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매개로 남북관계 개선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 같은 것"
"쌀 매개로 남북관계 개선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 같은 것"
[김성훈 칼럼] 자주 오고 가고, 만나고, 주고받아야 신뢰가 싹 튼다
"쌀 매개로 남북관계 개선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 같은 것"
만일 한반도에서 북·미 간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느 쪽이 선제공격을 당하건 휴전선 연도에 배치된 수백기의 북한 장사포와 중단거리 저고도(스커드) 미사일 공격으로 주한 미군을 포함해 애먼 남쪽의 주민들 역시 적어도 300만 명 이상의 참사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칙이다.(이 때 고고도 미사일방어 체제인 성주의 사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러니 한반도에 결코 다시 전쟁이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지금은 핵의 시대라 더욱 그렇다.

'죽음의 백조'와 '죽음의 막말'들!

발단은 물론 북한 김정은 정부의 연달은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실험에 기인한다. 이유인즉, <뉴욕 타임스> 말마따나 연중 상시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동, 서해안에서의 한·미 군사연합훈련과 '참수' 작전 등에 붕괴 위협을 느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왕조의 자구책이라고는 하나, 유엔을 비롯한 온 세계가 지탄하고 금기시하는 핵 보유 장난을 당연시하는 시대착오적인 북쪽 지도부의 행태는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세계 최강국이라는 나라의 대통령이 시정잡배나 할 법한 막말을 공개적으로 퍼붓고, 이에 질세라 북쪽 정부의 대표라는 작자가 시정잡배만도 못한 말로 대거리하는 꼴불견을 연달아 보면서 전전긍긍하며 개탄하는 남쪽 사람들의 심사 또한 대단히 불편하다. 지난 9월 19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 총회 연설에서 "미국과 동맹(국가)을 방어해야 한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고 위협했다. 북한 주민 2500만 명의 삶과 죽음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무책임하고 비인간적인 연설이라는 미국 내외의 반응이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9월 22일 성명을 통해 "사상 최고의 대응조치"를 경고한데 덧붙여 다음 날, 리용호 외무상은 유엔 총회 연설에서 "군사적 공격 기미가 보일 때에는 가차 없는 선제행동으로 예방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대들고 있다. 심지어 "(미친)개가 짖는 소리"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까지 해댔다.

이러할 때 미국은 9월 23일 밤 '죽음의 백조'라고 불리는 B-1B 공중폭격기와 F-15C 전투기를 사상 처음으로 북한 쪽 동해 공해상까지 출동시키며 군사적 위협 수위를 최고조로 높였다. 두 쪽 다 미친 게 틀림없는 모양새다. 오죽했으면,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사설(9월 22일 자 )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미치광이 노릇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맡기라"라고 말했을까 싶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강한 나라와 세계에서 제일 가난하고 작은 나라가 서로 지구 반대편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일촉즉발의 핵전쟁 위기를 조그만 땅 한반도 위에서 벌이고 있다. 7000만 한민족은 가물가물 앞날이 불안하기 그지없다.

한반도 위기는 우리가 풀어야 한다 : 신뢰 형성의 시작, 식량과 농업 협력

한반도의 문제는 이곳에서 5000여 년간 뿌리 내리고 살아온 우리 겨레 모두의 문제이며, 그 위기 해소는 문재인 정부의 역사적 소명이다. 나는 감히 그 해법의 단초(실마리)를 '쌀' 공여로 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하여는 올 초 남북한 간의 평화유지를 위해서는 '신뢰 관계' 형성이 필수적이며 식량과 농업 협력이 그 첫째 수단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대저 분단된 나라에서 평화와 통일을 바라보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간의 '신뢰(信賴)' 관계를 튼튼히 쌓는 일이 필요충분조건이다. 확실한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남북한 간의 현안을 논의하고 협상을 해야 진정성 있는 양보와 타협이 가능하다. 신뢰 관계는 단순히 말과 구호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자주 오고 가고, 만나고, 주고받고 나누는 과정에 신뢰의 싹이 트고 자라는 것이다. 적게 가진 측에 대하여 많이 가진 측이 먼저 손길을 내밀어 조건 없이 나누고 돕는 사이에 믿음이 싹트는 것이다. 그것은 만고불변의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불화하던 형제간에도, 또는 서로 싸우던 지역 간, 조직 간, 모든 인간관계에서 배려(care)와 나눔(sharing)이 먼저 행해져야 신뢰 관계가 형성된다. 마찬가지로 남북한 간의 신뢰 회복이 선행되어야 핵 문제, 인권 문제 등 거창하고 장기적인 정치 군사 부문의 협의도 가능하다. 이는 기본적으로 인도주의와 민생 살리기에 기반한 남북 간 식량·농업 협력이 우선 되어야한다. 고기 낚는 방법과 수단의 제공은 그 다음에 뒤따른다. 그리고 남북정상회담 개최라든지 남북경제연합 또는 북핵 해소 문제와 동북아 경제 협력 문제 등은 그 다음, 다음에 협의될 사안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신뢰는 인권과 인도주의의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문제, 즉 배고픔과 가난으로부터 상대측을 배려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바꾸어 말해, 남북 관계의 평화 정착을 위한 대화의 재개는 인도주의와 생태주의 차원의 식량·농업 분야의 협력에서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 그것은 남쪽에도 도움이 되고 북쪽에도 도움이 되는 농림수산 분야 협력사업을 가리킨다. 그중에서도 현 단계 남북한 경제사회 현상을 감안할 때에 쌀이 그 첫째이며 으뜸이다.

▲ 2010년 10월 북한 수재민에게 전달하기 위해 전북 군산항에서 배에 선적되고 있는 대북 지원 쌀 포대. ⓒ연합뉴스


남북한 공히 다른 방향에서 큰 골칫거리, 쌀

자의 건 타의 건, 남쪽은 쌀이 남아 골치를 앓고, 북쪽은 모자라서 백성들이 굶주리고 고통을 받고 있다.

즉, 남쪽은 지난 정권의 WTO 협상 실패로 해마다 40여만 톤의 외미(外米)를 의무적으로 사들여야 한다. 게다가 쌀 시장이 완전히 개방돼 상대적으로 저렴한 외미들이 홍수처럼 밀려 들어와 국내 쌀값은 80㎏ 가마당 13만 원대, 이른바 25년 전의 가격대로 뚝 내려가 농가 경제는 해마다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어언 재고량은 200만 톤 수준으로 쌓이고 정부의 재고미 보관비용은 10만 톤당 연간 300억 원으로 천문학적이다. 주조용, 제과용, 심지어 가축 사료로 소비해야 하는 처치가 곤란하다 못해 골칫거리이다.

문재인 정부는 쌀값을 최고 15만 원대로 회복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올 수확기엔 무려 쌀 75만 톤을, 그러나 농민단체에서 25만 톤을 더해 총 100만 톤을 시장에서 격리해야 한다고 옥신각신하고 있다. 그밖에도 정부는 2019년까지 쌀 재배면적을 10만 헥타르(㏊)를 추가로 감축하기로 방침을 세우고, 이미 올해 벼 재배면적 감축 목표 3만5000㏊(자연감소 1만5000㏊ 포함)를 달성했다고 밝히고 있다. 휴경하거나 타(他) 작물 재배로 전환한 논(沓)이 투기적 용도로 전환되고 있음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일단 다른 용도로 전환되면, 다시 수전(水田, 논)으로 바꾸기란 하늘의 별 따기가 된다. 남북한이 갑자기 통일이 되거나 또는 외국의 쌀 생산 작황 및 수송 사정이 악화될 경우, 일반 서민들이 맞닥뜨릴 식량 조달 애로 상황은 짐작하기조차 겁이 난다.

반면, 북녘땅의 식량 사정은 전혀 딴판이다. UN/FAO의 최근 추정자료에 의하면, 북한은 현재 식량총생산량이 정곡 기준 480만 톤 내외에 불과하다. 정상적인 식량 수요량 650만 톤에 크게 미달한다.(그래도 식량자급률은 남한의 22.4%보다 훨씬 높은 약 73.8% 정도이다.) 다만, 북한 주민을 근근이 먹여 살리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도의 양곡 수요량을 550만 톤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연간 약 70만 톤 안팎이 부족하다. 그러나 외화 사정이 여의치 않아 부족분의 식량을 제대로 사들여오지 못하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해마다 굶주리는 사람이 속출하고 노약자와 어린아이들의 영양 상태가 아주 심각하다고 국제식량계획기구가 보고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두 대통령은 재임기간 내내 비료 한 바가지, 쌀 한 톨을 지원하지 않았다. 촛불혁명이 탄생시킨 문재인 대통령은 이들과 달라야 한다.

쌀은 한반도 위기 해소의 돌파구

때마침 <농민신문>은 지난 9월 22일 우리나라에서 존경받는 언론인 한 분(<중앙일보> 국제문제 대기자 김영희 씨)의 특별기고 '한반도 위기 해소에 쌀을 활용하자'는 칼럼을 실었다. 주된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군사적인 대치와 대결로는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킬 수도 없고 남북한이 경제적으로 상호보완하는 상생 관계를 만들 수도 없다. 결국 기댈 곳은 풀뿌리 수준의 사회·경제 교류뿐이다. 쌀이 모자라는 북한, 쌀이 너무 많이 남아서 걱정인 남한이 쌀을 매개로 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진공상태를 허용하지 않는 자연의 법칙과 같은 것이다."

탁론(卓論)이다. 필자의 평소 주장과 한 치의 차이가 없다. 현 단계 한반도 위기에 대한 유일한 해법이다. 남한도 살고 북한도 살며 미국에도 나쁘지 않은 탁론이다.

이외에도, 남북한 간 상호 이익이 되거나 도움이 되는, 그리하여 장차 남북 신뢰 관계 형성에 근간이 되는 농림수산 분야의 상호 협력사업을 열거하자면 부지기수이다. 북한에 식목사업과 양묘사업을 지원하는 다양한 산림 분야 협력은 국제적으로 탄소배출권을 우리나라가 행사하는 꿩 먹고 알 먹는 사례이다. 국내 환경오염 대처 차원에서 남한에 넘쳐나는 가축분뇨와 남은 음식 등을 활용해 만든 유기질퇴비를 북한에 보내기 운동 역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환경 및 농업 분야 협력사업이다.

그 밖에 남측의 선진 영농자재와 기술 지원, 비닐하우스 고등 원예 사업 및 양돈 등 축산 분야(한우 및 산양 등 풀 사료 가축)에서의 협력은 서로 간에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남북은 남쪽의 쌀농사, 북쪽의 밭농사로 서로 보완관계를 이뤄왔으나, 지금은 둘 다 저조하다. 보완적인 협력이 절실하다. 또한 수산 분야 중에서 공동 양식어장 사업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대단히 유망한 협력 분야이다. 남측의 기술과 자재 제공과 북측의 노동력 및 무오염의 연안 바다 제공으로 막대한 어패류와 해조류 생산이 가능하다. 그 판매처와 수출 가능성도 막대하다.

이 중에서도 당면한 한반도 위기를 당장 돌파할 출구로 남쪽의 쌀과 북쪽의 특산품의 맞교환 사업이 단연 으뜸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 이 계획을 대담하게 수용하고 실행하기 바란다. 청사(靑史)에 길이 남을 대통령과 정권이 되기를, 민족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하는 바이다.

이 글은 전국농민회가 발행하는 <한국농정신문> 10월 2일 자 '농사직썰'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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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농업 및 환경문제 전문가로 김대중 정부에서 농림부 장관을 역임하였으며 <프레시안> 고문을 맡고 있다. 대학과 시민단체, 관직을 두루 거치며 농업과 농촌 살리기에 앞장 서 온 원로 지식인이다. 프레시안에서 <김성훈 칼럼>을 통해 환경과 농업, 협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