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地選 벌써 꿈틀
내년 地選 벌써 꿈틀
[서재철 칼럼] 유권자가 네편 내편 아니라 제대로 샅샅이 살피고 제대로 선택하는 자세 필요
내년 地選 벌써 꿈틀

서재철 전주방주교회 목사, 전 언론인

벌써부터 내년 지방선거 얘기가 나온다. 출마자들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론되면서 지연, 학연, 혈연 등을 내세운 움직임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전북 도내에선 어차피 민주당과 국민의당 후보들의 싸움이다. 현재로선 민주당 쪽의 압승이 예상되지만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내년 쯤 되면, 현 정권의 식상함으로 인한 당의 지지율이 하락돼 국민의당 후보들이 또 덕을 볼 것이란 시각도 적지 않다. 한 마디로 점치기 어렵다. 민심은 천심 운운하지만 변덕이 심해 믿을 수 없다. 크고 작은 요인들로 인해 쉽게 요동친다. 누구도 거기에 맞추기가 쉽지 않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래서 시운(時運)을 타고나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원래 선거는 말만 축제이지, 전부를 걸어야 하는 사생결단의 대혈투다. 말 그대로 '올 오어 낫싱'이다. 승자는 전부 얻지만 패자는 전부 잃는다. 그래도 그들은 승패여부를 떠나 입지 실현이라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기에 뒷말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공직사회다. 이들 공무원들은 어느 누가 되느냐에 따라 개개인의 입장이 확연히 갈린다. 맡은 일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위로 갈수록 줄을 잘 타야 한다. 줄을 잘못서거나 자칫 오해나 모함 등으로 일단 반대쪽으로 분류되기라도 한다면 승진은 꿈도 못꾼다. 거기에 단체장의 한 임기나 두 임기 정도 소외되면 도저히 만회가 어렵다.


새 단체장이 오면, 아니 새 당선자가 확정된 순간부터 소위 ‘살생부’가 나돌며, 전임으로부터 각별히 신임을 받았거나 중용됐던, 소위 측근으로 분류됐던 공무원들은 불안과 초조로 휩싸이다가 일부는 참지 못하고 짐을 싸기도 한다. 이긴 쪽은 공무원 개개인의 능력이나 사명감 같은 것은 아예 처음부터 안중에도 없다. 그저 네 편 내 편만 따진다. 완전 편 가르기다. 모든 것을 하나의 전리품 쯤으로 여기며 취임하기도 전에 조직 진단이라는 미명 아래 특정인 이름까지 거명하며 누군 되고 누군 안된다는 식의 망발을 늘어놓기 일쑤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바로 고홍(孤鴻-외기러기)과 삭조(朔鳥-사나운 새)다. 옛 중국 죽림칠현 중 한 사람였던 원적(阮籍)이 썼던 시에 나오는 단어다.


그 시는 이렇다.


고홍호외야(孤鴻號外野) 삭조명북풍(朔鳥鳴北林)
배회장하견(徘徊將何見) 우사독상심(憂思獨傷心)
-외로운 기러기 바깥뜰에서 슬피 울고, 사나운 저 새는 북쪽 숲에서 울부짖는다. 이리저리 배회하며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 근심스런 생각에 마음만 상하누나.

이 시는 다음과 같은 배경을 갖고 있다.


조조(曹曺)가 세운 위나라는 오래가지 않아 조방(曹芳) 때 이르러 실권이 사마씨(司馬氏)에게 넘어간다. 정국불안이 고조된다. 머잖은 훗날 사마담(司馬淡)이 국권을 완전히 장악, 서진(西晋)을 세우고 천하를 통일하지만 그 사이 정치보복들이 횡행하면서 사마정권에 득세한 무리들을 빼놓고는 대부분 자신의 앞날은 물론 생사조차 점칠 수 없는 불안의 연속이 계속됐다. 쉽게 말해 위나라에 충성했거나 가까웠던 사람들은 새 권력 앞에 전전긍긍하던 때였다.
여기서 외로운 기러기인 고홍(孤鴻)은 시인 자신이기도 하지만 구정권에 몸담았던 사람들을 뜻한다. 반면 북쪽 숲(궁궐 있는 곳)에서 사납게 울부짖는 삭조(朔鳥)는 사마정권에 편승 득세한 소위 실세 패거리들을 의미한다.

오늘 날도 다를 바 없어 크든 작든 단체장 교체는 늘 고홍과 삭조를 반복하며 만들어낸다. 게다가 전임자의 정책은 곧장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정책의 일관성은 처음부터 기대하기 어렵다. 늘 새롭게 출발하며 성과가 날만 하면 또 바뀌게 된다. 공무원들도 그걸 알기 때문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공복으로서 주민이나 국민을 보기 보다는 위만 본다. 위는 표만 보고 포퓰리즘에 빠진다. 그 폐해가 결코 만만찮다. 그럼에도 각 지자체가 굴러가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 물론 현재로선 달리 이 방식 외에 방법이 없으니 그대로 갈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이건 여전히 아니다싶다.


이를 견제 및 감시를 통해 시정할 수 있는 의회, 언론, 시민단체, 노조 등이 있지만 현실은 유착, 공생관계 등으로 사실상 기대난이다. 유권자 역시 지연 학연 혈연에 얽히고 이념적으로 뭉쳐 옳고 그름을 떠난 지 오래다. 결국 모두 길을 잃은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는가? 아니다. 있다. 교과서 같은 말이지만,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서로가 원칙만 지키면 그런 후유증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 유권자가 먼저 네편 내편이 아니라 제대로 샅샅이 살피고 제대로 선택하는 자세가 절대 필요하다. 다음은 인치가 아닌 시스템에 의한 지자체의 운용방식의 구축이다. 그리고 셋째는 언론 의회 시민단체 등 감시 및 견제 기구의 철저하고도 제대로 된 작동이다. 결국 모두의 각성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작가 및 전 언론인>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