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궁정동 총성에 롯데 신격호는 안도했다?
10.26 궁정동 총성에 롯데 신격호는 안도했다?
[프레시안 books] <한국 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
2017.11.25 23:28:03
10.26 궁정동 총성에 롯데 신격호는 안도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9년 궁정동 안가에서 숨진 소식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의외의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다.

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기 불과 몇 시간 전 '롯데쇼핑센터' 건을 재가했기 때문이다. '재벌'의 성장사를 중심에 놓고 한국 자본주의 역사를 살펴본 책 <한국 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 (안치용 지음, 내일을 여는책 펴냄)에 등장하는 롯데와 박정희 정권의 유착 관계는 다음과 같다.

"롯데가 재벌로 본격적으로 발돋움한 계기는 1970년 신격호와 박정희의 만남이다. 신격호는 1970년 11월 13일 주일대사 이후락과 함께 도쿄를 떠나 한국에 도착했고, 공항에서 청와대로 직행하여 대통령 박정희를 만났다.

박정희는 신격호에게 반도호텔을 불하해줄테니 국제적인 호텔을 만들어 성공시켜 달라고 요청했다.(일제시대 지어진 반도호텔은 해방과 함께 국가 소유로 넘겨져 당시 관광공사가 운영하고 있었다.)

(...)1974년 6월, 롯데는 반도호텔 매각 입찰에 단독 응찰하여 낙찰을 받았고, 박정희의 지시로 반도호텔 옆의 국립도서관도 손쉽게 사들였다. 중국음식점 아서원을 비롯한 인근 사유지 매입에도 정부의 도움을 받았다.

(...)신격호는 호텔을 짓는 김에 유통업(백화점)에도 진출했다. 호텔 옆에 짓기로 한 9층짜리 부속건물을 당초 신고와 달리 25층으로 높였고, 용도 또한 준공을 앞두고 투숙객을 위한 쇼핑센터(1-2층)에서 백화점(1-7층)과 임대사무실로 변경했다. (당시 규제 정책 중 하나로 대규모 백화점이 시내 한복판에 들어설 수 없었지만 편법이 동원돼 일을 성사시켰다.) 박정희는 궁정동 안가에서 숨지기 불과 몇 시간 전인 1979년 10월 26일 오후에 '롯데쇼핑센터' 건을 재가했다."

▲ <한국 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안치용 지음, 내일을여는책 펴냄). ⓒ내일을여는책

신격호는 전두환 정권에서도 정치헌금 명목으로 50억 원을 건넸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정권과 결탁해 123층짜리 제 2롯데월드 건립을 승인받으며 '대한민국 최고층 마천루'의 꿈을 이룬다. 하지만 2017년 현재 롯데는 그룹 후계자 자리를 두고 벌어진 형제의 난과 과거 정부와 유착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으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의 '재벌'스럽게 성장한 기업 중 하나인 롯데의 오늘이다.

5.16 쿠테타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정부는 애초 4.19혁명 직후 시작된 '부정축재자 처벌'을 완성지어 국민적 지지를 얻고자 했다. 하지만 이 방향을 180도 튼 사람이 당시 삼성 이병철 회장이었다고 한다. 이병철 회장은 1961년 6월 27일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을 만나 경제개발을 위한 투자 협력을 대가로 당시 부정축재자로 체포.구금돼 있던 재벌 경제인 12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물론 사전에 쿠테타 세력과 물밑 협상을 끝낸 후 최후 협상이었다. 이후 석방된 '부정축재자(재벌 회장)'들은 군사정권과 연결 창구로 '한국경제인협회'를 꾸렸다. 이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이다. 결국 부정축재자들은 강력한 처벌 대신 정부의 집중적인 금융지원을 받으며 국가기간산업에 뛰어들 독점적 기회를 제공받았다. 이는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밀월관계가 형성된 결정적 순간이라고 저자는 평한다.

영국 옥스퍼드 사전에도 등재된 '재벌(Chaebol)'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현대사의 흐름을 따라 이어온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밀월관계를 통해 형성됐다. 저자는 이 과정을 단순한 '유착'이 아니라 '범죄 자본주의'라고 규정한다. 일제가 남긴 적산, 미국에서 들어오는 원조, 그리고 한국전쟁이라는 복잡다단한 정치·경제적 변수 속에서 친일파는 친미파가 변신했고, 이들은 한국 자본가의 뿌리이기도 하다. 해방과 미국이라는 외세의 개입, 전쟁을 거치면서 행사되지 못한 '정치적 정의'는 이후 자본 축적 과정에서의 '경제적 정의'도 행사되지 못하게 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자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서라도 종신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결재서류에 자기 이름의 끝 글자인 '만'에 오케이라는 뜻의 '가'를 붙여 붓글씨로 '만가'라는 한문 사인을 써 결재를 했다고 한다. 원조물자와 자금의 특혜를 누구에게 주느냐를 결정하는 '만가'는 정경유착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 단어였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사실상 이승만의 후계자인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앞서 서술한 이병철 삼성 회장 등 재벌을 협치의 파트너로 받아들였다. 박정희 정권은 이런 정경유착에 반대하는 세력을 '빨갱이'로 모는 반공 이데올로기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꾀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비극적인 일은 베트남 파병, 광부.간호사의 서독 파견 등을 통해 벌어들인 외화의 상당 부분도 '차관'의 형태로 재벌들의 주머니를 불리는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저자가 한국의 국가가 주도한 재벌 중심 경제를 '범죄 자본주의'라고 일컫는 이유는 "사법적 심판을 벗어나 있고 나아가 사법을 포함한 국가와 사회의 권력을 총체적으로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기초하고 설계하여 완성한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진 정치권력은 태생 자체가 범죄적이다. 이 독재자들은 민족과 공동체의 국가를 찬탈하여 소수 기득권 집단의 국가로 만든 범죄자다."

2017년 현재 저자가 지적한 '범죄 자본주의'의 폐해가 민생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고 있는지 우리 모두가 절감하고 있지만, 이를 벗어날 출구는 '각자도생' 방식인 '탈조선' 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절망이 지배적이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이렇게 권한다.

"느린 걸음이 되겠지만 희망 자체보다는 희망의 근거를 찾는 일에서 우리는 희망 부재의 타파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 일은 절망을 깊숙이 또한 찬찬히 들여다보는 일에서 시작된다. 부끄럽지만 이 책은 일종의 들여다보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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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기자 onscar@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1년 프레시안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정치, 사회, 경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13년부터 4년 동안 편집국장을 지냈습니다. 프레시안 기자들과 함께 취재한 내용을 묶어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등을 책으로 냈습니다. 원래도 계획에 맞춰 사는 삶이 아니었지만, 초등학생 아이 덕분에 무계획적인 삶을 즐겁게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