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잃은 추석명절
정체성 잃은 추석명절
[서재철 칼럼] 효도도 돈으로 대체되는 세태...전통 그리운 사람들은 추석이 더 서럽기도
정체성 잃은 추석명절

서재철 전주방주교회 목사, 전 언론인

추석 풍경이 많이 변했다. 최대 명절, 설레임, 반가움, 차례와 성묘, 그리고 효와 풍요로움 등 모처럼 ‘사람 사는 것 같은’, 그런 모습이 이젠 더 이상 아니다. 그저 여지껏 그랬으니 한 번 다녀가는 것이고, 형제들도 한 번 모였으니 서로 간단한 안부를 묻는 정도다.

 

기껏 우애한다고 해야 서로 둘러앉아 정치 얘기 좀 하다가 밥 먹고 고스톱 정도 치는 것이다. 바쁨과 물질 숭상 풍조로 옛날 같은 혈연의 애틋함이나 정겨움도 없다. 부모 자식 간에도 돈 몇 푼 건네면 할 일 다한 것이고, 형제 간에도 잘해야 선물 좀 주고 받는 것으로 끝이다. 한 마디로 정겨움이 없다. 간절한 보고픔도 이젠 없다. 모든 것이 쉬워졌고 바쁘고 이기적인 생각 때문이다. 보고 싶으면 아무 때나 전화하면 된다. 영상전화도 쉽다. 모두 다 자가용을 가지고 있어 가고 싶으면 그냥 가면 된다. 대중교통도 편리하다.

 

다만, 걱정이 있다면 돈이다. 돈만 있으면 다 된다. 선물도 몽땅 보낼 수 있고, 인정도 받고, 돈만 주면 다들 하나같이 좋아한다. 벌초도 모두 대행이다. 성묘도 형식적이거나 아예 가지 않는다. 서로 고생한다고 음식도 요란하게 차리지 않는다. 제사음식까지 사서 한다. 뭐든지 필요하면 얼마든지 구매할 수 있다. 당연히 설거지도 없다. 이런 풍조에 대해 말세라며 혀끝을 차던 시골 노인들도 이젠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세상이 그렇게 변했다.
혈연 관계도 여자 위주로 변했다. 형제 간에 서로 우애하려 해도 동서들 때문에 쉽지 않다. 대부분 주도권이 아내들에게 있어 남자들이 아무리 뭘 계획해도 잘 안 되게끔 돼 있다. 시부모들도 며느리 눈치보며 위 아래가 실질적으로 바뀐지 오래다. 자식들은 친가보다 처가를 더 의식한다. 우리사회는 실질적 모계사회로 급속히 진입해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분명 전통사회는 더 이상 아니다.
과연 이대로 둬도 되는지 묻고 싶다.

성경 ‘사사기’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의 영도 아래 가나안 땅을 정복, 정착했지만 이민족과의 끊임없는 분쟁 속에서 사사들이 다스리던 영적으로 아주 어둡던 시대를 묘사하고 있다. 그때 하나님의 전적인 도움으로 홍해를 건넜고, 그 하나님께서 척박한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며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 인도하셨음을 직접 목격, 경험했던 사람들은 세월이 흘러 다 죽고 다음 세대가 들어섰다. 그런데 성경은 사사기 2장 10절에 이렇게 적고 있다.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라고.
‘다음 세대’라고 하지 않고 ‘다른 세대’라고 했다. 영어 성경에도 ‘next generation'이 아니라 분명 ’another generation'으로 돼 있다. 정체성 확립을 소홀히 했고 전통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다른 민족이 된 것이다. 이 때문에 훗날 엄청난 고난과 시련을 당하게 된다.

우리도 지금 혹시 그런 경우가 아닐까싶다. 우리는 반만년 이어온 한민족이다. 숱한 외침, 전쟁 재해 등 각종 우여곡절 속에서도 이렇게 지켜냈고 이어왔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하나씩 하나씩 놓쳐가고 있다. 바쁘다는 이유로, 비효율적이라는 핑계로, 합리적이지 못하는 이유로,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핑계로, 어설픈 세계화 및 국제화로, 그렇게 국적모를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게다가 더 심각한 것은 아이를 낳지 않아 향후 5백년 후 쯤이면 아예 우리 민족이 이 지구상에서 사라질지 모른다는 예측까지 나왔다는 점이다.
개선과 막연한 변화는 엄연히 다르다. 우리는 지금 변화한다고 하지만 실상 갈 바를 모르고 가고 있다.

어쨌든 추석 연휴 동안 우리는 잠시 만나고 헤어진다. 물론 매스컴에서는 우리 국민 모두가 조상께 차례를 지내고 성묘도 가고 집안 어른들도 찾아뵘으로써 가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어느 정도 확인하는 것처럼 보도한다. 그러나 이 부분은 현실적으로 매우 미미하다. 오히려 맞는 것은 실제로 반려견 때문에 고향을 찾지 못한다는 뉴스다. 또 효도도 결국 돈으로 대체되는 세태인 것도 맞고.
우리는 암튼 더 이상 전통의 추석풍경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전통이 그리운 사람들은 이 추석이 자꾸만 서럽게 느껴진다. 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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