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머리 없는 하코네
인정머리 없는 하코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의 수상한 여행 2] ⑳드디어 비바람 몰아치는 하코네산을 넘기 시작했다
2017.07.21 08:22:33
인정머리 없는 하코네

인정머리 없는 하코네

오후 5시. 호수, 산림, 온천을 골고루 갖춘 일본의 유명 관광지인 하코네에 도착했는데 산악 지역이라서 그런지 일찍 어두워졌다. 숙소를 알아보려고 서둘러 관광안내소에 들어가니 막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곳은 유명 관광지라서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당일 숙박하기 어려운데 다행히 남풍장 호텔에 빈방이 하나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싱글 룸인데 방이 넓어서 두 명이 잘 수 있고요. 저렴한 가격인 구만 육천 원입니다. 그런데 언덕을 조금 올라가야 합니다. 지금 예약할까요?”


“오케이, 부탁합니다.”
날도 어둡고, 비 오는데 이것저것 고를 상황이 아니었다.

“아참, 잠깐만요. 좀 더 가까운 곳을 알려드릴까요?”
관광안내 책자를 챙기고 문을 막 열고 나오는데 안내소 직원이 다른 곳을 소개해 주겠다고 한다.

“네, 그러면 더욱 좋죠.”
안내소 직원은 하코네역 근처 캇파텐쿄구 호텔에 전화 예약을 하고는 거기로 가 보라고 일러줬다.

10분 정도 달려 도착해 보니 높은 계단에 급경사라서 자전거를 들고 올라갈 수가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자전거는 계단 아래 야외 주차장에 열쇠를 채워 놓으라며 도둑맞을 일은 없겠으나 호텔에서는 책임질 수 없다고 한다. 맙소사,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아까 관광안내소에서 전화할 때 자전거 두 대를 보관할 수 있다고 했는데 바로 이곳의 확 트인 야외 주차장이었나 보다. 우리는 할 수 없이 다시 언덕을 내려와 관광안내소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미 퇴근 시간이 지나 문이 잠겨 있었다.

길 건너 파출소를 찾아갔다.
“아까 관광안내소 직원이 남풍장 호텔 예약을 하다 말고 가까운 캇파텐쿄구 호텔을 소개해줬는데 막상 가보니 자전거를 보관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당초 예약하려다가 취소한 남풍장 호텔을 가려고 합니다. 그 호텔로 우리가 지금 가겠다고 전화 좀 해 주시고, 정확한 위치를 알려 주세요.”

혼자 근무를 하고 있는 당직 경찰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알겠습니다. 남풍장 호텔…….”
우린 호텔 위치를 구글 지도에 입력하고 호텔을 찾아 달렸다.

비는 계속 내리고 계곡물 소리가 마치 폭포수 떨어지는 것 같이 크게 들렸다. 굽이굽이 계곡을 따라 반 시간 정도 걸려 산 중턱에 다다르니 화려한 호텔이 저만치 보이고, 전화를 해줬던 경찰관이 어느새 호텔에 와 있다가 우리가 안전하게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는 어디론가 떠났다.

남풍장 호텔 체크인. 그런데 숙박하려던 싱글 룸은 없고, 트윈 룸은 하룻밤에 삼십만 원을 내라고 한다. 관광안내소에서 예약할 때와 상황이 달라졌다.

이미 다른 손님이 예약을 마쳤을 수도 있다. 물론 삼십만 원에 잘 수도 있지만 비싸서 마음이 불편할 것 같다.
“좋은 집에서 자면 뭐해요. 마음이 편해야지.”

추니와 상의 끝에 다른 호텔을 찾아보기로 하고 내리던 짐을 다시 실었다. 비 내리는 희미한 가로등 길을 미끄러지듯 내려오면서 보이는 호텔을 일일이 들러 숙박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니 들르는 곳마다 만원이었다. 우리를 호텔까지 안내해 준 파출소에는 차마 다시 갈 수 없었다.

자정쯤 우리를 기다리는 산경 호텔이 있었다. 하룻밤에 십이만 원이었다.
“자전거는 저쪽 바깥에 세워 둬야 합니다.”


“비가 많이 내리는데 여기 로비 구석에라도….”
“규정상 안 됩니다.”
“그럼, 창고에라도….”

“이곳 이외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지배인으로 보이는 분이 현관 밖 정원수 옆을 손가락으로 콕 찍어줬다.
“그럼 비라도 피할 수 있게 조금 안쪽 계단 아래 세우면 안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이곳 이외에는.”

우리가 보기에는 로비 구석이나, 계단 아래를 허락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참 인정머리 없고 야속했다. 거기에 자전거를 보관한다고 해도 자정이 넘은 시간에 손님들이 불평할 리 없을 텐데 말이다.

심야에 한국인이 요코하마에서 비 쫄딱 맞고 찾아 왔는데 좀 배려해 주면 안 될까?

“참 빈틈없고 융통성 없는 사람이네.”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다른 호텔을 찾아 나설 수 없었다.
“휴, 너희들 비 맞으며 바깥에서 자거라.

어쩔 수 없다. 밤에 모르는 사람이 이 열쇠를 풀려 하거든 큰 소리로 외쳐라. 도둑이야, 도둑!”

자전거끼리 한 번 묶고, 통째로 정원수에 한 번 더 묶었다. 방에 들어와 가방을 열어 보니 비가 스며들어 옷들이 많이 젖어 있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옷가지들을 그러모아 방 안 가득히 널었다.

▲하코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하코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하코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하코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다음 날 아침. 호텔에서 운영하는 온천에 몸을 녹였다. 몸속 깊이 얼얼했다. 이곳 하코네에서 하루 더 머물려고 했던 마음을 바꿔 다음 도시로 떠나기로 했다. 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옷가지들을 일일이 비닐봉지에 넣은 뒤 가방에 넣었다.

드디어 비바람 몰아치는 하코네산을 넘기 시작했다. 일본 여정 가운데 어려운 코스 중 하나다. 국도 1호선 하코네산의 산길은 갓길이 거의 없는데다 해발 1,000m가 넘고 굴곡이 매우 심했다.

태풍의 영향으로 나뭇가지들이 부러져 너저분하게 길 위에 널려 있어 바퀴가 자꾸 걸려 뒤뚱거렸다. 계곡물은 폭포수로 변해 요란하고, 진한 유황 냄새가 코를 찔렀다. 노면이 미끄러워 속력은커녕 경사가 심해 중턱부터는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올라갔다.

▲하코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하코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하코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하코네산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길가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으로 한숨을 돌렸다. 이어지는 내리막길은 추워서 몸이 부르르 떨렸다.

하산길 중턱에 하코네 화산 분출로 생긴 아시노호를 만났다. 호수에 떠 있는 3척의 유람선은 중세 유럽의 해적선 모습을 본떠 만들었고, 바닷가 조선소에서 제작된 뒤에 분해, 수송되어 호반에서 다시 조립되었다고 한다.

▲하코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하코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하코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해질녘 빗줄기는 잦아들고 산 아래 까마득히 미시마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가파른 내리막길에 갑자기 뒷 브레이크 제동이 안 돼 앞 브레이크에 의존해 서서히 내려갔다.

경사가 심해 속도가 조금만 붙어도 핸들이 털털거리며 마구 흔들렸다. 미시마시에 도착하자, 문 닫기 직전에 수리부터 마치고 세렉트 인 호텔에 짐을 풀었다.

▲미시마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미시마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미시마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다음 날. 휴식도 취할 겸 가까운 미시마 신사를 찾았다. 신사는 일본의 고유 신앙인 신도와 조상신 등을 모신 사당이다.

야스쿠니 신사는 전범의 위패가 있는 곳으로 세계의 공분을 사고 있지만 이곳은 전통적인 신사다. 휴일이라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추니는 물개만 한 잉어에게 먹이를 주느라 정신이 없다.

▲미시마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미시마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미시마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하마스시 초밥’ 간판을 보는 순간 추니 발걸음이 멈췄다. 식당 가운데 손바닥만 한 접시들이 회전 벨트에 놓여 빙빙 돌아가는 이런 스타일의 식당은 처음이다. 접시에는 손가락 굵기의 갖가지 초밥이 두 개씩 얹혀 있었고 손님들은 연신 자신의 식탁 위로 옮겨 놓고 있었다.

한 접시에 1백 엔(1천 원). 식사가 끝나고 종업원이 계산하기 편리하도록 빈 접시는 차곡차곡 식탁 위에 쌓아 놓았다. 우리도 앞에 돌아오는 초밥은 모두 식탁에 내려놨다.

▲미시마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미시마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9월 20일 아침. 눈을 뜨니 호텔 창문으로 후지산이 보였다. 화면을 통해 여러 차례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실제 와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웅장하고 높아 보였다. 3,776m 산꼭대기의 화산 분화구는 평편하게 자른 듯 산 전체가 마치 사다리꼴이었다.

▲시즈오카.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이번 주 9월 19일부터 23일까지는 6년 만에 찾아 온 일본의 실버위크다. 공휴일과 경노의 날, 그리고 추분이 끼어 있어 호텔 구하기가 어렵다고 해서 걱정이다. 모두들 집 놔두고 바깥에 나와 잔단다.

하지만 걱정을 뒤로하고 오늘도 1번 국도를 따라 시즈오카로 향했다. 왼쪽은 해안선이고 오른쪽은 후지산이다. 아침에 잠시 자태를 보여준 후지산은 이내 구름 속으로 몸을 감췄다.

▲시즈오카.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시즈오카.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시즈오카.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시즈오카를 10km 앞두고 바닷가의 스루가 건강 호텔 프런트를 찾아갔다.
“예약 안 했는데 혹시 방 있어요?”

“만실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실버위크라서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돌아섰다.

“잠깐만요, 그냥 휴게실에서 잘 수는 있는데 원하시면 알아보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 주세요.”

추니와 상의하고 나서 오케이 했다. 자전거는 지하 헬스장 안쪽 창고에 6백 엔(6천 원)을 지불하고 보관했다.

우리나라 찜질방 같은 분위기였으나 온천욕 위주로 운영되고 숙박료는 온천 이용료를 포함해 1인당 이만 원이었다. 여권과 현금은 귀중품 보관소에 넣고 비밀번호를 입력해 잠갔다.

가격이 저렴한 건 둘째 치고, 실버위크 기간 동안에 방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참 다행이었다. 노천탕으로 나와 바다를 바라보며 몸을 담그니 온몸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다.

이 온천도 역시 우리나라 온천에서 흔히 일컫는 류마티스 관절염, 고혈압, 병후 회복 등등 만병통치 온천이고, 특히 라듐이 듬뿍 함유되어 있다고 표기되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은 일본에서 매우 유명한 온천 호텔이었다.
“스미마셍~ 스미마셍~”

앗! 남탕에서 갑자기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머니 세 분이 남탕의 맨 몸 틈새를 비집고 다니면서 환경 정리를 하고 있었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 추니에게 물었다. 여탕 환경 정리는 여자가 해? 남자가 해?

▲시즈오카.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시즈오카.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ckchoul@naver.com 다른 글 보기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