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경하는, 했던, 할 몸에게 재난을 선포한다
월경하는, 했던, 할 몸에게 재난을 선포한다
[작은책] '위해성 생리대' 논란, 내 몸의 주권자는 나여야 한다
2017.10.15 13:57:40
월경하는, 했던, 할 몸에게 재난을 선포한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메시지까지 바빴다. 대부분 "너 생리컵 쓴다고 했지?"로 시작했다. 내 핸드폰이 요 얼마간 바쁜 이유는 단지 내가 생리컵을 사용해 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다들 걱정과 불안감, 그 위에 끼얹어진 분노와 배신감을 딱히 털어놓을 곳이 마땅치 않아 말 보따리를 풀어놓을 곳을 찾는 심정들로 연락들을 해 왔다.

생리대에서 인체 유해성 물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던 초기 며칠은 정말이지 정신이 없었다. 환불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충격을 급하게 무마하기 위해 던져진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환불을 대하는 기업의 태도에 여성들은 자신들이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되었는지 더 명징하게 알게 되었을 뿐이다. 꼼수를 부린 환불 가격하며, 환불이라는 대처가 근본적으로 이번 사태의 핵심을 고려한 조치가 전혀 아니라는 사실하며, 언급되지 않은 기업의 경우 아닌 척 나 몰라라 하는 태도 하며, 여성들의 분노만 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자구책을 찾아야만 했다. 역학 조사와 안전성 검사를 실시하라는 온라인 청원을 하고서도 당장 그날 생리대를 사러 갔다. 어쩌겠나, 이번 달도 어김없이 그날이 찾아온 것을. 도대체 월경을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이 사회는 정녕 모르고 있다, 혹은 절대 모르겠다는 의지를 보여 오는 것 같다. 어딘가 이상했었던 몸의 기억들이 이제야 정렬되어 가며, 몸이 보내온 징후에 나조차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에 자책할 시간도 없이, 다시 생리대를 사야만 하는 시간들은 또박또박, 일수 이자라도 받듯이 찾아오는 것이다.

대형 마트 앞의 1+1 생리대 무덤을 보면서, 오래도록 서서 자그마한 글자들을 열심히 읽어도 어떤 생리대를 사야 안전할지 답이 안 나온다는 문자. 아직 정보를 제대로 접하시지 못했는지 중학생 딸과 함께 저렴한 생리대를 카트에 가득 담는 아주머니를 보면서, 민망함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레 "아주머니 딴 거 사세요"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급한 대로 이번 달만 사용하고 면 생리대나 생리컵을 사용해 봐야겠다는, 어떤 것이 좋은지 생리컵은 쓸 만한지 묻는 지인들의 문자. 생리컵이 아직은 겁이 나서 혹은 해외 직구가 어려워서, 어떤 종류를 고를지 너무 어려워서 일단 면 생리대를 먼저 선택한 친구의 연락은 "지금 주문하면 12월에 받을 수 있대요"였다. 반면 21세기에 손수 생리대를 빨고 싶지 않다는 어떤 이들은 열심히 유기농 생리대를 찾았지만, 가격을 보고 기함을 하기도 했다. 외국에서 수입해 오는 이 제품은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구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한때 생리대를 구할 돈이 없는 어린 여학생들이 생리대 대신 신발 깔창을 쓰기도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드디어 여성이 사용해야 하는 일상적인 물품과 빈곤의 문제가 결부되어 논해진 적이 있다. 여성들은 이것은 말도 안 되는 현실이라며, 생리대 때문에 여학생들이 그런 일상을 보내게 할 수 없다며 열심히도 후원하고 생리대를 지원했다. 하필 그때 여학생들에게 전해진 생리대 후원품이 이번 유해 물질 논란의 생리대였다며, 누군가를 돕고도 자책하고 후회하던 여성도 있었다.

여하간 생리대 업체는 결론적으로 논란 속에서도 손해 보는 장사를 하고 있지는 않았고, 이번 달도 어김없이 찾아온 날들을 맞이해야 하는 월경하는 몸들은 불안 속에서도 자본에 놀아날 수밖에 없었다.

논란의 첫 일주일 정도는 뜨거웠다. 뉴스에 한 번씩은 생리대 유해 물질 논란이 이야기되었다. 그러나 벌써 조금씩 이 문제는 사라지고 있다. 사회는 어느새 생리대 논란이 '한때' 있었지라며, 그렇게 이렇게 또 흘러가게 두고 있다. 반면 내 주변, 여성들의 일상에서 이 문제는 전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아니, 어떻게 사라질 수 있겠는가. 일상생활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 줘야겠는가.

여성들에게 이 문제는 몸의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생리대는 몸의 내부이면서 외부일 수 있는, 민감한 부위에, 장시간, 직접적 밀착을 하는 제품이다. 이런 제품에서 유해 물질, 발암 물질이 나온다면 안전과 건강에 대해 걱정하는 것 말고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생리대에 대한 명확한 성분 정보나 이에 대한 확실한 검증, 과학적 설득은 부재하고 제품의 유통이나 가격 역시 신뢰가 가지 않으며, 관련한 제품의 종류를 여성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어 해외 직구까지 해야 하는 등 물품 종류와 지급 경로 역시 엉망이라면, 불안은 더욱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라는 정당한 요구에 대해 편견 없는 사회적 인식과 시선을 바라는 것이 왜 이리 어려운 일이어야 하나.

어느 댓글에서 '생리하는 젊은 여자들이 너무 예민하다'는 것을 읽었다. 월경과 여성을 엮어내는 가장 오래된 편견은 강력했다. 예민한 젊은 여성들의 이야기 같은가? 여성이 문제를 제기하면 그저 생리 탓. 월경은 젊은 여자만 하나? 반대로 젊은 여자는 무조건 '다' 월경하는 줄 아는가? 월경이 '옵션' 같은 것인 줄 아는가? 아니, 월경에 연루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누구인가. 왜 자신을 연루시키지 않을 수 있는가. 연루시키지 않고도 맘 편하다면 그저 이 사회가 당신에게 좀 더 잘 맞춰져 있기 때문일 뿐이다.

일명 '맘카페'에서의 불안과 걱정은 훨씬 더 우울하고 치명적이었다. 계류 유산을 두 번이나 한 적이 있는데 1년째 그 제품을 써 왔다, 혹시 연관이 있을까 걱정하는 글. 인공 수정을 할 때마다 실패했는데 생리대 문제는 아니었을지, 심증은 있어도 밝혀질 수 있는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체념. 오늘 병원에서 임신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왔는데 혹은 내일 태아 검진이 있는데, 임신 전부터 임신하고도 그 회사의 팬티라이너를 써 오고 있었다, 태아에게 문제가 있을까 검진받기 겁난다 등 열거하면서도 속이 부글부글 끓는 심정이다.

핸드폰의 메시지들, 친구들과의 이야기의 끝은 대개 '정말 재난이다'였다. 그렇다. 오늘 한국을 살면서 월경하는, 했던, 할 몸들에게 이번 생리대 유해 물질 사태는 말 그대로 재난이다. 그래서 나는 내 입으로 직접 나의 몸이 처한 지금의 현실을 재난이라고 선포할 것이다.

다만 착각하지 않기를…. 나는 국가나 정부에 재난을 선포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정신없는 상태, 내 몸과 이에 관련된 물품의 생산과 유통 등 거의 모든 것에 대한 불확실성과 분노, 무엇보다 월경에 연루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이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지 않다는 배신감에, 나는 재난을 선포한다. 이 말은 은유이면서 직유이다. 위험과 불안이 너무 직접적이며 일상적이고, 반복적이기에 이는 직유여야 한다. 그러나 여성의 삶이 오로지 '생리'로 환원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월경이 오로지 '임신·출산'의 기능만으로 축소되어서는 안 되는 만큼 지금의 재난은 은유로 남기도 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국가가, 정치인들이 과학자들과 기업인들의 '선의'와 '양심'에 기대어 재난을 선포하기를, 여성 건강이 비상사태임을 인지해 주기를 '요청'하지 않는다. 그들을 나는 순수하게 신뢰하지는 못한다. 그들은 저출산이라고 진단하고, 애를 낳으라고 종용하고, 낙태는 살인이라고 협박하지 않았던가. 내 몸의 주권을 나로부터 뺏던 자들에게 내 상황의 재난을 선포하게 할 수는 없다. 현재 혹은 한때는 피를 흘리고 흘렸던 자들은 그 몸으로 기억하고 체험하는 불안과 위기에 대해 스스로 재난을 선포할 수 있어야 한다. '일단' 지금 이 일에서 내 몸의 주권자는 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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