다. 

<공터에서>는 자전적 소설

김훈은 <공터에서>가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훈의 아버지 김광주는 소설가이자 독립운동가로 김구와 함께 활동한 이력이 알려진 바 있다. 김광주는 1910년생으로 <공터에서>의 마동수와 태어난 해가 같다. 김훈은 1948년생이다. 

김훈은 "아버지는 우리나라가 망해서 없어진 해 태어나셨고, 나는 다시 정부를 수립한 해에 태어났다"며 "결코 도망갈 수 없는, 피해서 달아날 수 없는 한 시대의 운명이 전개되었다"고 자전적 소설의 이유를 밝혔다. 

이어 "이번 소설에서 만주에서 떠돌다 귀국해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이승만-박정희 치하를 겪은 우리 아버지 세대와 이승만 시대에 태어나 여태 산 내 세대 사람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김훈은 <공터에서>에 관해 "피해자의 이야기"라며 "영웅이나 저항하는 인간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의 하중을, 시대가 개인에게 가하는 고통을 견딜 수 없어 그 시대를 부인하는 인간, 그 시대의 하중이 너무 무서워 세계의 바깥을 떠도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고 말했다. 

당초 이 소설은 다섯 권 분량의 장편으로 기획됐다. 하지만 김훈이 상당부분을 덜어내 한 권으로 축약됐다. 

▲ <공터에서>(김훈 지음, 해냄 펴냄) ⓒ해냄

이에 관해 김훈은 "나는 협소한 시야와 협소한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라며 "거대한 전망, 시대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적 시야가 없다"고 말했다. 

그로 인해 "디테일을 통해 디테일보다 큰 것을 드러냄으로써 그 세계를 돌파하려 했다"며 "빠른 속도로 골격을 그려내고 세부사항은 그리지 말자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김훈은 1974년 언론계에 발을 들여 아버지를 이어 신문기자로서도 활동했다. 박정희-전두환 독재 시대의 산증인인 셈이다. 그런데 <공터에서>는 이 부분에 관한 이야기가 깊이 기록되진 않았다. 이에 관한 질문에 그는 특히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시기를 간접적으로 언급한 가운데, 고심하며 대답을 이어갔다. 

김훈은 "제가 1980년에 6년차 기자였는데, 그 일(광주민주화운동)을 쓸 자신이 없다"며 "그 시대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1970~80년대에 한국 언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나는 안다"며 "어느 언론사도 (시대적 책임에) 예외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훈은 다만 "우리 사회는 그 문제에 관해 단 한 번도 총체적으로 반성하거나 되묻지 않았다"며 "이제는 말할 때가 됐다"고 설명했다. 

김훈은 "더 늦기 전에 말할 수 있는, 후세에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며 "당시 (부역) 언론 행위로 높이 출세한 자들이 지금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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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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