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司正)
사정(司正)
[서재철 칼럼] 검찰, 전북언론 '사정 칼끝' 어디로 향하나
사정(司正)

서재철 전주방주교회 담임목사, 전 언론인

정권이 바뀌면 늘 사정(司正)이 따른다. 연례행사처럼 반복된다. 구악 일소, 정의 구현, 부정부패 척결, 적폐 청산 등 시류에 맞는 명분을 내세운다. 대상은 주로 정치권과 고위공직 및 사회지도층 인사들이다. 때로는 사회 분위기 일신을 위해 깡패나 조폭들에 대한 소탕작전도 편다. 사실 집권 초기 민심 얻는데 이처럼 좋은 게 없다. 이른 바 ‘잘 나가는’ 그들이 왠지 부러우면서도 배 아프고 싫고 미운데 그들을 쳐주니 시원하고 고맙고 대리만족도 느낄 수 있으니 대부분 박수를 친다.


그러다 보니 과거 군사-권위주의 정권 땐 좀 과하거나 초법적 사정도 많았다. 법이라는 게 일단 걸면 걸리게끔 돼 있는 데다, 억울하면 나중에 재판 받고 나가라는 식으로 돼 있어 누구든 권력을 쥔 자가 맘먹으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 사정이 자칫 권력놀음이 되다 보니 뒷거래도 적지 않았고 용두사미가 되곤 했다. 결국 보복성 정적 제거용이 되거나 밉게 보였거나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만 당했다. 지방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평소 떳떳함과는 거리가 먼 토호세력이나 돈 꽤나 있는 재력가가 늘 표적이 되곤 했다. 길들이기 차원도 있었다. 게다가 검찰을 비롯 각 사정기관들이 곧잘 도구화돼 권력자의 입맛대로 움직이기 일쑤였다. 그러니 매번 정의는 구현되지 않았고 부정부패는 척결되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까진 그랬다. 


지금은 인권 향상과 민주주의 성숙으로 그게 잘 통하지도 않고 설사 통한다고 해도 그 정도가 많이 옅어졌지만 그래도 그 잔재는 여전히 남아 있다. 


문제는 집권 세력의 의식과 의지다. 다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일부라도 혹여 천신만고 끝에 이제 권력을 잡았으니 폼도 좀 잡고 힘도 과시하면서 미운 놈 혼 좀 내주고 당한 만큼 돌려주고 권력도 조금은 과시하고 싶은 욕망을 쉽게 떨쳐내지 못한다면 또 실패가 뻔하다. 이번엔 분명 좀 달라야 한다. 엄정한 적폐 척결은 이 정권의 핵심공약이기도 하다. 거기엔 어떤 감정이 개입되어서도 안되며, 다른 복선이 있어서도 안 된다. 절대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어쩌면 그것이 이 정권의 성공여부를 가릴지도 모른다. 


그런 가운데 도내에서도 이미 검찰을 통해 사정작업에 들어갔다는 전언이다. 몇 몇 유력 인사들과 언론사 사주들 몇이 해당돼 내사 단계를 지나 곧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갈 것이란 소문이 구체적으로 떠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일상적 범법 차원의 수사로 밝히고 있지만 외부에선 사정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무엇으로 보느냐는 중요치 않다. 오로지 범법여부와 공정성 및 형평성 여부다. 여론 등 실정법 외 다른 요인들을 감안한 사법적 접근은 안 된다. 


그런데 참 안타까운 게 있다. 도내에 사정 때만 되면 빠지지 않고 꼭 거론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기자가 보기엔 뭐 특별히 나쁜 사람이 아니다. 지역경제 활성화에 어느 정도 도움도 주고 고용도 창출하고 돈도 많고 열심히 살고 있다. 다만, 굳이 단점을 지적하라면 사업상 부락피해선지 잇속에 밝다. 그 연장선상에서 보면 약간의 표리부동 같은 있달까. 게다가 약간은 거들먹거리고 소위 ‘있는 사람들’ 끼리끼리만 어울린다. 원칙이 없고 이익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에서 그런 것들은 누구나 거의 비슷하다. 도대체 차이가 뭘까. 아, 그랬다. 상대에 대한 배려인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없었다. 그러니 자연 인색했다. 그것이 미움을 자초했던 게 아닐까싶다. 그리고 거론되는 또 한 명, 그는 가진 것도 없이 공연히 불량을 떨며 자꾸 주변에 민폐를 끼쳐서 그렇지 범법 정도는 아니었다. 대체적 여론이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런 여론 때문에 사정 대상이 되어선 안된다. 범법행위만 갖고 따져야 한다. 지금은 그런 시대다.


그럴지라도 오늘 기자는 그들이 단순 개인이 아닌, 책임 있는 우리사회 지도층이라는 점에서 조선 중기 성리학자 조식(曺植)의 자기관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그는 평소 스스로의 곧고 바름을 유지하기 위해 성성자(惺惺子-늘 깨어있는것)라는 방울과 곧고 방정함을 유지키 위한 경의검(敬義劍)을 지니고 다녔다. 몸소 정도(正道) 실천을 위해소리나는 방울과 잘못된 자기를 벤다는 의미의 예리한 주머니칼을 늘 품속에 소지했다. 그랬기에 항상 떳떳했고 당당했다. 평생 벼슬이 없어도, 그 어떤 상황에도 두려울 게 없었다. 물론 시대가 바뀌어 지금은 그런 태도가 맞지도 않고, 또 살다보면 물질우선의 이익추구사회에서 소신과 원칙을 지켜낸다는 게 결코 쉽지 않고, 때와 경우에 따라선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해야 하고 부정을 눈감아줘야 하고 소신을 접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사회를 책임지고 있는 지도층 공인이란 점에서 조식과 같은 자기관리의 자세만큼은 필요치 않나싶어 몇 자 적어봤다. 아울러 이런 떳떳함을 검찰도 함께 지녀 정권의 시녀가 되기보다도 본분에 충실, 훗날의 부끄러움을 남기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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