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은 '상상의 공동체'인가?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인가?
[민미연 포럼] 북핵과 민족 통일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인가?
1.
최근 북미대결이 첨예하다. 결말이 어떻게 될지,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를 두고 언론이나 SNS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는 민족을 둘러싼 논란도 있다. 남한과 북한처럼 이미 70년 동안 단절되어 양쪽 사람들의 삶과 생각이 너무 달라진 경우 민족이라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사람도 있고, 북미평화협정이 체결되고 주한미군만 철수하면 민족애(民族愛)에 의해 저절로 평화 통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다 나름의 정치적 견해에 따른 주장이다.

며칠 전에 한 SNS에서 어떤 분이 민족과 관련한 다른 주장을 반박하며 먼저 <상상의 공동체>(베네딕트 앤더슨 지음, 윤형숙 옮김, 나남 펴냄)를 읽고 와서 이야기하라고 충고했다. 그 글을 보고 민족과 관련해 약간의 지식을 제공하는 것도 사람들이 민족문제에 접근하는데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현재 우리 지식인이나 학생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민족이나 민족주의 관념은 1980년대에 서양에서 확립되고, 1990년대 말 이후 한국 사회에 널리 확산된 '근대주의'에 속하는 것들이다. 민족이 원래 있던 것이 아니라, 근대인 18세기 말이나 19세기 초에 인위적으로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발명'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사회공학의 산물'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상상의 공동체>라는 것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실체는 없는 것인데 민족이라는 공동체가 있는 것으로 '상상'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민족이 길게는 수천 년 전에 만들어져 지속된 것으로 보는 전통적인 생각과 배치되는 것이다.

'근대주의' 편에 서 있는 서양학자들은 따라서 민족이나 민족주의가 만들어지게 된 근대의 여러 조건들을 강조한다. 자본주의나 산업화, 근대국가의 형성, 의사소통체계의 발전 같은 것들이 그것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근대에는 민족이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본다. 당연히 우리가 어느 민족의 특질이라고 생각하는 언어, 혈통, 신화, 역사, 영토, 문화, 관습 같은 종족적 요소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것은 상황에 따라 쉽게 변화하거나 사라질 수 있다고 본다. 더구나 이제 '지구화' 시대에 들어와서 인류가 하나가 된다고 하는 마당이니 그들에게 그런 종족성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런데 이들의 결정적인 결함은 역사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그들은 대개 사회학이나 정치학 등을 하는 사회과학자들이니만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연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같은 서양사 전공자라 하더라도 서양 중세나 고대에 접근하려면 전문적인 언어나 사료 훈련을 받지 않는 한 어렵다. 하물며 다른 전공자들 입장에서는…. 그러나 민족이라는 것이 역사적인 현상인데, 역사를 빼고 어떻게 설명하겠나.

2.
20세기 중반의 대표적인 민족주의 연구자로 <민족주의 시대>(진덕규 옮김, 박영사 펴냄)을 쓴 한스 콘은 중세시대에는 교황이나 신성로마제국 황제처럼 왕국을 넘어서는 보편적 권력들이 존재했고, 왕국 안에서는 많은 봉건영주들이 왕과 권력을 나누어 가졌으므로 왕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은 불가능했다고 주장했다. 또 중세시대 주민들은 대개 자기가 살고 있던 좁은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보다 큰 주민들의 단위인 민족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 없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중세 말에나 민족이 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본다. 근대주의자들은 이런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강화시켜 18세기 말까지도 민족의 존재를 부인한다.

그러나 중세사학자들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 서양 중세시대에는 왕국이 최고의, 가장 중요한 행정 단위로 생각됐다. 따라서 제국이나 교황은 통치자의 원형으로서의 왕의 최고권과 정치공동체의 원형으로서의 왕국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되지 못했다. 봉건영주들의 힘이 큰 경우에도 왕의 정당성에 함부로 도전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중세유럽의 왕국들은 우연히 왕에게 속한 영토가 아니라 거기 사는 주민들의 집단에 속하는 영토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정치는 왕과 영주들의 책임이었으나 그들만의 것은 아니라 관습에 의존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신민들의 충고와 동의에 의존했다. 즉 왕국은 왕만이 아니라 그 주민들의 공동체로 인식되었다. 그 공동체가 바로 영어로 nation이나 people(라틴어로는 natio와 populus)로 불린 '민족'이었다.

또 왕국은 정치 단위뿐 아니라 공통의 혈통에 묶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6, 7세기부터 조상 신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7세기의 프랑크족은 자신들의 혈통이 트로이에서 기원한 것으로 주장했고, 10세기의 브리티시족은 자신들을 로마 건국자의 조상인 아이네아스의 후손이라고 믿었다. 다른 민족들도 마찬가지이다.

중세시대에 특정 민족의 특질의 하나로 언어를 처음 언급한 사람은 10세기 초에 죽은 프륌 출신의 레기노다. 그는 프랑크왕국이 언어에 따라 동, 서로 갈릴 때(843년) 그 경계선 부근에서 살았는데, '여러 민족들은 혈통, 풍습, 언어, 법이 다르다'고 분명히 말한 바 있다.

이 점은 중세 말인 15세기 초의 예에서도 볼 수 있다. 1414~18년 사이에 로마 교황청이 각 나라의 교회 대표들을 모아 콘스탄츠공의회라는 것을 열었는데, 거기서 백년전쟁으로 서로 앙숙이 된 영국 대표단과 프랑스 대표단 사이에 대표권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붙었다.

그 과정에서 영국 대표단은 "민족이 다른 사람들과 혈통이나 관습, 언어에서 구분되는 사람들로 이해되든 말든, 또 민족이 프랑스 민족의 영토와 마찬가지로 영토로 이해되든 말든 잉글랜드 민족은 진정한 민족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을 보면 중세시대에 민족의 요건으로 언어, 혈통, 관습, 법체계, 영토 등을 모두 인식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민족 개념과 별 차이가 없다.

3.
이렇게 민족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고 그 개념이 오늘날과 별 차이도 없는데, 전근대에는 민족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많은 비판을 받으며 전근대와 근대를 단절적으로 보는 자신들의 주장이 너무 지나치고 불합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근대주의자들 가운데도 전근대를 검토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존 브릴리이다((케임브리지 대학 펴냄). 그는 전근대에 민족과 그 계통의 언어들이 사용된 단편적 증거들이 있으나 그것이 일관성, 지속성, 정치적 중요성을 가지고 사용되지는 않았다며 근대주의적 주장을 계속 유지하려 하나 그럼에도 전근대를 고려 안에 집어넣고 있다는 점에서는 근대주의의 변화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한국에서는 민족이라는 단어가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부터 사용되었으므로, 그때 한민족이 형성되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도 횡행하나 위에서 말한 종족성과 관련해 보면 통일신라나 고려시대에 민족 형성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보면 한민족의 형성은 서유럽보다 이르거나 비슷한 시기일 수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북핵이나 민족 통일과 관련한 논의에서도 민족이 상상의 공동체가 아니라, 종족성에 기반한 오랜 실재(實在)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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