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오키나와 레전드'의 아리랑 "난 지구인입니다"
[인터뷰]'오키나와 레전드'의 아리랑 "난 지구인입니다"
[인터뷰] "DMZ에서 세계가 하나 되는 '하나 아리랑 공연' 엽시다"
2017.11.09 08:48:30
"동북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극우화 바람이 거세다. 마치 감염이 일어나는 것 같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감염 끝에 이를 극복할 길이 보이는 법이다. 불행히도 핵확산금지조약(NPT)이 무력화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만큼 NPT의 중요함을 깨닫게 되지 않나. 

평화를 지키자는 제안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전쟁이 이어지는 중동을 보라. 그곳은 지옥이다. 평화가 깨지면 지옥이다. 인류는 하나임을 우리 모두 생각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

능수능란한 현역 정치인의 말인 듯하지만, 일본 오키나와현 출신의 뮤지션이자 평화활동가인 키나 쇼키치(喜納昌吉, 69세)의 주장이다. 오는 10일 내한 공연을 위해 지난 7일 한국을 찾은 키나 쇼키치는 일본에서는 '오키나와 레전드'로 불리는 뮤지션이다. 오키나와 전통 악기인 산신(三線)을 활용해 오키나와 전통 음악과 팝/록을 접목한 특유의 음악 세계를 구축한 그의 작품들은 일본 평론가는 물론, 세계 유명 뮤지션들로부터도 높은 찬사를 받았다. 

그가 1977년 자신의 밴드 참프루즈(チャンプルーズ)와 함께 낸 앨범 [키나 쇼키치 & 참프루즈(喜納昌吉&チャンプルーズ)]에 수록된 대표곡 '하이사이 오지상(ハイサイおじさん, 안녕하세요 아저씨)'은 일본 전역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이 곡은 지금도 오키나와 출신 고교가 고시엔(甲子園)에 진출하면 응원가로 쓰인다. 다른 히트곡 '하나(花, 꽃)'는 중국, 태국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리메이크되었다. 여태 그가 낸 15장의 앨범은 총 3000만 장 이상 판매되었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일찌감치 세계적 아티스트의 자리에 올라섰다. 음악으로 평화의 소중함을 알리고 인류의 하나됨을 기원한다는 그의 메시지와 밝으면서도 구슬프게 들리는 그의 음색은 존 레논, 제리 가르시아, 밥 말리, 밥 딜런, 데이비드 보위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영미권의 뮤지션까지 홀렸다. 영미권에서 이른바 '제3세계'로 뭉뚱그리고 마는 세계의 블루스 연주자들을 찾던 기타리스트 라이 쿠더(Ry Cooder)는 키나 쇼키치와 여러 차례 협연했다. 존 레논 역시 아내 오노 요코와 함께 키나 쇼키치와 한 무대에 선 바 있다. 

▲ 한국을 찾은 음악인이자 평화활동가, 전 정치인 키나 쇼키치.ⓒ프레시안(최형락)


오는 10일 홍대 롤링홀에서 열릴 내한 공연 '하나 아리랑('꽃 아리랑'이라는 뜻과 한국어 '하나(one)' 아리랑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지닌 말)'을 앞두고 8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호텔에서 그와 인터뷰를 가졌다. 이번 공연을 위해 키나 쇼키치와 참프루즈 멤버 13명을 비롯해 비서, 사진작가, 서포터즈 등 대규모 인원이 한국을 찾았다. 

이날 키나 쇼키치는 오전에 비무장지대(DMZ)를 둘러봤다. 공교롭게도 한편에서는 '무기상'으로 평가받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같은 날 입국한 그는 DMZ 방문계획까지 같이 세웠다. 그러나 평화를 원하는 키나 쇼키치는 DMZ를 찾을 수 있었고, 도널드 트럼프는 방문에 실패했다. 

이번 내한 공연은 그의 네 번째 한국 공연이다. 알고 보면 키나 쇼키치는 김대중 정부가 1999년 9월, 일본 문화 2차 개방을 결정해 일본 뮤지션의 2000석 이하 규모의 내한 공연이 가능해진 후 처음 한국에서 공연한 뮤지션이다. 이 해 10월 20일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종교와 문화 포럼’에 초청받아 공연했기 때문이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이었던 김성재 김대중노벨기념관 이사장이 키나 쇼키치의 내한 공연을 기획했다. 

오키나와현민의 아픔은 한국인의 아픔

키나 쇼키치의 앨범을 들어보면 단연 부각되는 건 흥겨운 기운이다. 오키나와 민속악기 산신이 밝게 튕겨 오르고, 코러스는 춤추는 듯 이미지화한다. 하지만, 곧이어 쉽게 설명하기 힘든 애잔함이 함께 밀려온다. 자메이카에서 출발한 레게는 물론, 우리나라 민요의 서정성과 닮은 기운이다. 

키나 쇼키치도 이 같은 의견에 동의했다. 그의 음악을 처음 접한 여러 평론가에게서 같은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대중음악계에서는 그의 음악을 두고 '오키나와 록'으로 카테고리화했다. 그러나 그는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내 음악을 '오키나와 록'으로 부르지는 않는다. 음악에 장르는 문제가 아니다. 음악은 국경을 넘고, 장르도 넘는다. 나는 음악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길 원한다. 내가 음악을 하는 이유고, 음악으로 평화 활동을 이어가는 이유다."

키나 쇼키치의 대표곡 '하이사이 오지상'은 쇼키치표 음악의 기운을 상징한다. 이 노래는 그가 중학교 때 겪은 충격적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1962년 오키나와는 아직 미군정 하에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이곳의 주인은 일제에서 미국으로 바뀌었다. 전쟁의 상흔은 깊었다. 

메이지 시대에 일본제국에 강제 편입된 후, 류큐(오키나와)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미군의 오키나와 상륙 당시 일제는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옥쇄를 지시했다. 약 2개월간 이어진 오키나와 전투에서 민간인 1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수많은 이가 전쟁의 후유증을, 나라 잃은 후유증을 앓았다. 

어린 키나의 동네에도 그런 이들이 많았다. 동네 한 아저씨가 전쟁 후 정신 이상을 앓은 여성을 아내로 맞았다. 아내는 제 자식의 목을 쳐 죽였다. 아이 머리는 나베 요리(냄비 국물 요리)로 만들고 있었다. 사건 후 아저씨는 술독에 빠졌고, 아내는 자살했다. 어린 키나 쇼키치는 비극적인 이 사건의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그 후 어린 키나는 폐인이 된 아저씨의 술심부름을 해주곤 했다. 이 일화가 '하이사이 오지상'으로 탄생했다. 오키나와 민속 악기 연구가이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찌감치 민속 악기를 손에 잡았던 그가 13살 때 만든 곡이다. 


관련해서 '자신을 오키나와인이라고 생각하는지, 일본인으로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솔직히 답했다. 

"내 국적은 일본이지만, 마음 속은 오키나와인이다. 여전히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제의 만행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나는 오키나와인이기 이전에 지구인이다."

이와 관련, 이번 공연을 기획한 김지훈 프로듀서는 "키나 쇼키치 & 참프루즈 멤버들은 술이 적당히 들어가면 오키나와에 위압적인 일본의 태도를 비판하기 일쑤"라면서도 "아무래도 젊은이들은 저 세대만큼 일본에 관한 반감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1948년생인 키나 쇼키치는 이제 일흔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열정적으로 평화를 강조했다. ⓒ프레시안(최형락)


DMZ에서 평화 공연 열고 싶어

오키나와의 역사와 관련해 재미있는 사실이 또 하나 있다. 키나 쇼키치의 어머니는 그가 어릴 적부터 우리 민요 '아리랑'을 즐겨 불렀다. 어머니는 그 노래가 (당시로는) 조선 노래인지도 모르셨다고 했다. 아마 조선인이었던 어머니의 옛 남편에게서 배우지 않았겠느냐고 키나 쇼키치는 말했지만, 실제 '아리랑'은 오키나와에서 오랫동안 불렸다. 

"1993년 대전 엑스포 당시 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 어머니는 당시도 '아리랑'을 흥얼거리셨다. 아리랑의 멜로디는 아름답지만, 이야기는 슬프다. 오키나와 음악과 닮은 면이 많다. 내가 어릴 적에는 이 노래가 한국 민요인지도 몰랐다. 어머니 세대는 이 노래를 구전가요처럼 많이 불렀다."

그가 내한공연 명에도 아리랑을 붙인 까닭이다. 전쟁의 비극을 누구보다 깊이 겪은 한국과 오키나와에서 평화가 크게 불리우길 그는 바랐다. 그는 한국의 분단 현실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키나 쇼키치는 한국은 물론, 북한에서도 두 차례 공연을 가진 바 있다. 그는 조총련계와 민단이 함께 만드는 도쿄통일마당에도 꾸준히 참가한다. 

"한반도 문제가 곧 오키나와의 문제이고, 나아가 세계의 문제이기 때문"에 자신은 한국을 자주 찾는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번에 한국을 찾아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다고 그는 말했다. 

"DMZ를 둘러보니 통일을 간절히 바라는 한국인의 마음을 새삼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포옹하는 장면을 봤는데, 당시 그들의 마음을 요즘 젊은이들도 잘 이해하면 좋겠다."

이 대목에서 그는 뜻밖의 이름을 얘기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족인 영친왕 이은의 아들 이구(1931~2005)다. 아내 줄리아 멀록과의 비극적 사연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그는 생전 일본에 오래 살았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키나 쇼키치에게서 나온 건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구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다. 피지배 민족의 왕족으로서 그의 비극적 생애를 잘 안다. 그의 삶은 류큐 왕국 멸망 후 일제에 흡수된 오키나와 왕가 사람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이구를 통해 한국에 관한 관심이 커졌다. 내가 한국인에게 동질감을 가지는 이유다. 지금도 한국과 오키나와의 운명은 비슷하다. 오키나와에만 미군기지가 3개 있다.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오키나와도 위험해진다. 한국의 평화를 지키는 게 오키나와의 평화, 나아가 세계 평화를 지키는 길이다."

키나 쇼키치의 이번 내한 공연은 홍대의 유서 깊은 공연장인 롤링홀에서 열린다. 하지만, 그의 명성을 생각하면 더 큰 공연장도 충분히 괜찮았으리라 여겨진다. 파주 평화누리공원과 같은 곳에서 공연해 볼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다. 그걸로는 만족 못한다는 표정으로 그가 답했다. 

"내년에는 DMZ 안에서, 한국과 북한의 한가운데에서 '하나 아리랑 공연'을 열고 싶다. DMZ에 한국과 북한은 물론,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뮤지션들도 초청해 함께 공연을 만들고 싶다. 이 공연이 성사된다면 세계에 얼마나 큰 울림을 주겠는가.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이 다시 드리운다면, 우리는 '파멸의 방아쇠'에 손을 얹은 상태가 된다. 전쟁이 아니라 축제의 불을 댕겨야 하는 이유다. 나는 이 축제를 꼭 성사시키고 싶다. '하나'는 일본어로 '꽃'이지만, 한국어로는 '하나(one)'이다. 총 대신 꽃이 피고, 한반도가 하나가 되길 기원한다."

그의 공연을 찾는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 당부를 요청했다. 대답은 간결했다. 

"함께 노래하고 춤춥시다. 지구와 함께 춤춥시다. 밝은 미래를 함께 만들어갑시다!"

기타를 잡은 참의원

키나 쇼키치의 경력 중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게 있다. 그는 지난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민주당 참의원으로서 정치인의 삶을 살았다. 당시 그가 추진한 게 일본은 물론, 국제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던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의 현외 이전이었다. 바로 중국을 겨냥하고 있는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가 더는 오키나와 현민에게 위협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 결과적으로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는 현내 재배치로 결정됐고, 민주당은 정치적으로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 

왜 기타를 들던 그가 정치인으로 변신했을까. 키나 쇼키치의 답은 역시 간단했다.

"정치인들이 아무도 평화 문제에 관심이 없잖아!"

다시 정치할 생각은 없을까. "지금은 음악이 가장 중요하다"는 게 그의 답이었다. 

키나 쇼키치는 음악가로서도, 평화활동가로서도 정치적 논란의 첨병에 서곤 했다. 이라크 전쟁 당시 그는 일본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쟁터를 찾아 평화 가두행진을 강행했다. 이 때문에 키나 쇼키치는 보안법 위반 논란에 휘말렸고, 일본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가 2008 베이징 올림픽 공식 축하 콘서트에 일본 대표로 초청받아 무대에 올랐으나 일본 방송에서 통 편집당한 이유다. 

그의 바람과는 달리 한반도는 위험 일로를 걷고 있다. 북핵 문제가 세계 전역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잠재된 문제도 많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오랜 문제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한중일에 집중된 원전 문제도 심각하다. 그의 바람을 배반하는 현실 앞에 무기력해지지 않을까. 

"오히려 지금이 좋은 기회다. 6자 회담 참여국들이 결심하면, 세계의 원전 문제, 핵무기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 우리는 노래로, 춤으로 평화의 중요성을 계속 일깨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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