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는 아비규환이었다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는 아비규환이었다
[문학의 현장] 그일
2017.08.16 15:31:58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는 아비규환이었다
그일

그 일은 
불덩이를 삼키는 일
지방과 단백질과 힘줄을 차례로 태우는 일
아침이면 불 들여 사리를 굽고
저녁이면 구운 소금을 캐는 일

그 일은 
단 한 방울의 물기마저 짜내어
사막을 걷는 일
그늘 없는 모래 언덕 마른 나뭇가지에
손차양을 만들어 거는 일

그 일은 
갈비뼈 풀어헤쳐 내장을 내어놓는 일
내어 놓은 허파로
대머리독수리를 부르는 일
부려놓은 창자 새들의 부리로 쪼게 하는 일

그 일은
자식 잃은 아비가
자식 가진 모든 아비의 가슴에 뜨거운 
빗줄기로 젖게 하는 일
후드득 듣는 소나기 광장에 촛불 하나씩 밝히는 일

46일 동안의 그일,
2014년 7월 14일에서 8월 28일까지 
이후에도 오랫동안 유민아빠라는 이름의 박꽃웃음
조롱과 멸시 살 베어 견디고 뼈 깎아 버티며 
야윈 솟대 하나 높이 세우는 일.

ⓒ프레시안(최형락)


 시작노트

깊은 슬픔과 큰 아픔은 시로 쓰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자아가 감당하기 벅찬 개인적 체험을 객관화하기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말이리라. 가령 어린 시절 폭력에 습관적으로 노출되었다거나, 폭압적인 군대에서의 경험이 그러한 예일 터인데 내 경우는 세월호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야간운행을 마치고 귀가한 아침 출근준비를 하며 아내가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는 다급한 뉴스를 내보냈다. 진도 앞바다에 배가 침몰하여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때까지도 그리 급박한 상황은 아니어서 저 정도 상태면 한 두 시간이면 배에 탄 사람들을 다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곤한 잠을 청했다. 오후에 일어나 아침에 보았던 장면이 궁금하여 텔레비전을 켜니 도저히 이해불가한 상황이 전개 되고 있었다. 진도 앞바다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2014년 4월 16일에 벌어진 일이다.

그날 이후 일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맨 정신으로는 잠들 수가 없었다. 퇴근 후가 아침이든 저녁이든 한 병 이상의 술을 마셔야만 잠들 수 있었다. 운행으로 피곤한 몸과 술에 취한 몽롱한 정신으로 진도 바다와 팽목항에서 벌어지는 아수라장을 보며 잠에 떨어지곤 했다. 완전히 배가 가라앉고 며칠이 지나 물리적으로 더 이상 생존자가 있을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지고 세월호는 최종적으로 304명이나 되는 희생자를 냈다. 21세기 문명사회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버젓이 벌어진 것이다.  

이후 전개된 일, 일테면 정부는 침몰의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채 지지부진 시간을 끌고만 있었으며, 구할 수 있는 여건과 상황에서조차 제대로 구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이를 감추기에 급급했다는 점 등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다. 그 뒤로도 진상조사위를 꾸리고 실행하는 일에도 당시 정부와 여당의 집요한 방해공작이 있었고, 보수언론과 방송은 왜곡보도, 편파보도, 진실을 호도하는 거짓보도를 자행했음을 알고 있고.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일베 등 국정원에 뒷배를 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단체들이 유가족과 시민들을 조롱하고 멸시하며 물리적 폭력마저 서슴지 않았다는 점 또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다. 

왜 배가 침몰했는가? 그보다 더 기가 막히는 일은 왜 구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자신의 죽음을 대신해서라도 이 의문을 풀고자 하는 바람은 대부분 유가족들의 심정이었을 테고 유가족들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 문제를 풀고자 무진 애를 쓴다. 이참에 유민아빠 김영오 씨가 택한 방법은 단식이었다. 무모한 방법, 절박한 투쟁. 46일 이라는 긴 시간 종잇장 같은 삶이 차가운 죽음에 맞닿아 있으면서도 초인적 자세로 단식을 단행했다. 김영오 씨의 방법이 최선이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절벽에 놓인 무력한 한 개인이 자식 잃은 슬픔을 어떻게 달래는가 하는 하나의 방법이자, 도대체 내 자식은 왜 죽었고, 어째서 할 수 있었으나 구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만이라도 알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이 그를 그렇게 하게 하였으리라 추측할 뿐. 우리는 곁에서 안타까이 지켜보았을 뿐. 

활화산처럼 타올랐던 광장 촛불의 물결이 그이의 단식만이 유일한 점화원이라고 말 할 수는 없으나 그가 보여준 불굴의 정신과 행동이 촛불항쟁의 한 축이고 밑바탕이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리라. 단식으로 죽음에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그를 살리고자 열흘 넘게 단식에 동참한 한 인사는 지금 우리의 대통령이 되었다. 그가 준 영향이 작지 않다. ‘이게 나라냐?’는 탄식 앞에 세월호와 국정농단과 국가적 적폐는 그 맥을 같이 한다. 아직 해결되고 청산된 게 아무 것도 없다. 이제 시작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광장 촛불을 다시 밝히자. 유민아빠 김영오 씨를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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