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 만가山頂輓歌 25
산정 만가山頂輓歌 25
[문학의 현장] '나'의 절대적 뉘우침이 되어야 하는 까닭
2017.07.13 10:35:44
산정 만가山頂輓歌 25
산정 만가山頂輓歌 25

너의 무덤 앞에 옮겨 심은 작은 나무에 물을 주고
남기고 간 너의 편지들을 고이 접어 파묻었다
편지지 위에 떨어져 얼룩지던 그해 봄날의 눈물도
달빛에 함께 씻겨 묻으며 엷은 미소를 묶어 주었다
바람이 불어와 작은 나무를 흔들어 한마디 하고 가고
계곡의 물소리도 한마디 수런거리며 흘러가는데
너와 네가 흘려보내지 않기로 한 순결은 얼음 속처럼 
맑아지리라 믿었고, 너와 네가 흐린 하늘에 부친 사연들은
눈송이거나 우박이거나 가랑비이거나 소낙비이거나
우리 사는 세상을 덮어 주고 적셔 주고 하리라
믿었다, 그렇게 꽃이 피고 새가 울고 눈이 내리고 또,
네 무덤 앞에 옮겨 심은 작은 나무의 줄기가 굵어가고
굵어진 나무의 가지들을 잘라주며, 벗이여 나는 
부끄러움의 눈물을 방울방울 네 무덤 앞에 떨군다
새날은 오는 듯이 가 버렸고 우리의 탐욕,
우리의 치졸, 우리의 흥분, 우리의 방심放心, 
우리의 증오와 뒤섞여, 벗이여 꺼져 버린 줄만 알았다가 
다시 살아난 검은 불씨로 이 세상은 불에 덮여 타고 있다
아아, 벗이여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느냐 어디로 가야
새벽이 오기까지 수십 번 아니라고 외쳤던 네 음성을
들을 수가 있는 것이냐 내 갈라진 가슴의 속을 
얼마나 더 이 달빛 바람에 씻기어야 네 미소를 
담을 수가 있는 것이냐 벗이여 네 무덤 위에 이는 
바람의 칼날 위에 서서 어느 만큼 더 뉘우쳐야 하느냐

시작 노트

'산정 만가(山頂輓歌)'의 '만가'는 죽은 사람의 넋을 달래고 쓰다듬는 노래시라는 뜻. '만가' 앞에 '산정'을 붙인 것은 죽어서 산으로 간다는 의미에다가 죽은 자의 고고한 정신의 뜻을 더하고자 한 것. 이 두 가지 의미를 합치면 우리나라 우리민족의 부조리함 속에서 우리나라 우리민족의 사람다운 세상-그 높이의 끝은 언제나 더 높은 데로 올라가 알 수 없지만-을 위하여 죽어간 망자(亡者)의 정신을 기리며 그 넋들을 달래고 쓰다듬으며 '나'를 참회하는 내용의 시라는 의미쯤 되겠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 2009년 5월 23일 그날 나는 고향의 아버님 묘에 인사를 드리고 서울로 오던 중 라디오뉴스를 통해서 그 비통한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그리고 2017년 5월, 나는 문재인 정부가 새로 들어선 것에 대한 설레는 흥분보다는 '나-우리'의 '거울'에 반사되어오는 지난 청춘과 오늘 나의 자화상이 그저 부끄럽기만 하였다. '무엇을 할 것인가'의 지난 청춘에 대해서 '무엇을 하였던가'로 물음이 바뀌고, 이제 다시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물음 앞에 '회복의 정신은 과연 무엇인가'가 먼저 마음 깊숙한 곳에서 물이 되어 올라와 방울방울 눈물로 떨어졌다.  

지난 청춘의 '희생', '나의 자랑' 그 스스로의 오만(傲慢)은 꺼져버린 줄만 알았던 부조리, 부도덕, 그 불씨를 온 세상을 덮어 태우는 거대한 악행의 불로 다시 살려내어 더욱 많은 죽음들을 불러올 것이다. 전비(前非)에 대한 뉘우침이 '나'에게 빠져 나가고 그 자리에 스스로 오만의 씨앗이 싹이 트고 뿌리를 내리고 잎을 밀어 올리는 바로 그 순간, 지난 1세기 동안 ‘그날’을 꿈꾸며 죽어갔던 모든 넋들은 다시 이 나라 모든 산봉우리 끝을 몰려다니며 '나'를 참회시킬 것이다. '그날은 오리라-'하며 죽은 청춘들, 그 정신의 고고함을 아침저녁으로 새기며 '나'를 돌아봐야 하는, '나'를 이끌어가는 넋들의 - 백척간두(百尺竿頭) 그 위기, 그 죽음의 절정에서도 한 걸음 내딛어 상승했던 그 간절했던 소망들이 '나'의 절대적 뉘우침이 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kakiru@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