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스플레인'을 '맨스플레인'하다
'맨스플레인'을 '맨스플레인'하다
[작은책] 과학·군사는 가치 있고 패션·살림은 가치 없다? 지식 유형마저 젠더화
2017.07.15 12:21:11
'맨스플레인'을 '맨스플레인'하다
한 남성은 식사시간 내내 홀로 현 정세에 관한 열변을 토했다. 함께했던 여성들은 크게 대꾸하지 않았다. 딱히 응답을 바라는 말이 아니었다.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그분은 뜬금없이 "여자분들이라 정치 이야기는 재미가 없지요?" 했다. 모두들 정세를 몰라서 듣고만 있던 게 아니었다. 더 정확히는 몇 번의 리액션을 하긴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혹은 "어허!"라는 권위적 감탄사로 단칼에 의견을 무시당했기에 조용히 있었다. 물론 재미는 없었다. 그분은 '특별히' 여성들을 배려해서 정치에서 양육으로 대화 주제를 바꿔야겠다고 스스로 말했다. 여성들은 위기를 감지했고, "아" 김빠지듯 탄식을 내뱉었으나 그의 장황한 말을 막을 길은 요원했다.

그날의 여성들은 모두 학령기 아이를 키우며 맞벌이 중이었고, 그전에 전업주부, 사실은 경력단절의 시기를 겪은 바 있었다. 이 여성들 앞에서 그 남성은 30분 남짓의 시간 동안 소아과 의사도 되었다가, 교육학자도 되었다가, 아동 심리학자도 되었다. 사람들은 정치 이야기를 할 때보다 더 대꾸를 안 했고, 더 재미가 없었다. 직접 자녀 양육을 도맡아 한 것 같지도 않고, 설사 그랬다 하더라도 이미 20년은 지났을 것 같은 연배였기에 그분의 말씀은 조언이라기보다 시대에 뒤처진 참견 같았다.

그분은 문득 여성들의 리액션을 끌어내고자 시도했다. 내내 혼자서만 이야기한 것을 뒤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그 시도는 더욱 위험했다. 한 명씩 콕 집어 이런저런 것들을 자녀에게 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캐묻기 시작한 것이다. 조심스레 한 여성이 "쌤, 그거 '맨스플레인(mansplain)'이에요"라고 했다. 이 용어가 나오자 여성들은 드디어 경직된 근육을 좀 풀었다. 솔직하자면, 속이 후련했다. 남성분은 묘한 긴장감을 보였다. 강한 직격탄이었다.

하지만 그분의 긴장은 심히 짧았다. "그러니까! 내가 인생 선배로서 조언했지"라고 했다. '그러니까'라는 부사는 참으로 탈(脫) 맥락적이었고, 벼락이 내리듯 갑작스러웠다. 그리고 이어지던 최악의 자기 변론. 요새 젊은 여자들은 조어를 너무 많이 쓴다고 했다. '맨스플레인' 같은 어설픈 콩글리쉬를 대체 미국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며 젊은 세대들의 무지가 용감함에 이르렀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주제는 또 한 번 강제 전환되었다. 정치에서 양육으로, 양육에서 신조어로! 바로 '맨스플레인'. 여성들은 어이가 없어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한 채 말을 삼켰다. 그때의 침묵은 정말이지 혈압을 적정 수준에 묶어 두고자 하는 생존적 의미의 침묵이었다.

'맨스플레인'은 2000년대 초반부터 영미권 SNS에서 떠돌던 신조어였고, 2014년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김명남 옮김, 창비 펴냄)는 책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도 퍼졌다. '남성'인 man과 '설명하다라'는 동사 explain을 결합시킨 단어로, 남성들이 여성들 앞에서 잘난 척을 하며 지식을 설파하거나 가르치려는 듯 말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태도는 기본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무지할 것이라는 편견에 기대어 발생한다. '맨스플레인'은 여성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침묵을 강요당하던 상황을 매우 적절하게 포착한 용어였고, 많은 사람들이 이 단어에 환호했다. '맨스플레인'은 <뉴욕타임스>의 2010년 올해의 단어 중 하나로 선정되었고, 2014년에는 온라인 '옥스퍼드 사전'에도 등재되었다.

이 용어가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콩글리쉬 조어를 만든 것으로 생각한 그분은 세상 흐름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 물론 용어의 기원을 모를 수도 있다. 문제는 그가 끝까지 아는 척하려 했다는 점이다. 여성들에게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고 가르침을 받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고 여겼던 걸까? 신기한 것은 그 와중에도 여성들을 향한 훈계의 지점을 찾아내고자 하던 그 기이한 노력이다. '맨스플레인'을 젊은 여자들이 생각도 없이 만든 콩글리쉬라고 여기다니….

'맨스플레인'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자 여성들의 폭발적인 자기 경험의 일례들이 쏟아져 나왔다. 맨스플레인을 시전하던 남성들이 얼마나 우스운 상황에 있었는지 폭로하는 일례들도 쌓였다.

어떤 남성이 열심히 전쟁사와 무기류에 대해 일장 연설을 했는데 알고 보니 듣고 있던 여성이 20년 복무한 해군장교였다든지, 물리학 박사 학위 소지 여성에게 기초열역학을 설명했다든지, 프로 레이싱 선수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성 앞에서 그녀의 직업을 레이싱걸이라고 오해한 것도 모자라, 열심히 중고차 구매 시 알아야 할 팁을 알려준다든지.

이런 예를 들으면, 맨스플레인을 당했던 순간의 억울함과 분노를 한 방에 털어 버리는 통쾌함을 느낀다. 아쉬움도 있다. 많은 여성들은 아직도 맨스플레인을 하는 남성들을 지적하기 위해 전문가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분야의 최고 전문가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 지식의 우열을 오판한 상황만을 묘사하는 용어로 맨스플레인을 취급하면 안 된다.

맨스플레인은 어떤 앎은 전문지식이 되고, 어떤 앎은 쓸데없는 것이 되는지를 가르는 기준마저도 정확히 젠더화되어 있음을 고민하게 하는 용어이다. 안타와 홈런의 차이마저도 설명하고 가르쳐야 하는 지식이라고 여기면서도 스틸레토 힐과 뮬의 차이 같은 것을 지식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과학이나 수학, 기계, 군사 분야는 유독 남성들의 맨스플레인의 주요 소재가 되지만 패션, 음악, 소설, 살림 같은 것들은 그 소재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지식의 유형은 좀 더 남성적이라고 여기고 그런 지식은 중요하고 의미 있다고 여긴다. 반면 어떤 지식은 여성적이며 그런 지식은 좀 더 말랑하고, 쉽고, 만만하므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긴다.

물론 소위 여성적이라고 오해되는 주제마저도 남성들은 숱하게 맨스플레인한다. 양육해 본 적도 없으면서 자신만만하게 주제로 삼고, 잔소리까지 할 수 있는 자신감과 과감한 발언. 이것은 발화자의 성별만으로 어떤 말은 권위가 실리고 어떤 말은 권위를 얻지 못하는가의 문제를 드러낸다.

맨스플레인은 사실 겹겹의 젠더 위계를 품고 있는 현상이다. 여자는 남자가 아는 만큼의 전문적 지식을 가지기 힘들다는 편견, 어떤 앎은 지식이 되고 어떤 앎은 그냥 하찮은 정보나 혹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되는지의 구분이 젠더적 질서와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 근본적으로 여성은 남성이 그 어떤 무(無)/지(知)를 실현하건 일단 듣기만 하라는 침묵의 강요. 이 모든 것들이 남성을 발언권과 그 영향에 있어 상대적 우위에 서게 한다. 내가 어떤 말을 쉬이 꺼내고, 나 홀로 말을 이어 가고 있다면 잠시 입을 닫고 귀를 기울이라고 감히 조언하고 싶다. 침묵을 향해 귀 기울일 때, 맨스플레인을 차별로 인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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