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우먼>과 <악녀>, 여성 전사 또는 인간병기
<원더우먼>과 <악녀>, 여성 전사 또는 인간병기
[김경욱의 데자뷔] 한국영화에서 여성 캐릭터의 필요성
2017.06.15 09: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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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트레일러에서는 "지난해 100만 이상의 흥행작 26편 중 여성주인공 작품은 6편"이라고 투덜거렸다. 마치 이에 대한 응답처럼, 여성이 주인공인 할리우드 영화 <원더우먼>과 한국영화 <악녀>가 개봉했다.

어렸을 때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미스 월드 출신의 린다 카터가 연기한 <원더우먼>은 모든 인종을 망라한 완벽한 미녀의 강림이었다(사진1). 동양에서 태어난 여자아이는 그렇게 백인 미녀를 이상적인 신체 이미지로 주입하면서 최대한 그녀를 닮은 어른으로 자라기를 소망했다. 린다 카터처럼 예쁘고 늘씬한 백인 여성이 실재로는 매우 드물다 해도, 영화와 텔레비전 같은 시각 매체의 엄청난 영향은 백인여성은 곧 이상적인 미인이라는 도식을 만들어냈다. 그러는 가운데 동양인의 신체적 특징 대부분은 치부내지는 콤플렉스가 되어버렸다.   

▲ 사진 1.


아무튼 원더우먼 시리즈에서 이상하게도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하나도 없고 그녀의 모습만 남아있다. 그리고 이제 남성 슈퍼히어로 영화가 식상할 무렵 그녀가 찾아왔다. 갤 가돗이 연기한 원더우먼은 섹시함을 강조한 린다 카터와 달리 터프한 모습으로 등장해 DC 코믹스에서의 원래 이미지와 더 가깝게 보인다(사진2). 또는 게임의 여성전사 캐릭터 같기도 하다. 

▲ 사진 2.


질 르포어가 쓴 <원더우먼 허 스토리>를 보면, '황금 왕관을 쓰고 빨간 뷔스티에와 파란 팬티를 입고 무릎까지 올라오는 빨간 부츠를 신은 원더우먼. 그녀는 우아한 변태'이자, '노출 패션에 비서라는 위장 직업을 가진 자기 모순적인 아이콘'이라는 설명이 있다. 그러나 여성감독 패티 젠킨스가 연출한 2017년 영화의 <원더우먼>은 모순되거나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논란을 삼을만한 설정이 거의 없다. 그녀는 빅토리아 린 슈미트가 <캐릭터의 탄생>에서 묘사한 '여전사'의 전형처럼 보인다. "여전사는 페미니스트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어떤 위험이 닥쳐도 다른 여성이나 어린아이를 돕는 데 주저하는 법이 없다." 아울러 그녀는 슈퍼맨처럼 슈퍼히어로 가운데 가장 단순한 캐릭터로 자리매김 했다.

원더우먼이 데미스키라 왕국의 여왕과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이며 전쟁의 신 아레스와 대결하는 설정 등은 그리스 신화에서 온 것이다. 한국영화에서 여성전사를 만들어내려고 할 때, 여성협객이 등장하는 무협지를 참고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문화적 전통이 아니기 때문인지 무협장르는 지금까지 성공한 사례가 없다. 전사라기보다는 인간병기라고 할 수 있는 <악녀>의 여주인공의 경우, 가장 한국적인 장르라고 할 수 있는 '조폭영화'의 변형에 뤽 베송의 <니키타>(1990)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인물이다. 

원더우먼과 악녀를 비교해보면, 탄생 배경의 차이만큼이나 흥미로운 지점이 발견된다. 먼저 그들의 공통점은 다이애나와 숙희라는, 미국과 한국에서 고전적인 느낌을 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다이애나는 아마존 섬에서 살다가 아레스의 손아귀에서 인류를 구하기 위해 일차 세계대전의 전쟁터로 뛰어든다. 숙희는 연변에서 살다가 신혼여행 온 서울에서 남편이 살해당하자 복수를 위해 조폭의 아지트를 찾아간다. 전자가 아레스가 던진, '탐욕스럽기 짝이 없는 인간은 구해낼 만큼 가치 있는 존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혼란스러워할 때, 후자는 자신의 진짜 적이 죽은 줄 알았던 남편 중상인지, 아니면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부여한 국가비밀조직인지,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엄청난 혈투 끝에, 원더우먼은 아레스를 제거하고, 악녀는 중상을 죽인다. 

두 영화는 모두,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다이애나와 트레버 대위, 숙희와 중상 또는 현수 사이의 로맨스를 설정했으면서도 로맨스 장면을 연출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연인들 가운데 트레버는 대의를 위해, 현수는 임무를 벗어난 사적 감정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또 액션장면의 개연성을 만들어내는데 집중하다보니 이야기의 구성이 다소 허술하다. 물론 액션을 즐기러 온 관객이라면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 것이다. 보는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엄청난 규모 또는 잔인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액션 속에서 음미할만한 순간은 유감스럽게도 두 편 모두 없었다.   

<악녀>의 설정에서 몇 가지 점을 더 생각해보자. 이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숙희의 일인칭 시점에서, 무지막지한 액션을 펼친다. 관객이 숙희라는 캐릭터를 설정하고 게임을 하는 것처럼 시작함으로써, 이야기보다는 액션을 즐기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도입부의 액션이 다 끝나기도 전에 카메라는 숙희의 일인칭 시점에서 물러난다. 그 액션의 원인을 설명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런데 숙희가 원더우먼처럼 이미 구축된 캐릭터가 아니고 판타지 장르의 주인공도 아니기 때문에, 그녀의 내력을 설명하려면 한국사회의 현실에 어느 정도는 기댈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동시에 논란이 될 만한 설정을 이리저리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조폭 수십 명을 살상한 숙희는 국가비밀조직에 의해 법의 심판에서 벗어나 비밀요원으로 살아가게 된다. 국정원이라고 한두 번 언급되는 국가비밀조직이 숙희에게 내리는 임무 가운데 하나는 연변에서 건너온 조폭두목 중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국가기관이 그를 제거하기로 했는지 어떤 설명도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국가비밀조직의 요원들과 하는 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 모두 다 이상하다. 하나씩 의문을 제기하면 설명이 안 되는 지점이 너무 많다. 

▲ <악녀> 포스터.


결국 피 튀기는 액션만 남고 나머지 설정은 모호해지는 가운데 숙희라는 인물까지 생생한 캐릭터로 구축되지 못하고 말았다(숙희를 연기한 김옥빈은 연기력을 발휘한 영화를 본 적이 없는데, 아직까지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 배우다). 다시 말해서 액션뿐만 아니라 <니키타>의 '니키타'처럼, 인상 깊은 생생한 캐릭터로서 숙희도 살려야 했다. 하지만 숙희에게 단지 인간병기(괴성을 지르며 몇 번이나 얼굴에 피를 뒤집어쓰는 숙희)라는 특징 말고는 어떤 정체성도 부여하지 못한 채 계속 갈팡질팡한다. 숙희가 살기로 결정하는 모티브를 뱃속의 아이로 설정한 다음, 아이의 죽음에서 중상에 대한 복수의 원동력을 마련할 때, 숙희는 엄마이다. 여기에 국정원 요원 현수가 끼어들어 기묘한 멜로라인을 형성할 때, 숙희는 연인이다. 중상에게 숙희는 일종의 딸이자 아내이자 제거의 대상이다. 게다가 숙희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목욕탕에서 암살을 위해 총을 드는데, <암살>의 안옥윤이나 니키타와는  다르게 보여야한다. 

영화 도입부의 일인칭 시점을 통해 화면을 완전히 장악했던 숙희는 결국 자신의 운명이 애초부터 중상에 의해 철저하게 유린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침내 숙희가 중상을 살해하고 복수에 성공했을 때, 뒤늦게 나타난 경찰이 총을 겨누며 그녀를 포위한다. 이 때 피투성이 상태로 기묘한 표정을 짓는 그녀는 결국 완전히 미쳐버리는 것 같다.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 여성 주인공의 흥행작이 늘어나는 건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여성전사의 등장도 필요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현재 한국영화의 제작 상황에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어떤 긍정적인 인간의 모델로서의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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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연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동국대와 중앙대에서 영화이론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2008),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