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그룹에 희토류 기술 뺏기고 토사구팽 당했다"
"일진그룹에 희토류 기술 뺏기고 토사구팽 당했다"
기술과 기업 빼앗겼다며 법적투쟁 나선 희토류 전문가의 사연
2017.09.06 10:33:59
"일진그룹에 희토류 기술 뺏기고 토사구팽 당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희토류 자원개발사업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정부 차원의 희토류 개발 프로젝트에 자문을 해주고 있는 희토류 전문가의 믿기 힘든 사연이 재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사연의 주인공은 김유철(60) 전 IRM 대표 겸 고문이다. 그는 세계 1위의 희토류 업체 프랑스 롱프랑 등 글로벌 희토류 기업 35년 경력의 영업맨 출신으로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희귀한 희토류 전문가다. 

희토류는 금속 중에서도 특이한 성질을 지녀 첨단제품의 고효율 부품에 필수적으로 쓰이는 희귀 금속류를 뜻한다. 현재 희토류 원료는 중국이 거의 100%를 생산하고 있다. 원료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을 능가할 국가가 없기 때문이다. 산업이 고도화할 수록 희토류 확보는 국가적 과제가 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희토류 자원개발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희토류는 자원안보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세계적으로 희토류를 사용한 고부가가치 부품을 거의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는 일본이 지난 2010년 중국과의 영토분쟁 갈등으로 중국이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금지하는 조치를 하자, 전세계에 희토류 부품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희토류 원료 가격이 수십배가 급등한 사례는 희토류가 국가안보 문제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일진그룹과 법적투쟁을 벌이고 있는 희토류 전문가 김유철 씨(사진 가운데). ⓒ비즈맥


전례없는 일진의 합작회사, 수상한 급속 청산 


김유철 씨는 길고 복잡한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으면서도 "가장 안타까운 점은 일진그룹이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면, 몇년이나 앞당겨 한국의 희토류 산업이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발전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를 무산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왜 그는 갑자기 일진그룹을 언급한 것일까?

그는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을 비롯한 일진그룹 관계자 4명을 지난 7월 검찰에 배임 혐의로 고소하는 등 법적 분쟁을 겪고 있다. 김유철 씨에 따르면, 그는 허 회장과 몇 년내에 수천 억원대의 매출을 올릴 희토류 제품 제조기업을 함께 키우기로 약속한 사업파트너 관계였다.

그는 희토류 제품을 만들기 위해 2011년 창업한 비즈맥이라는 업체의 안성 공장에서 2014년 7월 허 회장과 처음 만났을 때의 흥분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허 회장은 "대단한 기술이다. 누구한테도 보여줘서는 안된다. 일진이 투자를 할테니 다른 곳에서 절대 투자를 받지 말라. 희토류 기업을 크게 키워 서울 강남에 사옥을 짓는 것을 목표로 하자"는 취지로 큰 기대를 했다는 것이다.

김 씨는 "일진그룹은 독자적으로 사업을 하는 전통이 강해, 합작 형태로 사업을 벌인 것 자체가 희토류 사업 말고는 전례가 없고, 지금도 없다"면서 희토류 사업에서 그가 가진 무형의 자산이 일진이 쉽게 획득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씨의 오판은 여기서부터 시작된 듯하다. 사업가 중에는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초기 기반을 갖기 위해 '무형의 자산'을 가진 사업가와 잠시 손을 잡을 수는 있지만, 기술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난 뒤에는 온갖 구실을 만들어 '토사구팽'을 서슴지 않는 유형이 적지 않다.

최근에는 통신공룡기업 KT조차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한 세계 최초의 IPTV 서비스"라고 홍보한 서비스의 핵심기술 도용 의혹에 휩싸였다. 이미 이 기술을 특허등록한 벤처기업가가 KT에 기술제안서까지 전달하고 논의한 뒤에 KT가 이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라고 폭로하며 법적 투쟁에 나선 것이다. 이처럼 일진그룹보다 훨씬 큰 재벌기업들에서도 중소벤처기업 창업자들이 기술을 탈취하고 '토사구팽' 당했다는 사연은 넘쳐난다. 대부분 재벌이 빠져나갈 구멍이 많은 허술한 법체계로 인해 법적 투쟁으로는 해결이 쉽지 않을 뿐이다.

김 씨 스스로도 "이제와 돌이켜보니, 나 없이는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자부심이 너무 커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고 후회했다. 영업맨 출신이지만 글로벌 선진기업문화만 겪어서 무형 자본을 쉽게 착취하는 독특한 국내 대기업 문화를 너무 몰랐다는 것이다.

김유철 씨가 가진 기술은 희토류 원료로 자동차용 엔진에 들어가는 강력한 소형 모터에 쓰이는 희토류 자석과 관련된 것이다.

김 씨가 허 회장 등을 배임혐의로 검찰에 고소를 했지만, 검찰이 적극적 수사를 하지 않는 한 사법적 단죄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진그룹이 김 씨와의 관계를 끊는 과정을 살펴 보면, 중견그룹에 기대한 '상도의'로 볼 때 비판의 대상은 충분히 될 만한 것으로 보인다.


▲ 지난 2009년 12월 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발명특허대전 개막식에서 참석한 허진규(오른쪽에서 두 번째) 일진그룹 회장. ⓒ연합뉴스


2014년 11월 IRM 합작 설립 계약서는 허진규 회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진그룹 측과 서명됐다. 당시 일진이 51%, 김 씨가 49%로 거의 대등한 대주주로서, 경영권은 일진이 행사하는 것으로 합의가 됐다.

이 과정에서 일진 측은 51%에 해당하는 투자를 했다. 일진은 38억 원을 투자하고, 55억 원은 일진머티리얼즈가 매입해주는 전환사채로 조달하면서 51%의 지분을 가져갔다. 김 대표의 49% 지분은 영업권 45억 원, 기계와 재고 등 35억 원 등 80억 원 상당의 가치로 평가받은 비즈맥의 자산과 49%의 지분을 담보로, 10억 원을 일진에서 빌린 현금으로 획득했다.

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은 2015년 7월 "해외출장을 가면서 허진규 회장의 사전승인을 받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일진에서 대표 해임 통보를 내용증명으로 보낼 정도로 사이가 틀어졌다. 

김유철 씨는 "2015년 4월 허 회장이 참석한 투자심의위원회 때부터 허 회장이 투자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면서 "돌이켜보니 이미 그때 나를 토사구팽할 의도였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주장했다.


급기야 일진은 김 씨에게 아무런 통보도 없이 2015년 12월 49%의 지분에 대해 질권을 행사해 처분해 버리고, 기계 등 IRM의 자산을 일진머티리얼즈에 흡수시켰다. 왜 그랬을까? 일진 측은 200억 원 증자 등 사업을 확대하기 위한 제안을 김 씨가 거부해 사업을 유지하기 어려웠으며, 이 과정에서 김 씨가 일진을 기만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11년 일진머티리얼즈 전북 익산 공장에 일진그룹이 1조 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한 투자협약식에서 일진머티리얼즈 대표 등 관계자들이 나란히 서있다. ⓒ연합뉴스


일진의 200억 증자 제안의 진짜 의도는? 


하지만 김 대표의 입장에서는 자본이 없는 입장에서 자신의 지분이 10% 정도로 줄어드는 증자에 당장 응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아는 일진에게 기술도 빼앗기고 지분도 빼앗긴 채 버려진 것이라는 입장이다. '토사구팽'이라는 것. 


실제로 일진그룹은 김 씨와 합작한 후 현재까지 희토류 제품을 생산하는 역량을 갖게 됐다. 

일진그룹의 홍보 책임자의 해명은 이렇다. 지난 4일 일진그룹 커뮤니케이션팀의 홍용기 차장은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김유철 씨는 생산도 못하는 고철에 불과한 기계 한 대를 가지고 와서, 매달 상당한 수익을 올릴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모두 사기였다"고 주장했다.

홍 차장은 "사기에 대한 응징 차원에서 김 대표의 지분도 일방적으로 매각했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써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유철 씨는 "합작을 위해 비즈맥에 대해 철저하게 실사를 했으면서도, 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일진에서 '고철 기계'라고 주장한 기계는 비즈맥에서 새로 들여온 것으로 생산을 한 기록이 있고, IRM에서 생산을 한 기록도 있다면서 근거 서류를 제시했다.

"기술을 탈취해 독자적으로 희토류 사업을 하려던 것이 아니었느냐"는 의혹에 대해 홍 차장은 "일진머티리얼즈에 RM(희토류) 사업부가 있는데 연구도 잘 이뤄지지 않는 상태다. 사업성이 없다. 스톱된 상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도 김유철 씨는 "최근에도 일진머티리얼즈에서 희토류 제품 주문을 60톤이나 수주했다. 다만 내가 인도에서 희토류 원료를 중국이 장악한 시장보다 10% 싸게 제공받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했는데, 나를 내치는 바람에 채산성을 맞추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렇게 반박한 근거가 될 자료도 확보하고 있었다.

일진 측의 공식 입장을 대변한다는 홍 차장은 "자세한 내용은 나도 모른다"는 말을 반복했다. 사건 자체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할수록 일진 측에 좋을 게 없다는 태도였다.

2016년 7월 김유철 씨가 서울 서부지검에 진정서를 내고 이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해줄 것을 요청했고, 지난 7월 서부지검이 모든 항목에 대해 "혐의 없슴"이라는 결론을 내렸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유철 씨는 민사소송에서 손해배상을 받을 근거는 충분하다면서 지리한 소송전을 피하고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길 기대했다.

그는 "8억 원으로 평가절하해 가져간 내 기계와 합작 당시 내 지분으로 평가받은 비즈맥의 가치 80억 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면서 "일진과의 분쟁의 족쇄에서 벗어나 인도에서 중국이 제공하는 희토류 원료보다 10% 싸게 공급하는 네트워크를 부활시키고, 정부의 희토류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국가의 희토류 산업 육성에 기여하는 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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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선 기자 editor2@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1년 입사해 주로 경제와 국제 분야를 넘나들며 일해왔습니다. 현재 기획1팀장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