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는다는 것
길을 걷는다는 것
[문학의 현장] 나를 더 낮추는 길을 걷고 또 걸었다
2017.07.06 10:34:34
길을 걷는다는 것
길을 걷는다는 것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은 없다 
길 잃은 노루 한 마리
긴 다리 껑충이며 뛰어갔거나 
어미 따라 토끼새끼 몇 마리
집으로 돌아갔거나 
저보다 큰 양식들 등에 이고
개미들 기어갔거나
하물며 쇠똥구리 한 마리 
똥 한 덩이 굴리며 가던 길이었으리 

흔들리는 들꽃에도 손길 내주고
머문 산새에게도
고개 들어 눈길 보내는 일
낯선 바람 속으로 온전히 들어서는 일
걷는다는 것은 
앞선 사람과 발을 맞춰도
그림자는 밟지 않는 일 

아무도 걷지 않는 길은 없다.

시작노트 

세월호 3년상을 치르면서 사람들은 생각이 많아진 듯하다. 권력의 불편한 진실 앞에 놓인 사람들이나 여전히 진실의 눈을 보지 못한 사람들 빼고는 너나없이 세월호의 아픔을 자신의 가슴에 두고 살았고 그 세월의 무게만큼 힘을 모아 세상을 변화시켰다. 하지만 국민이 원하는 정부가 들어섰다고 과거처럼 들떠 있지만은 않았다. 그동안 왜곡되고 꼬여왔던 현대사의 적폐들이 더 이상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에서 발붙이지 못하도록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 안에는 국가의 무능과 폭력으로 생긴 상처들을 치유하는 움직임도 있다. 

지난 5월 15일, 생명평화결사와 한국작가회의는 세월호가 출항했던 인천여객터미널 앞에서 '4.16순례길' 출발식을 갖고 7월 6일 진도 팽목항까지 53일간의 긴 순레길에 올랐다. 세월호가 지나던 바다를 마주하며 해안선을 따라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다시는 이 땅에서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염원하는 길이다. 많은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오래 고민하고 준비한 이 길의 첫걸음은 2016년 9월 5일부터 10월 20일까지 45일간 순천의 대안학교인 사랑어린배움터 학생들이었다. 10대 청소년들이 아프게 세상을 떠난 선배들의 뱃길을 따라 걸어가며 많은 생각을 했으리라. 그 어린 학생들의 뒤를 '416희망의순례단'이 이어가고 있다. 

'416순례길'은 단순히 걷는 길이 아니라 마을과 마을을 잇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서로의 등을 다독이는 소통과 상생의 순례길이다. 교회와 사찰, 성당, 교당 등 종교시설과 마을회관, 노인정, 소박한 지역단체에서 잠자리와 먹을거리를 내주고 각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생명과 평화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의 시간도 갖는다. 

길을 걷는 구도자 도법스님은 "세월호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가슴 아픈 일이지만 온 국민이 자신의 일처럼 아파하면서 한 마음이 됐다는 점에서 인간사회에서 일어난 가장 거룩한 희생이기도 하다"라며 세월호 문제를 잘 풀어내고 그 교훈들을 잘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미래를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을 포함한 우리사회가 희망의 길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 순결한 첫 마음을 다짐하며 가는 길이 4.16순례길인 것이다. 

순례길을 갈 때는 항상 ‘푸렁이’가 그려진 깃발이 앞장선다. 안상수체로 잘 알려진 글꼴디자이너 안상수 선생이 도안한 '푸렁이'는 세월호가 인양된 날, 영감을 받고 완성했다고 한다. 세월호가 바다에서 올라오는 모습과 평화의 촛불이 어울려 새싹이 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그러니 이 '푸렁이'에는 '세월호가 던진 씨앗을 싹 띄우면서 희망을 키워야 한다'는 염원이 담겨 있는 것이다. 세월호는 주인이 주인노릇하지 않고는 이 나라가 잘 될 수 없겠다는 자각을 던져주며 평화의 촛불을 들게 했다. 도법스님의 말씀대로 온 국민이 세월호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그 마음을 되새기며 태안과 서천구간을 순례자가 되어 함께 걸었다. 묵언으로 걷는 길은 많은 생각을 던져주었다. 자연은 인간의 이기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연으로서 제 역할을 다 한다는 것을, 크고 작은 동물들과 산과 들에 핀 들풀과 꽃들, 햇살과 바람은 인간보다 먼저 세상에 길을 내고 자연의 질서를 따르며 살아왔다는 것을, 그걸 거역하는 것은 인간의 이기심뿐이라는 것을. 지금 내가 누리는 안정과 평화들이 앞선 이들의 노고와 희생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4.16순례길이 산티에고 순례길처럼 많은 이들에게 성찰과 치유의 길이 되리라는 기대를 해보면서 나를 더 낮추는 길을 걷고 또 걸었다.
kakiru@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