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섹스'의 나라 네덜란드, '세계화의 덫'에 걸리다
'프리섹스'의 나라 네덜란드, '세계화의 덫'에 걸리다
[유라시아 견문] 암스테르담 : 프리섹스와 토탈사커
2017.06.24 13:18:48
'프리섹스'의 나라 네덜란드, '세계화의 덫'에 걸리다

1. 자유와 자연

망망대지이다. 망망대해에 이르기까지 평평한 땅이 널리 펼쳐진다. 본디 있던 땅이 아니다. 사람이 만든 땅이다. 물과 사투를 벌였다. 자연과 싸워서 이겨낸 자유의 땅이다. 간척지가 국토의 1/3을 이룬다. 영토의 1/4은 해수면보다 낮다. 하느님은 이 세계를 창조하셨고, 인간은 이 나라를 만들어내었다. 국명조차 '낮은 땅', 네덜란드이다. 나라 이름이 자연을 반영하고 있다면, 도시의 이름은 역사를 반추한다. 암스테르담의 의미는 암스텔(Amstel)강의 댐(dam)이다. 자연과 자유의 공진화가 암스테르담 공동체를 일구었다.


구글맵을 열어서 유럽의 자연지리를 살핀다. 알프스 산의 눈이 녹아내려 라인 강을 따라 흐른다. 스위스의 빙하가 독일의 평야를 적시고 프랑스 북부에서 방향을 틀어 벨기에의 숲을 지나 북해로 흘러나가는 델타 지역이 네덜란드이다. 구렁이처럼 휘어지고 굽이치는 북유럽 주요 강들의 하류가 모이는 곳이다. 게다가 비는 잦고 바람은 세차고 조류는 거세다. 땅과 바다의 경계가 자주 변했다. 바다에서는 밀물과 썰물이, 강에서는 홍수가 지형을 거듭 다시 그렸다. 주거지를 다시 만들고 집을 또다시 지어야 하는 불안하고 불편한 곳이었다. 제방을 쌓고 둑을 지어야 근근이 유지되는 공학 도시였다. 암스테르담은 로마와 아테네, 런던과 파리에 견주면 새파란 '신도시'이다.


최고 표도 322m. 네덜란드에는 산이라 부를만한 지형이 거의 없다. 뒷동산, 언덕 정도이다. 그래서 하늘을 올려다보지도 않는다. 멀리 내다본다. 고층 건물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스카이라인의 방해 없이 확 트인 지평선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다. 땅과 하늘이 만나는 끝자락에는 북해에서 불어오는 편서풍을 따라 율동하는 뭉게구름이 낮게 걸려있다. 서쪽 하늘을 오렌지색으로 물들이는 노을을 바라보노라면 유라시아의 서쪽 끝에 서 있음을 실감한다. 별이 뜨고 달이 차오르기까지 차마 눈을 거두기가 힘들다. 


치수(治水)가 곧 치국(治國)이었으므로 민족문화 또한 독특하다. 물과 끝없는 다툼이 고유한 협동문화를 낳았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땅을 밟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공선을 위하여 협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둑에 틈이 생기면 삽시간에 남의 둑까지 허물어진다. 너나없이 힘을 모으지 않으면 공멸하고 전멸한다. 만인의 협동에 나의 이해와 생명이 달려 있었다. 그래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절묘한 균형을 이룬다. 개인주의와 집합주의가 오묘하게 동반 성장한다. 오렌지군단의 토탈사커는 축구전술이기보다는 이 나라의 전통문화이다.


애당초 땅을 개척해나간 역사였기에 봉건제의 기반이 취약했다. 대대손손 귀족들이 토지를 소유하고 장원을 보유했던 여느 나라들과는 지층이 달랐다. 토지를 개간한 농민들이 주체이고 주인이었다. 토지의 절반 이상을 농민이 소유하는 자영농 중심의 소농사회였다. 그래서 유럽의 봉건제와도 다를뿐더러, 미국의 땅따먹기 식 카우보이 소유제와도 결을 달리했다. 이곳에서 이기와 이타는 배타적이지 않았다. 독립적이되 협력적인 자리이타(自利利他)가 자연스러운 토속문화였다. 


▲ 암스테르담 운하. ⓒ이병한


하부구조가 달랐기에 상부구조도 판이했다. 교황과 군주의 권위가 깊이 침투하기 힘들었다. 로마와 파리, 런던이 자랑하는 웅장한 건축물도 낯선 곳이다. 압도적인 권력을 과시하지 않는 것이다. 에펠탑이나 빅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같은 장대함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하며, 올망졸망하다. 운하를 따라 들어선 수십, 수백의 일반 주택들은 검소하고 평범한 소박미를 선사한다. 우리말로 어떤 표현이 딱 적절할지 모르겠다. 나는 연신 '차밍(charming)하다~'고 여겼다. 탑 다운에 익숙한 권위주의적 프랑스와도 다르며, 오합지졸 개인주의가 만연한 미국과도 다르다. 작은 집단들의 협력이 빚어내는 수준 높은 개인주의, '사회적 자유주의'가 도시의 DNA로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한스 브링커(Hans Brinker) 이야기는 네덜란드에 좀체 어울리지 않는다. 손가락으로 무너지는 제방을 막아 도시를 구했다는 영웅담은 도통 암스테르담답지가 않다. 과연 네덜란드에서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었다. 출처는 미국이다. 19세기 미국에서 창작된 영웅주의 서사이다. 배경만 암스테르담에서 따왔을 뿐, 아메리칸 아담을 투영한 슈퍼맨의 원조 격이다. 


이곳은 로마와 파리, 런던의 유행과도 동떨어져 있는 듯했다. 옷차림이 단정하고 소박하다. 금수저를 선망하지도 않는다. 갑부를 미심쩍어한다. 지나치게 성공하는 것 또한 추구하지 않는다. 높게 솟은 나무일수록 잦은 바람에 시달리게 마련이라고 여긴다. 연봉보다는 여가 시간을 더 따진다. 집 평수를 넓히고 자동차 배기량을 늘리기보다는, 취미 생활에 더 가치를 둔다. 영국보다는 행복하고 프랑스보다는 효율적이며, 미국보다는 관용적이고 노르웨이보다는 세계적이며, 벨기에보다는 현대적이고 독일보다는 재미있는 나라,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력적이고, 매혹적이다.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여기서 살면 좋겠다,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났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에는 숙박 요인도 한몫했다. 처음으로 에어비앤비(Airbnb)를 활용해 보았다. 남 집에서 며칠 지내보는 것이다. 기왕 그렇다면 집을 빌리기보다는 방 한 칸만 구하기로 했다. 거실을 공유하면서 그들의 일상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다. 내가 머문 집은 엄마, 아빠, 딸 단란한 세 가족이었다. 장성한 아들은 베를린에서 일해 방이 하나 비었다고 한다. 그런데 자전거가 무려 6대. 출퇴근, 등하교용 자전거와 주말에 바람 쐬러 나가는 사이클용이 별도로 구비되어 있었다. 자전거가 일상의 교통수단이자, 일상에서 탈출하는 레저의 수단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 가족이 유별난 것만도 아니었다. 80만 명이 살아가는 암스테르담에 자전거가 200만 대란다. 대개가 굴곡이 없는 평지이다. 남녀노소 부담 없이 자전거를 타기 쉽다. 이 나라 특유의 평등의식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자동차로 신분과 재력을 으스대지 않는다. 암스테르담 시장도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자연스레 자전거의 꼴 또한 용도별로 다양하게 진화했다. 장바구니를 부착하고 아이 둘 셋도 거뜬히 태우고 다닐 수 있는 독특한 모양새도 많이 띈다. 응당 자전거 전용도로와 전용신호등도 훌륭하게 갖추어져 있다.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우선하는 교통체계이다. 네덜란드 전역으로는 총거리 2만9000km에 달하는 사이클로드도 만들어졌다. 자동차의 훼방 없이, 사고의 염려 없이 나라 구석구석을 자전거로 살펴볼 수 있다. 하루 6유로만 지불하면 지하철과 기차의 자전거 지정석도 온종일 이용할 수가 있다.


나로서는 이 자전거 천국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거제도에 살던 유년시절부터 자전거를 타고 집과 학교를 오고 갔다. 바다를 가르고 산을 넘어서 논과 밭의 색감이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눈에 담으며 소년기를 지냈다. 자전거 타기를 좋아한다.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를 사랑한다.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사랑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다. 내 시간을 아끼지 않고, 혹은 아깝더라도 덜어주고 나누어주는 것이다. 암스테르담에 사흘을 더 머물기로 했다. 풍차와 운하와 튤립이 어우러지는 그림 같은 풍경 속으로 하나의 선을 그으며 미끄러져 들어갔다.

▲ 자전거 타고 근무하는 암스테르담 경찰. ⓒ이병한


2. 프로보스와 똘레랑스

나는 주인아저씨의 훌륭한 자전거를 빌려 타고 다녔지만, 구태여 그럴 필요도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자전거 공유 시스템을 자랑하는 도시가 암스테르담이기 때문이다. 다시금 개인적 자유주의와는 다른 사회적 자유주의가 돋보인다. 모두가 자동차를 소유하는 사회가 아니라, 누구도 자전거를 소유하지 않아도 되는 '공유사회'를 지향한다.


68혁명의 소산이다. 네덜란드에서는 프로보스(Provos) 운동이 유명했다. 네덜란드어 'provoceren'에서 따온 말이다. 영어의 provoke, 봉기하라, 저항하라는 뜻이다. 아나키스트 조직이었다. 조직이라는 말이 적당할지 모르겠다. 아나키스트 네트워크, 다중(多衆)이었다. 이들의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하얀 자전거 기획'이었다. 암스테르담의 모든 자동차 운전을 정지시키고자 했다. 자전거 공유 도시로 탈바꿈시키자고 했다. 자동차의 소유에서 자전거의 공유로. 소유만능주의의 자본주의도 아니요, 무소유가 국가만능주의로 귀착한 공산주의도 아니었다. 1965년 7월, 단 세 명이서 시작했다. 하얀색으로 칠한 자전거 세 대를 거리에 방치해 두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경찰은 '공공질서 훼방'이라며 즉각 철거시켰다. 그래서 더욱 유명세를 탔다. 더 많은 시민들이 더 많은 자전거에 하얀색을 칠하여 기증했다. 하얀 자전거로 암스테르담을 점령하자! 시작은 미미했으되, 끝은 창대했다. 21세기, 선진 도시일수록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우대한다. 그 세계적 추세의 원조가 1960년대의 암스테르담이다. 


100년을 앞서간 문화 실험에 당대의 히피들은 깊이 호응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프로보타리아트(provotariat)가 시대의 전위였다. 반문화(counter-culture)가 곧 지배문화이자 주류문화인 암스테르담으로 반체제 청춘들이 몰려들었다. 히피들의 성지이자 아지트가 된 것이다. 동시대의 아이콘 존 레넌과 오노 요꼬도 지나치지 않았다. 그들이 "Bed In" 퍼먼스를 펼친 곳이 바로 암스테르담의 힐튼호텔 스위트룸이다. 전쟁을 할 시간에 사랑을 해라! 존과 오노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한다며 침대에서 격렬한 섹스를 나누고 있을 때, 그들에게도 하얀 자전거를 선물한 것이 프로보스 일당이다. 롤스로이스를 몰고 다니며 반전평화 섹스를 하면서 언론플레이를 하는 슈퍼스타들에게도 일침을 가한 것이다.


▲ 암스테르담 운하. ⓒ이병한


그렇게 도전적인 반면으로 한없이 너그러운 곳이 또 네덜란드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앞세우며 날카롭지도 쩨쩨하지도 않다. 나는 프랑스가 과연 똘레랑스의 나라인지 심히 의문스러웠다. 이슬람, 더 아프게 찌르면 그들의 식민지 출신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좀체 완고하고 교조적이다. 똘레랑스에서도 네덜란드가 더 나아 보인다. 그들의 용어를 빌면 헤더헌(gedogen)이다. 가장 유명한 것이 마리화나 등 마약이다. 오해와는 달리 네덜란드서도 합법은 아니다. 그렇다고 딱히 불법도 아니다. '비합법의 용인' 정도로 풀어볼 수 있겠다. 커피는 카페에서 마시고, 커피숍에서는 마리화나를 흡입한다. 마리화나 피우는 것을 과음하는 정도로 여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과음보다 더 낫다고도 할 수 있다. 합법은 아니되 철창에도 가두지 않는, '주차 위반' 딱 그 정도 수위이다.


마약에 대한 관대한 역사는 제법 오래다. 17세기부터 아편무역으로 번영했다. 일본이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를 점령하기 전까지 아편 생산과 판매를 국가가 독점함으로써 막대한 수익을 거두었다. drug라는 단어부터가 네덜란드어인 'droge waere'에서 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동인도회사가 사고파는 수많은 상품 가운데 하나로 아편을 간주해 왔던 것이다. 즉 무역도시, 상도(商都) 특유의 실용주의에서 똘레랑스가 비롯한 것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다문화주의적 접근이 아니라, 차이에서 이문이 남는다는, 다름에서 이득이 생긴다는 실리적인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다.


▲ 평일의 한적한 홍등가. ⓒ이병한


마약 못지않게 유명한 것은 섹스이다. 직장인들이 사무실에서 마리화나를 피우고, 점심시간에 사창가를 다녀온다는 설이 널리 퍼져 있다. 일본에서는 섹스돌을 '네덜란드 와이프'라고 부를 정도이다. 굳이 어두침침한 곳으로 찾아들 것도 없었다. 내가 지내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했다. 자연스레 산책길에 지나치게 된다. 홍등과 붉은 커튼으로 치장한 내부가 유리창 너머 보인다. 침대에 걸터앉아 스마트폰에 빠진 여성들의 모습도 쉬이 볼 수 있다. 광고판마저 있었다. 가명인지 실명인지 알 수 없으나 그 여성의 이름과 제공 가능한 서비스를 표기해두었다. 마사지, 영어 가능, S&M, 항문성교 등 다양하다. 하지만 누구 하나 사시 눈으로 꼬아 보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엄연한 직장인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에도 가입되어 있다. 노조 가입률이 90%에 달한다. 한국이라면 민주노총에 해당할 전국에서 가장 큰 단위의 노동 단체에도 포함되어 있었다.


섹스를 대하는 태도 역시도 실용적이고 실무적이다. 섹스는 비밀스러운 것이 아니다. 정상적인 것이다. 다만 건강과 직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껏 즐기되, 반드시 건강을 지켜야 한다. 중학교서부터 이중으로 교육시킨다. 여학생들은 피임약을 복용하고, 남학생들은 콘돔을 사용토록 한다. 그래서 네덜란드는 가장 낮은 10대 임신율과 가장 낮은 낙태율을 기록하고 있다. 영화 등급 산정에서도 너그럽다. 온갖 변태적이고 외설적인 내용이 담겼더라도 10대도 능히 볼 수 있다. 어차피 어둠의 경로로 다 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도리어 엄격하게 규제하는 것은 폭력물이다. 섹스는 누구나 하는 것이지만, 폭력은 누구도 휘두르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싸우고 찌르고 죽이는 영화는 무방비로 노출시키면서, 사랑하는 모습을 금지시키는 것은 역설이고 모순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네덜란드는 유럽 가운데서도 살인이 가장 적고 이혼도 적으며 혼외 자식도 드문 바른생활 나라가 되었다. 


섹스에 대한 열린 태도는 집 안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머무는 동안 딸은 계속 뾰로통 했다. 통금 시간이 너무 이르다며 아빠에게 투정을 부리고 투쟁을 벌였다. 아빠가 요구한 것은 새벽 2시까지는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최종 협상 결과는 4시로 낙착되었다. 나로서는 새벽 4시가 과연 통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몹시 의아했으나, 딸은 몹시 고무되었다. 더 오랜 밤을 남자친구와 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보는 둥 마는 둥 하던 나에게까지 상냥한 친절을 베풀었다. 마지막 날에는 미루었던 수다가 폭발한다. 얼떨결에 옆집 커플에 대한 소식도 접할 수 있었다. 대부분이 작은 아파트서 산다. 집은 좁고, 벽은 얇다. 그래서 이웃집 소리가 죄다 들린다. 요리하는 소리,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 섹스 소리까지 적나라하다. 연말까지만 해도 하루에도 서너 차례 사랑을 나누었던 옆집 커플이 요즘에는 무척 뜸하단다. 일주일에 두세 차례? 머지않아 둘이 헤어져서 이사 갈 것 같다는 나름의 전망을 내리는 것이다. 나는 2002년 7월, 한일 월드컵이 한창일 때 태어났다는 이 15살짜리의 남녀관계론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수긍해 주었다. 


낯선 이들과의 솔직한 대화 또한 그 집안이 남달라서가 아니다. 암스테르담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호기심 넘치고 발랄하다. 식당에서도 모르는 이와 한자리에 앉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도리어 새 친구를 사귀고 새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로 여긴다. 생일 또한 친구들과 보내는 날이 아니다. 친구들의 친구들과 그 친구들의 친구들의 친구들까지 더불어 만나는 날이다. 카페에서도 옹기종기 앉는 것을 비좁거나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다. '코지'(cozy)하다고 말한다. 나도 아담한 것까지는 알겠는데, 좀체 아늑하지는 않았다. 작은 장소를 공유하며 복닥복닥, 북적북적, 살아가는 것에 익숙한 모양이다. 하긴 산이 없는 나라이니 숨을 데가 없었을 것이다. 숨길 것 또한 없었던 모양이다. 솔직함과 정직함이 천성이 된 듯하다. 체면을 차리고 예의를 갖추지 않는다. 영국풍 격식과 프랑스식 매너는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이 나라에도 내성적인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담소를 나누고 수다 떨기를 좋아한다. 탁음이 강한 네덜란드어 특유의 발성 때문인지 시끄럽기조차 하다. 자칫 무례함과 무신경함으로 비칠 수도 있었다. 말수가 적은데다가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하는 나로서는 적잖이 곤란했다. 혼자서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가 간간이 글을 끄적거리는 이방인을 좀체 가만히 두지 않는 것이다. 첫 이틀간 파상적인 질문 공세에 시달리다 피곤해진 나는 결국 테이블 자리를 포기했다. 사흘째부터는 'Cafe Scheltema'의 명당자리, 창가 탁자를 필사적으로 사수했다. 그곳에 진지를 차리고 암스테르담의 철학자 스피노자를 읽어가고, 동인도회사의 역사를 복기했다. 


그러나 암스테르담은 고독을 하루 이상 허용치 않는 도시이다. "네덜란드 정치에 관심 있어요?" 다음날 오후, 한창 진행 중이던 네덜란드 총선에 대한 여러 나라 신문을 읽어가던 와중이었다. 내 노트북 화면까지 넘겨다보고 참견하는 것이다. 도무지 프라이버시 개념이 없다는 말인가? 불끈 짜증이 솟았지만, 곧장 누그러졌다. 화사한 미소를 담고 있는 어여쁜 아가씨이다. 생김새가 독특했다. 금발머리에 까만 눈동자를 가졌다. 어머니가 인도네시아에서 살던 화교였다고 한다. 화교 탄압이 극성이었던 1960년대에 자카르타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했다는 것이다. 나는 냉큼 노트북을 닫고 노트를 펼쳤다. 한때 논문으로 써볼 생각까지 했었던 '9.30 사건', 인도네시아가 비동맹운동의 주역에서 이탈하여 반공국가가 되어가는 쿠데타 당시의 당사자 딸이 내 눈앞에 있었던 것이다. 순간 연재의 한 꼭지로 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스쳤으니, 직업병이 발동한 셈이다. 


장소를 아이리쉬 펍으로 바꾸어서 하이네켄을 들이켰다. 어쩜 네덜란드는 맥주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하이네켄의 나라이다. 하이네켄에 히딩크와 박지성, 그리고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빅뱅의 GD까지 보태면 극서 유럽과 극동 아시아는 금세 하나의 유라시아가 된다. 게다가 둘 다 '과거사'에 천착했다. 나는 인도네시아 화교가 네덜란드까지 옮아오는 중국-동남아-서유럽 스케일의 이주사가 퍽이나 흥미로웠고, 그녀는 2년 전에 헤어졌다는 일본인 남자친구를 거듭 추억했다. 역시나 그녀 또한 과도하게 솔직하다. 구태여 옛 남자의 성적 취향까지 알려준다. 유독 복숭아 뼈에 키스를 퍼부었던 6번째 애인이 몹시 그립단다. 정말로 못 말리는 암스테르담 사람들이다. 두 병만 더 마셨더라면 까딱 말렸을지도 모르겠다. 하룻밤 추억의 대리 애인이 되어 발목에 입을 맞추어 줄 만큼 너그러운 사람이 되지는 못했다.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돌연 스피노자의 사생활이 몹시 궁금해졌다. 


▲ 하이네켄 박물관. ⓒ이병한


3. U-turn

회고담은 다음 날에도 이어졌다. 실연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발리에서 한 달을 지냈단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 새 출발을 태평양에서 맞았다고 한다. 내가 감탄한 것은 발리의 이별여행이 아니라, 그 한 달간 '실업 상태'로 등록이 되어 월급의 3/4를 국가에서 지급받았다는 사실이었다.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와 새 직장을 구할 때까지 그만큼의 돈이 매달 꼬박꼬박 나왔다고 한다. 이 나라는 휴가 보조금, 육아 보조금, 실업 보조금에서도 단연 앞서가는 복지 천국이기도 했던 것이다. 실직한 남자들이 사창가에 드나드는 비용도 보장이 된다는 얘기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직장 생활 모습도 퍽이나 다르다. 평균 주당 근무 시간이 27시간이란다. 주5일 근무로 치면 하루 대여섯 시간이다. 주5일 근무도 드물다. 주 4일이 일반적이다. 한 주라고 해봐야 고작 7일, 5일을 사무실에 나가는 것을 납득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럼 취미 생활은 언제 해? 취미 생활은 휴가나 주말에 몰아서 하는 게 아니다. 오후에 하는 것이다. 오전에는 동료들과 일을 하고, 오후에는 여가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는 가족들과 이웃들과 정을 나눈다. '일과 생활의 조화'라는 현대인의 상투적이지만 절실한 강박에 시달릴 이유가 전혀 없다.
물론 대가를 지불한다. 공짜 밥은 없는 법이다. 그만큼의 비용이 따른다. 소득의 5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월급의 절반이 날아간 액수가 통장에 찍힌다. 여기에 기꺼이 합의할 수 있었던 것에도 협동에 익숙했던 네덜란드 고유의 기질이 한 몫 했지 깊다. 물과의 투쟁 속에서 일부의 일탈이 공멸을 초래할 수 있다. 작은 이익을 다투기보다는 대의를 따른다. 대의를 중시하기에 소수자에 대한 감수성도 무척이나 예민하다. 동성애 결혼 합법화와 존엄사 인정까지 항상 앞서 달렸다. 1970년대 비서구권 이주자들의 언어와 습속을 폭넓게 배려해주는 환대의 문화도 돋보였다. 다문화주의 실천에서도 빼어난 나라였던 것이다.


▲암스테르담 중앙역. ⓒ이병한


문제는 '89년 체제'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사라지면서, 영미식 세계화 바람이 거세게 불어 닥쳤다. 체제경쟁은 끝났다. 자본주의가 천하를 통일했다. 동아시아의 개발독재 정권들이 속속 무너져간 '87년 체제'가 동아시아 분업형 신자유주의로 수렴되어 갔던 것처럼, 동/서 유럽이 하나가 된 EU 또한 신자유주의로 대일통을 이룬 것이다. 그리고 그 새 자유주의가 옛 자유주의의 성취를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가족들이 주말마다 교외로 떠나는 것은 단지 레저 생활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금요일 밤부터 암스테르담은 외국인들이 점령하는 흥청망청 유흥도시로 변모했다. 마약과 섹스에 관대한 문화를 한껏 즐기려는 광란의 '불금'이 펼쳐진다. 국경이 사라진 EU 시대, 영국에서, 이탈리아에서, 독일에서, 체코에서, 핀란드에서, 차를 몰고 기차를 타고 저가항공을 이용해서 발정 난 수컷들이 암스테르담으로 집결하는 것이다. 기억하지도 못할 하루 이틀 밤을 최대한 즐기기 위해서 네덜란드를 선택하는 것이다. 연간 500만이 '커피숍'을 찾는다고 하고, 150만이 사창가로 달려간다고 한다. 어느새 마약산업과 섹스산업의 허브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흘을 더 머물지 않았더라면 '동물의 왕국'을 보지 못하고 떠났을 뻔했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따르는 것이 시장경제의 원리이다. 마약 거래 암시장이 번성하고 있으며, 성 범죄의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노동허가증이나 비자 없이도 성매매 산업에 종사할 수 있는 동유럽 출신 여성들도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역설적인 것은 그들의 노동권을 '국법'으로서는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모범적인 국법과 미비한 국제법 사이에서 인권 사각지대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납치와 강제 섹스 등 부작용마저 불거진다. 프리섹스의 유명세가 오명으로 얼룩지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후반 구축해 두었던 일국 단위의 복지 모델이 EU 통합과 더불어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가히 '세계화의 덫'이다. 


▲ 암스테르담 운하. ⓒ이병한


그리하여 탈-자유주의 정책이 새천년의 흐름이 되고 있다. 마약 거래 단속을 위하여 남부 국경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커피숍' 단속이 빈번해지고 강제 폐쇄 조치도 잦아지고 있다. 사창가 규제 또한 심화되고 있다. 여성의 몸은 여성의 것이다. 자신의 몸으로 노동할 권리가 있다. 국가는 간섭하지 말라고 했던 진보정당과 페미니즘 단체의 당당한 목소리가 갈수록 주눅이 들어간다. 이미 매춘업 종사자의 최소 연령을 21세로 높였으며, 이제는 사창가에 드나드는 다국적 고객들의 정보를 국가가 수집하고 관리함으로써 여성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쟁마저 일어나고 있었다. 지난 15년, 음주 가능 연령도 더 높아졌고, 이민법은 더욱 강화되는 등 전반적인 사회 보수화의 움직임이 역력한 것이다.


복지국가 또한 후퇴하고 있다. 2013년 말 국왕 빌럼 알렉산더르(Willem-Alexander)의 국회 연설이 유명하다. 상징적 지위에 그쳤던 왕이 국회에서 연설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네덜란드형 복지국가가 더 이상 지탱되기 힘듦을 선언했다. 세계화와 고령화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공공복지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고 국민들에게 호소한 것이다. GDP의 절반을 정부가 담당하는 구조를 조정하여 복지국가를 완화하는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제 이주자들은 반드시 네덜란드어를 일정 수준 이상 습득해야 복지 제공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노년층과 장애인 또한 일정한 시간의 사회봉사 활동을 해야만 기존의 국가 서비스가 유지가 된다. 당연히 불만과 불평이 속출하고 있다. 총선을 전후하여 무슬림 이주를 거부하고 EU에서 탈퇴함으로써 우리의 네덜란드를 되찾자고(Nederland Weer Van Ons) 목소리를 높였던 극우 정치인 빌 더러스가 정국을 주도했던 까닭이기도 하다. 네덜란드판 뉴라이트, 네오콘이라고 하겠다. 명백한 역주행(U-turn)이다.


그럼에도 네덜란드 국민들은 영국의 브렉시트와 같은 파행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프랑스처럼 아무것도 바꾸지 않기 위해서 모든 것을 바꾸어버린 '루이 마크롱 1세'의 등극과 같은 기만극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마크롱보다도 더 젊은 30대 초반의 청년 정치인이 이끄는 녹색좌파당이 선전했다. 너무 많은 정당들이 난립하여 총선 이후 넉 달이 지나도록 연정을 형성하지 못하는 난맥상도 연출하고 있지만, 그래도 불안과 냉소와 회의의 기운이 자욱한 서유럽보다는 낫다는 인상이다. 하더라도 20세기 후반의 절정기를 반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21세기의 네덜란드인들은 아버지보다는 조금 덜 자유롭고 조금은 더 비자유주의적인 사회에서 살아갈 공산이 높다. 그들의 할머니보다는 더 적은 국가 보조의 혜택을 입고 살게 될 여지가 많다. 그만큼 더 절제하고 조금은 더 보수적인 문화로 이행(U-turn)할 가능성이 크다. 자유와 관용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또 어디서부터 질서에 더 방점이 찍혀야 하는가. 백가쟁명, 백화제방이 펼쳐지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체제와 이념과 사상도 영구불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유주의 또한 성쇠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스테르담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관용적이며 국제적이고 개방적인 도시일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루 이틀의 소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17세기 이래 400년, '민족문화'이자 '도시문화'로서 굳건한 뿌리를 내렸다. 굳세어라, 네덜란드. 그 '거대한 뿌리'에 동인도회사가 자리한다. 신세계화와 진세계화의 물결이 수반할 조화사회와 조화세계의 원형 또한 17세기 '초기 근대'에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U-turn). 동양으로, 아시아로 동인도회사의 첫 배가 출항했던 또 하나의 무역도시, 로테르담으로 이동한다.


▲ 암스테르담 운하. ⓒ이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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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동아시아 현대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논문보다는 잡문 쓰기를 좋아한다. 역사가이자 언론인으로 활약했던 박은식과 신채호를 역할 모델로 삼는다. 뉴미디어에 동방 고전을 얹어 아시아 르네상스를 일으키는 'Digital-東學' 운동을 궁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