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불허전'으로 돌아온 '낮은 한의학'
'명불허전'으로 돌아온 '낮은 한의학'
[인터뷰] 소설 <허임>의 저자 한의사 이상곤
'명불허전'으로 돌아온 '낮은 한의학'

허임은 조선시대 최고의 침의다. 그런 그의 이름이 지난 8월 27일 포털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최근 들어 주말마다 포털 검색어에 종종 등장한다. 

허임(김남길 분)과 흉부외과 의사인 최연경(김아중 분)이 400년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의술을 펼치는 타임 슬립 드라마 
<명불허전>(홍종찬 연출, 김은희 극본, 본팩토리 제작)이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명불허전>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이 쓴 소설 <허임>(성인규·이상곤 지음, 황금가지 펴냄)을 모티브로 했으며, 이 원장은 현재 드라마 자문을 맡고 있다. <명불허전>은 매주 토, 일 오후 9시 tvN에서 방송된다. 

<동의보감>을 쓴 허준조차 허임의 침 실력에 고개를 숙였다지만, 그의 명성이나 그에 대한 기록은 허준
에 비해 턱없이 적다. 이 원장은 그 이유에 대해 "성리학을 중시하는 조선 시대의 관념적인 분위기 속에서 실천을 중시하는 그의 침법이 제대로 전수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명한 세도가 출신인 허균에 비해 허임은 어머니가 노비로 천민 출신이기도 했다. 신분제 사회에서 평생 그를 따라다녔던 '천출'이라는 꼬리표가 이후 그의 의술과 업적을 후대에 남기는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도 있다. 

허임의 침술을 복원해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진 이상곤 원장은 그의 소설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의 인기가 누구보다 반갑다. 이 원장이 허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침은 그 무엇보다 '낮은 한의학'에 걸맞는 치료 방법이기 때문이다. 값비싼 약재가 아니라 침과 의사의 지식이 만나 질병을 치료하는 침술이야말로 일반 대중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허임의 침술이 그 진가를 인정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약재를 구할 수 없는 임진왜란을 겪었기 때문이다. 

허임이 살아있던 당시 중국과 일본에서 일제히 "침은 조선"이라는 칭송을 할 정도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던 '조선의 침술'을 부활해 21세기에도 '대한민국의 침술'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하고 싶다는 게 이 원장의 바람이다. 

이상곤 원장을 
지난 5일 서울에 있는 그의 한의원에서 만났다. 이 원장은 2009년부터 5년 동안 <프레시안>에 '낮은 한의학'이라는 칼럼을 연재해 동명의 책 <낮은 한의학>(사이언스북스 펴냄)을 냈다. 그 외에도 책 <왕의 한의학>(사이언스북스 펴냄>, <코, 음기로 다스려라>(우원북스 펴냄), <신한방 임상이비인후과>(정담 펴냄)이 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tvN 주말 드라마 <명불허전> 공식 포스터.


'조선 제일침' 허임을 부활시키다


프레시안 : 최근 '조선 제일침' 허임을 다룬 tvN 드라마 <명불허전>의 자문위원으로 바쁘게 지내고 있다고 들었다. 드라마의 모티브가 된 소설 <허임>을 쓰기도 했는데, 배우 김남길과 허임의 싱크로율은?

이상곤 : 김남길 씨가 허임보다는 잘생긴 것 같다. 그런데 또 '혜민서(惠民署)' 의녀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허임을 생각하면, 김남길 씨보다 더 나았을 것 같기도 하고.(웃음)

김남길 씨와 김아중 씨 모두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기 전 한의원 와서 허임이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며 침놓는 법을 배웠다. 김남길 씨는 한의학에 대한 기본 지식뿐 아니라, 허임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해왔다. 김아중 씨도 외과 전문의 연기를 위해 심장을 직접 만져보고 수술방도 대여섯 번 참관했다고 하더라.

프레시안 : <명불허전> 시청률이 매주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특히 드라마 8회(9월 3일 방송)에서 천민 출신(천출(賤出)) 허임이 양반의 폭거 앞에서 "개돼지만도 못한 이놈들, 대감의 노여움이 풀릴 수야 있다면 죽어 마땅"하다며 오열하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신분 사회였던 조선에서 침술이라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천출이 어의(御醫)까지 올라갔다는 것 자체가 정말 드라마틱하다.

이상곤 : 한마디로, 허임은 천재다. 역사상 허임과 같은 인물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임진왜란이 일어나 허임이 선조(宣祖)를 호종(護從)한 때가 스물네 살이다. 20대에 어의가 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심지어 천출인데.

(선조는 조선 제14대 왕으로 소화불량, 이명, 편두통 등을 앓았다. 재위 기간(1567~1608년)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편집자 주)

신시 초, 전의감 의관이 방문을 붙이자 탄식과 탄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하아, 아쉽군. 절호의 기회였는데."
"약시 허임이 됐군!"
"소문이 사실이었던 모양일세. 허어어! 단숨에 종6품이 되었구먼."
(중략)
혜민서 의관들은 허임이 내의원과 전의감의 콧대를 눌러줬다는 것에 기쁨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몇몇은 이제 스물두 살에 불과한 허임이 치종교수가 되자 질시와 불만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 <허임> 1권 424~425쪽


▲ tvN 주말 드라마 <명불허전> 8회(9월 3일 방송) 화면 갈무리.


프레시안
: 조선시대 한의하면 대부분 허준을 떠올린다. 허준과 허임은 동시대 인물이기도 한데, 허준에 비하면 허임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소개를 해 달라.

이상곤
: 허준은 '양천 허씨'라는 세도가 집안의 서자다. 허준은 조선 중기 문인인 허균과 같은 집안이다. 반면 허임은 악공인 아버지와 노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천출로, 천민 중에서도 천민이다.

허임이 혜민서 의학생도로 초시(初試)를 치를 당시 허준은 선조의 어의로 '태의(太醫)'라고 불렸다. 하지만 침이라면, 허준도 허임 앞에서 꼬리를 내렸다. 허임이 가진 침술 자체가 독특하고 대단해서 '허임의 보사법(補瀉法)'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선조 37년(1604년) 허준이 임금의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신은 침을 잘 모릅니다만 허임이 평소 말하기를 경맥을 이끌어 낸 다음에 아시혈에 침을 놓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허준은 <동의보감>의 질병마다 침과 뜸을 놓을 혈 자리를 표시했던 침구학의 대가다. 나이를 보더라도 허준의 나이가 58세, 허임의 나이가 34세에 불과했던 점에 비추어 보면 대단한 상찬이 아닐 수 없다.

- <낮은 한의학> 43~44쪽 

하지만 성리학의 관념과 교조주의에 사로잡힌 조선 사회에서 실천에 기반한 그의 치료법은 제대로 전승되지 못했다. 그가 쓴 <침구경험방>은 당시 조선에 유학 왔던 일본 의사가 돌아갈 때 가지고 가서 1725년 일본에서 간행할 정도로 중국, 일본에서도 인정받았는데 정작 조선에서 잊혔다. 

▲ tvN 주말 드라마<명불허전>의 자문을 맡고 있는 이상곤 원장.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드라마 <명불허전>에서도 허임이 침을 놓는 장면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이상곤 : 조선의 언어(한글)를 만든 사람은 세종이고, 조선의 한의학(<동의보감>)을 정리한 사람은 허준이고, 조선의 침(보사법)을 발전시킨 사람은 허임이다. 특히 "허임의 침법은 겉보기엔 단순하지만 천지인의 변화를 한데 담으려는 웅혼한 기상을 가진 실천적 비법"이다.(<낮은 한의학> 46쪽)

<조선왕조실록> 중 <선조실록> 151권, 선조 35년 6월 12일 기록을 보면 "의관 김영국, 허임, 박인령 등은 모두 침을 잘 놓는다고 일세를 울리는 사람들"이라고 되어 있다. 또 허임이 쓴 <침구경험방>은 중국과 일본 등 "국제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낮은 한의학> 44쪽)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허임은 실력만큼이나 배짱도 대단했던 것 같다.

"침의(鍼醫) 허임(許任)이 전라도 나주에 가 있는데, 위에서 전교를 내려 올라오도록 재촉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도 오만하게 집에 있으면서 명을 따를 생각이 없습니다. 군부(君父)를 무시한 죄를 징계하여 다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잡아다 국문하도록 명하소서."(<광해군일기> 27권, 광해 2년 윤3월 12일)

"어제 상께서 '내일 침의들은 일찍 들어오라'는 분부를 하셨으니, 허임은 마땅히 궐문이 열리기를 기다려 급히 달려 들어와야 하는데도 제조들이 이미 모여 여러 번 재촉한 연후에서 비로소 느릿느릿 들어왔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경악스러워하니, 그가 임금의 명을 무시하고 태연하게 자기 편리한 대로 한 죄는 엄하게 징계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광해군일기> 79권, 광해 6년 6월 11일)

▲ tvN 주말 드라마<명불허전>의 모티브가 된 소설 <허임>(성인규·이상곤 지음, 황금가지 펴냄). ⓒ황금가지


'대한민국 침법은 허임 침법이다'


프레시안 : 책 <낮은 한의학>에서 허임을 "조선 침구학의 진정한 자존심"이라고 평가했다. 허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이상곤 : 콜롬비아 의대 교수 한 명이 국내에서 한의학을 다시 공부한 뒤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그 교수가 말하길 외국 사람들은 '한의학'이라고 하면 무조건 '중국 의학(Chinese Medicine)'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인이 뉴욕에서 운영하는 한의원은 예약도 안 되고 현금 계산만 가능한 데도 외국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중의학과는 또 다른 한국 한의학을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한국 한의학은 국가의 전략적 자산이기 때문에 문화로도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특히 허임의 침술이 한창일 때가 한국 한의학의 절정기였다. 그래서 허임의 침구학을 재조명하며 개인적인 치료법도 다시 섭렵했다. 이를 더 발전시켜 '대한민국 침법은 허임 침법이다'라고 브랜드 네이밍할 계획이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중국이 드라마 <명불허전>의 인기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연합뉴스>는 지난 8월 30일 "중국 매체들이 최근 한국의 한의학 드라마 방영을 놓고 중의학이 한의학의 원류인데 왜곡되고 있다며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상곤 : 중국이 의도를 정확하게 꿰뚫어 봤다. 한국 한의학이 세계 침구한의학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5년을 준비해 책을 쓰고 드라마를 만들었다.

중국은 13억 인구를 대상으로 한 임상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가 나서서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중의학 알리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문화 콘텐츠로 한류 열풍을 일으킨 한국이 한의학 중에서도 침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만들었으니,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중국 의학은 한방과 양방이 상호 보완하는 식이다. 중의에선 치료 과정에 스테로이드 등 양약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은 한방과 양방의 구분이 확실하다. 한약에 아스피린이나 항생제 같은 양약이 들어가면 안 된다. 따라서 끊임없이 양방, 양약, 양의와 경쟁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한국 한의학은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다 보니 질병을 끝까지 컨트롤하는 힘을 갖게 됐다. 그런 점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한국 사람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한의학을 폄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상곤 :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의료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질병의 고통에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기술이다. 여기에 동양 의학이나 서양 의학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삶의 질을 높여주고 존엄을 지켜주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면,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 아닌가. 드라마 <명불허전>에서 한의와 양의가 함께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다. 한방과 양방의 조화 또는 화해, 동서양 의학의 만남 등.

죽음의 문턱에 있는 사람에게 알약을 먹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면, 엄청난 절망에 빠질 것이다. 인간은 암에 의해서 죽는 게 아니고, 암이 수반한 공포 때문에 사람이 오그라들어서 죽는다고 말한다. 절망만큼 무서운 것은 없지 않나. 그런데 알약 외에 다른 방법, 즉 침과 뜸이 있다면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

프레시안 : 한방 인이비인후피부과 전문의다. 일상에서 환절기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이상곤 : 일단 찬 음식과 음료를 될 수 있으면 먹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생강, 대추, 파뿌리를 끓인 후 흑설탕 한 숟가락을 넣어 따뜻하게 마시면 환절기 감기를 효과적으로 없앨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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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기자 onscar@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1년 프레시안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정치, 사회, 경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13년부터 4년 동안 편집국장을 지냈습니다. 프레시안 기자들과 함께 취재한 내용을 묶어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등을 책으로 냈습니다. 원래도 계획에 맞춰 사는 삶이 아니었지만, 초등학생 아이 덕분에 무계획적인 삶을 즐겁게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
이명선 기자 overview@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방송국과 길거리에서 아나운서로 일하다, 지금은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기자' 명함 들고 다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